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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반, 그리고 그 식구들”
월간 ‘시사문단’ 사무실에서 행사에 참석했다가, 책장속에 진열된 책 한권을 펼쳤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나올때 이 책을 가져 왔다. 천천히 읽어 보아야지 하면서 내 책상 책꽂이에 잘 보이도록 놓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쓰신 오세정 시인님을 직접 만난적이 있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내가 사람을 얼른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수를 할 때도 종종 있기도 하다.
오세영 시인님께 허락도 없이 독자의 생각대로 감상문을 쓴다.
저자 소개
-성 명 : 오 세 정
-경 력 : -경기도 안성 출생
-월간 시사문단에 시 아까시꽃 외 2편으로 등단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빈여백 동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지역에서 활동
-저 서 : 시집 「공원길」, 「소반, 그리고 그 식구들」,
공저 「봄의 손짓 제 4호」, 「봄의 손짓 제 5호」
책 소 개
-제 목 : 소반, 그리고 그 식구들
-펴낸날 : 2011년 5월 13일
-펴낸곳 : 도서출판 그림과 책
책의 구성
-총 4부 시 65편
- 작품해설
(삶의 진실과 서정적 미학의 구축- 홍윤기 한국문인협회 고문)
감상문
단풍놀이
오세정
투벅 투벅 도착한 관악산 언저리
햇살은 벌써 목덜미에 쫓아 왔다.
등산로는 이미 산행하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고
경주마처럼 뛰는 이
단풍에 단풍을 덧씌운 이
모두가 눈길은 하나
꼭대기 쪽 가는 길로 틀어 놓았다.
오르려는 사람과 보폭이 같을 수 없는 나는
비켜서 주기를 반복하면서 중턱쯤에 머무르니
문득, 바람에 띄어 보내고 싶은 말
여기 있는 동안에 웃음도 편안하이
소걸음으로 올라왔어도 등줄기 젖고 목은 타고
배낭부터 풀었다.
정상이 뒤에
좌우에는 손 닿을 듯 말 듯 흐르는 능선
골짜기에 둔덕이 솟은 앉을 만한 솔밭이다.
이름 모를 산새들 뻔질나게 머리위를 가로 지르고
참나무 밑 바위에서는 다람쥐가 앙증스럽게 훔쳐보고 있다.
단추 풀어 제치고 목을 적시니
세상이 저아래
이름 떴던 그 절은 소박한 정원처럼 보이는데
나랏일 엮은 집은 기왓골이 깊어졌구나
경계 긋는 터널 구멍은 막혔다 뚫어지고 뚫어졌다 막히는 짓
되풀이 하고
주변에 붉은 미소로 유혹하는 색의 마녀들
육포 찢고 찢었겠다 오이 꺽둑 깨물었겠다
메말랐던 가숨에 불이 붙는가
취한 단풍에 취해 가는가
이 중턱에 뭍혀 일어날 줄 모르고 코 골고 있는
나는,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내가 아침 일찍이 관악산에 등산을 하러 가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등반 준비를 하고 아침 식가를 하고 늦을 새라 집을 나선다. 관악산에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었고, 그들은 눈빛은 모두 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향하고 있었다.
등산로는 이미 산행하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고 / 경주마처럼 뛰는 이 / 단풍에 단풍을 덧씌운 이 / 모두가 눈길은 하나 / 꼭대기 쪽 가는 길로 틀어 놓았다.
시에 적용한 시어들이 수필을 쓰듯이 가볍게 쓰고 있다. 그러나 시어들을 은유나 함축없이 있는 그대로 끌어다 쓰면서도 간결하게 사용하였다, 마치 내가 시 속에 빨려 들어가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다. 자유롭고 다채롭고 심오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꼭대기로 가는 길을 틀어 놓았다” 라는 표현은 빨리 만들어 내기 쉬운 시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너무 쉬운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이미 표현해 놓은 것을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콜롬버스의 달걀 세우기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소걸음으로 올라왔어도 등줄기 젖고 목은 타고” 소걸음이란 어떤 걸음일까? 늦은 걸음 즉 천천히 천천히 걷는 걸음일까. 아니면 묵묵히 힘찬 걸음일까 ?. 여기서 시인은 전자의 천천히 걷는 걸음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독자인 내가 생각하기에는 투벅 투벅 이라는 표현으로 생각 할 때 후자의 묵묵히 무게 있게 힘 있게 걷는 걸음으로 보인다. 또한 “등줄기 젖고 목은 타고”라는 표현에서도 후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 소걸음을 빌어 자신의 힘든 상태를 암시적으로 나타낸 것일 것이다.
“경계 긋는 터널 구멍은 막혔다 뚫어지고 뚫어졌다 막히는 짓 되풀이 하고” 괸악산 밑을 가로 지르며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터널에 막혔다 뚫어졌다 한다는 표현은 아마도 차량의 소통량이 많아 방금 터널안의 차량들이 다 나갈 것 같으면서도 또 들어가고하는 일의 반복됨을 표현하는 것ㅇ로 이해된다.
"주변에 붉은 미소로 유혹하는 색의 마녀들 / 육포 찢고 찢었겠다 오이 꺽둑 깨물었겠다 /
메말랐던 가숨에 불이 붙는가 / 취한 단풍에 취해 가는가 / 이 중턱에 뭍혀 일어날 줄 모르고 코 골고 있는 / 나는, / 시인은 마지막 연을 통해서 가을의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빛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힘들고 목마름을 육포와 오이로 달래면서 주변 경치와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오른자 만의 기득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음이다. 가진 자 만의 힘, 오른 자 만의 권한에 메타포인 것이다.
꽉 채우면 냉장고도 답답하겠지요
오세정
-세상에, 이럴 수가
김치냉장고 들여 놓던 날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옮기려다 놀랐던 표현이지요
이젠 시장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겠고
먹다 남은 반찬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애먹던거
걱정 놓아도 된다는 꿈
김치냉장고 사 놓기로 결정하고 좋아했던 몇 날 며칠
한순간 날아 갔지요
냉장고 정리는 가끔 한다고는 했지만
어쩌다 아래위 꽉 차 있는 것 보면
나도 답답하고 숨 막힐 때가 있긴 있었지요, 그래서
이번엔 큰마음 먹고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치우다 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냉동실엔 찔끔찔금 비닐에 쌓인 고깃덩어리, 낯선 인절미,
청국장 덩어리까지 꽁꽁 얼어 처박혀 있고
귀퉁이엔 퍼드러진 두부 반 모,
야채박스엔 철 지난 풋콩 한 줌...
참으로 다 말 할 수 가 없군요
애들이 볼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내가 이렇게 게으르고 게을렀나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지요
다행이 그이도 들어오지 않아 대충 정리가 끝나 가는데
어딘가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것 같아
왜 그럴까 하고 냉장고 안을 훑어보니, 어쩜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라고는 그 흔해 빠진 꽁치 한 토막 없지 않겠어요
그이와 애들 식성만 맞추고 살아왔나 생각하니
난 뭔가 싶고 너무나 초라해지는 거 있잖아요, 하지만
어떡해요 웃어야 할 수 밖에
놀랄 일 또 있지요
김치 냉장고로 보낼 것들 옮기고 나니 냉장고 안이 글쎄
운동장처럼 넓어 보이지 않겠어요. 가슴까지 시원해지고
쑥스러운 애기지만 냉장고 한번 꼼꼼히 들여다 보세요. 혹,
꽉 채워 놓은 분들
-“꽉 채우면 냉장고도 답답하겠지요” 라는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왠지 수필을 읽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의 흐름부터 시어의 선택들이 모두 소설체 나 수필체 그대로 인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 하듯이 술술 풀어 나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마치 영화의 한 장면만을 연상케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그 안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 그것을 4연에 옮겨 놓은 것이다.
어찌보면 일상의 주부의 모습을 남자인 시인이 자기의 일처럼 꾸밈없이 나타낸 것이다.
자기가 주부인 냥 주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오세영 시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우리 집사람도 김치 냉장고를 사오던 날 잠을 설치면서 냉장고 정리를 하고, 김치 냉장고를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면서 어린아이 세발자전거를 선물로 받은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쩌다 냉장고 냉동실을 열어 보면 검정 비닐봉지, 하얀 비닐봉지에 뭉치 뭉치 쌓여 꽁꽁 얼어 잇는 것들이 수없이 많이 있어 냉동고 문을 잘 못 닫으면 열리기 일쑤입니다.
아마도 사람사는 모습은 누누 할 것 없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애들이 볼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 내가 이렇게 게으르고 게을렀나 /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지요“/ 어쩜 본인도 아니면서 부인이 경험했을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표현을 하여 시를 읽는 동안 오세영 시인이 여류시인이셨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러나 확인해 보면 아니고요. 또 다른 안도감 속에 실망감도 느끼곤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라고는 그 흔해 빠진 꽁치 한 토막 없지 않겠어요 / 그이와 애들 식성만 맞추고 살아왔나 생각하니 / 난 뭔가 싶고 너무나 초라해지는 거 있잖아요, 하지만” /
이것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의 주부들 모습이 이런거구나 하게 되지요. 남편과 자식 그리고 부모님 생각, 남편의 수입 생각에 본인들이 먹을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오직 가족들 입만 생각하다보니 살림을 하는 본인의 입맛에 맞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렇구나 !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쑥스러운 애기지만 냉장고 한번 꼼꼼히 들여다 보세요. 혹, / 꽉 채워 놓은 분들”
그렇다, 냉장고가 있는 집들은 한번쯤 냉장실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언제쯤 그곳에 음식을 집어 놓고 한번도 빼내지를 않아 무엇이 들어 있는 지도 모르고
필요할 때는 또 사들이는 일이 반복되어지곤 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일 것입니다.
그 동네 사람들(1)
오세정
1.
공항이 들어선다는 예기가 떠돈 후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동네가 폭파되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사이보다 더 큰 쇼크였다.
뭐가 어떻다고 ? 공항이 들어선다고
있는 놈들 타고 내릴 비행장을 짓는 다고
손바닥만한 땅에 비행장을 만든다고
세상에 이건 아니야 여긴 아니야
근데, 성님은 뭐란 데요 이장님 말 좀 해보소
글쎄, 확실한 건 모르지만 앞장서고 있다는 애기가 돌아
이쪽에다 유치를 해야 된다는 정치적인 뭐가 있다나 봐
이런 염병할 ! 그놈의 정치 놀음
초심 잃지 말고
주먹 쥐고 날 뛰지 말고
꼴값 떠는 거 닮지 말고
제발 뺏지 노릇이나 똑똑히 하라고
온 집안이, 문중까지 나서서 신신당부했건만
이런 염병할
그 동네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그 동네 사람들
우박 맞아 쑥밭 된 푸성귀처럼 침묵도 흐느적
말을 잊었는지
별일 없이 살아온 게 별일이었는지
하여튼 그랬던 것 같아.
2.
“난, 요즘에 더 생각나는 거 같어. 피라미 잡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냇갈 헤매던“
“그 생각 안 나는 사람 어딨겠나”
“이 근방에는 그런 곳 없었지”
“다리 밑에서 아랫말까지 펀펀하게 깔렸던 모래밭, 낮에 모였다. 하면 공차고,
달밤에는 윗말 아랫말 기마전 놀이하고”
“그러고 보니 우리 모임 가진 것도 꽤 지났네”.
“그나저나 공항 문 닫는다며”
“그렇다네, 애시 당초 비행장 들어설 곳은 아니었지. 그때
말들 많었잖아“
“돈 처질러 그 꼴 만든 몰이 꾼 대갈패들. 모가지 떨어질까봐
꽥 소리 한번 못 한 쪼무래기들, 에이 입 더러워지기 전에 그만 둬야지“
‘그만 해여, 우리 같은 무식한 촌놈들 다 아는 얘기. 동네
없어진 거 옛날 된 지 오래고. 그나마래도 나이 들어 이렇게
고향 가까운데 와 지난 애기할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 아니가.
잘못된 이주민“
“그래, 우린 잘못된 실향민이지. 소주나 한잔 더 하세. 자”
-이 산문 시는 시라기 보다는 산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화체를 통하여 완전하게 산문 형식으로 소화해 냈다.
시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함축이나 메타포 같은 찾아 볼 수 가 없다고 하겠다.
또한 시어에 그리 탐탁하지 않은 "염병할" 이러한 말들을 여과 없이 사용하여 시라는 것은 순화된 아름다운 시어와 시인들이 창작해내는 새로운 시어로 시를 쓴다는 고정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런 말들이 왠지 어색하게 들릴 것으로 생각을 한다.
물론 이보다 더 원색적인 욕까지 시어로 사용하는 것도 못본것을 아니다. 그리고 더욱 조심해야 될것은 요즘 초등학생들의 작문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 인터넷에 나오는 문구를 보면 ‘내 짝이라는 놈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옆에서 ××을 떨어대고 새로 전학 온 새끼는 ×나 나대며 애들을 괴롭히기나 하는 ×같은 ×놈, 기분 더러움….’이것은 인터넷에서 퍼온 글이다. 초등학생의 작문중에 나오는 것이란다. 때문에 기성시대에서 언어와 글에서 이런 언어나 단어 또는 시어에 대하여 좀 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이시에서 사용한 언어 중, 있는 놈. 염병 할 × 2 , 대갈패들, 모가지, 등이 있다.
공항이 들어서면서 고향을 등지고 떠나가는 이주민들 슬픔을 어찌 모르겠는가. 지금도 뉴타운, 재개발, 보금자리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고 그것 때문에 쉬지 않고 집회를 하고 있고 집단행동도 하고 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이주민들의 차원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이 시가 탄생되었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으로 알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누구든지 읽어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곳에도 어느 정도의 무게는 실렸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선에서 훌훌 털어 버리고 소주나 한자 더하세. 자
그 동네 사람들(2)
오세정
여름방학 되면 읍내 장날 같은 그 동네 냇갈
아침부터 북새통 아이들 세상이다.
그 동네 아이들은 말할 것 없고
근처 아이들도 뒤질세라 모여와
고추 흔들며 물쌈 놀이에 정신이 없다
웃통 벗은 어른들은 투망질로 한나절을 보내고
중복이 가까워 올수록 더위는 더해져서
한낮에는 땡볕 피하느라 그늘 찾다 보면
복다리 겸 천렵 생각나게 마련이다
물고기는 퍼덕퍼덕 뛰며 싱싱함을 뽐내니
이때 고추장 풀어야 제 맛
은빛 피라미, 찬란한 빛을 띤 불거지, 등이 누리끼리한
쏘가리, 모래무지, 너겁과 돌 틈을 뒤져 잡은 구구리,
메기, 어쩌다 징검새우 몇 마리
물고기 잘 잡으면 어부라 불러줬는데
특기가 제 각각이다.
투망질 잘하면 왕 그물
훔켜 찔러 잡는 데는 안송곳
몰이꾼도 한몫한 데서 선동어부
배따는데 일인자는 대칼이었던 것 같다.
먹을 만큼 되면 물고기 잡기가 끝이 나는데
곧 사내들의 요리
그 동네의 전통 어죽 끓이기가 시작된다.
물에서 한창 뛰고 났으니 배가 꺼졌겠지만 뜨겁지도 않으니
펄펄 끓은 어죽 숨소리도 안 내며 퍼 넣기 바쁘다.
소주만 주거니 받거니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여름이면 물가에서 놀다가 물고기 잡아 밀가루 반죽해서 물고기 수제비를 해먹던 일, 복 때가 되면 감자, 밀가루 가지고 큰막골로 철엽을 가서 밀가루 빵을 칡잎위에 쪄먹던 일, 어쩜 우리들의 어린 시절과 똑 같은 기억과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 시인께서 쓰신 이 시, 역시 자유스럽고 산문적이다.
상세한 묘사로 누구나가 시를 읽는 동안 이해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이 시에 참여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 한다는 것은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혼에 동참하여 함께 즐기고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동참하기 쉽고. 같은 추억과 기억을 나누는 것, 시의 세계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시를 쓰고 발표함에 있어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고 읽을 수 없다면 시로서는 생명을 달고 나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이 없는 시는 죽은 시이다.
즉 버려지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시 한편 쓰기 위해서는 시인마다 다르겠지만,
시인에 따라 수많은 산고의 고통과 산후의 통증에 시달려야 한다. 출산 후에 귀가 두 개 있는지, 입이 하나 똑바로 달렸는지 손가락이 열 개 맞는지, 다리가 두 개 다 있는지, 빨리 훝어 보고 안심을 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버리기 아까울 때도 있고,
이런 산통을 겪고 만들어 낸 시 한편,
생명을 불어 넣어야 한다, 공감할 수 있는 생명을......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여 놓고 냇가에 둘러 앉아 소주 한잔씩을 돌려가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동네 발전에 관한 이야기, 김씨네 아들 결혼 이야기, 박씨네 딸 출산이야기, 이씨네 송아지 두 마리 낳은 이야기 등 모든 이야기의 토론장이 될 것이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모두의 화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 시는 회화시다 읽으면서 상황을 상상케하는 시......
무쇠 솥에 짓는 밥
오세정
멍석 깔아 놓은 봉당이 최고의 피서지일 때
그때는
한 더위에 밥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한데, 세끼를 꼬박 더운 밥 먹는 이가 있었으니......
본인도 더운 게 싫어서 극구 말렸단다.
불만 봐도 땀나는데
세끼를 보릿짚 때서 무쇠 솥에 밥 짓는 며느리 안쓰러워
가엾어도 먼저 간 마누라가 야속하단다.
아들보고 내 집에 시집와서 저게 무슨 고생인고
생각하면 빨리 죽고 싶은 때가 있단다
세상에 ! 지극 정성한 며느리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린 줄 알지만 심정 오죽했으면
늙어 마누라 빼고
먹는 복 건강 복 그보다 더 좋은 복 또 있겠냐마는
정말 한더위에는 밥 먹는 것도 고역인 때가 있었지
등줄기고 가슴팍이고 온통 땀에 젖은
지금도 그런 사람들 한둘이 아니겠지만
-시를 읽으면 어린 시절 봉당에서 멍석 깔고 밥 먹던 생각이 절로 나며 그 그림들이 속절없이 지나 다닌다. 이 시 역시 회화시다. 시를 읽으면서 영상이 함께 지나가는, 물론 현대 아이들은 이런 영상이 있겠는가? 아마도 50년대 혹은 60년대 이전 태어난 사람들이나 간직하고 있을 만한 머리속의 기록물들이다. 시인은 이 기록을 하나 하나 꾸겨짐 없이 펴들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집은 상당한 부자 집안이였나 보다. 하루 세끼 더운밥을 해서 먹을 정도니까. 그것도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여름철에...... 아마도 시인이 노래한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풀잎. 나무뿌리 등을 캐먹고 살던 시대였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 한다.
이 집안은 지주나 권력을 쥐고 있거나 대대손손 물려 내려온 재산가 엿을 것이다. 그런 집에서 며느리를 식구 이외의 밥하고 일하는 일꾼으로 취급 한다는 자체가 좀 신기하게 보인다. 대 여름에 장작을 땐다면 불을 지펴놓고 불에서 잠시 떨어져 바람을 쏘일 수 도 있다. 하지만 보릿대를 땐다면 불을 피웠을 때부터 끌 때까지 불 곁을 떠나서는 않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 당시의 여성들의 고통을 시 한편으로 다 말할 수 는 없겠지만 일단은 여자들의 수고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한 만큼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도 있다고 생각 한다
시인의 오랜 생각 또는 추억을 아름답게 그리고 정밀화처럼 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시인께 존경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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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규수 선생님 ㅎㅎ 마치 우리 집 냉장고 들여다보신 것은 아니신지요,^^^콕! 콕! 찔립니다.
아직도 손 안대고 있으니 어지간히 게으르지요, 빠른 시일안에 반짜짝,반짝 빛나게 할 것입니다 ^^^
회화시 형식의 너무나 재미 있는 시 인것 같습니다. 남자 시인이 여류 시인이 쓴것 처럼.......
그 동네 사람들 정말 제미있네요ㅎㅎ 저도 그런 시 쓰고 싶어요 선생님 덕분에 즐거운 오후입니다. 선생님은 차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선생님의 창작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출근을 하시면서 언제 이렇게 많은양을 소화해 내시는지요?
나는 들어와서 읽고 나가기도 벅찬데....ㅎㅎ
선생님 과찬에 지금 제가 얼굴이 붉어지고 있습니다. 그냥 시간되면 조금씩 읽어 보곤 합니다. 감상문을 제대로 쓰지 못해 그것이 조금 아쉬운 ....... 그래서 노력해 봅니다. 칭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