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란
펄떡이는 심장과 하루만큼의 에너지를 가지고 길을 나선다. 시간을 쪼개고 더하고 산다. 그렇게 살았다. 기름도 없는 차를 그냥 맨손으로 밀고 간다. 우린 각자의 차를 한대씩 가지고 있다. 신이 처음엔 기름을 가득 채워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서 하루를 헤매고 또 헤맸다. 병이 없어지면 나도 사라질 것이다. 우글우글한 은행나무들이 잘린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단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는데, 단 1초도 행복하지 않다면 이게 정말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신이 있다면 퇴직금 중간 정산이라도 하고 싶다. 쉰이 넘으면 살지 말지를 재 계약해야 한다.
사이비로 유명한 뉴 월드(가명) 종교 강사인 고모가 엄마 생일빵에 1번으로 왔다. 오늘도 빈손이었다. 한결같다. 명은 길 것이다. 그녀는 코로나 때 뉴 월드를 다니는 자들의 치부책 명단에 13번으로 들어있었다. 그때 고모의 위대함을 보았다.
이십 년 가까이 열정적인 광신도이다. 오빠인 아빠한테 밥 한 번 살줄 모르는 세상 최강 짠순이다. 홍해보다 사해보다 더 짜다. 그래도 난 고모를 볼 때마다 십만 원씩 준다. 명품 스카프(LV)도 사주었다. 이제 길어야 십 년도 못 살 텐데 잘해야지 하는 처연한 생각이다.
순자 여사 팔순 잔치에 와서 낭랑한 목소리로 자작 시도 읊었다. 그냥 읽어도 되는데 비장하고 웅장하게 마치 한물간 여배우처럼 오버액션했다. 지나치게 잘 읽어서 역겨운 시 낭송이었다. 호기심에 물었다.
"사이비 종교 믿으면 돈 갖다 바쳐야 한다는데 고모는 어찌 그리 수십 년째 잘 다니고 있으신지요?"
"돈 가지고 오라는 곳이 진짜 사이비 종교지. 내 십 원 한 푼 종교에 바친 적 읍다." 고모는 역시 신이었다. 종교활동으로 오히려 돈을 벌었다고 했다. 상당히 신뢰가 간다. 고모에게 있어서 돈이 곧 또 다른 이름의 신이다.
나름 잘 살았다!
종교는 돈을 초월하는 곳이 진짜 종교라고 했다. 명언이었다. 종교에 낚이지 않는 고모야말로 진짜 고수이다. 진정한 광신도의 삶이다.
난 이제까지 잘못 살았다. 고집 센 또라이의 삶은 언제나 결과가 뻔하다.
고모 때문에 갑자기 종교관이 흔들렸다. 난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강력하게 믿었으며 그런 삶을 실천해 왔다. 어쩌면 고모의 말이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진짜 종교는 베풀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 나는 모든 종교를 버렸다.
돈을 초월한 곳이 있다면 그곳에 마음 둘 것이다. 스님이건 목사님이건 돈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는 곳이 있다면 난 그곳으로 갈 것이다. 헤어지는 데는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다. 헤어지기 위해서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고모는 한때 심마니였다. 폐암 말기의 남편을 병원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자 바로 퇴원시켰다. 휠체어를 트럭에 싣고 남편과 함께 우리나라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폐암에 좋다는 약초를 다 구해 먹였다. 그리고 그 남편은 십 년을 더 살다가 코로나 때 죽었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나의 고모부! 고모 같은 여자를 일생 동안 안 버리고 잘 살았다. 고모는 말이 얼마나 강한지 핵폭탄 보다 센 힘을 잘 알고 활용했다.
고모는 언제나 한수 위다. 삶의 고수이다. 난 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잊고 스쳐갈 약속들도 다 지켰다. 그리고 아낌없이 신 버림받았다. 삶은 잔혹동화이다. 늑대나 고래 뱃속에 들어가면 똥 된다. 인당수에 뛰어들면 물고기 밥 된다.
동전으로 방을 가득 채울 것을 사 오라는 시아버지의 명령에 지혜로운 며느리는 양초를 샀다.
난 막걸리 한잔 마시고 육자배기 "수심가"를 퇴물이 된 늙은 작부처럼 한바탕 부를 것이다. 이제 아버님도 철저한 이과 녀자인 어머님도 떠나고 없다. 내 세상인데 슬프다. 지루하고 남루한 한 생이 지나간다. 혹시나 먼 훗날 어떤 또라이가 나타나 이 흔하디흔한 글을 보고 자신의 인생 띵작이라고 올릴지도 모른다.
백 년 후, 이백 년 후, 해괴망측한 나는 재발견 당할지도 모른다. 내가 원했건 안 원했건 남편이 출장 갔을 때 트랜스 젠더 바를 갔다는 사실을 인류의 위대한 사상처럼 떠들지도 모른다. (이미 이실직고했다.) 그 화려한 일주일을 어찌 보냈는지 남편에게 다 불었다. 다음에 또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 부부는 막 나간다.
마구니가 낀 내 삶
내 묘지가 파헤쳐 지고 초등학교생활기록부에 남은 "산만하고 심란한 학생"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이라는 막말을 찾아내고 세상은 나를 비웃을 지도 모른다. 그때 순자 여사가 막내(윤)를 출산해서 선생님께 촌지를 못 주었다. 나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내 어린 시절은 그렇게 남아있다. 가정 방문을 하고 난 후, 부잣집 딸인 것을 보고 담임이 나한테 극도로 친한 척을 했다. 이젠 정말 잊고 싶다.
슬프게도 진실이다. 그때의 스승들은 대부분이 그러했다. 나도 모르는 숨겨진 남자들이 나타나고 몇 명을 사귀었으며 지인들이 누구인지 연관검색어에 오르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한 치유의 글,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도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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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6on일상·생각이웃3,087명
극강의 쾌할함을 잃어버린 내 자아를 찾아서! 코로나 372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승정원 기록처럼 올립니다. 나를 위한 피의 고백서! 삶에서 못다한 말들, 그리고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지나간 시대의 비극인 <코로나 일지>.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입니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상실의 아픔>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망해 버린 삶, 누군가에겐 희망이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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