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전국 정지용백일장 입상작품
<대상>
오솔길
- 오솔길 위를 달려 나가는 사람
이서빈
아버지의 하루는 나무들 사이에서 시작된다
위태롭게 쌓아 올려진 목수의 공방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것이 진짜 좋은 것이라고
침 대신 톱밥을 튀기며 말하면서 톱질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오솔길 위를 달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아
발이 푹푹 빠지는 흙을 밟고
붉은 목장갑으로 가린 상처투성이 손으로
몸을 찌르는 나뭇가지들을 뭉툭하게 만들며
바보같이 달리는 뒷모습
단단히 맞물린 아스팔트 위에 서서 바라만 보았다
직접 만든 책상 위에 나무가루를 불어내고
새로 만들 가구에 생명을 불어넣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다 말해도
그는 앞만 보며 오솔길을 달리고
타당 탕 엇 박으로 터져 나오는 망치 소리
그에 박자를 맞춘 발걸음
엉성하게 쌓여있던 오솔길의 흙은 단단해지고
아스팔트 위에서 지켜만 보던 나는
흙 위로 올라가
아버지의 발자국을 내 발과 맞춰본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점점 빠르게 가시가 사라진 길을 달리고
어느새 아버지 옆에서 오솔길을 헤쳐나간다
그의 얼굴에는 나이테 같은 주름이 잡혀 있지만
나도 그와 함께 달린다
붉은 목장갑을 끼고
바보같이
오솔길이 큰 길이 될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하루를 나무들 사이에서 시작한다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그림자
백정훈
나는 너의 석양
너의 아픈 시간들을 지운다
아침부터 땀 흘리며
누군가가 주문한 삶의 필요들을
문 앞에 넣어주리라
스스로를 소멸시키면서
아프게 키워냈던
너의 그 긴 그림자를 지운다.
나는 너의 구름
푸르고 맑은 웃음소리 속에서
유난히 좁은 어깨를 가진
너의 마음들을 따라 걷다가
느려지는 발걸음이 아파 보이면
조용히 밀려와 너의 마리 위에서
자그마한 너의 상처들을 지운다.
나는 너의 또 다른 그림자
길어지는 너의 그리움이
검푸른 멍투성이
잿빛 아픔 되어
길게 이어지면
커다란 망토 입은 그림자가
너의 그림자 위로 포개진다.
혼자가 이니라고
이제 우린 함께라고,
너의 눈물이 마르기를
너의 아픔이 가벼워지기를,
이토록 가느다란 나의 소원들이
모이고 모이면,
커다란 함성이 되어
돈키호테를 불렀고
너는 웃었다.
이제부터 나는 너의 태양.
<고등부 장원>
오솔길
안규희
나는 오솔길로 간다
그 밖의 세계는 내가 이미 모두 알고 있기에
나의 그림자가 길어져도 난 뒤돌아보지 않는다
오솔길에는 포장되지 않는 시간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조약돌이 되었다
나는 투명한 빛을 그대로 간직하는 그 조약돌을
하나씩 주우며 나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오솔길은 계속 뻗어 나간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새소리를 따라 이곳의 생명들은
자선의 색으로 우거진다
나는 산책의 사유를 찾는 어느 철학자의 발걸음으로
이 길의 끝, 밤의 정원으로 간다
길은 내게 정원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 홀로 덩그러니 고독의 한 겹이 바람에 벗겨질 때
잔디는 무성하게 자라나 거리의 공백을 채운다
오솔길의 마지막에서, 꿈의 표지판은 나의 눈동자와 딱 맞다
아래의 중력이 뿌리를 내린다
이제 길 위의 시간이 모두 지나간 것이다
나는 오솔길 한 줌을 손에 쥐어 손금은 나의 지도가 된다
지도의 뒷면에서부터 확장되는 밤의 파노라마 어둠을 입고선
별자리가 휘몰아치는 밤
열쇠가 없는 밤의 정원 속 땅굴을 만들어
나의 몇 가지에 운명을 던진다
육신은 땅속에서 길을 만든다
길의 돌담 사이로 그림자는 길어지고 일출이 탄생한다
환혼은 그렇게 밀려 온다
<중학부 장원>
지구
유가영
엄마와 찍었던 사진 속
분홍빛 벚꽃과 미소
아빠와 걸었던 산길 속
가을날의
빠알간 다섯 손가락
노오란 미니원피스
너를 잃어버렸다
자동차가 한숨을 쉬어서
전기를 절약하지 않아서
우리가 욕심을 부려서
네가 아프다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주지 못해서
친구들을 잃어버리겐 해서
네게 미안하다
<초등부 장원>
옥수수
서현경
노랗디노란 갈색머리 여인이
노랗디노란 아기들을 낳았네
아기들은 노란 피부가
싫다 하여
어느 기계 앞으로 갔네
기계님! 기계님!
우리의 노란 피부를 하얀 피부로
바꿔주세요!
그러자 아기들이 기계속에서
팡팡 터졌네
하얀 피부 되었네
머리는 곱슬로 바뀌었네
아, 맛있다!
바삭 바삭 바삭 바삭 !
바삭! 하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
팝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