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금송아지, 외계인
― 영화관이라는 현대의 성전에서 무엇을 예배하는가
우리는 오늘날 우주를 바라보며 묻는다.
“저렇게 광대한 우주에 지구에만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수많은 별과 행성,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외계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우주의 광대함이 반드시 외계인의 존재를 의미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우주는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와 함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다. 광대한 우주는 인간보다 훨씬 크지만, 그 크기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는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시각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이 현재의 우주를 최종적인 상태로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현재의 하늘과 땅이 영원한 최종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광대함을 근거로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반드시 상정해야 할 이유는 더욱 약해진다.
현대의 금송아지
구약성경에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금송아지는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낸 사건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대신할 대상을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나는 오늘날의 외계인 신화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을 발견한다.
우주는 실제로 존재한다. 별도 실제이고 행성도 실제다. 그러나 인간은 그 광대한 공간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지적 생명체를 상상하고, 그것을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로 설정하며, 때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비적 존재로까지 끌어올린다.
이때 문제가 시작된다.
실재하는 우주와 인간이 그 우주에 투사한 상상은 서로 다른 것이다.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인간은 이미 외계인의 모습과 문명, 능력, 목적, 종교적 의미까지 만들어 놓았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판 금송아지를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외계인을 신으로 만드는 영화
최근 스티븐 스필버그의 《디스클로저 데이》를 보면서 나는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게 되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인정할 만하다. 긴장감도 있고, 관객의 호기심을 끌어가는 영화적 장치도 상당하다.
그러나 영화가 외계 존재에게 부여하는 의미를 바라보면 다른 질문이 생긴다.
정말 외계인은 인간보다 초월적인 존재인가?
설령 외계 문명이 인간보다 수천 년, 수만 년 앞선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신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도의 과학기술은 신이 되는 조건이 아니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 능력도 신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물리적 현상을 일으킨다고 해서 창조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초월적인 기술과 초월적인 신성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외계 존재에게 인간이 종교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여러 초월적 이미지를 결합시키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외계 존재를 단순한 생명체 이상으로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피라미드와 전시안
특히 영화에서 피라미드와 전시안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피라미드는 미국 1달러 지폐의 이미지와도 연결되는 상징이다. 영화에서는 관객이 처음에 피라미드처럼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가 그것이 외계 우주선의 표면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전시안 역시 강렬하다. 한쪽 눈이라는 이미지는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강조된다.
이것을 곧바로 특정 비밀조직이나 음모론의 증거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영화가 피라미드, 눈, 초월적 존재, 새로운 인식, 숨겨진 진실의 공개라는 이미지를 서로 연결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영화의 제목은 Disclosure, 즉 ‘공개’ 또는 ‘폭로’다.
무언가 감춰져 있고 그것이 마침내 공개된다는 구조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질문을 바꾸고 싶다.
정말 공개되는 것이 외계인의 진실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외계인에 대한 상상력이 공개되는 것인가?
영화관이라는 현대의 성전
고대의 성전에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기 위해 모였다.
현대의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이 어두운 공간에 모여 거대한 화면을 바라본다.
음악과 영상과 이야기와 조명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고, 관객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체험한다.
그렇다면 영화관을 현대의 성전과 같은 종교적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영화관 자체를 실제 성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가 인간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문화적 매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영화가 외계인을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신앙과 세계관을 다시 정의하는 초월적 존재로 제시한다면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하나의 세계관을 전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은 현대의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고, 영화는 현대인의 상상력을 형성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스필버그를 '대제사장'이라 부른다면
이런 의미에서 나는 스필버그를 실제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대의 외계인 신화를 만들어내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영화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금송아지의 대제사장’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금송아지를 보여주는 현대의 성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이것은 영화감독 개인에 대한 사실 판단이 아니라 하나의 신앙적 비유다.
핵심은 스필버그라는 개인을 공격하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무엇을 하나님 대신 바라보고 있는가?
외계인이 발견되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나는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학적 사실처럼 선언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직접 “다른 행성에는 지적 생명체가 없다”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창조론과 인간론, 그리고 종말론을 종합해 보면 인간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지적 존재를 다른 행성에 반드시 상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언젠가 외계 생명체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조물은 아무리 뛰어나도 피조물이다.
이것이 중요한 기준이다.
외계인이 없어서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도 아니고, 외계인이 있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신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피조물이다.
마지막으로 폭로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진정한 ‘디스클로저 데이’는 외계인의 존재가 공개되는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 만든 금송아지를 바라보며 깨닫는 날일 수 있다.
“우리가 신비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은 정말 신이었는가?”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신은 사실 우리 자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는가?”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 시편 19:1
광대한 우주는 외계인을 위한 거대한 무대가 아니라, 먼저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창조세계다.
그리고 그 광대한 우주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경배해야 할 대상은 우주 저편에서 찾아올지도 모르는 어떤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미래는 외계 문명이 지구와 접촉하는 날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날이다.
그날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금송아지가 사라지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으로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