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새벽잠 깨서 준비하고 올라간 큰 병원 진료와 검사를 마치고 아내는 퍼졌다. 채혈실 앞 대기석 의자에 내 무릅을 베고 가로로 누워 떨어진 기력을 회복하느라,
그 시간 한 목사님이 그 사정을 알고는 차로 달려왔다. 서울 노원에서 일산까지 40분을 달려와서 점심을 사주시고 후식에 케?까지!
그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하루 전 이런 글을 올리셨다.
<자신이 즐겨하던 것을 끊는 불편함을 만들어서 고난에 동참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든 환경보다 이미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가는 것이 고난주간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닐까?.
일부러 굶어서 고통을 느끼는 것보다 굶고 있는 이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나의 즐거움을 절제하는 고난주간이 아니라 이미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재정적인 위기속에 불안에 떨고, 권력의 불의함에 삶이 무너진 이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참된 고난이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보다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고난의 참된 의미이리라.
고난주간은 끝나도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목사님, 말씀이 씨가 되었네요? 저야 고맙지만~”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정작은 고난 받는 중인 분이시다. 남을 챙겨줄 여유가 없을 만큼... 9년째 식물인간상태가 되신 사모님을 돌보며 세 자녀를 키우며 목회를 하시는 쓰리잡 고난, 또 닥친 욕창문제로 고심중이라 외부 강사 사역을 멈추고 전적으로 사모님을 돌보셔야할 상황에 마주친 빠듯한 고난...
헤어지고 내려오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그 목사님이나 우리 상황이나 기한이 정해진 날이 없는 질병과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투병, 간병, 살림살이, 그야말로 고난주간이 끝나도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가 딱 맞는 처지다.
“왜 안 고쳐주시는 거지요? 언제까지 이 상태로 가실 건데요?” 아마 수 십 번, 수 백 번도 그 질문을 하고 또 했을 것이다. 수시로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를 속으로도 하고, 남에게도 하면서 살면서도 말이다.
병원에 도착해서 쉬는 중에 어느 분이 말한시는게 들려온다. 어디 절이 무지 용하다면서, 그곳에서 공을 들이면 자식도 낳고, 병도 낫고 일도 잘 풀린다!는 소위 민간 신앙 용한 스토리, 참 기가 막히다. 내가 알기론 부처도 그런 거 가르친 적도 장담한 적도 없는데 세상에는 가득하다.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개신교는 별 다른가? 자녀들 수능도 정성을 다하면 일류대학도 붙고, 유명대그룹에 취직도 되고, 죽을병도 살아나는 일이 부지기라면서, 만약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그건 순전히 믿음이 부족하거나 헌금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천일 헌금, 수십일 작정기도, 뭐 다 그런 이름으로...
누군가 기도로 사무엘을 얻은 한나 이야기를 한다. 없는 자식을 기도로 얻지 않았냐고! 하지만 그 앞에보면 분명 하나님이 성태(임신)시키지 않으시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안주시기로 작정도하고, 주기로 작정도 하신다. 다만 그 계획의 단계로 기도도 하고 제단도 쌓게 하실 뿐이다.
예수를 낳은 마리아가 언제 동정녀이기를 빌었던가? 아기를 달라고 기도했던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기를 달라고만 하면 다 아기를 주시나? 혹은 안주시나? 전혀 정성과는 별개로 계획에 따라 병을 주시기도 하고, 회복을 주시기도 한다.
우리나 그 목사님의 앞날에 회복이나 영구적 질병의 결정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슨 태도로 살 것인가를 배워나갈 뿐이다. 만약 회복되고, 다시 건강해진 후, 영원히 죽지않는다면 나도 목숨 걸고 죽을 때까지 기도에 매달려볼 지도 모른다. 그건 그만한 가치도 있고 혹 그러다 죽어도 뭐 그게 불명예일까? 아픈 아내를 위해 기도하다 죽었다면 욕은 안하겠지,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마법의 머슴이 아니시다. 인간도 질병이나 회복된다고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고! 굳이 다시 소멸 될 육신을 위해, 혹은 좀 더 편안할 남은 생을 위해 하나님을 한판 승부에 걸고 도박 같은거 하고 싶지 않다. 설사 병이 회복되지 않고 이대로 고단하게 나와 아내의 일생이 끝나더라도...
물론 그 기간에 쉬지 않고 몰려와서 때리고 깎아놓을 괴로운 파도들이 만만해서는 아니다. 수시로 절망하고 수시로 울화통이 터져 못 견딜 것이 빤하다. 그럼에도 올인 도박처럼 ‘모 아님 도’의 승부를 걸고 싶지 않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니까.
점심 나눔을 하고 가신 이야기를 들은 한 분이 내게 연락을 해오셨다. 자신도 고난주간의 나누기에 함께 동참하고 싶다고, 먼 지역에 계셔서 내려오거나 우리를 불러서 식사를 하기도 어렵고 송금을 할테니 같이 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것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밥만 먹기는 좀 많은 돈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분께 동의를 구했다. 절반은 내가 쓰고 절반은 내가 후원하는 학생이 있는데 그 아이에게 보내주어도 되겠냐고, 그 분도 흔쾌히 승낙하셨다!
할렐루야! 모두가 기쁘고,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고난주간의 예수를 기억하고 닮아가는 하루다. (어느 한 분의 흘려보내신 메시지가 흐르고 흘러서 주님의 사랑을 담고, 자칫 눈물 많은 짭짤할 땅의 세상에 기쁨과 평안이 되었다. 우리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겟다. 나중에 만나면 궁금한 거 다 물어보아야겠다. 기다리세요! 꼼짝마시고~~ 흐흐!) [국립암센터 채혈실 앞에 퍼진 아내! "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
출처: 희망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희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