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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이 정도면 아빠들의 ‘공공의 적’이다. 신문지 하나로 1000가지의 놀이를 개발하고, 아무런 도구 없이도 지옥탈출(양팔로 아이를 놓아주지 않기), 밀당놀이(용쓰며 밀기 놀이) 등 수백 가지의 놀이를 척척 만들어낸다. 권오진(54) 아빠놀이학교 교장은 “일상의 모든 것이 놀잇감이고, 삶은 놀이다”라고 말한다. 제각각 분주한 아빠들에게는 “하루 1분 아빠의 놀이가 아이를 바꾼다”는 그의 주장이 야속하게 들릴 수 있다.
그는 12년 전부터 ‘아빠표 놀이 전도사’를 해왔다. 1남1녀가 있다. 두 아이는 어느새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가 무색한 나이가 됐다. 맏딸 규리(22)양은 대학교 3학년, 막내 기범(18)군은 고등학교 2학년생. 놀이 교육의 장점은 뭘까. 권씨는 “아빠와 스킨십을 통해 온갖 놀이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낙관적이고 대범하다”고 말한다. 권오진씨와 규리양 부녀를 지난 6월 10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만났다. 규리양의 눈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원래 잘 웃어요”라며 웃고 또 웃었다. 권씨는 딸을 “당차고 독립심 강하고 잘 웃는 아이”라고 소개했다. 둘째 기범군은 종종 아빠와 함께 언론에 등장했지만 규리씨가 직접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빠 권씨는 최근 개발한 ‘신상(신상품)’이라며 사진 촬영을 위해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권총을 가져왔다. 나무젓가락 다섯 개와 고무줄 다섯 개, 복잡한 줄을 묶어 정리할 때 쓰는 케이블 타이 네 개가 재료의 전부. 한 개당 10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고, 나무젓가락 권총의 사정거리는 10m 정도다. 규리 양은 “어릴 때부터 장난감총 놀이를 많이 해서 인형뽑기 사격을 하면 나를 따를 자가 없다”며 연신 아빠한테 장난을 걸었다. 카메라 기자가 ‘도구 없이 웃는 컷’을 요구하자 권씨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사진이 재미없지 않냐”며 ‘힘 자랑 놀이’ 포즈를 취했다. 손바닥을 맞대고 용쓰며 미는 놀이다. 딸의 힘보다 조금씩 더 세게 주다가 일순간 “아이고, 아빠 죽겠다”라며 뒤로 넘어가는 소위 ‘쌩쇼’가 필요한 놀이다.
규리양은 자신이 “또래 친구에 비해 창의성, 자존감, 배려심, 도전정신이 많은 편인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손에 오면 모든 게 다 장난감으로 바뀌어요. 이 탁상용 달력도 주고받기 놀잇감이 되죠. 어릴 적 놀이 중에서 수퍼맨 놀이와 지옥탈출 놀이가 가장 재밌었어요. ‘수퍼맨 놀이’는 집안의 모든 이불을 꺼내 거실에 깔아 놓고 붕 떠서 큰 대 자로 착지하는 놀이이고, ‘지옥탈출’ 놀이는 아빠 팔에서 탈출하는 놀이예요. 양팔로 동생과 저를 안고 있으면 빠져나오기 힘든 지옥이 되죠.(웃음)”
권오진씨의 자녀교육에는 두 가지 핵심 철학이 있다. 하나는 ‘삶은 놀이터다’라는 철학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놀잇감으로 변신시켜 놀고, 웃고, 즐거움을 주는 것. 또 하나는 ‘하라는 것도, 하지 말라는 것도 없다’는 것. 딸 규리씨는 “이게 내 독립심의 기반이 됐다”고 말한다. “아빠는 정말 위험한 게 아니라면 못하게 하는 것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게 내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른 눈에는 분명히 위험해 보였을 것 같은 놀이라도 아빠는 해보게 했다. 그 과정에서 판단력과 독립심이 생긴 것 같다.” 듣고 있던 아빠 권씨는 “아이들은 실수나 실패를 통해 작은 성공을 이루어간다”라고 말을 보탠다.
권오진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빠 놀이 전문가’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자문위원을 비롯, 보건복지부 자문위원, 중앙보육정보센터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아빠의 놀이 혁명’ ‘놀이는 참 대단해’ ‘하루 10분 생활놀이’ 등의 책을 펴냈다. 화려한 경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현재 뒤에는 뼈아픈 과거가 있다. 그는 한때 광고회사의 CEO였다. 어렸을 적부터 남들 안 하는 독특한 발상을 곧잘하는 개구쟁이였던 그는 반짝이는 창의성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광고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에 회사가 직격탄을 맞았고 회생을 시도하는 족족 실패했다. 발상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했다. 자신의 꿈과 야망도 소중했지만 가족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가족들도 행복해하고 자신도 즐거운 일을 찾았다. 바로 놀이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아이를 좋아하는 DNA가 있는 것 같다. 하루 종일 100명의 아이들과 놀아도 피곤하지 않다. 처음에는 아빠놀이학교를 취미로 시작했다. 그런데 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아예 업으로 삼기로 했다.”
그는 인터넷 카페 ‘아빠와 추억 만들기’(cafe.naver.com/swdad)를 개설하고 매월 가족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끌었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빠와 추억 만들기’에 대한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와 놀고 싶으나 노는 방법을 모르는 초보 아빠들, 판에 박힌 장난감 놀이에 싫증난 아이들이 아빠표 놀이에 열광했다. 특히 매년 여름에 개최되는 ‘묻지마 무인도 학교’에 대한 호응이 뜨겁다. 서해안의 작은 무인도에 정착, 아빠와 단둘이 합심해 2박3일간 살아가는 프로그램이다. 뗏목처럼 통나무를 엮어 만든 떼배도 타 보고, 아빠와 끼니를 해결하고, 아빠와 핸드메이드 장난감을 만들어 함께 노는 프로그램이다. 무인도의 정체를 미리 알리지 않고 ‘묻지마 무인도’ 콘셉트를 고수 이유는, 미리 알리면 무인도가 유인도가 돼 버리기 때문이란다. 권씨는 “아이의 독립심은 상황이 만든다”며 이렇게 말한다. “생존해야 할 상황에 놓이면 아이들은 강해진다. 우리는 생각보다 아이들을 어리게 본다. 나는 11년간 아들 기범이와 함께 무인도 학교를 이끌었다. 아들이 여섯 살 때부터 고1 때까지. 이제 기범이는 무인도에 혼자 놔 둬도 생존이 가능하다.”
“콩가루 집안이 와도 찰떡 집안이 돼 간다”는 게 무인도 학교의 더 큰 효과다. 그가 아버지 학교에 점점 사명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큰 기대 없이 무인도 학교에 참여한 가족들, 아빠표 놀이를 배워간 아빠들은 달라졌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이 달라졌어요’를 외치는 가족들이 하나둘 늘었다. 그의 인터넷 카페에는 ‘아빠학교 전후’를 비교하며 감사의 글을 올리는 아내들이 꽤 있다. “매일 리모컨 놀이와 낮잠 놀이만 하던 신랑이 아빠학교를 다녀온 이후로 달라졌다. 예전에 아이들은 아빠가 와도 반가워하지 않았는데, 이젠 한 시간 전에 전화해서 ‘아빠 언제 와?’ 하고 묻는다”는 내용이 많다.
여기서 잠깐, 회사 일로 지친 아빠들을 대신해 물었다. 그 바쁜 시간에 어떻게 매일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냐고. 그는 “나는 시간 쪼개기의 달인”이라며 웃었다. 광고회사를 운영하면서 정신없이 바쁠 때에도 아이들과 노는 시간은 어떻게든 확보했다. 퇴근 무렵 집에 전화해 “아빠 ○○분 후면 도착하니 준비하고 있어라. 서울랜드 가서 리프트 타고 오자”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그는 아이들과 놀이에 있어서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아빠가 진심으로 자신과 놀아주는지 아닌지를 기막히게 알아챈다는 것.
그의 놀이 본능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발현됐다. ‘동네 투어 100회, 전국 투어 100회, 월 1회 서점놀이터 방문’이 그가 실천해온 놀이의 면면들. 서초구 양재동에 살던 그는 아이들과 양재동 꽃시장, 양재천, 우면산 등을 틈만 나면 투어하고 돌아왔다. 그는 “동네 투어는 하루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며 “아이들의 기본적 인성이 그때 형성된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는 동네를 벗어나 전국 여기저기를 다녔고, 몇 해 전부터는 아이 둘을 데리고 매달 서점 투어를 한다. 광화문, 강남, 분당 교보문고를 매달 번갈아 다니면서 각 아이들에게 할당 금액(규리양 5만원, 기범군 3만원)을 주고 범위 내에서 맘껏 쓰게 하는 시간이다. 만화책이든 전공서적이든 문구류든 장르와 종류 불문이다. 그는 ‘개구쟁이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명가는 하나같이 어릴적 개구쟁이였다는 것. “교과서를 통한 공부는 쩨쩨한 것이다. 다양한 놀이와 여행을 통한 공부야말로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공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딸 규리양이 기억하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뭘까. 의외의 답이 나왔다. 규리양은 ‘아빠표 과일 야채 주스 만들기’를 꼽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빠는 주말마다 냉장고에 있는 온갖 과일과 야채를 다 넣어서 믹서기에 갈아 주셨다. 엄마는 늦잠을 주무시고, 아빠가 먼저 일어나서 만들어주신 주스는 마법의 주스 같았다. 아빠가 마법사처럼 귤, 사과, 배, 상추 등 형형색색의 과일과 야채들을 믹서기에 섞고, 그 옆에는 나와 동생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주말 햇살이 주방까지 비치는 장면이 한 폭의 동화처럼 떠오른다.” 아빠 권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다 놀이다. ‘이것 하자, 저것 하자’ 하지 말고 ‘어떤 놀이 하면 좋겠니?’ 물으며 아이의 마음만 따라가도 된다.”
아빠는 10년 전부터 아이들과 이별 준비를 해 오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아빠에게 제출하는 ‘꿈 점검표’는 아이들을 떠나 보내기 위한 준비의식이다. 규리양의 대학 졸업 날이 이별의 날이다. D-1년6개월인 셈. 꿈 점검표에는 ‘이달의 목표, 올해의 목표, 롤모델, 이런 사람은 배우자감으로 No!’ 등의 항목이 있다. 꿈 점검표는 드넓고 원대한 포부를 갖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이다. 그는 “아빠의 역할은 등대다. 꿈을 찾아가도록 멀리서 지켜봐주는 사람 말이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잠깐 맡아서 기르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토록 아이들과의 놀이에 자신의 시간을 통째로 바친 그가 아이들에게 내내 하는 말은 의외였다. “네 인생은 네 거다.”
권오진 아빠의 ‘놀이교육’ TIP 삶을 놀이처럼! 놀이를 삶처럼! ❶ 아빠와의 1분 놀이가 아이를 바꾼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빠들이 많다. 양보다 질이다. 하루 1분만 놀아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 특별한 장난감이 없더라도 사방에 널린 것이 장난감이 될 수 있다. 탁상용 달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 간다!”며 큰 소리로 효과음을 넣으면 훌륭한 ‘주고받기 놀이’가 될 수 있다. 단 ‘지금 이 순간만은 너와 노는 것이 진심으로 즐겁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의무적으로 놀아주는 느낌을 주면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방해가 된다. ❷ 성장 단계별 놀이가 따로 있다. 3세까지는 안아주기, 업어주기, 무등태우기 등의 신체 놀이, 4~6세에는 베개, 신문지, 박스, 음료수 캔 등 도구 놀이, 6세 이후에는 여행이 최고의 놀이다. 새로운 환경을 접해야 새로운 사고가 생긴다. 먼 곳을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동네 구석구석을 탐험하듯 다니는 ‘동네 투어’도 자녀에겐 얼마든지 신기한 여행이 될 수 있다. ❸ 최고의 놀이는 업어주기! 업어주기는 놀이의 왕이다. 업었을 때 아빠와 아이가 닿는 신체 면적이 극대화되고, 아이의 입과 아빠의 귀가 가장 가까워진다. 업고 하는 대화는 소통이 잘된다. 아빠의 약점인 뒤통수를 보고 있으면 아이의 마음이 편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편하게 흘러나온다. 권오진씨는 “아이는 업혔을 때 비밀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❹ 아빠와 단둘만의 시간을! 엄마 없이 아빠하고만 보내는 시간은 특별하다. 굳이 무인도 학교가 아니더라도 아빠와 단둘이 1박2일 근교로 캠핑을 떠나는 것도 좋다. 서로에게 의지해 먹고자는 것을 해결하면서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역경을 함께 헤쳐나간다는 동병상련은 서로를 돈독하게 해 준다. ❺ 삶 자체가 놀이다. 권오진씨 가족은 ‘삶 자체가 놀이다. 우리는 삶을 너무 심각하게 대한다’는 철학이 있다. ‘삶을 놀이처럼, 놀이를 삶처럼’이 모토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다 놀이터다. 매순간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박수 쳐주고, 열광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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