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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교회/낮_20120325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롬8:26-28
우리가 떼어 놓으래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이 시간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뒤로 하고, 이 자리. 예배의 자리에 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린 횟수를 생각한다면 헤아릴 수 없을 겁니다. 많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더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늘 드리는 예배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예배가 내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마지막은 아니지만 마지막 예배일 수도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오만가지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예배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은혜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를 영어로 표현하는 단어는 두 가지입니다. Worship이라는 단어와 Service라는 단어입니다. Worship은 Worth에 연결된 단어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예배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거. 그것을 드릴 때 예배입니다.
아벨이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렸을 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었어요. 반면에 가인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아무거나, 대충 하나를 드렸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예배가 되었던 겁니다.
또 예배는 Service. Service를 제공하는 것.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성도들이 편안한 가운데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Service를 받는 동시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Service하는. 섬기는. 나도 예배를 편안하게 드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예배를 편안하게 드릴 수 있도록 우리는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을 잘 감당하고, 내가 잘 하면 됩니다. 교인으로써, 목회자로써 내가 해야할 부분을 잘 감당하면 은혜로운 예배가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주 복잡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고, 모든 사람들이 불안한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깜짝 깜짝 놀랄만한 사건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겸손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지금 삶에 대해서 감사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긍휼이 여기고 도와주고. 이런 삶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망하고 실패하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는 경우들도 많이 보고. “야. 저 사람이 망한 줄 알았는데 저렇게 잘 됐구나.” 그런 경우도 있고. 저 사람은 엄청나게 잘 될 것 같았는데 망한.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우리의 삶을 뒤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을 기획하시고, 간섭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성령께서 기도해주신다 그랬습니다. 갓난아기는 뭘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 부모.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인 갓난아기예요. 뭐가 뭔지 잘 몰라요. 기도가 뭔지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갓난아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내 힘으로 살겠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안 돼요. 성령님의 도우심을 거절하면 안 되고, 또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는 그 은혜를 우리는 잘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나를 도와주시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받아야 되겠고,
그 다음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사모하는, 열망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그러한 가운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됩니다.
깊은 바다 속의 수압은 대단하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잠수함도 찌그러질 정도로 수압이 대단하다 그럽니다. 근데 더 깊은 곳에 아주 작은 물고기가 있습니다. 저 작은 물고기가 그 깊은 물속의 수압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견디느냐하면 그 수압보다 더 강한 압력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수압을 이길 수 있는 더 강한 압력, 더 강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몸이 파열되거나 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질병의 압력, 물질의 압력, 사람들의 압력. 이런 저런 생각할 수 없는. 사소한. 다양한 압력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때때로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압력 가운데서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의 압력, 영적인 능력의 압력, 신앙의 강한 압력을 갖게 된다면 이러한 세상 속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을 살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이 ‘참 달콤하다’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참 세상이 씁쓸하다. 쓰다. 쓴 맛을 다 맛보셨을 겁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인생의 쓴 맛을 여러분들도 다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가까운 사람. 믿는 사람. 도와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인생의 쓰디 쓴 맛을 다 맛보셨을 겁니다.
어떤 일도 그렇게 쉽거나 만만하지 않습니다. 일이나 사건을 통해서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쓰디 쓴 맛을 여러분들이 다 보았을 겁니다.
이 세상은 마라처럼. 쓴 물입니다. 쓰서 먹을 수 없는 물입니다. 그러나 쓴 물이라도 거기에 한 나무가 던져졌을 때 쓴 물이 단 물이 되어서 엘림의 축복이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 힘으로는 힘들고 어렵고 어쩔 수 없다 라고 하지만 한 나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붙들면 쓴 물이 단 물이 되는 줄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를 치료해주시고, 인생의 쓴 맛에서 단 맛을 경험하게 하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꽉 붙들고 사는 귀한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27절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신앙은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내 안에 있는 고집과 아집과 욕심과 이기심.
이러한 것들을 깨트리고 버리고 하나님의 뜻. 그 뜻을 붙들고 사는 것.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이 삶을 우리는 신앙생활 혹은 성화. 그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의 ‘뜻’은 ‘하나님을 따라’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얘기합니다.
뜻이 중요합니다. 내 안에 뜻이 일치될 때 우리가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뜻이 다르게 되면 아주 혼란해집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사회도 그렇습니다.
뜻이 일치되지 아니하면 상당한 어려움과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뜻이 일치되지 않는 바로 그 순간에 사탄이 틈을 타서 사람들 사이에 반목, 시기, 질투, 싸움을 가져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땀을 흘리시고. 심지어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주시옵소서. 십자가를 지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내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세 번씩이나 간구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은 ‘십자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네가 이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고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아버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내 뜻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은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이지만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뜻을 다 버리고,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면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셨습니다.
골리앗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러기를 40일 동안. 40일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시했습니다. 3미터가 넘는 골리앗 앞에 어느 누구도 그를 대항 할 자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던 다윗이 그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골리앗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물맷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가서 그 중에서 하나를 사용했습니다.
3미터가 넘는 이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그 돌이 박힘으로 인해서 거구 골리앗은 쓰러지고 다윗은 이스라엘을 구원했고, 불레셋과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었던 원동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맡긴 양 떼를 잘 지키는 데 있었습니다. 양 떼를 잘 지켜야 되겠다. 양을 보호해야 되겠다.
근데 양들을 보호하고, 양 떼를 지키는 데 있어서 사자나 곰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 사자와 곰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다윗은 물멧돌을 던지는 방법을 배웠어요.
열심히 돌을 던졌고,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수만 번, 수십만 번 돌을 던졌습니다. 그 훈련으로 그는 양 떼를 잘 보호하게 되었고, 그는 그 훈련을 통해서 돌을 던지면 맞힐 수 있는 적중률이 강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골리앗을 보았을 때 ‘야. 저렇게 큰 사람을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며 겁부터 먹었지만 다윗의 입장에서는 골리앗의 키가 3미터가 넘고, 또 거구이기 때문에 웬만큼 던지면 맞힐 수 있겠다.
몸집이 크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몸집이 크기 때문에 웬만큼 던지면 맞겠다 하는 이런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믿음. 그리고 평소에 철저히 훈련한 그 기술을 가지고 돌을 던졌을 때 골리앗이 쓰러지는 그런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던 겁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룬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어요. 아버지가 맡긴 양 떼를 잘 돌보자. 아버지의 양 떼를 해하려고 하는 곰과 사자를 어떡케 무찌를 수 있는가? 그것은 돌을 잘 던지는 것이다.
돌을 정확하게 던져 곰과 사자를 맞춰서 도망가게 하고, 그래서 양떼를 잘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돌을 던지는 연습을 충실하게 했을 때 양떼를 지킬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키는 거룩한 목자가 되었던 겁니다.
작은 이익과 작은 고집과 불순종이 하나님의 큰 뜻을 깨트리고,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겁니다. 작은 헌신과 순종과 섬김과 선행이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처음부터 큰 것은 없습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다보면 큰 것이 되는 겁니다. 작은 악이 큰 악이 되는 것이고, 작은 순종이 큰 순종이 되는 것이고, 작은 선행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날마다 선을 행하는.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또 하나님의 그 음성에 순종함으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여러분 정도면 ‘야, 그 말씀 많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이다.’ 그런 생각을 하실 겁니다. 근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아, 그 말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하는 이 말씀이 로마서 8장28절. 이 말씀이 여기에 있구나 하면서 놀라실 분도 계실 겁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로마서8장 몇 절에 있다구요? 예. 28절.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는 말씀이 롬팔이팔.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나를 외면하시고, 나를 버리셨나보다. 그렇게 생각될 때가 있었으나 지나고 보니까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그것 때문에 겸손하고, 그것 때문에 결국 모든 것들이 잘 된 것. 이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늘 은혜의식으로 살아야 됩니다. “주님. 내가 참 부족한데 내가 지금까지 주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만한 자격도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만한 그런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시고,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의식으로 살아야 됩니다.
혹 마음속에 공로의식이 있으면 안 됩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잘나고, 능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설 만한 당당한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나 때문에 수지 맞으셨다. 나 같은 사람이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교회에 영광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공로의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것 때문에. 은혜 때문에 우리가 공로의식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거기서 모든 것들이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 없다는 얘깁니다. 그 이상의 은혜는 내리지 않습니다.
은혜와 사랑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사랑과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은혜의식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위에 은혜를 더하여 베풀어 주시고, 더 크게 사용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런 선언을 할 수 있습니다. 정죄에 대해서 우리가 넉넉히 이겼노라. 육신에 대해 넉넉히 이겼노라. 현재의 고난을 넉넉히 이겼노라. 우리의 연약함을 넉넉히 이기노라. 모든 것들에 대해서 넉넉히 이기노라. 어떤 피조물의 방해에도 넉넉히 이기노라.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줄 믿습니다.
사탄과 싸워서. 세상과 싸워서 지는 사람이 아니라. 잠깐 동안은 지는 것 같으나 결국은 넉넉히 이기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사탄은 이기고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는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돈을 의지할 수도 있고, 때로는 사회적인 지위를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내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다. 좋은 부모, 좋은 자녀, 좋은 가족, 좋은 친구.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곳에서 살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고액의 연봉자이기 때문에 나는 틀림없이 행복하다. 내 직장도, 삶도 안전하다. 어떤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뜻밖의 질병, 자녀들의 탈선과 방황. 실질. 생각지도 않았던 개인적인 위기가 닥치게 된다면 그렇게 믿었던 인간적인 그 모든 기초가 한 순간에 흔들리고,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어려움과 실패라고 하는 것은 남에게만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뉴스를 통해서 일어나는 큰 재난들을 보면서 설마 저런 일이 나에게도 생길까? 그러지는 않겠지! 나에게는 저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거야. 그러면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다보면 어느 날 문득 ‘아, 어려움과 슬픔과 고난과 역경이라고 하는 것이 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하면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과 실패. 고난이 남의 것인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도 이런 것들이 찾아오는 구나.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온다할지라도 나는 경우에라도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재난 가운데 한 가지 어려움이 오니까 내가 금방 와르르 무너집니다.
야. 어떤 가운데서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그런 체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는 그런 체험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우리 인간적인 모든 것들은 모래 위에 세운 것 같습니다. 한 순간에 산산이 흩어지고,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집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엇을 좀 잡아보겠다. 돈도 좀 잡아보고, 명예도 좀 잡아보고,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좀 잡아보겠다. 그런 마음으로 애쓰고, 수고했습니다.
이것도 잡아보고, 저것도 잡아보고 최선을 다했어요. 앞에 잘 가는 사람을 잡고 넘어지게 하고, 쓰러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면서. 망하게 하면서. 그렇게 해 왔건만 평생 동안 무엇인가 잡으려고 잡으려고 애를 썼건만. 이 두 손을 가지고 잡고, 또 잡고. 시간만 많으면 계속 잡을 텐데. 계속 잡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 잡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무것도 잡힌 게 없어요.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잡으려고 잡으려고 애썼지만 바람을 잡는 거와 같았다. 수없이 수없이 잡았지만 잡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바람을 잡는 것과 같도다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파스칼은 우리 인간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다 그랬습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자리. 인간 마음 깊은 그곳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기가 앉아있고, 인간이 앉아있고, 물질이 앉아있고, 우상이 앉아있고, 세상적인 것들을 그 안에 모시고 산다. 그래서 인간은 평안이 없고, 만족이 없다. 그랬습니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지만 밥 외에 돌맹이나 쓰레기를 먹으면 속이 편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결코 편안하거나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깊은 그곳에 모시고 살아가는 거. 이것이 바로 잘 사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결코 후회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영광스러운 삶을 살뿐만 아니라 하늘의 상과 면류관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설립한지 이제 16년이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 남은 생애 성령의 도움을 받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이렇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도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앞으로도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놀라운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부르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랑과 은혜를 받았건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남은 생애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승리자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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