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바다에 가래나무(추자나무) 열매를 흩뿌려 놓은 듯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져 오며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모여 만든 제주도의 섬 속의 섬인 추자도.
대서리를 시작으로 최영 장군사당과 봉골레산, 나바론하늘길, 추자대교를 이어 묵리고개, 신양항과 모진이해수욕장, 예초리기정길 등 상추자와 하추자를 넘나들며 올레길 18-1코스를 걷고 싶었다.
이른 새벽 영천에서 출발해 대구국제공항 근처에 자동차를 주차한 후 오전 6시 20분 티웨이항공을 1시간여 타고 제주국제공항으로 가서 시내버스로 제주항연안여객선터미널로 이동했다.
제주항 제2부두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추자항으로 가는 여객선 출발시간이 오전 9시 30분이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올레길 18코스인 거상 김만덕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건입동 주변을 둘러보았다.
추자도행 승선권을 끊기 위해서 찾아간 매표소에서 오후에 나올 배가 기상악화로 인해서 애초 오후 4시 30분에서 1시로 당겨졌다는 말을 듣고 순간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해서 제주공항에서 전화를 했더니 업무 시작 전이라서 통화가 안되었어도 설마 했었는데….
머릿속으로 급하게 계산을 했다. 들어가는데 1시간 빼고 승선권 매표와 탑승시간 30분을 빼면 추자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2시간. 2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라도와 가파도 쪽으로 일정을 변경하려고 해도 모슬포항까지는 거리도 멀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추자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추자도에서 1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음날 일정상 무리할 수가 없었다. 제주-추자를 오가는 퀸스타2호에서 일정을 조정했다. 추자항에서 예초리를 오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버스투어를 한 후 최대한 걸으면서 추자도의 맛을 음미하기로.
퀸스타2호는 예정보다 10분 늦은 10시 40분에 추자항에 도착했다. 항구 주변을 거닐면서 구경하다가 11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마을 주민들과 낚시꾼들로 작은 버스가 가득 찼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미지의 섬 풍경에 취해있어도 대서리를 출발한 버스는 영흥, 묵리, 신양을 거쳐 20분 만에 종점인 예초리에 도착했다. 출발까지 남은 10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항구로 가서 바닷물에 손을 씻고 바람을 즐겼다.
상추자로 돌아오는 길에 추자항이 잘 보이는 곳에서 급히 내렸다. 사진을 찍고 나서 1시간여 동안 순효각과 봉골레산, 최영 장군사당, 작은 작젯길, 등대산을 산책했다.
순효각(純孝閣) 비석에는 ‘학생박명래순효지비’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는데 박 효자는 아버지가 병들어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슬피우니 꿩이 나타나 드렸고 어머니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을 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려 살아나게 했다고 한다.
대서리 골목길에는 일제 강점기와 1800년대에 축조된 일본 샘과 가운데 샘이 보존되어 있고 그물을 손질하는 등 고기잡이 준비를 하는 주민들의 정겨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봉골레산 입구에서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오후에 걸궁 풍물놀이 패들이 모여 동·서·남해 용왕님께 마을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만선을 기원하며 기원제를 지냈던 기꺼산 제단이 놓여 있어 자연에 순응하려는 어부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추자초등학교 뒤쪽에 위치한 최영 장군사당은 고려시대 목호의 난을 진압하러 제주로 가던 최영 장군이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 머물면서 그물 짜는 법과 어망으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지역민들에게 도움을 준 은공을 기려 지은 것으로 매년 음력 2월 1일에 사당제를 지내고 있다.
포토존으로 꾸며놓은 올레 18-1코스 출발지인 추자초등학교를 지나 추자항 작은 작젯길에 도착했다. 추자도 말로 작지는 작은 자갈을 뜻한다는데 섬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출항시간이 다가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등대산이다. 전망이 좋은 이곳에는 반공탑이 서 있는데 1974년 5월 20일 발생한 추자도 간첩사건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다. 초등학교 때 한 방송사(KBS-TV로 기억)에서 방영한 반공드라마에서 본 기억 때문에 위치는 모르지만 추자도라는 섬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예기치 못한 풍랑으로 인해 산악 트레킹이 버스투어로 바뀌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여행이었다.
추자도에서의 아쉬움을 제주연안여객터미널에서 김만덕 기념관, 용연, 서한두기 물통, 용두암 등 용담해안도로를 걸으면서 제주국제공항까지의 여유로운 트레킹으로 달랠 수 있었다.
항공기 시간을 맞추느라 제주공항 대합실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대구공항을 거쳐 저녁 9시경에 집에 돌아왔다. 지난번 우도, 성산방면에 이은 두 번째 제주도 당일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조만간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마라도와 가파도로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