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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老化), 피할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
본 강의에 앞서 수퍼 에이지(Super Age)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전쟁고아 출신으로 독학 끝에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지금은 주한미군 영어강사로 일하는 올해 83세 이청자 할머니 얘기입니다. 언젠가 자기 수업을 들은 미군 군의관이 수료할 때쯤, 병원에 한번 들러 달라고 했답니다. 무슨 선물을 주려나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그 군의관이 수업 잘 들었다면서 의사로서 자기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인생 팁을 알려주겠다면서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병이 나면 의사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걸어 보세요. 기분이 좋아도 걸어 보세요. 할 일이 많아도 일단 걷고 나서 일하세요.’라고 하더랍니다. 이후 이청자 할머니는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아 지금도 하루 7~8km는 걷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 할머니 용 삶아 먹었나?’할 정도로.....주 4회 왕복 240km를 소형차로 운전해 다니며 30년 동안 하루 3시간씩 한국어를 미군들에게 가르친 어느 노익장 할머니의 사연입니다.
다음은 자신을 ‘백세소년(百歲兒)’이라 지칭하며 살다 간 일본인의 얘기입니다. 그가 바로 쇼지 사브르(1906~2013) 박사입니다. 그는 은퇴 후 65세에 한국어를, 80세에는 중국어를, 100세에는 러시아어를, 103세에는 브라질어를 배워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나이와 배움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극복했던 인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또 몸 건강을 위해 자신이 ‘사브르식 검도체조’를 개발해 스스로 실천했고 백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균형성과 유연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느 해 NHK에 출연해 자신의 건강비결을 소개했는데 그게 바로 ‘음식을 오래 씹는 습관’이었습니다. 방송에서 직접 테스트한 결과 아침은 1,200회, 점심은 1,000회, 저녁은 1,600회를 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씹는 활동이 소화계통의 건강뿐만 아니라 인지능력을 결정하는 뇌 해마 부위의 신경활동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결코 망설이지 않고 배우는 자세, 건강을 위한 지속적인 신체활동과 오래 씹는 습관이 장수에 이르는 비결임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2023년에 이르러 한국사회는 노인인구 천만 명 시대의 막이 올랐고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넘어섰습니다. 마침내 노인 문제가 발등의 불, 그 이상의 심각한 난제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럼 대안은 뭘까요?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 사회가 우선 합리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걱정할 게 아니라 건강한 노화를 대비하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을 걱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노인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닌 시대를 만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노인, 일하는 노인, 말 그대로 죽는 날까지 자신을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노인 말입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국가가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실천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제 노령화 문제는 더 이상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저께 대한노인회장단이 여당을 찾아가 온갖 해달라는 주문을 쏟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들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는 것일까요?
얼마 전 인구소멸로 인한 한국사회의 멸절을 경고한 외신 칼럼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인구절벽과 노령층의 증가로 인한 병력자원의 급감이 결국 국가안보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첨단전략자산이 넘친다 해도 역시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길을 돌리면 역사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천년제국 로마는 강력한 상비군을 보유했습니다. 17세 이상 남자가 입대해 20년간 전장을 누비고 현역 이후에도 5년 더 예비군으로 복무했습니다. 당시 평균수명이 30대에 불과했으니까 예비군은 아마 노병들의 부대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식민도시의 건설뿐만 아니라 4세기 초에는 국경경비까지도 감당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남자들이 군대를 두 번 가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이 제게는 우스개로 들리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스라엘처럼 한국도 여성 징병제도가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한국만큼 한가로운 나라도 없는 듯 합니다. 워라벨 군대로 소문났던 대만도 이미 군복무 기간을 대폭 늘렸습니다. 또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국방훈련협회에 제대군인들의 입소신청이 평소 10배 이상 빗발쳤다고 합니다. 핀란드뿐만 아니라 예비군 해제 연령이 높은 나라도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51세, 콜롬비아는 50세까지 훈련을 받습니다. 여러분 ‘시니어 아미(Senior Army)’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만든 민간 군사훈련단체입니다. 회원이 500명인데 작년 11월 국방부 도움으로 첫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평균연령 65세, 최고령은 75세라고 합니다. 혹한기 훈련은 물론 새해에는 10~20km 완전군장 행군도 실시할 계획입니다. 이들은 평소 몸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현재 65세의 한국 노인은 한 세대 전 45세와 비슷한 체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손만 벌리는 대한노인회와 대비되는 노인청년 500여명 몸짱 시니어 아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청자 할머니와 쇼지 사브르, 시니어 아미(Senior Army)같은 영 시니어(Young Senior)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결과 여전히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화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같은 생활 습관이라면 평균수명이 늘어나도 오랜 시간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은 우려는 이미 통계자료가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73%는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4종의 약을 복용한다는 것입니다. 장수(長壽)가 결코 축복이 아닌 시대가 된 것입니다. 100세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약봉지를 달고 산다면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화와 만성질환은 그 자체가 자신이 거쳐 온 인생의 축적입니다. 그러므로 노년의 건강, 즉 오늘 내가 들고 있는 노화의 현주소는 사실상 내 인생의 성적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기 모임에 가보면 앉아있는 80대 노인이 있고 서 있는 60대 청년이 있는 이유입니다.
그럼 노화란 무엇일까요? 우리 몸의 세포는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분열합니다. 그 시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된 순간부터입니다. 세포분열로 장기에서부터 머리카락, 손톱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이 성숙하고 몸집이 커지고 청소년기에는 2차 성징(性徵)이 나타납니다. 그러다 성인(대략 25세 전후)이 되면 성장을 멈추고 서서히 노화가 시작됩니다. 이게 바로 ‘노화’란 반드시 노인들만의 담론이 아닌 이유입니다.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약해지는 노화는 세포분열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태아의 세포는 100번 정도 분열하지만 노인의 세포는 20번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세포는 핵을 갖고 있고 그 안에는 유전정보를 담은 염색체가 있는데 그 끝부분을 ‘텔로미어(telomere)’라고 합니다. 세포분열이 시작되면 염색체 속 DNA가 복제되는데 이 과정에서 염색체 끝부분이 완벽하게 복제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고 이를 반복하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짧아질 수 없을 만큼 짧아지면 세포는 복제를 멈추고 죽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은 끊임없이 세포가 죽고 태어나는 데 노화는 이런 기능이 사실상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문제는 노화의 속도입니다. 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그의 책에서 이미 현대인 대부분은 세대를 불문하고 ‘가속노화’에 빠져있다고 진단합니다. 게다가 ‘오늘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빠르게 늙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가속노화‘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위기라는 말입니다. 가속노화는 숫자 나이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많은 것을 말합니다. 가속노화가 쌓이면 40대가 60대의 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체시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같은 1초라도 누군가에는 노화 시계가 2초씩 빠르게 갈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0,5초씩 느리게 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인자들이 있습니다. 먹고, 움직이고, 마시고, 즐기고, 쉬는 것들이 다 노화의 속도를 결정합니다. 가속노화가 있으면 당연히 감속 노화도 있습니다. 예컨대 술 마시기를 자제하고 통곡물 식사, 꾸준한 운동, 숙면, 약을 줄이면서 질병을 관리할 수 있으면 감속 노화 역시 가능합니다. 질병에는 예외가 없지만 노화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같은 나이라도 노화 속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자본주의의 편안함이 노화를 앞당긴다는 사실입니다. 물질의 풍요로 인한 편리한 생활환경이 오히려 노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왜일까요. 우선의 편리함과 당장의 쾌락이나 거침없는 감정발산이 미래의 불편함과 고통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어느덧 편리한 불균형이 아주 편리한 일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사실 몸과 마음은 탄성이 있어서 한두 번 균형을 잃는다고 해서 건강이 망가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긴장이나 비틀림이 수십 년 유지되면 그 불균형은 영원히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굳어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오늘 우리 사회는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합니다. 젊은 날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사서하는 고생을 어리석은 것으로 취급합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돈을 써서 남에게 처리해 달라고 합니다. 외식하는 것도 모자라 배달을 시킵니다. 계단을 오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걷지 않고 택시를 부릅니다. 직접 쓸고 닦지 않고 청소용역을 부릅니다. 자신의 본업을 제외한 모든 일은 외주를 줍니다. 그렇게 마련한 시간은 어디에 쓸까요? 돈을 더 벌기 위해 부업을 하거나 쾌락을 얻는 활동으로 소비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런 삶이 행복이나 유익을 준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고통과 불편은 줄어들수록 좋다는 자본주의 전제가 옳다면 지금 우리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에서 어슬렁거리고 일자리는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도 힘들고 어렵다는 핑계로 청춘을 까먹고 있는 캥거루족은 그대로입니다. 활동량은 줄어들면서 더 많은 쾌락을 누렸다는 증거로 복부비만 인구는 늘어갑니다. 어디 가든 사람들은 구부정한 자세로 스마트 폰에 고개를 박은 채 살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음식, 초가공 식품, 핑거푸드로 몸의 탄력성은 잃어갑니다. 그리고 이같은 젊은 날의 순간적 쾌락은 결국 그들 자신들에게 오래 아프게 될 노년의 불행을 속절없이 기다리게 만들 뿐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대증요법’ 전문의 병원들은 널려 있습니다. 숲을 보는 대신 나무만 보 는 의료구조 때문입니다. 우선 의사들은 환자를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검사장비가 내뱉은 데이터만 보고 진료하고 처방합니다. 요컨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몸과 마음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스크린 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같은 상황에서 ‘가속노화’라는 건강의 악순환을 끊는 해결 방법은 뭘까요? 그게 바로 ‘내재역량(Intrinsic Capacity)경영’입니다. 말이 좀 어렵게 들리지만 이 용어는 2015년 WHO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들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를 말합니다. 즉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기능요소를 종합적으로 점수화하는 것입니다.
내재역량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을 일컬어 4M이라고 합니다. 첫째, 삶의 목표설정, 즉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입니다. 둘째, 신체기능(활동능력, 운동능력), 즉 이동성(Mobility)입니다. 셋째, 정서적 상태, 인지능력, 즉 마음의 건강(Mentation)입니다. 넷째, 식습관, 건강관리, 의료, 즉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나 스스로 공부해서 내 몸과 마음을 나 스스로 경영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A) 곡선은 높은 내재역량 궤적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지점에 닿는 곡선의 기울기가 매우 가파릅니다. 그것은 돌봄에 필요한 기간이 짧다는 사실, 즉 ‘독립적 생활능력의 문턱값’을 나타내는 수평선과 가장 늦게 만나는 것은 노화가 가장 느리게 진행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개인적 차이가 있지만 성장이 멈추고 노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25세 전후로 보는바, 감속 노화를 위한 4M의 내재역량 강화 역시 이때부터 가동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가속노화에 빠진 삶을 정상화하는 노력을 비유로 한번 살펴봅시다. 늪에 빠진 쇠공을 실에 매달아 언덕 위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중력을 사람의 본능이라고 하면 쇠공을 끌어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력의 반대 방향의 전부, 즉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합심해 실을 끌어당겨야만 쇠공, 즉 가속노화에 빠진 우리의 삶을 늪에서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본시 사람의 본능은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이루는 요소들의 조화로운 힘을 모아 조금씩 끌어 올린다면 가속노화의 쇠공은 늪에서 올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4M의 관점에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면 조금씩 쇠공을 늪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늪을 빠져나오기만 하면 그 앞에는 부드러운 잔디가 깔려있어 쇠공을 끌어 올리기는 훨씬 더 수월해집니다. 하지만 잠시라도 중력, 즉 육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실을 놓아버리면 쇠공은 다시 늪을 향해 굴러갈 것입니다. 요컨대 가속노화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은 오직 하나, 본능을 이기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하기가 아닌 덜어내기이고, 채우기가 아닌 비우기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장기적인 불편을 고려하지 않는 단기적인 편안함, 즉 순간의 쾌락과 감정을 위해 단 하나밖에 없는 내 몸과 마음을 학대하는 것은 가속노화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실 밀기(pushing on a string)’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물체를 옮기고 싶을 때 실을 매달아 당길 수는 있어도 실로 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혀 효과없는 방법을 지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충분히 쉬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그러면서 우리 몸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의 조화 없이 본능에만 끌려다니면서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앞에서 말한 4M의 관점에서 스스로 내 몸을 살피지 못하고 늘 불필요한 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재산을 잃으면 적게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손쉽게 의료시장을 기웃거리는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나 스스로 내 몸과 마음의 능동적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얼마 전 존스 홉킨스대 의대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외신에서 보았습니다. 그들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고칠 수 있는 환자는 고작 15~20%다. 나머지는 저절로 낫거나 절대로 낫지 않는다.’ 라고 말입니다. 내가 내 몸의 주치의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이런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롱런(long run)하려면 롱런(long learn)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는 세상을 보는 올바른 안목만 기르는 게 아니라 자기를 성찰하는 지혜를 얻는 길이기도 합니다. 나 스스로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임을 증명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공부는 책만 보고 강의 듣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만나보고, 많이 겪는 것이 다 공부입니다. 토마토가 익을 때 의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는 영국속담이 있습니다. 토마토를 많이 먹으면 의사를 찾을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병원 갈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야 병원이 필요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당연한 말인데 이런 상식을 지키며 사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요컨대 스스로 내 몸을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실천하면 천하의 명의(名醫)들을 한가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사는 법을 배워라.’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입니다.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강의가 우리 시대를 위협하는 아니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가속노화’를 일깨우는 작은 사이렌 소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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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예화 하나를 소개하고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저에게는 지금까지 살면서 비록 잘 지키지는 못했지만 늘 내 삶의 지표로 생각하면서 진실로 공감하는 격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대인은 만나면 늘 사상을 말하고 평범한 사람은 만나면 주로 사건을 말하고 소인은 만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얘기뿐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를 알고 싶으면 만남의 공간에서 내가 무슨 말을 주로 입에 올리고 나누는지를 살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에서 오가는 얘기의 십중팔구는 다 사람 얘기들입니다. 게다가 그런 얘기들의 대부분은 누군가에 대한 칭찬보다는 흉보는 얘기가 더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습관처럼 누군가를 흉보고 비난하는 얘기를 하고 나면 괜히 내 가슴이 허전하고 뭔가 알 수 없는 피로감만 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세상에서 바람직한 사람 얘기는 늘 귀담아 들어야 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소설가가 북콘서트에서 젊은이로부터 어떤 사람과 결혼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그 ‘좋음’의 기준이 다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소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좋은 사람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말보다 그 사람의 작은 행동을 보라고 말입니다. 예컨대, 운전할 때 양보해 주는 사람, 문을 열 때 뒷사람이 오는지 확인하는 사람, 식당에서 일어설 때 의자를 밀어 넣는 사람, 비 오는 날 상대에게 우산을 더 기울여주는 사람, 약속 시간에 5분 먼저 나오는 사람, 헤어질 때 한 번쯤 더 뒤돌아봐 주는 사람.....왜 이런 것들이 소중한 것일까요? 사소한 것들의 합이 모여 우리 모두의 인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음 소거’ 버튼을 누르고 사람의 행동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쁜 행동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해져야만 좋은 사람이 누군가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