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실습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마지막 실습이기도 하니 재미있게 하고 싶고, 잘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같은 학교 동기인 수연이가 나눔의 집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지적장애인 생활시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지만 함께 해보고 싶었습니다. 지원서를 넣고 면접 날짜를 받았습니다. 제가 지원한 삼부자 여행의 두 형제가 면접을 본다고 하니 더욱 긴장 되었습니다. 과업에서 보았던 두 형제가 어떤 사람일지 기대됐습니다. 차가 막혀 제시간에 면접을 보지 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베이커리 쉐어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면접을 시작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마치 본인이 면접을 보는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와 긴장된 표정으로 질문해 주셨습니다.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했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인천에 올라오면서 긴장한 표정의 두 형제의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이분들과 그저 같이 지내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합동연수는 다시금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박시현 소장님께서 ‘입주자는 사람입니다.’를 읽는데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하셨을 때 저도 크게 공감했습니다. 장애인도 당연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과 장애인은 다르게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장애인을 일반 사람과는 다른 카테고리에 넣어 구별해 놓은 것, 심지어 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태껏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차근차근 카테고리를 부수는 작업을 진행하고, 활동하는 동안에도 혹여나 실수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나 자신을 점검했습니다.
떨리는 첫 출근, 나눔의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설이 원래 이런 곳인가?’ 생각될 정도로 제가 생각했던 시설과는 전혀 다른 가족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했고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서로 부족한 점을 돌봐주고 챙겨주는 모습이 정겨운 대가족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여행지를 정할 때 워터파크에 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가는 건데 워터파크는 힘들지 않을까요?’ 했지만 잠시 주춤하곤 다시 워터파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둘레 분들을 만나면서 두형제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둘레 분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귀 쫑긋 세워 잘 들었습니다. 그리곤 둘레 분이 추천해준 여행지를 가겠다고 단번에 마음을 정했습니다. 실습생들의 말은 그저 흘려보냈지만, 둘레 분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던 건 아마도 둘레 분들이 두 형제의 삶 속에 함께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두 형제의 둘레 분들을 만나면서 미약하지만 ‘약자도 살 만하고 약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더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이런 사회를 만드는 사회사업가가 참 귀하다 싶었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며칠 동안 두 형제는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가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시설에서 매번 가는 여행이라곤 여행할 곳도, 일정도 정해졌기 때문에 그냥 몸만 가면 되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난생처음 여행지를 직접 정하고, 펜션을 예약하고, 기차표를 구매하는 것까지 두 형제가 하는 것이니 힘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두 형제가 자기 인생 자기 삶을 살게 도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금방 할 수 있는 일들을 두 형제는 혹시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몇 시에 무슨 역으로 가야 하는지, 요금은 얼마가 드는지 등을 여행책자로 만들어 들고 다니며 확인했습니다. 수고스럽고 힘들겠지만 두 형제의 여행이니 두 형제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여행이 되길 바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자존 욕구가 있습니다. 이는 구실이 있어야 충족될 수 있습니다.’
나눔의 집 2기 실습 때 다른 친구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두 형제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행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하지는, 기차표는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바비큐 파티 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모든 것들을 구실로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이야기해주겠지요?
저녁 식사시간에 함께 식사를 하면서 여행 다녀와 감사 인사드리러 갈 때 작은 선물이라도 같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떤 선물을 할지 희진 씨와 의논을 부탁드렸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던 희영 씨가 실습생들에게도 선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과 가족은 그저 여행을 가는 거지만 실습생들은 멀리서 실습하러 와서 우리를 도와주는 거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저 안전하게 잘 다녀오는 게 선물이라 했더니 희영 씨가 고개를 흔들며 고마운 마음은 나누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인들은 항상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어린아이 때부터 다 큰 어른이 돼서까지 받는 것에만 익숙하다고.. 그러니 나누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희영 씨의 이 한마디가 마음을 콕 찔렀습니다.
‘나는 그동안 모든 과정에서 그때그때 감사했었나?’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에는 힘썼지만 감사하는 것은 기록에만 적어 놓고 정작 전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으로만 끝나는 감사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감사를 했다면 더 풍성하게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4주 동안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생각보다 과업을 진행하는 시간이 부족했고,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모악산,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고 생각될 때마다 동료들의 응원과 격려가 두 다리에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산을 내려갈 때는 엉뚱한 길로 내려가서 절망하다가 좋은 분을 만나 차를 얻어 타고 가며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 기뻐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곡성에 가서 신나게 농구하고, 밤에 계곡에 누워 하늘의 별도 보고 밝은 달빛에 의지해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던 시간들, 저녁마다 서로를 꼭 안아주던 그 따뜻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웃으며 지지해주는 예진이와 항상 고맙다고 말해주는 복음이, 매번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신 장 여사님까지 우리 동료들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소녀 같은 웃음으로 반겨주신 박영희 선생님, 실습하는 동안 잘 배우고, 누릴 수 있게 도와주신 전유나 선생님. 선생님들 덕분에 저희가 실습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은혜야~ 군산에서 잘 누리고 배웠구나.
은혜의 사회사업 인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