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서는 1984년도에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고 하는데 열리기 전날까지 거의 20도 정도의 기온에 전혀 눈이 오지 않아서 어떻게 올림픽을 치를 것이냐에 대해 엄청 말이 많았는데 바로 하루 전날 저녁에 무려 2미터가 넘는 눈이 와서 군대가 동원되어 눈을 치우면서 행사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때 우승했던 유명한 독일의 피겨 선수가 카트리나 비트라고 하며 다음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이 선수를 앞 세우고 있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김 연아 선수를 앞세워 유치전을 하고 있다고 보도가 됩니다.
또 이곳은 세계 1차 대전 발발의 원인이 된 곳으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자 부부가 1914년 이 곳을 방문하여 돌아 가던 길에 사살된 것이 원인이 되어 1차 세계 대전이 일어 났는데 인터넷에서 여러 곳을 찾아 보니 자세하게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나라의 공식 명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며 사라예보는 이 나라의 수도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유고슬라비아이며 구 소련이 해체되고 이곳 지도자였던 티토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각 민족국가로 분리 되었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국가 명칭은 보스니아였고 유고 연방이 해체된 뒤에 본연의 이름을 찾아 간 것이지요.
유고 연방이 해체 된 이후 현재는 본래의 6개의 나라로 분리 되었는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이며 세르비아 자치국 코소보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나 현재는 코소보가 국가로 거의 인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독립운동 기간에도 많은 수의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참 이해 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마중 온 친구와 시내로 들어 오는데 내전의 상처가 여러 군데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냥 생각하기로는 수도가 아닌 조금 떨어진 도시에서 일어 났을 법한 전쟁이 바로 시내에서 서로 싸운 관계로 아파트 외부의 총알 자국은 물론 수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일찍 시내에 나가서 돌아 보다가 상당히 높은 지역의 집들을 돌아 보면서 등산 비슷하게 하였는데 여기 저기 많은 묘지에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 보니 거의 모든 비석에 쓰여 있는 사망일자가 내전 기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이 친구들에게 묻지를 못하겠습니다.
내려 오다가 약간 한적할 것 같은 언덕에 올랐더니 한 쌍의 연인과 여학생 둘이 앉아있는데 여학생들에게 왜 학교에 갈 시간이 넘었는데 가지 않고 여기 있느냐고 물었더니 치과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둘이 연신 담배를 피우며 나에게 피우겠냐고 묻습니다. 몇 학년이냐고 했더니 8학년이라고 하는 걸 보니 우리로 치면 중학교 2학년입니다. 소위 불량 학생이겠는데 생긴 것은 그리 불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어떻게 보내 주느냐고 물었더니 페이스 북을 통해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름을 적어 줍니다. 맹랑한 애들인데 어디에나 이런 류의 친구들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어제 저녁에 이곳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많은 얘기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참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같이 어울려서 사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시내를 보면 어느 곳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지역이고 어느 곳은 터키 구역이며, 또 어떤 곳은 유대인 구역이고, 교회와 모스크, 유태인 교회가 한 구역에 있으며, 그리고 종교 간의 차이도 서로 잘 이해 하면서 살아 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민족간에 그리 큰 전쟁을 겪었는지 쉽게 이해를 하지를 못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내전이 완벽하게 끝났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또 이 회사에 들어 오는 길에 독일군이 만든 방어용 벙커가 있는데 열차가 다니는 길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벙커라고 하는데 언덕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독일이 전쟁 중에 열차로 운송중인 무기와 물자를 슬라브 파르티잔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벙커라고 합니다.
이 친구가 저랑 다니면서 사라예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2차 대전 전쟁 영호가 있는 모양인데 저는 보지를 못해서 이번에 돌아 가면 한 번 찾아서 보아야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