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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멘탈체와 상념의 힘
멘탈체
나의 저서,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을 읽은 독자들은 종종 거기서 분류한 인간의 성질 항목이 모든 것을 다 커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용기, 존엄, 쾌활, 정직, 성실과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한 성질들이 위 책에 포함돼 있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이 여타 성질들처럼 즉각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색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질들의 존재 여부를, 투시를 통해 식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멘탈체의 구조적 차이, 표면의 변화 등으로 인식 가능하다. 하지만 대체로 그러한 성질들은 색깔에 의해서보다는 형상에 의해 표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상기 책에는 멘탈체의 삽화를 통해 인간의 주요 성질들을 나타내는 색깔과 그 배열 형태가 묘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좋은 성질을 나타내는 색깔들은 난형체의 상반부에 있으며 나쁜 성질을 나타내는 색깔들은 하반부에서 발견된다.
즉, 고급한 열망을 나타내는 자색, 헌신의 청색, 사랑의 장미색, 지성의 노란색, 자부심 또는 야망의 오렌지색 등은 난형체의 상반부에 있는 반면 분노, 이기심, 질투의 상념을 나타내는 색깔들은 하반부에 내려와 있다.
위 책에서 묘사된 삽화들은 멘탈체가 사실상 활동하고 있지 않은 상태를 가정하여 그린 것이다.(역주) 그러나 사람이 강하고 분명하게 사고 작용을 할 때는 그(멘탈체 변화)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멘탈 유닛(Mental Unit)은 멘탈체의 심장 또는 센타로 여겨진다. 멘탈체의 모습은 주로 이 유닛의 상이한 부분들의 상대적인 활동에 달려 있다. 인간의 마음의 다양한 활동들은 자연스럽게 일정한 구분, 분류를 이루는데 이 구분들은 멘탈 유닛의 상이한 부분들을 통해 표현된다. 멘탈 유닛은 결코 언제나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으며 사람의 타입과 발전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만일 멘탈 유닛이 비활동 상태에 있다면 그로부터 방사되는 힘은 멘탈체 내부에 많은 터널을 만들 것이다. 마치 환등기의 슬라이드를 통하여 나오는 빛이 환등기와 시트판 사이에 큰 방사 터널을 만드는 것처럼.
이 경우 멘탈체의 외부 표면은 시트판에 비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효과가 외부로 가시화 되는 것은 멘탈체의 표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우리는 멘탈체의 표면에 나타난 수많은 칼라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보편적인 여러 유형의 상념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멘탈 유닛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빠르게 화전하고 있다. 그 효과로 멘탈체에는 일련의 밴드들이 생긴다. 이 밴드들은 언제나 윤곽이 뚜렷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넓이 또한 항상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 눈에 구분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일정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구도심이 있으면 그 마음은 항상 멘탈체의 정점에 작지만 아름다운 자색 원으로 나타난다. 구도자가 구도의 문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 원의 크기와 광도는 증가한다. 비전가 안에서 그것은 상상을 초월한 아름다운 색깔의 광휘를 발하는 모자와 같이 된다.
그 밑에는 종종 헌신의 상념을 나타내는 청색 링이 있는데 대개는 다소 그 크기가 작다. 그러나 종교적인 진실성과 깊이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크다. 그 다음에는 훨씬 더 넓은 애정의 상념 존(zone)이 있다. 그것은 진홍색 또는 장미색을 띠고 있다. 사랑의 존(zone) 다음에는 자부심과 야망의 상념을 나타내는 오렌지색 벨트가 있다.
이것과 밀접되어 지성의 노란색 벨트가 있다. 여기에는 대개 두 구역으로 나뉘어지는데 각기 철학적, 과학적 유형의 상념을 나타낸다. 이 노란색 칼라가 있는 위치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종종 난형체의 상부 전체를 채우면서 헌신과 사랑의 벨트 위에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대개 자부심이 극단적인 형태이다.
난형체의 중간 부분에는 구체적인 형상들이 발산되어 나오는 넓은 벨트가 있다. 멘탈체의 이 부분을 통해 모든 일상적인 상념체가 나온다. 이 곳의 주요 색깔은 녹색인데 사람의 기질에 따라 갈색 또는 노란색으로 얼룩져 있다. 멘탈체 중에서 이곳보다 더 다양한 부분은 없다. 어떤 사람의 멘탈체에는 이 곳에 수많은 구체적 이미지들로 꽉 차 있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이 거의 없기도 하다. 또한 그 이미지들의 윤곽이 뚜렷하여 분명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흐리고 안개 같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이 질서정연한 배열을 이룬 사람, 그렇지 않고 뒤죽박죽인 사람도 있다.
난형체의 하부에는 온갖 종류의 저급한 상념들을 표현하고 있는 벨트가 있다. 종종 비천한 이기성의 찌꺼기들이 쌓여 멘탈체의 1/3 또는 심지어 절반까지 채우는 경우도 있다. 그 위에는 종종 증오, 교활, 공포 등을 나타내는 링이 있다. 사람의 의식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 저급한 부분은 사라지고 상부가 점차 확장하여 멘탈체 전체를 꽉 채우게 된다.
상념을 자극하는 감정의 강도는 색깔의 휘도를 통해 나타난다. 헌신의 감정을 예로 들 때 우리는 그것을 존경, 경외, 숭배의 세 단계로 말할 수 있다. 애정의 경우에는 선의, 우정, 사랑의 세 단계가 있다. 상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바이브레이션이 더 커지고, 영적이고 비이기적인 상념일수록 바이브레이션이 높아 간다. 전자는 칼라의 휘도로, 후자는 칼라의 명도로 나타난다.
멘탈체의 다양한 구역들은 대개 다소 뚜렷한 줄무늬 형태를 띠는데 그것을 조사하면 그 사람의 많은 성질들을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한 의지의 소유자는 멘탈체 전체가 매우 분명한 선들로 나타난다. 모든 줄무늬 방사선들은 안정되어 있고 명확한 구분이 가능하다. 반면, 마음이 흔들리고 나약한 사람의 경우에는 선의 명료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즉, 상이한 성질들을 분리시키고 있는 선들은 희미하고 줄무늬와 방사선들은 작고 약하며 불안정하다.
멘탈체에서 용기는 특히 자부심과 관련된 오렌지 밴드 안에서 매우 확고하고 명료한 선으로 나타난다. 위엄 역시 멘탈체의 동일한 부분에서 주로 표현되는데 고요한 안정성과 확실성 면에서 용기의 선들과는 매우 다르다. 정직과 정확함은 구체적 형상을 만들어 내는 멘탈체의 중간 부분 줄무늬의 규칙성과 거기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의 정확성, 명확성을 통해 분명히 표현된다.
충성은 사랑과 헌신이 강화된 성질이다. 따라서 사랑과 헌신이 나타나는 멘탈체의 해당 부분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의 모습이 언제나 형상화된다. 충성, 사랑, 헌신의 경우 그 느낌을 통해 멘탈체에 매우 강한 영구적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의 오라 속에 남아 있다가 헌신의 대상에 대한 상념이 일 때마다 그 힘으로 인해 기존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이때 보통의 경우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쁨은 멘탈체와 아스트랄체에 독특한 파문으로 표현된다. 쾌활함은 이것이 변형되어 안정되고 고요한 거품 모양으로 나타난다. 놀람은 멘탈체의 급격한 위축으로 나타난다. 만일 놀람이 기쁜 형태의 것이라면 위축과 함께 애정의 밴드 안에 홍조가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반대로 나쁜 형태의 것이라면 난형체의 하부에 갈색과 회색이 폭증하는 색깔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수축은 대개 아스트랄체와 육체에 전달되어 매우 불유쾌한 느낌을 야기시키고 태양신경총과 심장 센타에 영향을 미친다. 태양신경총에 영향을 미치면 의기소침이나 기타 질병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장 센타에 영향을 미치면 마비나 급사의 원인이 된다.
공포는 놀란다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멘탈체의 헌신 파트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다. 대개는 그 영향으로 팽창 현상이 일어나며 줄무늬들은 더욱 뚜렷해진다.
사람의 상념이 강하게 작용하면 그 상념에 상응하는 멘탈체 부분은 대개 팽창 현상을 일으키고 칼라 또한 밝아지면서 잠시 동안 난형체의 조화를 깨뜨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팽창 현상이 상존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특정한 형태의 상념의 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가 학문을 연구하는데 갑작스럽게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상념을 쏟아 부으면 앞서 말했던 팽창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언제나 일정한 양의 상념만을 지속적으로 학문 연구에 쏟는다면 팽창된 부분은 차츰 본래의 모습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 칼라의 밴드는 전보다 더 넓어질 것이다. 한편 학문적 주제에 대한 그 학자의 관심의 정도가 부단히 증가한다면 밴드의 폭이 넓어짐은 물론 그 팽창 부분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일반적으로 발전이 덜 된 사람은 난형체의 하부가 상부보다 더 크다. 따라서 멘탈체와 아스트랄체는 위 끝이 뾰족한 달걀모양이 된다. 그러나 진화가 많이 된 사람은 고급한 성질들을 부단히 증대시키기 때문에 위는 넓고 아래는 뾰족한 달걀모양이 된다. 하지만 난형체는 항상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모습은 일시적일 뿐 영구적이지는 않다.
멘탈체와 아스트랄체의 질료는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멘탈체가 어떤 갑작스런 감정에 의해 혼란 될 때 그것의 모든 질료는 마치 난폭한 태풍을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 휩쓸리고, 그 결과 일시적으로 색깔들이 뒤죽박죽 된다. 그러나 잠시 후 다양한 색깔을 방사하는 상이한 유형 질료들의 특별한 인력에 의해 전체 배열이 다시 정리되고 평상의 존(zone)들이 회복된다.
그러나 평상시의 존(zone)으로 회복되었다고 해서 질료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며 입자들이 항상 그 주위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입자들이 자신의 구역을 떠나 다른 벨트로 침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존(zone) 안에서 이루어지는 운동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어떤 특별한 존 내부 질료의 활동량은 해당하는 주제에 대한 상념 양에 비례한다. 만일 어떤 부류의 상념이 침체되면 해당 질료에 그대로 반영된다. 더 나아가 거기에 편견이 자리잡으면 그에 대한 사고(思考)가 멈추고, 작은 와동이 생겨나 그 안에서 멘탈 질료가 계속 맴돌다가 마침내 응결되어 일종의 종양이 생겨난다.
만일 이 종양이 제거되지 않으면 당사자는 멘탈체의 해당 부분을 사용할 수 없고 결국 그러한 주제에 대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이 종양은 내부와 외부에서 모든 자유로운 운동을 방해한다. 그것은 어떤 문제를 정확히 보거나 새로운 개념에 대한 수용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어떤 분명한 상념을 발송하는 것도 방해한다.
불행하게도 이 환부는 멘탈체 내에서 전이되어 우리의 인식 능력을 점점 더 심각하게 무력화시킨다. 만일 우리가 어느 하나의 주제에 편견을 갖기 시작하면 곧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멘탈 질료의 건강한 흐름이 막혀 못된 습관이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편견은 가장 일반적인 것임과 동시에 가장 심각한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인 주제에 대한 이성적 사고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한다. 불행하게도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 종교적인 문제와 관련된 멘탈체의 기능이 정체되어 있다. 그것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종양들로 덮여 있다. 때문에 그들은 심지어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조차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에는 헌신적 타입과 과학적 타입의 사람의 아스트랄체 삽화가 게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자주 대하게 되는 유형에는 직관적인 타입과 실제적인 타입이 있다.
후자는 일반적으로 멘탈체의 색깔이 노란 주종을 이루고 규칙적이고 질서 있게 다양한 칼라 군(群)이 배열되어 있다. 그는 직관적인 타입보다 훨씬 덜 감상적이며 상상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힘과 열정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매사에 실수가 적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한다.
직관적인 사람의 멘탈체 속에서는 청색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밖의 여러 색깔들은 대개 모호하고 매체의 전체 모양 또한 비정형적이다. 그는 과학적인 타입의 사람보다 매사에 더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종종 그러한 고통을 통해 빠른 진보를 이루어 낸다.
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사람에게는 정열, 열정, 침착함, 규칙성 등이 구족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지 어떤 성질을 먼저 습득하였는가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오컬트적인 성향을 갖추고 있는지, 또는 영능을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멘탈체의 색깔을 통해 알 수 있다. 누군가 오컬트 방면을 발달시키기 시작했을 때 그의 멘탈체 전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정화되고 질서 있게 작용하게 된다. 오컬트 수련이 멘탈체 전체에 필요한 작용을 해 줄 뿐만 아니라 어떤 진정한 진보를 이루고자 결심했을 때 그의 멘탈체가 최상의 상태에 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강하고 분명한 상념체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상념체들을 분명히 심상화할 수 있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상념체를 만든다는 것과 그것을 심상화 한다는 것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강하고 분명한 상념체를 만들기는 해도 그것을 잘 심상화하지는 못한다. 상념체의 형성은 멘탈체를 통한 의지의 직접적 작용이다. 이에 비해 심상화는 상념체를 멘탈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강하게 생각하면 그것을 심상화 시킬 수 있든 없든 그 이미지는 멘탈체 속에 있다. 당신은, 물질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멘탈 활동은 반드시 육체적 두뇌를 통해 행해져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컬트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멘탈체를 계발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멘탈체가 즉각 작용할 수 있도록 두뇌 역시 질서화시킬 필요가 있다. 두뇌의 특정 부위는 인간의 특정 성질과 연결되어 있고 일정한 유형의 생각하는 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두뇌의 그 모든 기능은 체계화되어야 하며 멘탈체 내의 존(zone)들과 조직적이며 적절한 상관관계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포인트는 자아와 멘탈체 사이에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자아는 이 모든 성질과 에너지들을 만들고 이용하는 힘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자아가 매체들 속으로 내려와 살피게 되는 것이다. 섬세한 멘탈체와 좋은 두뇌를 가진 사람들도 대개는 삶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그것들을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자아는 자신의 작은 단편만을 저급계에 내려보낸 채 그 매체들(육체, 아스트랄체, 멘탈체)이 제 멋대로 혼란되어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나는 어디선가 이런 상태를 고치는 법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여기서 간단하게 다시 말해 보겠다. 무엇보다도 자아가 원하는 것을 주도록 하라. 그러면 자아는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즉시 하강해 올 것이다.
만일 자아가 바라는 것이 사랑의 계발이라면 이 저급계에서 사랑을 최대한 발현시켜라. 그러면 그는 주어진 기회를 이용해 즉시 응답할 것이다. 만일 자아가 지혜를 바란다면 현명해지도록 열심히 공부하라. 그러면 자아는 당신의 노력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협조할 것이다. 자아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 그것을 주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자아로부터 만족할 만한 반응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