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과 부럼사상
정월대보름이다. 다들 부럼을 하나쯤은 깼을 것이다.
그런데 부럼이 뭔지, 왜 깨는지 그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 민족은 달의 민족이다. 우리의 터가 양성이기 때문에 문화로는 음의 문화가 발달되어 왔다. 일본은 우리와 반대로 터가 음성이기 때문에 양의 문화를 갖고 있다.
우리는 달을 보고 기원을 하지만 우리와 반대되는 문화를 지닌 민족들은 태양을 보고 기원을 한다.
달의 문화, 음의 문화, 그 달이 가장 크고 둥글게 될 때가 바로 정월대보름이다.
'보름과 부럼'은 서로 상대적인 말이다.
보름이 (보름달과 같이) 스스로 움직여 보게 한다는 음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부럼은 우선 ‘부른다’는, ‘불러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는 ‘부풀어 오른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배가 부풀어 오른다는 의미인데 잉태, 생장, 나고 크게 하는 뜻이 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창조해서 생장하는 이 과정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름에 응한다고 생각을 했다.
씨앗이 싹트기 위해 부풀어 오르려면 대자연의 어떤 힘이 불러줘야 한다, 불러 일으켜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는 것과 부풀어 오르는 것이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대자연관인 것이다.
생명이 하나 잉태되려고 해도 조상신이 점지를 해서 아이로 되는 식의, 먼저 부르고 그 다음에 생기고, 거기에 응답하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부름에 응답해서 부풀어 오르는 데에, 즉 싹이 터 나오는 데에 가장 지장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딱딱한 껍질이고 그 껍질을 깨는 작업을 우리는 ‘부럼을 깬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으로 성장해 가는데, 그때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힘이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가 부럼을 깰 때에 쓰는 것들은 딱딱한 껍질이 있음과 동시에 기름기가 있는 것이다.
땅콩, 잣, 호두 등이 성장에 필수적인 기름 성분이 있는 것이고, 밤은 옛날 사람들이 보기에 땅콩, 잣, 호두 등과 한 통속으로 영양가 있어 생장하는 데에 뒷받침을 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 오곡밥에 아홉 가지 나물을 먹는다.
오곡밥이란 것은 대표적인 주식이 어림잡아 다섯 가지라는 것이지 오행에 의한 오곡으로 생각하여 꼭 다섯 가지라는 생각은 보럼사상의 취지에 적합하지 않다.
9란 숫자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거의 최대의 숫자이지, 꼭 아홉 가지 나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물, 여러 가지 나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소화하여 생장하고 성장해 가도록 노동이라는 과정을 두었다. 아홉 번 물 긷고 아홉 번 밥 먹고...
사실상 우리가 생장하는 데에 가장 저해되는 것을 껍질이라 보고 그 껍질을 깨어야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볼 때에, 우리의 보름과 부럼사상은 굉장히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한 우리 민족의 철학이 부럼의 철학과 일치한다.
억지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불러주면 그 다음에 스스로가 깨고 나오도록 한다.
닭이 알을 품다가 병아리가 나올 때쯤 되면 '꾸꾸꾸꾸...' 바깥에서 소리를 내면서 안에 있는 병아리를 부른다. 그러면 병아리가 안에서 알을 깨고 나온다. 이것이 부럼사상이자 대자연의 법칙이다.
오곡밥을 먹고 아홉가지 나물을 먹는다는 것은 다양성을 추구함이기도 하다.
그것처럼 한 인간을 구성해 진화해 나가는데도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다.
옛날엔 정월 보름이라는 시기는 신선한 야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일 부족해질 수 있는 영양소가 비타민 성분이다. 그러한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이 나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당히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보름의, 부럼의 철학이다.
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깬다, 뭐 한다 단순한 풍속으로 전해 온 것 같지만 그 속에는 그러한 사상들이 녹아 있다. 사고의 껍질을 깨고, 딱딱해진 마음의 껍질도 깨고, 영혼의 벽까지도 깰 수 있도록 자연의 이치를 꿰뚫어 풍속으로 생활 속에서 깨어나 오도록 하는 가르침을 주신 조상들의 슬기, 대한민국은 분명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부활하기 위해선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문화 자산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세상은 정신이 앞서는 나라가 이끌어 나갈 것이다.
(큰스승님 말씀 중에서)
혹시 부럼이 아직 남아있거들랑 의미를 되새기면 깨보시길 바랍니다.
의미를 모르면 가치를 모르고,
가치를 모르면 사랑이 없어지며,
사랑이 없어지면 버리고 만다.
첫댓글 보름이 하루 지났네요.글을 보다가 우리 하하님들 생각이 나서 옮겨왔답니다.
우리의 세시 풍속은 음력 정월에 1/3이 몰려있다 하네요. 풍속놀이 속에 철학을 생활화하게 해주신 조상님들이 지혜, 파고 들수록 고개가 숙여집니다.
불러주니 스스로 깨어 나오는 줄탁동시의 역학관계 속에서,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대 자연의 법칙속에서,보름과 부럼의 철학적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