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6일, 화요일, San Ignacio, Hospedaje Aleman Salpeterer (오늘의 경비 US $53: 숙박료 8, 점심 3, 식료품 3, 버스 6, 파라과이 비자 $45, 기타 4, 환율 US $1 = 2.85 peso) 누가 흔들어서 잠을 깨서 보니 버스 승무원이다. 아침 5시 반경인데 Posadas에 거의 다 왔다며 아침식사를 하라며 따끈한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를 가져다주었다. 6시 반쯤 잠이 덜 깬 기분으로 Posadas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터미널에 짐을 맡기고 파라과이 비자를 받으러 시내로 가려하니 짐 맡기는 사무실이 8시 반에나 연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버스 터미널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다가 8시 반이 되어 짐을 맡기고 시내버스를 타고 20분 걸려서 시내로 갔다. Lonely Planet 여행안내서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찾아가니 파라과이 영사관이 나왔다. 서류와 사진 제출하고 $45를 내니 30분 만에 비자가 나왔다. 생각보다 쉬었지만 수수료는 너무 비쌌다. 남미에서 다른 나라들은 다 무료인데 유독 브라질과 파라과이는 미국여권 소지자에게 비싼 수수료를 받는다. Posadas 시내 구경을 잠깐 했다. 제법 분주한 도시다. 아침 시간인데도 벌써 더웠다. 그러나 나무가 많아서 더위를 덜 느끼게 했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누군가가 아이를 안고 시내버스에 오르는 젊은 여자에게 좌석을 양보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점심을 사과 하나와 empanada (만두 비슷한) 두 개로 때웠다. 그 동안 Buenos Aires에서 육식을 너무 많이 해서 오늘 다이어트를 하는 셈이다. 12시 반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만에 San Ignacio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Iguazu 폭포가 있는 Puerto Iguazu 만큼 덥다. 버스가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San Ignacio Hotel 앞에서 선다. 방값이 에어컨은 있지만 부엌도 없는데 25 peso로 너무 비쌌다.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Lonely Planet에 소개된 Hospedaje Aleman Salpeterer로 찾아가니 널찍한 독방에 바로 옆에 부엌과 욕실이 있는데 방값이 불과 8 peso다 (약 2,500원). 이렇게 싼 방은 이번 여행 중에 처음이다. 아무리 싸도 25 peso이었는데 8 peso라니, 그 동안 쌌다고 생각했던 방 값들이 쌌던 것이 아니었다. 정원도 널찍하고 길 건너는 열대 나무가 가득한 정글이다. 열대 냄새가 물씬 나는 경치다. 숙소 이름대로 주인이 독일계인 것 같다. 젊은 부부가 주인인데 4살 짜리 딸과 젖먹이가 하나 있다. 4살 짜리 딸은 벌써 엄마를 돕는지 나에게 깨끗한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남편은 나가서 일을 하고 여자 혼자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미에는 독일 이민자들이 여기저기 참 많다. 미국에도 참 많은데 옛날 독일에는 고향을 떠나서 해외로 이민을 가야만했던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너무나 더워서 저녁때까지 쉬고 저녁 6시경 나가니 좀 시원해졌다. 산보를 하면서 간단히 장을 보고 내일 구경 할 이곳의 볼거리인 Jesuit Mission Ruinas (예수회 미션 유적) 위치도 알아두었다. 원래는 당일치기로 구경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이틀 밤 자기로 했다. 숙소 정원에는 캠핑 시설도 있는데 두어 그룹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젊은 청년 남녀들이었는데 Buenos Aires에서 왔단다. 저녁으로 라면과 과일을 들었다. 저녁 7시 반이 되니 금방 깜깜해진다. 아르헨티나 남부 Patagonia에서는 밤 11시에도 훤했는데 이곳은 다르다. 그 동안 많이 북상했다는 얘기다. 여행지도 녹음이 우거진 Posadas 시내 San Ignacio 도로 이정표, 이곳은 Iguazu 폭포에서 멀지 않다 버스 고장이 나서 고치느라고 한참 동안 쉬었다 갔다 열대 풍경의 San Ignacio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 한 소년 2004년 3월 17일, 수요일, San Ignacio, Hospedaje Aleman Salpeterer (오늘의 경비 US $8: 숙박료 8, 식료품 11, 기타 4, 환율 US $1 = 2.85 peso) 이 도시에 온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벌서 세 번 구걸 요구를 받았다. 첫 번은 5살 짜리 어린애들이 길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손 내밀며 돈을 달랜다. "노" 했더니 금방 자기네 놀이로 돌아간다. 두 번째는 길을 가다가 12살 짜리 세 명과 마주 쳤는데 돈을 달랜다. 역시 "노" 했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냥 걸어간다. 세 번째는 60대 남자다. 한참 연설을 하더니 1 peso를 달랜다. 일부러 엉터리 스페인 말인 "No espanol" 했더니 "어" 하더니 가 버린다. 불과 인구 만 명의 조그만 도시인데 관광도시라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나. 어른이나 애나 구걸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로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땅 부자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침 일찍 더워지기 전에 Jesuit mission 유적 구경을 갔다. 1733년에는 4,500명의 인디언들이 살았다는 거대한 규모인데 이제는 절간처럼 조용하다. 오전 내내 20여명의 관광객 그룹이 두어 그룹 다녀가고는 그만이다. 그리고는 나 혼자 뿐이다. 꼭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Maya 유적을 보는 기분이다. Maya 유적은 1,500여 년 전 것이고 Jesuit mission 유적은 300여 년 전 것이라는 차이밖에는 없는 것 같다. 4,500명 인구이면 그 당시로는 제법 큰 도시였을 것이다. 성당, 학교, 병원, 상점, 창고, 주택, 묘지 등 다 있었을 것이다. Jesuit 교단은 남미에 30여 군데의 mission을 세워서 운영했다. 이곳도 그 중에 한 곳인데 1611년에 세워졌다가 1767년 Jesuit 교단이 남미에서 쫓겨난 후에 금방 폐허로 변해버렸다. Jesuit mission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같기도 하고 공산주의 국가의 집단농장 같기도 했던 곳이다. 수명의 Jesuit 신부의 지도아래 수백, 수천의 인디언들이 농장 일을 하면서 종교 생활을 했던 것이다. 옛날 한국의 신앙촌 같은 식이다. Jesuit 교단은 스페인 왕의 허락을 받아서 시작한 것인데 스페인의 식민지 정부의 지배를 전혀 받지 않는 "나라 안의 나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스페인 왕은 남미 인디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Jesuit 교단의 계획을 좋게 보고 허락한 것이다. 남미에서 쫓겨 나가게 된 이유는 mission 체제가 경제적으로 너무 성공을 해서 식민지 정부의 질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은 Jesuit mission의 재산을 접수해야 한다는 식민지 정부의 끈질긴 요구를 결국에는 받아들여서 1766년에 Jesuit 교단 축출 명령을 내렸다. Jesuit 신부들이 떠난 후 불과 서너 해 안에 mission에서 살던 인디언들은 모두 정글로 도망가 버리고 150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던 mission은 폐허로 변해버려서 이제는 관광객들이나 가끔 찾아오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곳의 날씨는 Buenos Aires보다는 덥지만 생각보다 시원하다. 서울의 찜통 기후 같지는 않다. 한나절이라도 그늘에 있으면 땀은 안 난다. 기온도 습도도 높을 텐데 신기한일이다. 아침저녁에는 조금이라도 시원해진다. 제일 덥다는 1, 2 월이 지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마존 열대 지역이 이 정도 날씨라면 두려워 할 것 없겠다. 여기 사람들처럼 행동을 천천히 하면 될 것이다. 오늘 일본 Fukuoka에서 온 29세의 일본 청년을 만났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정원에서 캠핑을 하고 있었다. 혼자 9개월 째 여행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시작해서 멕시코, 중미를 거쳐서 남미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행을 하고 있단다. 지금까지 다닌 중에 콜롬비아가 제일 마음에 든단다. 반가운 얘기다. 콜롬비아는 게릴라 문제 때문에 여행자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나라인데 제일 좋다니 꼭 가야겠다. 자기 하루 예산이 $15란다. 주로 음식을 해먹고 캠핑을 한단다. 오늘 옆방에는 50대로 보이는 프랑스 여자가 들어왔다. 어제 저녁에는 부엌에 나 혼자였는데 오늘 저녁에는 일본 청년, 프랑스 여자와 나 셋이서 저녁을 해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니 훨씬 분위기가 좋다. 남미에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Mission 내부 광장 규모를 보면 Mission 규모가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Mission 성당 유적의 전면인데 성당 규모가 매우 컸었던 것 같다 대규모 관광단 같다 Mission 인디언들이 살았던 연립주택 같은 건물 역시 연립주택 건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