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 HOMEPAGE ) 05-20 08:53 | HIT : 1,382
민족을 풀어 넣은 담설의 시 정신
-신경득 시집 「소백산맥 아래서」「낮은 데를 채우고야 흐르는 물은」을 읽고
강 희 근
1.
이 글은 신경득 교수가 낸 2권의 시집에 대한 서평으로 쓰여진다. 신 교수는 대학에서 소설론을 주전공으로 하는 분이고 문단에서는 과작이긴 해도 소설가로, 또는 비평가로 통하는 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집을 2권씩이나 내어 놓았다. 교수의 학문적 섭렵에 따라서는 통섭의 경지에 들어설 것이지만 창작의 장르를 이렇게 ‘소설→평론→시’로 넘나들 수 있는 경우는 극히 희귀한 예에 속하리라. 그만큼 스케일이 크거나 학문의 기저가 넓고 담대한 데서 오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케일이 크다는 말을 했는데 신교수는 생각의 단위가 민족적이다. 민족이라도 ‘태백산정’을 ‘흥안령’ 언저리에다 두는 고대 조선의 영역을 그 영토로 삼는다. 또 그 스케일은 민족의 신화나 설화, 전설이나 패관에 이르는 민족 총체의 의식과 사념 구석 구석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정신은 민족 자강의 올곧은 주체 사상에 뿌리를 두고 체현은 선비가 이룩했던 자장을 넘나드는 것이다.
이런 신교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민족사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그것도 온몸으로 타고 오르는 불퇴전의 향도라 할까, 알피니스트라 할까?
2.
신교수의 첫시집 「소백산맥 아래서」의 제일 앞에 실린 <악기를 위하여>를 주의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꽃피는 새벽
보슬비에 젖어
잔뿌리를 바위에 붙인
모진 나무만이
결고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된다 한다
한여름 폭풍에
가지는 부러지고
뙤약볕에 잎은 말라
갈래 갈래 찢긴 나무만이
걸죽한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된다 한다.
―<악기를 위하여> 전반
악기가 되기 위한 나무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훌륭한 악기가 되는지를 말하고 있다. 전체 다섯 도막 중에 두 도막인데 “잔뿌리를 바위에 붙인 / 모진 나무” 가 되어야 “한여름 폭풍에 / 가지는 부러지고 / 뙤약볕에 잎은 말라 / 갈래 갈래 찢긴 나무” 가 되어야 제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된다는 것이다. 착근과 시달림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나무로 지어진 악기라야 제 소리를 낸다는 것 아닌가.
셋째 도막에서는 “삶과 죽음의 수목 한계선” 에서 견디고 넷째 도막에서는 “독야청청 백설을 이고 선” 그 절개를 거쳐 여섯째 도막에서는 “벼락 맞아 제 몸을 부러뜨린” 나무로 서는 것일 때 시름진 소리, 곧은 소리, 가슴 울리는 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이런 악기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민초들의 앞길을 밝히는 지도자의 의미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선각자이면서 선비 정신으로 올곧게 무장된 인격자가 가는 길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교수는 그런 선각자를 역사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현실 공간 속에서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가 지향하는 것은 민족 공동체의 광활한 복지로 가는, 전에 이미 차지했던 영역으로서의 그런 세계로의 복원과 확장에다 지향점을 두고 있다 하겠다.
그렇지만 그는 작은 공동체인 가족 공동체의 눈물어린 애환을 놓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 둘 필요가 있다
내 고향
대수리 개울
낮은 데로 흐른다
경인년 난리 때도
갈잎배를 띄우고
달 깨치는 새벽 물을
섬뜩하게 도려도
낮은 데를
채우고야 흐르는 물은
내 아우
얼굴을 어려 놓고 흐른다
바람 맞은 개울물
흔들리며
흐른다
장다리 꽃밭
위로 나는 나비가
흔들리고
지아비 면회가는 허기진 지어미가
어미니 등에 업힌
배꽃 같은 내 아우
보리 패는 청주길 육십리가
눈매 곱던 아버지가
흔들리며 흐른다
물아
물아
떨며 흐르는
물아
분디재 넘는 피란 행렬 거슬러
자귀나무 꽃 아래
소나기 피하던 아우가
비맞아 죽었구나
젖배 곯아 죽었구나
대수리 개울 쑥굴헝,
아우 묻은 어머니 피눈물에
터진 손 떨며 흐른다
물아
물아
흐르는 물아
경인년 황토물
아우 무덤 쓸어가고
후미진 산골짝
잔약한 아버지 총 맞아
피를 쓰고 죽었구나
개처럼 죽었구나
한 물 진 개울물
부자를 어려 놓아
쑥국새 우는 밤
울며 울며 흐른다
―<물> 전문
이 시는 가족사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대수리 개울’ 물이 그냥 예사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아비 면회 가는 허기진 지어미” 가 떠 흐르고 “어머니 등에 업힌 배꽃같은 아우가”떠 흐르고 “눈매 곱던 아버지가” 흔들리며 떠 흐른다. 그런데 그 물은 급기야 “경인년 황토물 아우 무덤 쓸어가고” “잔약한 아버지 총 맞아 피를 쓰고 죽는” 그 아픔을 띄워 흐르는 것이다. 신교수는 대수리 개울물의 흐름 위에 가족 수난의 험한 굽이를 찍어 놓고 그 한을 물살로 어루고 있다. 경인난에서 민족이 찢기는 굴곡과 함께 가족이 찢기는 굴곡을 더불어 체험하면서 신교수는 가족사를 데불고 좌우 살필 것 없이 민족사로 성큼 들어서게 된 것이리라.
신교수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부터 큰 비젼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설 수 있도록 응전력을 키워 왔다고 볼 수 있다
청소 시간인데도 싸리비를 팽개치고
콜탈 칠한 판자벽에서 미지개를 하다가
종소리 울리자 교실로 달려간다
종례를 들어온 담임은
부모가 다 있는 사람...다 없는 사람...
...어머니만 있는 사람...
아버지만...을 헤아려 수첩에 적는다
국군으로 전사한 사람...경찰 ․ 치안대
...인민군 ․ 의용군...
나는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빨갱이냐 빨치산이냐
담임은 마침내 소리 질렀고
난생 처음 담임을 노려 보았다
넉가래 손바닥이 뺨을 갈기자
비행기 꽁무니에 삐라가 쏟아져
투항하라 투항하라
하얀 금속성 소리를 질러내고
얼어터진 내 손등 위엔
코피가 떨어진다
두레박에 물을 떠 올려 세수를 하고
쑥으로 코를 막고 서서
축배 위로 나는 새를 본다
두 눈을 내려 감은 아버지는
소백산맥 아래로 내려 쏟히고
지금도 피를 흘리고 계시는지
피를 가력한 꼭두서니 저녁놀
내 눈에 삼눈을 서게 한다
―<소백산맥 아래서> 전문
따옴시는 아버지 문제로 학교에서 겪는 고초를 말하고 있다. 시간대는 아직 6.25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고 담임 선생은 아버지가 국군으로 전사했는지 경찰 ․ 치안대로서 전사했는지, 인민군이나 의용군으로 전사했는지, 빨갱이 빨치산으로 전사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화자는 그 어느 경우도 손을 들어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다. 동족 상잔의 비극은 앞의 그 모든 사례 밖에 또 다른 사례가 있음을, 그것도 입으로 말하기 난처한 사례를 포함하고 있음을 시는 독자에게 환기시켜 주고 있다. 화자가 담임에게 뺨을 맞는 그 순간에 공군 비행기 꽁무니에서 ‘투항하라’ 는 내용의 삐라가 떨어지고 있다. 상황의 긴박감이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같은 소년 시절의 시대 상황과 아버지의 맞물림은 가족이 평범함 한 단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갖는 아픔을 꼼짝없이 그 무게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비극 속으로 드는 것이다. 소년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액자 안에서 나름의 성장을 했던 것이리라.
신교수의 가족사 노래는 스스로의 가족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미는 가출하고 아비는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딸애, 그 딸애의 이야기를 붙들기도 하고, 이리 저리 설키어 죽어간 지아비와 지어미 이야기를 찔레꽃으로 붙들기도 하다. 그러다가 신교수는 민족 저변으로 맴돌던 시간을 갖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자전적 세계를 말한다. 훌쩍 나이를 먹은 ‘자아’ 가 화자다
옛집 앞에 홀로 서니
다순 목소리 들리지 않고
뒷산 솔밭에서 부는 바람이
성긴 띠풀만 가른다
큰산에서 어머니가 뜯어 온 미역취는 글 읽다 만주로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며 달밤을 바장이던 어머니 내음이다. 물나리 지기에서 나뭇짐을 지고 온 큰형 미투리 날에 묻어 온 황토 새벽이면 형수는 찬 샘에서 물을 길었다. 형수를 따라 어린 조카는 사립문을 기어 나오고...... 논두렁 앙구러 가래 메고 나선 아우는 도구를 쳐 미꾸라지를 잡는다. 대낮인데도 문을 처닫고 형법 총론이나 물권법 대신 백범이나 단재를 읽으며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다
혁명 조국 사랑
곡식을 뜯어먹는 소를 놓아 두고 참깨밭에 숨어서 책만 읽던 나를 아비 닮았다 하여 할아버지는 미워하였다. 명산도 아닌 소백산맥 아래서 자라난 나는 남새밭이나 매며 안산을 보는 것이 옳았다
천수를 누리신 할아버지의 노동이여 그러나 타는 가슴을 무엇으로 끌 수 있으리
막대기로 옛 집터에 다시 쓴다
혁명 조국 사랑
―<옛집 앞에 서서> 전문
따옴시는 신교수가 옛집 앞에 서서 백범이나 단재를 읽으며 온 몸으로 혁명에 몸 바칠 각오를 다지던 성장기를 떠올리며 아비와 닮았다고 할아버지의 미움을 샀던 것도 떠올리며 그렇더라도 현재의 그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혁명 조국 사랑”에서 빗겨갈 수 없음을 확인한다. 신교수는 이 시로써 그의 가족사의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민족 공동체와 시대적 상황으로 연결 이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는 비극이지만 공동체의 가치나 지향 위에서는 하나의 절정을 만들어 내는 동인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3.
신경득 교수의 뜻은 시적 성취라는 미학적인 데 있다기보다는 민족 내지 민족사적 관점에서의 사색이고 지향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민족의 최선을 향해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날아가고 싶구나
천마를 타고
나래 서로 부딪쳐 네 굽을
모아 달리는 구름밭 위로
지나간 왕국을 찾아서
여기
백두산 천지에서 흐르는 물
서으로 압록강
동으로 두만강
북으로 송화강
추몽성왕께옵서
아류수를 건너실 제
거북과 물고기들이 등을 대어 서로
갈대를 엮어 다리를 놓았느니라
거룩한 삼신의 땅
달리는구나
가죽옷 입은 고구려 전사들아
―<천마> 전반부
화자는 지금 천마를 타고 추몽성왕이 세운 고구려로 날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잃었던 땅에서 천마를 날려 송화강 흥안령까지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광개토 대제가 상천 호국신으로 계시는 그 옛날의 왕국으로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날아가는 것을 막는 것이 세상의 비리, 비리 천국이다. 그는 정축년 세모인지 무인년 원단인지 하여간 그 어우름에 백범, 심산, 단재를 만난다, 이 중에서 그를 보고 단재가 추상같이 꾸짖는다
항차 한 나라의 먹물로서
나라의 국록을 먹는 자가
나라가 망했는데도
어찌 독립운동을 하지 않는단 말이냐
네 죄가 참으로 크도다
청문회 좋아 말라
개구멍이 너무 넓다
정치개혁 좋아 말라
중이 제 머리 깎는 법 보았느냐
재벌개혁 좋아 말라
능구렁이 담 넘어간다
인사만사가 인사망사로구나
국시만 먹는다더니
왜 나라가 망했느냐
떡고물만 좋아하는 정치인이란 것들
보기만 해도 피가 거꾸로 흐르고
듣기만 해도 구역질 난다
아직도 망국재벌은
달러와 금괴만 쟁이느냐
작두는 왜 있느냐
하와이로 괌으로 휴가가고
호주에 가서 골프치고
라스베가스에 가서 노름하고
너희가 마신 술잔에
국민의 고혈이 담겨 있도다
막중한 국사를 직무유기한
청와대 경제수석 및 각 관공리
재경원 장관 및 각 관공리
한은 총재 및 각 관공리
떡고물 먹은 정치인
재벌 및 족벌
너희가 바로 정축 5적이니
―<말목>에서
시 <말목>은 IMF를 지칭하여 나라가 망했다고 표현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 경제 구조나 국제 관계나 사회상 등을 고려하여 총체적으로 비리 온상이 되어 있음에 대한 질타로 보아야 할 듯 싶다. 화자는 단재 신채호(1880~1936)다. “항차 한 나라의 먹물로서 / 나라의 국록을 먹는 자가 / 나라가 망했는데도 / 어찌 독립운동을 하지 않느냐”고 신교수에게 꾸짖는다. 아는 대로 단재는 민족주의 사학자의 대표자로서 조선 상고사, 조선사 연구초 등을 저술했다. 그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였다. 그는 일본 관헌에게 붙들려 10년 징역을 선고받고 여순 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에 옥사했다. 단재의 생애가 한 점 부끄럼이 없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삶도 그 생애를 복사판으로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라가 망했는데” 라는 말은 단재와 같은 민족적 지향이나 그런 염결성에서 볼 때 별 굴곡없이 존망적 위기감 또는 그런 상황에 닿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신교수는 그러므로 반민족 친일 행각에 대해 자나 깨나 용납할 수가 없고 자나 깨나 끈을 늦추지 않는다
① 친일화가 똥집 앞에서는 아스팔트길을 닦는다
주차장을 넓힌다. 똥간을 짓는다
도지사와 군수가 토사곽란을 하는데
의병대장 묘소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② 왜검사가 조선 여자 옷을 벗기려 한다
“더러운 놈 내가 벗겠다
저고리를 벗으면 느에미 같은 유방이 있고
치마를 벗으면 느마루와 같은 국부가 있다
그래 어디 옷을 벗으랴″
검사가 실색하여 고개를 저었다
③ 내 친일화가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데
신문기자는 친일 물증이 없다 하고
텔레비전 제작자는 한밤중에
살짝 화가를 옹호하는 방송을 하고
논설위원은 친일을 옹호하는 사설을 쓰고
어용 미술 평론가들은 이태호 교수를 몰아 세운다
④ “친일 갑부놈이 나를 능멸하는가”
백범은 엄항섭을 꾸짖는다
“엄군, 나는 임정 청사에서 새우잠을 자고
조석을 그대 집에서 비럭질하였다
끼니 때가 지나서 갈 때는 누룽지를 긁어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대는 내가 벌써 타락했다고 생각하는가″
①은 <송서誦書>의 한 대목이다. 7,80년대 반민족 친일 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시민 단체들의 정리 운동에서 친일화가에 관련된 내용이다 당시의 수치스런 우리 주변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②는 <점잖은 분>의 한 대목이다. “지난 날 가지고 뭘 그래, 용서해야지” 라고 말하는 점잖은 분에 대한 반론적 사례를 제시하는 것인데 오늘의 우리에게도 소름이 끼치고 분노에 떨게 한다. 시의 화자는 “점잖은 분 어머니는 조선 여자 아닐 테지 / 경술 국치 때 할애비는 토지를 하사 받고 / 기미 만세 때 애비는 하사금을 받았겠지” 하고 몰아치는 데 상황이 민족 단위로 가고 있음을 놓쳐 볼 수 없다
③은 <단심가>다 ①과 같이 친일화가에 대한 내용인데 신교수가 벌였던 청주 지방의 잔재 청산 운동과 관련이 있다. ①에서도 확인이 되었지만 민족과 반민족, 항일과 친일에 관한 가치 개념이 사라져 버린 현실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화자의 안타까움, 분노가 서려 있다. “자식들아 / 목에 칼이 들어와도 / 자식들아 / 목에 밥이 끊어져도 / 이로 말을 해야지 / 이빨로 말해서는 안 된다” 고 말미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다.
④는 <백범을 생각하며>다. 이 시는 광복 후 혼란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경교장으로 찾아온 친일파들이 건국 기금으로 내놓는 돈을 거절하는 장면이다. 우남이 친일파의 돈을 받아들고 액수가 작다고 구시렁거리지만 백범은 “친일 갑부놈이 나를 능멸하는가” 고 호통을 친다. 특히 화신 백화점 주인을 데리고 온 엄항섭을 꾸짖는 대목에서 백범의 기상과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동지들 집에서 누룽지를 비럭질한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적어도 민족을 위해 일함에 있어서는 반민족적인 자본으로 도모할 수 없음을 엄정한 잣대로 그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 사무사는 시 정신에서 온다는 것을 그 비밀을 이 시는 제시해 보이고 있다 할 것이다.
천마를 타고 떠나가야 할 신교수에게는 원래 있었던 민족의 정서나 가족사의 원만한 평화에 대한 집착이 하나의 에너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민족의 정기나 이 시대 지도자의 아름다운 정신이나 풀뿌리처럼 살아가는 민중들의 낮은 겸허를 포용한다
천한 백성은 천한 음식이 좋네
소나기에 터진 여린 열무 한 줌
토장국에 썩썩 비벼
풋고추에 푹푹 찍어 먹으면
천한 백성 입맛에는 제 격이지
―<유산가> 앞머리
천한 음식이 제격인 사람들이 민초들이다. 천한 집에서 천한 옷을 입고 천한 새끼나 까고 사는 낮은 자리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그 자세나 마음이 민중 의식에서 오늘 것일 터이다. 신교수는 민족 단위의 지향 위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 기저에는 민중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민중은 자연이기도 하고 자연에 겹쳐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굽어 조선낫처럼 굽어
보리 베는 할매 허리
밭고랑 닿았다
뻘구디 같은 보리까락은
보리단 묶는 손주 모가지를 할퀴는데
보리문디 같은 휘파람새는
쉬어 하라고 쉬어 하라고 운다
“할매, 저그 무슨 새고?”
“아재 아재 보리 베오 새라 안카나.”
―<보리새> 전문
따옴시는 자연과 인간이 그대로 포개져 있다. “할매 허리=조선낫=밭고랑, 보리까락=손주 모가지=휘파람새”를 한 자리 놓고 , 어울리고 얽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민중이 민초고 거친 삶이고 또한 그것이 자연에 유합이 되고 있는 그 현상을 절대 예사로운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신교수의 세계관이다. 작은 장치와 소도구들이 겯고 트는 자연이지만 그것은 곧 민족 단위의 비젼에 노을처럼 가 걸리는 것이다. <보리새>에서 방언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데 ‘할매’, ‘뻘구디’, ‘보리문디’, ‘저그’, ‘안카나’ 들이 자연의 밭고랑처럼 하나로 어울린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말이 놓이는 지역을 매기는 것이라 볼 때 삶과 자연이 ‘말’로서 매개가 된다는 점에 특별히 유의해 볼 수 있다.
4.
신교수의 담설시라고 하는 것은 시편 대부분에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서 온 것이라 하겠다. ‘담’에다 ‘설’을 붙여 기왕의 담시 보다는 가르침이나 주장에다 힘을 더 준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시의 양식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용량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실험적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나 사상적 체계나 민족 문화의 패관적 자료를 두루 섭렵하고 그것에 대한 언술의 흐름을 획득해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채용할 수 없는 양식이라 하겠다
신교수가 첫 시집 「소백산맥 아래서」를 낸 때가 1992년이고 둘째 시집 「낮은 데를 채우고야 흐르는 물은」을 낸 때가 1998년이었다. 둘째 시집 나온 때로부터 세월은 11년을 경과했다. 지금 시집을 낸다면 그동안 그의 연구 업적에 비춰 볼 때 참으로 윤나는 민족의 정서와 비밀과 상상적 원형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사이 신교수는 소설의 원형으로서 우리나라 고대 건국 시조의 탄생의 비밀 캐기에 한동안 깊이 탐닉해 있었고 민족 신화의 체계 내지 그 갈래에 이르기까지 구석 구석을 살펴 왔다. 그러는 가운데 얻어낸 짜투리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것들의 비경(秘景)과 배경(背景)이 신교수의 담설에 얹힌다고 생각해 보면 절대 간단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담설은 풍자와 우화를 동반한다. 그것이 민족 단위의 지향과 비젼에 닿을 때 세계는 더 광활하고 웅대한 것으로 증폭되어 나타난다. 우리가 신교수의 담설시집 2권을 예사롭게 보고 넘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교수는 우리의 가족사 속의 한 기둥이기도 하고 민족사 속의 한 지도자 몫을 하고 있다. 그가 단재를 말하고 백범을 말하고 벽초를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이 울려 나가는 동안 그는 단재이기도 하고 백범, 벽초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같이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내닫고 있는 세기에 웅혼한 민족 정기를 감성대로 끌어내는 시인을 주변 어디에서 클릭해 볼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두 권의 시집에서 조국과 민족과 역사, 그리고 가슴 떨리는 미래를 짚어 보는, 그런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신교수는 금년 8월에 경상대학교에서 정년을 맞게 된다. 그러고도 그의 행진은 깃발처럼 지속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신교수의 숨소리와 보폭은 그의 생명을 그대로 떠올리는 삽질 같은 것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가까이 두지 않고도 자연이나 현상들을 보면서 확인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건강하시고 지금까지 지켜 낸 그의 연찬과 정서에 오롯이 젖어 있으시기를 축수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