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mountain
설악산 미륵장군봉 ‘체 게바라’길
바위에서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다
글 안준영 기자 사진 양계탁 기자
미륵장군봉 체 게바라 길은 경원대학교 산악부 OB 김기섭, 이계숙씨가 길을 내기 시작해서 경원대학교 산악부 OB 김동진, 김상인, 한승협씨가 2003년 10월에 완성했다. 쿠바 혁명의 달성 이후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볼리비아로 떠난 체 게바라. 그의 삶에 매료된 한국의 클라이머들은 설악산 미륵장군봉 체 게바라 길에 자일을 건다.
동아실에서 깊어가는 등반 전야
13일 밤, 유학재씨와 유순준씨 그리고 마운틴 기자 2명이 만났다. 유학재씨의 무쏘스포츠 짐칸에 배낭을 싣고 달려온 곳은 강원도 인제의 동아실이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유영직, 장기수, 배제영씨 일행과 합류해서 한양대학교 산악부에서 아지트로 쓰고 있는 동아실분교로 들어갔다. 최근에 다녀간 사람이 없었는지 분교 마당의 풀은 무릎까지 올라왔다. 안개비가 내리고 있던 터라 풀숲을 조금만 걸었는데도 어프로치화가 다 젖었다. 이 신발을 신고 내일 등반을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할 새도 없이 산장의 술잔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며 시계바늘을 재촉했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 사람들은 내일의 등반을 기약하며 각자의 침낭 속으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아침 해는 생각보다도 더 일찍 떠올랐다. 쓰르라미의 울음소리가 아침 햇살과 함께 달콤한 잠을 깨웠다. 다행히도 비는 그쳤고, 하늘은 더 맑게 씻겨 있었다. 등반 당일 아침에 속초에서 온 김경미씨와 합류해서 등반 인원은 기자 2명을 포함한 총 8명이다.
장수대분소에서 등반허가서를 받아와 장수3교에서 배낭을 꾸렸다. 등반장비만 챙겨가면 되기 때문에 배낭 무게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었다. 장수3교에서 석황사골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찾아 들어갔다. 등반안전에 관한 경고 안내판 바로 옆에 오솔길 입구가 보이기 때문에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오솔길로 접어들자마자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온 듯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오솔길을 쭉 따라가다가 계곡을 건너기 전에 갈림길이 하나 나온다. 갈림길의 왼쪽 길은 몽유도원도 리지길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가면 신선암 암장과 미륵장군봉 암장이 나온다. 신선암과 미륵장군봉은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데칼코마니를 찍어낸 것처럼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두 절벽 다 무시무시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골짜기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수통에 담아 배낭에 챙겨 넣었다. 맑은 하늘을 보고 ‘오늘 하루 땀 많이 흘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륵장군봉 체 게바라 길의 1피치 시작점에 닿았지만 정작 체 게바라 길의 시작점은 긴가민가했다. 코락 길과 타이탄 길을 가리키는 스테인리스 표지판이 있었지만 체 게바라 길을 알려주는 표지는 없었다. 코락 길과 타이탄 길 그 중간에 있다는 것, 예전에 한 번 체 게바라 길에 올라봤다는 유영직씨의 말에 따라 코락과 타이탄을 알리는 스테인리스 표지판이 바로 체 게바라 길의 시작점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출발 지점에는 넓은 터가 없다. 바위 아래 좁은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각자 장비를 착용했다.
가는 길이 길이다
등반은 두 팀으로 나눠 유학재씨와 유영직씨가 각 팀에서 선등으로 나섰다. 먼저 준비가 된 유영직씨가 첫 피치의 페이스에 올랐다. 홀드가 좋지 않고 젖은 흙이 붙은 어프로치화 때문에 유영직씨는 슬립을 먹었다. 신발의 흙을 털어냈지만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질 못했다. 어렵사리 볼트를 밟고 일어서보기를 시도했지만 그것조차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유영직씨는 결국 시작점으로 내려왔다.
장기수씨가 “암벽화로 갈아신으세요”라고 말했다.
유영직씨는 “괜찮다”며 1피치 일부 구간을 우회해서 올랐다.
2, 3번째 볼트를 생략해서 소나무에 확보를 걸고 등반을 이어나갔다.
1피치 등반을 마친 유영직씨는 “이끼가 살아있네”라고 외쳤다. 유영직씨가 1피치 종료점에서 로프 2동을 고정하고 있는 사이에 유학재씨가 1피치의 선등을 나섰다. 유학재씨는 페이스를 가볍게 넘어섰다. 배제영씨와 김경미씨가
“서울 사람은 역시 슬랩에 강하다”고 감탄하며
“보리문댕이들은 슬랩에는 쥐약이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2피치는 계단식 슬랩으로 1피치보다 쉽게 올라왔다. 8명이 2피치를 올라오는 데 20분 정도 걸렸다. 2피치를 올라와서 장기수씨는 “우리가 처음에 두 피치를 올라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려다보니 2피치만에 고도가 확 올라간 느낌이었다.
유영직씨가 3피치를 출발했다. 기존에 설치된 확보물을 못 찾고 유영직씨가 자기확보물(프렌드)를 크랙에 넣으려고 시도했다.
이 모습을 본 장기수씨가
“형님, 여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유영직씨는 크랙에 집중하면서 응수했다.
“아니다. 가면 길이다.”
유영직씨보다 조금 왼편에서 3피치를 시작한 유학재씨 또한 본래 길로 가지 않고 그때그때 루트파인딩을 해가면서 등반을 이어나갔다. 때는 정오를 향해가고 있었다. 머리 위로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유학재씨와 유영직씨는 산을 넘어 햇살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눈이 부셔서 도저히 올려다가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는 뒤편으로 신선암의 곧게 뻗은 절벽이 보였다. 밑에서 올려다본 것보다 비슷한 고도에서 내려다보는 절벽이 더 아찔하게 다가왔다.
유학재씨의 루트와 유영직씨의 루트가 서로 엇갈렸다. “학재 형은 페이스를 좋아하고, 영직 형은 크랙을 좋아하니까 각자 취향대로 간다. 체 게바라는 저리 가라야.” X자처럼 된 자일을 보며 장기수씨가 웃으며 말했다. 개척된 체 게바라 길을 그대로 안 따라가면 또 어떠랴. 등반 행위를 즐기고, 헤쳐 나가는 체 게바라처럼 나아가면 그만인 것을. 3피치를 완료한 유영직씨는 “낙석 조심하라”고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미륵장군봉의 암질은 화강암이지만 바위면에 모래알이 많거나 흔들리는 돌들이 많아 홀드를 고를 때 주의해야 한다.
3피치의 흐름을 4피치로 바로 이어나갔다. 유학재씨는 잡목이 없는 크랙을 찾아 고도를 높여갔고, 유영직씨는 그보다 좀 왼편에 잡목이 많은 곳으로 루트를 잡았다. 4피치를 올라온 장기수씨는 쌍볼트에 확보를 걸며 “이기는 락 클라이머가 아니고, 완전히 부시 클라이머네”라고 하였다.
유영직씨는 4피치의 5피치로 이어갔다.
출발한 지 10분만에 “완료”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리 짧노? 출발해라”라는 장기수의 말을 신호로 5피치에 들어섰다.
5피치는 짧았지만 비교적 어려운 난이도였다. 기자는 약간의 오버행에서 레이백을 버티다가 맨틀링해서 턱을 넘어서려고 했지만 등반 능력이 그만큼이 안 되었다. 두세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슬립을 먹고 말았다.
손등이 바위에 긁혔지만 상처가 아픈 것보다 그곳을 넘어서지 못한 게 분했다. 조금 왼쪽으로 나와서 가라는 장기수씨의 말을 따랐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프렌드의 슬링을 붙잡고서야 그 턱을 넘을 수가 있었다.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장기수씨가 뒤에서 “괜찮다, 잡고 가도 된다. 우리끼리는 반칙 같은 거 없다”라고 말했다.
6피치는 1피치와 비슷한 정도의 페이스다. 잡을 만한 홀드가 거의 없다. 6피치의 중간 정도를 넘어서면 포켓 홀드가 있어서 중반부부터는 무난하게 올라올 수가 있다. 8명 모두가 등반을 마친 때는 오후 2시였다. 맞은편 신선암 몽유도원도 리지를 오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배제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몽유도원도는 여서 봐야 진짜 몽유도원이다!”
올라온 루트를 따라서 다섯 차례 만에 모든 하강이 끝났다. 하강을 하는 데만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올라갈 때에는 그렇게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60m 자일로 다섯 번을 내려왔으니 높기는 높은 모양이었다. 체 게바라는 알았을까. 자신이 꿈꾸던 이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쿠바를 떠나 혁명의 무대를 볼리비아로 옮겼을 때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이상이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높은지 모르고 오르기만 한다면 어느 순간 정점에 도달한 자신을 만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리얼리스트’가 되었다.@
information
설악산 미륵장군봉 체 게바라 길
들머리와 하산로
인제에서 한계령 쪽으로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옥녀탕휴게소와 장수대 출발점 중간지점에 하늘벽이 있다. 하늘벽 맞은편에 미륵장군봉이 있다. 장수3교 근방에 안내표지판이 있다. 숲 속 사이로 난 길이 보이는 그 길을 따라가면 몽유도원도 리지길 출발점과 미륵장군봉 아래에 닿는다. 15분 정도 가다보면 계곡 나오는데, 그 계곡을 건너기 전에 갈림길이 있다. 왼쪽으로 가면 몽유도원도 리지길에 닿고, 오른쪽으로 가면 미륵장군봉 암장에 닿는다. 계곡이 있어 식수를 구할 수도 있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등반 길잡이
1피치는 코락길과 타이탄길을 가리키는 철판에서 시작한다. 정작 ‘체 게바라’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없어서 시작점을 찾다가 헤맬 수도 있다. 1피치는 페이스 슬랩이며, 바위에 이끼가 있어 미끄럽다. 1피치가 끝나는 점에는 쌍볼트가 설치되어 있다. 2피치는 계단식 슬랩으로 1피치보다는 쉬운 편이다. 2피치가 끝나는 점에는 테라스가 있어 쉬기 좋다. 3피치에서는 기존에 설치된 확보물을 찾기가 어렵다.
왼편으로는 코락길, 오른편으로는 타이탄길이라는 것만 확실할 뿐, 기존 확보물이 보이지 않아 어디가 체 게바라길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길을 찾는 것보다 캠을 설치하여 등반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3피치 구간에는 낙석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4피치는 3피치에 비해서 쉬운 편이다. 나무 사이를 지나오는 게 약간 불편할 뿐이다. 5피치에는 약간의 오버행이 있다. 이 턱만 넘으면 다음부터는 쉬운데 초보자들에게는 심적 부담감이 있어서 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신선암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6피치는 페이스로 홀드가 좋지 않아 애를 먹는 구간이다. 또한, 고도감이 심하다. 6피치가 끝나는 지점에 쌍볼트가 있다. 하강은 6피치 종료점에서 시작해서 5차례 걸쳐 시작점으로 내려올 수 있다.
경원대 산악부 OB 김기섭씨는 체 게바라 길 상단부의 하강로를 기존 하강로보다 오른쪽으로 누군가 새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체 게바라 길은 미륵장군봉에 있는 등반 루트 중에서 가장 쉬운 길로 등반을 많이 하는 곳이다. 하강로와 등반로가 겹치기 때문에 사고가 날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