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기”
김산복(청해)님
"콩아! 너 그동안 궁금했지?"
"쌤 그동안 아뭇소리 없이 어디를 가셨어요"
"응 그럴 일이 갑자기 있었단다. 이제 너에게 이야기 해줄게"
지난 주 수요일(7,6) 오후2시쯤 갑자기 집사람에게서 다급하고 가냘픈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나 잔디밭에서 넘어졌어" 그 때 나는 이수역 근처에 있는 선배네 집에 가서 점심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내가 다급히 정황을 물으니 꼼작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앞집 아주머니에게 연락해서 119를 불러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직장에 있는 아들아이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나는 급히 전철로 돌아가면서 계속 연락을 취했습니다. 아들이 있는 직장의 바로 앞에 있는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했으나 오른쪽 고관절이 골절되어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시간쯤 후 병원에 가니 앞집 아주머니와 큰 아이가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남 서울 성모병원으로 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그리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 병원은 혈소판 치료로 집사람이 10여년 넘게 다니고 있었습니다.
큰 아이에게 앰뷸런스를 준비케 하고, 앞집 아주머니를 태우고 집으로 와 입원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늘 우리가 하는 말 중에 '이웃사촌'이란 말이 이렇게 실감 있게 다가오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아주머니에게 고마운 인사를 했습니다. 그 분도 이상하게 그날 친구들과 만날 약속이 있었는데 가고 싶지 않아 약속을 취소했다는 것입니다.
70세가 넘은 앰뷸런스의 기사분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곡예운전을 하여 한 시간 반 만에 성모병원에 도착 했습니다.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에 길을 터주는 운전자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앰뷸런스에서 침대를 내릴 때 기사의 실수로 환자의 머리가 아스팔트위로 떨어졌으나 안전벨트가 채워져 다행히 머리는 괜찮았습니다.
우선 응급실로 가서 접수를 하고 여러 검사를 한 후 내일 9시에 수술하기로 하고 칸막이가 있는 곳으로 옮겨 있는 동안 가까이에 있는 둘째 딸이 달려와 함께 있다가 내일 출근 때문에 집으로 보내고, 나 혼자서 1인용 의자에 앉아 환자와 함께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이튿날 9시가 되자 싸온 짐을 모두 들고(어제 갔던 병원서 가져온 이불이며, 내가 챙겨온 짐과 함께 꽤나 많았습니다)환자와 함께 응급실을 나와 6층 수술실로 갔습니다. (환자는 도우미 아저씨가 침대로 이동)수술실 입구에서 잠시 기도를 하고 나는 배정된 정형외과 병동 12층 104호 (1인실~하루에 448,000원)에 짐 보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침대를 이동해 주는 분은 방에 그대로 있으면 수술 후 환자가 온다고 했지만, 십사오년 전 허리수술 받을 때 회복실에서 한참을 떨고 있는 것을 몰라 집사람이 고생했던 일이 있어 이불 하나를 싸들고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전광판을 바라보며 수술이 잘되기를 기도했습니다. 2시간여가 지나 회복실로 옮겼다는 알림을 보고, 그 앞으로 가서 이불을 건네주려 했지만 외부의 침구는 반입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대기실로 와 기다릴 때 병실로 옮겨진다는 알림을 보고 나와 엘리베이터로 방에 오니 환자는 벌써 침대위에 눕혀있었습니다. 암튼 대기실에서 기다린 보람은 산산 조각났습니다.
다행이 수술은 잘 되고 전신마취에서 무사히 깨어 난 것 만으로라도 감사 했습니다.
여기서 부터 나는 환자를 잘 돌보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나중에 5인실로 와서 간병인들이 하는 것을 보니 나의 간병은 아무것도 모른 채 힘들게 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그동안 두 번의 무릎 수술과 허리수술을 해서 그때 마다 내가 간병을 했지만(아이들이 교대도 해주면서)이번처럼 어려운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고관절 골절이 그만큼 힘든 수술이었고, 본인에게도 굉장한 고통이었습니다.
이 날은 아이들이 모두 와서 걱정해 주어서 고마웠고 치료비는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지난 1월에 집사람이 이 병원에 와서 1주일 입원했을 때도 아이들이 입원비를 거의 다 부담해 주었는데 이번에 또 어려움을 주는 것 같아 아주 미안했습니다. 더욱이 그때는 2인실(하루에 232,686원)에만 있어서 치료비가 많이 나왔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5인실(하루에 2만원)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수소문해서 과장님을 만났고, 1인실에서 1일, 2인실에서 2일, 그 다음부터는 5인실까지 왔습니다.
5인실에 오니 여러 사람으로부터 고관절 치료와 앞으로의 주의사항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어 좋았습니다. 집사람도 하루하루 좋아져 워킹을 하고. 오늘이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밤이면 남자는 나 혼자여서 여간 조심스럽지 안았습니다.
보호자는 밖에 있는 휴게실 옆의 화장실에 가야하고, 샤워는 청결실에 있는 샤워장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모든 시설이 현대식이어서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다.
나의 식사는 집사람이 반을 덜어주는 밥에다 아이들이 사다놓는 빵과 도시락, 햇반 등으로 먹었고 과일도 넉넉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집 4남매와 아주 가까운 몇 분만 다녀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소식을 듣고 오려 했지만, 병실을 알려주지 안했습니다. 사스 때 나온 얘기처럼 우리나라도 병원 방문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간병이야기를 쓰는 핵심은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 다음 호에 계속 --
첫댓글 나이가 나이니 만큼 긴장과 애정과 사건 전개의 호기심과 뭐 이런 심성이 엉키어
침을 꼴깍 거리며 읽었습니다.
반전의 반전속에 해피앤딩의 핵심을 다음호에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