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蔡邕의 서예 미학 사상――法象 미학의 집대성 동한(東漢)시대의 서론과 서예 미학은 채옹(蔡邕)에 이르러 크게 성숙하였다. 현재 전하고 있는 채옹(蔡邕)의 여러 서론에 대해서는 완전한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진위(眞僞)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고대 서론에 대한 진위의 고증이 아니라 서론에 나타난 미학 사상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필론(筆論)》,《구세(九勢)》,《전세(篆勢)》,《필부(筆賦)》등이 채옹(蔡邕)의 서론이라는 전통적 이해를 근거로 한다. 채옹(蔡邕)은《전세(篆勢)》에서 한자의 탄생을 허신(許愼)이나 최원(崔瑗) 등이 주장한 것과 같이《주역(周易)》을 근거로 하는 전통적 학술 이론을 바탕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숭고상상(崇古象象)의 반영인 동시에 심근의식(尋根意識)의 표현으로 채옹(蔡邕)이 서세(書勢)의 심미적 범주를 인식하는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그는 서세의 심미적 범주를 자연 만물의 형상과 그 심미적 정수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이는 허신(許愼)이《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서자여야(書者如也)”라 하고 최원(崔瑗)이《초서세(草書勢)》에서 초서의 서세을 토론하면서 “관기법상(觀其法象)”이라 한 것과 같은 개념으로 당시의 서세론이 ‘법상(法象)’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채옹(蔡邕)의 미학 체계에서 ‘법상(法象)’은 전서나 초서의 서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서체의 서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가《필론(筆論)》에서 “천지 만물의 상형의의를 표현하여야 비로소 서예라고 할 수 있다.(縱橫有可象者, 方得謂之書矣.)”라 한 것은 서예의 창작은 자연 만물의 ‘상(象)’을 표현할 때 비로소 서예의 심미적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채옹(蔡邕)은 서예의 창작에서 “형(形)”으로 들어가는 조건을 제시하였으며 “상(象)”의 심미적 경지를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미학 사상은 서예의 필획과 조형의 상형성은 물론 의상성(意象性)까지 강조한 것이다. 이는 문자의 근본이 자연 만물의 형상에 있기 때문에 서예와 자연 만물의 형상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였다. 채옹(蔡邕)이 제시한 ‘형(形)’과 ‘상(象)’의 미학은 선진(先秦)시대부터 토론된 철학적 개념을 서예 미학으로 응용한 것이다. 도가(道家)에서는 우주 만물의 상징을 ‘도(道)’라 하고 ‘상(象)’, ‘물(物)’, ‘정(情)’이 ‘도(道)’를 형성하고 있는 조건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도(道)’에 존재하는 ‘상(象)’, ‘물(物)’, ‘정(情)’을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는 잠시도 멈추지 않은 자연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象)’, ‘물(物)’, ‘정(情)’의 개념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규율 속에서 생동적인 변화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역경(易經)》에서도 ‘형(形)’과 ‘상(象)’을 자연 만물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상(象)’은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사람의 감관(感官)이 천지 만물의 형상(形象)에서 찾아낸 의미적 ‘상(象)’이다. 우주 만물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체현한 형상인 ‘효(爻)’와 ‘괘상(卦象)’이 음양의 움직임을 부호로 표현한 것처럼 ‘상(象)’은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자연 만물의 움직임인 ‘도(道)’와 같은 것이다. ‘도(道)’의 상징인 ‘상(象)’은 ‘형이상(形而上)’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채옹(蔡邕)은 이상과 같은 철학 사상을 바탕으로 서예의 창작에서 “입기형(入其形)”의 조건과 “유가상(有可象)”의 심미적 경지를 요구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요구한 심미적 경지인 “유가상(有可象)”의 ‘상(象)’은 객관적 형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주체의 감관(感官)이 인식한 ‘의상(意象)’임을 알 수 있다. 원(元)나라 시대의 정표(鄭杓)가《연극(衍極)》에서 “모든 필획은 의상(意象)을 표현하였다.(縱橫皆有意象.)”라 하여 채옹(蔡邕)이 말한 “縱橫有可象者, 方得謂之書矣”의 뜻을‘의상(意象)’으로 해석한 것으로도 이와 같은 이해는 충분히 증명된다. 채옹(蔡邕)이 ‘법상(法象)’의 미학 관점에서 출발하여 서예의 심미적 경지에 이르는 조건으로 이해한 ‘형(形)’과 ‘상(象)’은 독립된 미학 개념은 당나라 시대에 이르려면 복합된 미학 개념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상(意象)’에 대한 개념도 더욱 분명해짐과 동시에 서예 미학을 토론하는 중요한 미학 범주로 자리잡는다. 채옹(蔡邕)의 서론에서 서세(書勢)의 심미적 근본으로 중시된 ‘법상(法象)’의 미학은 매우 함축된 언어로 표현되었으며 우주 만물의 근본과 발전 과정을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그는《구세(九勢)》에서 서예의 근본을 ‘자연(自然)’으로 이해하고 서예의 형세는 음양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 심미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우주 만물의 규칙적 표현을 ‘음양(陰陽)’으로 이해한 철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미학 사상이다. 한(漢)나라 시대의 유학자(儒學者)들 사이에는 음양에 대한 철학 사조가 크게 성행하였다. 채옹(蔡邕)이 서예 미학을 음양설을 바탕으로 설명한 것은 당시에 성행한 음양 철학 사조의 영향을 깊게 받은 결과이다. 천지 자연은 음양을 낳고 또 음양이 조화함으로써 자연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서예의 창작도 음양의 규율을 체현할 때 비로소 형세(形勢)가 형성된다는 것이 서예의 형세에 대한 채옹(蔡邕)의 관점이다. 음양을 형세의 심미적 조건으로 인식한 미학 사상은 당시 천지 자연이 나타낸 일체의 현상을 음양으로 이해한 철학 사조와 상통하는 사상이다. 채옹은 서예도 천지 자연이 표현하는 하나의 현상 영역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서예의 형세(形勢)는 음양이 구비되어야 비로소 심미적 가치가 부여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가《구세(九勢)》에서 결자(結字), 전필(轉筆), 장봉(藏鋒), 장두(藏頭), 호미(護尾), 질세(疾勢), 약필(掠筆), 삽세(澀勢), 횡린(橫鱗)의 서세를 모두 음양 사상으로 설명한 것은 서예의 창작에서 필획(筆劃), 결자(結字), 결체(結體), 장법(章法) 등의 영역에서 음양의 조화를 심미적 이상의 경지를 표현하는 중요한 조건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상의 분석을 근거로 할 때 채옹(蔡邕)은 음양과 서세를 상보상성(相補相成)하는 변증 개념으로 인식하였으며 그 근본을 ‘자연(自然)’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서예는 자연으로부터 시작한다.(夫書肇於自然矣.)”라고 한 것은 곧 서예의 심미적 근본은 천지 자연에 있으며 음양과 형세(形勢)가 상보상성(相補相成)할 때 이상적 심미적 경지가 표현된다는 것을 주장한 미학 관점이다. 채옹(蔡邕)이 서예의 근본으로 이해한 ‘자연(自然)’은 자연 만물의 외형이 아니라 그 형상에 존재하는 심미적 정수이다. 이는 그가《전세(篆勢)》에서 전서의 서세(書勢)를 자연 만물의 심미적 정수에 비유한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채옹(蔡邕)이 제기한 ‘서예는 자연에서 시작한다.(書肇自然)’의 미학 관점은 서예 미학사에서 가장 수준 높은 생성 미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書肇自然’의 생성 미학을 바탕으로 음양의 조화를 강조한 채옹(蔡邕)은 서예 미학사에서 처음으로 ‘세(勢)’와 ‘역(力)’의 미학 범주를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서예의 창작에 매우 중요한 심미 범주로 인식하였다. 그가《구세(九勢)》에서 ‘구세(九勢)’를 설명한 이론 가운데 ‘결자(結字)’, ‘호미(護尾)’, ‘질세(疾勢)’, ‘삽세(澀勢)’의 조목에서 ‘세(勢)’와 ‘역(力)’의 범주를 강조하고 또 서론의 이름을《구세(九勢)》라 한 것 등은 서예의 ‘세(勢)’와 ‘역(力)’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과 동시에 그 심미적 범주를 중시한 것이다. 이는 채옹(蔡邕)의 미학 체계에서 ‘세(勢)’와 ‘역(力)’의 심미 범주는 음양 조화의 구체적 체현이며 창작 주체가 자각적으로 표현한 ‘필의(筆意)’이다. ‘세(勢)’와 ‘역(力)’의 심미 범주에 대한 인식은 우주 자연과 만물의 모든 움직임은 ‘세(勢)’와 ‘역(力)’이 존재한다는 철학 사상을 근본으로 하였다. ‘세(勢)’는 ‘역(力)’의 함축이며 내재된 심미 범주이고, 또 ‘역(力)’은 ‘세(勢)’의 작용이며 표현으로 두 개념은 상보상성(相補相成)하는 밀접한 심미 범주이다. 채옹(蔡邕)은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의 모든 현상은 생동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 생동의 표현 방식 가운데 중요한 성분이 ‘세(勢)’와 ‘역(力)’이라는 철학 사상을 서예 미학에 응용하였다. 그가 “필력이 있어서 글자에 힘이 있어야 피부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力在字中, 下筆用力, 肌膚之麗.)”라 하고 “필세는 멈추지 않아야 하며 붓이 부드러워야 다양한 변화가 생겨난다.(勢來不可止, 勢去不可遏, 惟筆軟則奇怪生焉.)”라 한 것은 ‘세(勢)’와 ‘역(力)’을 근본으로 하는 생동미(生動美)가 서예의 심미적 경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 것이다. ‘세(勢)’와 ‘역(力)’은 서예의 동태적(動態的) 심미 범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분이기 때문에 ‘세(勢)’와 ‘역(力)’의 범주를 떠나서는 서예의 심미적 가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채옹(蔡邕)의 미학 관점이다. 이는 고대의 사람들이 ‘勢’자와 ‘藝’자를 구별하지 않고 ‘埶’자로서 ‘세(勢)’와 ‘예(藝)’의 뜻을 모두 표현한 것으로도 예술 창작의 심미적 가치는 ‘勢’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 만물의 생동적 표현인 ‘세(勢)’와 ‘역(力)’이 서예 창작의 미학 관점으로 인식되는 것은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서예의 창작은 창작 주체가 인식한 자연 만물의 심미적 정수를 생동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고대 서론에서 ‘역(力)’은 ‘필(筆)’, ‘근(筋)’, ‘골(骨)’ 등과 호응하여 ‘필력(筆力)’, ‘근력(筋力)’, ‘골력(骨力)’ 등으로 표현되었고 ‘세(勢)’는 ‘필(筆)’, ‘서(書)’, ‘체(體)’, ‘자(字)’, ‘형(形)’, ‘기(氣)’ 등과 다양하게 호응하여 ‘필세(筆勢)’, ‘서세(書勢)’, ‘체세(體勢)’, ‘자세(字勢)’, ‘형세(形勢)’, ‘기세(氣勢)’ 등으로 표현되었다. 이들은 모두 서예의 창작 과정에서 창작 주체가 자각적으로 표현한 필의(筆意)와 서의(書意)의 심미적 범주이다. 채옹(蔡邕)이 ‘세(勢)’와 ‘역(力)’의 심미 범주를 제출하고 그것을 서예 창작의 중요한 심미적 범주로 강조한 후 서예 미학에서 ‘세(勢)’와 ‘역(力)’은 중요한 미학 범주로 자리잡았다. 채옹(蔡邕)은 서예를 창작 주체의 성정을 표현하는 독립된 예술의 한 영역으로 자각하였다. 그는《필론(筆論)》에서 처음으로 서예와 창작 주체의 성정(性情)과의 관계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서예의 창작을 창작 주체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표정(表情)’의 예술로 인식하고 창작 주체는 아무런 구속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에서 회포(懷抱)를 풀어 헤치고 성정(性情)에 따른 자유를 실현할 때 완전한 심미적 경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강조한 서예의 ‘표정(表情)’ 미학이다. 서예의 창작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서예를 실용의 공리적 영역이 아니라 독립된 순수한 예술의 영역으로 완전히 자각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채옹(蔡邕)이 제기한 “서예는 발산하는 것이다(書者, 散也)”의 미학 명제는 예술 창작의 절대적 자유를 중시한 미학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미학 체계에서 ‘산(散)’의 범주는 ‘隨意所適(마음이 움직이는데로 표현하는)’ 즉, 창작 주체의 정서와 감정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이다. 서예의 창작에서 ‘산(散)’의 경지를 요구한 것은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만사에 억류된 조건에서는 절대로 좋은 창작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한 미학 사상이다. 채옹(蔡邕)이 제시한 ‘산(散)’의 창작 미학은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사상이 정신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 철학에서 그 근본을 찾을 수 있다.《장자(莊子)․인간세(人間世)》에서 제시한 ‘산목(算木)’, ‘산인(散人)’, ‘심재(心齋)’, ‘좌망(坐忘)’의 철학 관점은 일체의 외부적 조건에 구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경지를 정신적 이상으로 인식한 사상이다. 채옹(蔡邕)이 서예를 실용의 공리적 효용에 구속되지 않는 순수한 예술로 인식한 것도 이와 같은 철학 사상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채옹(蔡邕)이 제출한 ‘산(散)’의 창작 미학은 서예의 창작에서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심리 상태를 중시한 것과 동시에 서예의 표정(表情) 미학을 긍정하고 서예를 독립된 순수 예술로 자각한 것이다. 그가 제시한 창작 미학은 후대의 서예 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서예의 표정(表情) 미학에 대한 관점은 서예 미학사에서 서예의 예술성에 대한 인식의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서예의 표정(表情) 미학은 조형(造形) 미학과 함께 서예 미학의 중요한 미학 명제로 토론되었다. 심근의식(尋根意識)을 바탕으로 ‘법상(法象)’을 중시한 미학 사상은 최원(崔瑗)과 채옹(蔡邕)은 서론은 물론 서진(西晉)시대의 서세론(書勢論)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이다. 서예의 체세(體勢)와 기법(技法), 서예와 작가의 관계, 서예와 자연계 만물의 관계 등에 관하여 토론한 채옹(蔡邕)의 서론은 양웅(揚雄), 허신(許愼), 최원(崔瑗) 등의 미학 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채옹(蔡邕)이 ‘법상(法象)’을 서예의 탄생과 발전은 물론 심미적 범주의 근본으로 인식한 서예 미학은 한(漢)나라 시대의 ‘법상(法象)’ 이론을 집대성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대 서론에서 상형(象形) 미학을 모든 서체의 심미적 범주의 원천으로 이해한 것은 ‘법상(法象)’를 중시한 동한(東漢)시대의 미학 사상이 끼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
출처: 중국과 서예 원문보기 글쓴이: 금릉산방인 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