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한국택시협동조합을 찾았다. 휴가철이라 다소 한산해진 교통사정 덕분에 약속시간보다 30여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상암경기장 주변 지하철 지상선로 옆에 위치한 사업장은 눈에 띄는 곳이 아니면서도 도로근접성은 나쁘지 않아 택시회사 입지로서 이 만 한 장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마당에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노란 택시가 운집해 있었고 마당 안쪽에 사무실이라 쓰인 작은 푯말이 부착된 건물이 보였다.
운이 좋았을까. 기다리는 동안 예비조합원의 상담과정을 지켜 볼 수 있었다. 필요한 서류와 쿱택시의 운영방식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상담자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 지원자에게 쿱택시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택시기사들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죠.”
6년간 두 군데 택시회사에서 일한바 있다는 그는 확신에 찬 어투로 명료하게 대답해 주었다. 억울한 것을 못 참는 성미여서 택시업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요주의 인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택시회사들의 결탁으로 취업이 어려운 상태이기도 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해 지난 5월 택시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다시 이어진 상담이 끝날 무렵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조합원이 되겠다고 의사를 밝힌 그는 바로 서류를 준비해와 신청서를 작성하겠다고 하고는 성큼성큼 사무실을 나섰다. 최소한 그에게 쿱택시는 획기적인 사건임이 분명해 보였다.
사진출처: 머니투데이 김희정기자
조촐한 이사장실에서 박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택시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납금제는 사업주의 선이익보장제입니다.
생산수단인 택시는 사업주가 제공하는데 생산과정은 보이지 않는 사업장 외부에서 이루어지고 생산결과는 하기 나름이다. 모두가 아는 택시업종의 특수성이다. 이러한 특수성은 당연히 성과의 통제, 수익의 배분, 기회비용과 위험의 분담 등에 대한 자본노동간 특수한 계약을 만들어 냈다.
택시기사들은 30리터의 LPG를 배급 받아 하루 12시간을 운행하여 주간 12만 5천원, 야간 14만 5천원의 사납금을 납입하고 별 탈 없이 만근을 하면 한 달에 120만 원 전후의 기본급을 받는다. 생계를 위해 필요한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6대4로 배분되는 초과매상을 올려야 하는데 추가연료는 기사부담이고 교통위반 스티커는 물론 사고가 나면 처리비용의 상당액을 책임져야 한다. 사업주 선이익보장제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생계를 담보로 자본에 편중된 불평등계약으로 여겨졌다.
협동조합은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택시협동조합에서는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쿱택시는 사납금이 없다. 단지 이러저러한 계산을 위한 기준금액일 뿐이다. 35리터의 연료를 배급받고 하루 매상을 모두 납입한다. 푼돈으로 가져가는 문제점을 없애고자 월 정산을 원칙으로 하며 50만원의 복지카드를 선 지급한다. 사고 처리비용은 조합에서 보험으로 처리한다. 기준금액을 넘는 초과매상은 떼이는 것 없이 전액 해당자의 몫이다. 기준금액을 달성하면 기본 소득은 물론이고 조합의 공통비용과 경비 등을 제한 이익 모두가 조합원에게 추가로 배당된다.
이 결과 사납금과 같은 기준금액의 매상을 올린 조합원이라면 부가세환급, 유류비환급금 전액과 배당금을 포함하여 월 소득이 70~100만 원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물론 초과매상은 추가적인 보너스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경영과제가 전제된다. 전체 차량가동률과 매상으로 이어지는 유효운행비율이 일정수준 이상이어야 하는데 업계평균을 보수적으로 반영한 계산이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사납금정도의 매상을 기준으로 15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매월 최소 70만 원 이상을 더 벌 수 있다고 한다면 자본을 댄 사업주에게 귀속되었던 어림잡아 연간 12억 원 이상의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으로 전환되어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조달한 ‘고용된 자본’의 결과이다.
실제로 쿱택시 경영결과가 예상대로 실현된다면 출범당시의 관심이상으로 더욱 주목 받게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인가 쿱택시의 등장으로 기존 택시업계의 오랜 관행이나 편파적인 조건들이 그대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며 택시기사들의 노동조건과 소득이 다소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관측을 본 기억이 났다. 단지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주변부까지 혁신을 불러 일으킬만한 사회적 비즈니스모델이 필요하다는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마틴 교수의 글도 생각났다. 협동조합이 사회혁신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의 실체적 증거를 대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기사들이 2천5백만 원씩 출자할 형편이 안돼요.
그의 말은 우리나라 금융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사람이 자본을 고용한다... 말처럼 쉽지 않죠, 뭘 믿고. 우리나라 은행이라는 게 담보 없으면 단 한 푼도 안 빌려 주죠, 뭘 믿고 돈을 빌려주나. 담보 갖다 주고 5%이자 내는 거거든, 2차 금융은 은행이 담보 안 잡아주는 다음 담보 잡히고 10%, 그다음은 바로 사채나 대부업으로 넘어가는 건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을 고용하나 말이 안 되는 거지.”
“기업의 자금조성이 한국처럼 어려워서는 안 되죠. 왜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은 이자를 내야하는지 한국 정부는 대답을 해야 해요. 담보 없으면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은... 은행에 산업적 기능이 없어요, 대부업이지... 고급인력 모아 놓고... 현장 정보를 잘 아는 동네 일수하는 사람들보다도 못해요.”
이러한 조건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선 인수 후 조합원모집이었고 역점은 조합원들이 출자금을 대출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데 있었다.
“서울보증 하나은행 한국택시협동조합이 3자 협약을 통해 7등급 이상이면 출자금을 대출을 해 줍니다. 8등급이하나 신용불량자는 서울시 중소기업운영자금을 대출받아 재 대출을 해줍니다.”
“협동조합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공적 모델과 사례를 명확히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죠. 시장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그렇고...”
성공적인 모델을 만든 그의 다음 목표는 모델의 확산에 있었다. 부산에 50대 차량을 보유한 택시회사를 인수해서 10월부터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고 금년 안에 대구, 광주, 경기 등 쿱택시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또한 법인택시를 인수해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모델이라고 한다.
“협동조합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정직을 경쟁력으로 하는 사업을 하는 겁니다. 우리 모델은 3개월의 브릿지 론만 필요한 건데... 모델을 만들었으니 신뢰의 근거가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이것이 사회적 자산이 형성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협동조합 선진지역에서도 초기에 신부님 등 신망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일을 만들어 왔던 경험이 있죠.”
그에 말에는 쿱택시 모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데서 나오는 자신감이 느껴졌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더 잘 해보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사진출처: 머니투데이 김희정기자
협동조합에 유리한 영역을 찾아야...
“협동조합은 시장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협동조합이 유리한 영역을 찾아야 합니다. 자본집약적이나 기술집약적인 영역은 아무래도 협동조합이 뒤처지고... 노동집약적이면서 정상적으로 운영했을 때 개개인의 소득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거, 절대 망하지 않는 사업을 해야 되지 않겠나... 택시가 그렇지, 현금장사인데다가 50% 가동률만 확보되면 돈만 빼돌리기 전에는 절대 망하지 않으니까 협동조합 사업으로 유리한 것이죠.”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업이나 개인이 하면 더 나은 사업들은 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들이 실패보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거든요. 수익을 낼 수 있는 협동조합 사업이 많은데 그걸 못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했다.
“협동조합이 잘되어야 돼죠.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조합도 보험료가 1년에 2억3천이 넘고... 사고율이 평균 사오일에 한번 났는데... 6월 말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사고 한번 나지 않았어요. 보험료가 1억만 낮춰져도... 협동조합 전환이후 조합원들이 바뀌고 있어요.“
“이익만 보고 뭉친다고 협동조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협동조합적 삶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교육이 중요하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의 말은 끝을 맺었다.
김수혁 한국택시협동조합 사업본부장으로부터 보다 상세한 현황을 설명들을 수 있었다.
“7월말 현재 신청자는 297명입니다. 이중 현금출자로 136명이 확정된 상태이며 구제대출을 요청하여 대출을 추진 중인 분들이 42명이어서 현재 대기자까지 확보된 상태입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교통을 책임지는 주무 행정당국은 서울시 교통관리과다. 현재 택시는 총량제에 묶여 있어 택시회사 맘대로 차량을 늘릴 수 없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인수한 택시회사의 택시 수량은 71대다. 택시1대당 2.3명의 운행인원을 조합하고 운영사무인력까지 하면 170명이 총원이 되는데 현재 대기자까지 확보된 상태이고 이전과 설립에 관한 행정 처리를 8월까지 완료하면 9월부터 정상적인 경영궤도에 오를 거라 했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우려점에 대해 물었다.
“요즘은 IT기술이 발전해서 택시 운행에 대한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서울시 교통관리시스템에 전송됩니다. 원하면 택시위치, 이동경로, 요금 등 훤하게 들여다 볼 수 가 있습니다. 조합원들도 모두 인식하고 있고... 기본적으로 택시라는 게 개별 실적에 기반 한 것이라 근무태만이나 매상누락 같은 문제는 걱정할게 없다고 봅니다.”
교육 현황에 대해 물었다.
“조합원들이 아직 주인의식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자기가 주인인데 아직 기존 택시회사 관리자를 대하 듯 하지요. 현재는 출범 시기라 신입조합원 기본교육에 치중하고 있기는 하지만 9월부터 정상운영이 시작되면 협동조합교육과 서비스교육, 인성교육 등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한 달에 한 번 이상 시행하여 주인의식과 민주적 소양을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품위 있는 은퇴 후 제2의 직업으로 혁신 중
“향후 서울시와 협력해서 6개월 과정의 택시기사학교 같은 걸 만들려고 해요. 성폭행 등 부적격 4대 범죄 경력자를 가려내고 운행요령, 서비스, 지리, 차량관리, 교양, 인문학 등을 교육하여 품위 있는 은퇴 후 직업으로 택시업종을 혁신하려고 합니다.”
택시협동조합이 만들어 진다고 했을 때 대사관에 근무했거나 은행, 대기업, 외국계 기업에서 간부를 지내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의외의 경력자들이 조합원으로 적지 않게 참여했다고 한다. 쿱택시의 등장으로 막장직종에서 제2인생의 희망직종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엿보는 것 같았다.
올해 62세인 김성태 조합원은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인수한 바로 그 택시회사에서 4년을 근무하고 있었던 분이다. “기존 동료들 중에 25명 정도가 쿱택시에 참여했어요. 내가 사주가 되는 것이고 사업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나누면 소득도 향상된다는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어요... 같은 결과여도 사납금이 없어진다는 건 일종의 족쇄가 없어지는 것이거든요.”
“누구는 열심히 하고 누구는 열심히 안하면 안 되니까 이를 보완할 장치로 차등성과배당제 같은 게 필요하다는데 조합원들이 공감하고 있어요. 아직은 홍보가 부족해서 쿱택시라고 알아봐 주는 손님보다는 일반택시와 차량색이 달라 비싼 택시인줄 오인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저는 타시는 승객 분들에게 하루 종일 홍보를 해요. 저희 쿱택시는 승차거부하지 않고 부당요금 요구하지 않고 불친절하지 않다고...”
“서울시와 협력해서 쿱택시를 늘려나가고 택시에 대한 교통민원을 줄여나가는데 조합과 모든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임할 계획인 것으로 압니다. 쿱택시가 알려지고 쿱택시는 서비스가 좋은 친근한 시민들의 발로 인식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그의 말은 어눌했지만 자신의 직업에 애정을 가지고 사회적 문제해결과 자신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모해 나가려는 협동조합 사업가의 풍모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