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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바로알기 ◇◇
이 세상은 지금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와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와의 '사상 전쟁', '체제 전쟁'이다. 한국은 그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강대국 미중간의 갈등, 남북간의 갈등, 한국내 종북주사파와 자유우파의 갈등, 동성결혼 찬성자와 반대자와의 모든 갈등의 중심에 서있다.
이 모든 갈등의 시작은 자본주의를 비판한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모든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기본적 차이는 사유재산(부동산, 자동차, 주식등)과 생산수단(기계, 원료, 공장, 자본, 토지 등)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는가의 여부다. 자본주의는 이를 인정하고 공산주의는 모두 '국가 소유'로 한다.
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민주국가)와 함께 성장해왔고 공산주의는 전체주의(독재국가)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구소련을 위시하여 대부분이 망했고 공식적인 공산주의 국가는 중공, 북한, 베트남, 쿠바 뿐이다.
중공과 베트남은 정치제도는 공산주의 독재국가지만 경제는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자유와 자본주의가 주는 사유재산 소유, 직업 선택의 자유, 기업을 통한 이윤추구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금전 만능'의 자본주의가 풍기는 부정적 뉘앙스나, '빈부격차'가 심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글들을 접하면서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내 것(집, 자동차, 사업체, 은행계좌 등)이라곤 하나도 없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 아무런 자유가 없고, 노동에 대한 '임금'(있더라도 용돈 정도도 되지 않는 소액)도 없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식량 '배급'도 없어서 불법적인(?) 장마당(한국의 길거리 시장)과 밀수를 통해 근근히 생활을 하다가 탈북한 사람들은, 한국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종 자유를 누리고, 일한만큼 '임금'을 받아서 굶지 않고 먹고살 수 있고, 내 집과 내 차와 내 사업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신기해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상반된 두 체재에서 살아본 탈북자들은 북한 같은 '지옥'에서 살다가 '천국' 같은 한국에서 살게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여긴다.
'만민 평등'을 주창한 공산주의의 최대 단점은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하고 사람의 자유의지와 창의력을 말살하여 결국은 사람들이 거지가 되고 굶어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의 공헌
“자본주의는 지난 150년 동안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작품이다.”
“자본주의는 내재하는 모순으로 인해 망하고 사회주의로 대체된다.”
사람은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영혼(정신)과 동물적 생존을 필요로 하는 육신(몸)을 갖고 있다.
그런데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그리스(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정신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에 사로잡혀 돈을 밝히는 이기적인(?) 자본주의는 경시하고 평등을 강조하는 이타적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선호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영혼과 육체 모두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타락으로 인해 이 두 가지의 조화가 깨어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동물과 거의 다름없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산업혁명(1760~1820)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수준 높은 삶을 유지하고 있다.
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전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가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오늘날 선진 부국들은 물론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도 제2차 대전 후의 신생국가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경제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독재정치를 택한 구소련과 위성국가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제3세계 국가들, 북한, 쿠바 및 베네스웰라 같은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은 모두가 경제적으로 파탄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
많은 좌파나 일부 우파는 자본주의가 세계 빈곤의 원인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제도를 제대로 도입한 나라 중에 빈곤 국가는 없다.
국가가 빈곤한 이유는 그 국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한때 최빈국이었다가 자본주의 제도 도입으로 절대 가난에서 벗어난 중공은 최근에 그 사실을 이렇게 자랑했다.
‘중국공산당 100년의 최대 업적, 탈빈 전투에서 승리.’
탈빈공견(脫貧攻堅)!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견고한 적의 진지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2012년 18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시진핑 정부는 소강(小康, 샤오캉) 사회의 실현을 위한 ‘빈곤과의 전쟁’을 최우선의 정책 과제로 내걸어 왔다. '소강 사회'는 중공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를 말한다.
시진핑 정부는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이하여 탈빈공견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
중공은 1970년까지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러다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에 의거, '중공(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즉 한국이나 싱가포르의 국가주도의 수출지향형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불과 40년 만에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G2로 우뚝 올라선 것이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다른 모든 제도들을 제외하고는 최악의 제도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본주의에도 결함이 있지만 다른 모든 제도들-사회주의, 공산주의-중에서는 그래도 제일 나은 제도라는 말이다.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하나님이 주신 사람의 자유의지와 지혜와 창조의 영 즉 조지프 슘페터(1883~1950)가 말하는 ‘기업가 정신’과 ‘창조적 파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여 빈곤을 퇴치하고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해왔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만성적 기아에서 건져내었을 뿐만 아니라 삶을 편리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여왔다.
오늘날의 한국의 어지간한 서민도 냉난방이 된 집,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각종 가전기기, 스마트폰, 자동차와 같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산다.
이런 것들은 불과 100년이나 50년 전만 해도 왕이나 거부들도 누리지 못했던 자본주의 경제의 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자본주의가 빈부격차를 조장하고 지나친 물질문명을 통해 환경을 파괴한다는 등의 이유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여전히 비현실적인 사회주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주창한 사회주의∙공산주의야 말로 내재하는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망하고 말았다.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부인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계획생산을 한다.
그런데 이런 제도는 인간의 자유, 개인주의, 창의력 및 노동 인센티브를 부인하고 타락한 인간을 이상적이고 이타적 존재로 가정한다.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과 부패를 부인한 인간관이야 말로 사회주의에 내재하는 가장 현저한 모순이다.
◇ 자본주의 정신과 자본주의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하고, 자기가 생산하거나 구입한 상품에 이윤을 붙여 파는 것이 자본주의라면, 자본주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정신’을 말하고 오늘날과 같은 ‘공장제 생산제도’를 채택한 현대적 자본주는 한참 후에 일어났다.
자본주의 정신의 기틀은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마르틴 루터(1483~1546).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는 '직업소명설'을 주장했다.
성직이든 세속직이든 모든 직업(Beruf, Calling)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므로 각자의 부르심을 받은 그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영적계급(주교, 사제, 수도사)과 세속계급(영주, 기사, 평민, 노예)으로 출신 성분과 직업을 구분했던 당시에는 충격적 주장이었다.
루터에게, 일과 직업은 생계 수단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웃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장이다.
그러므로 성직이든 세속직이든 자신의 일이 이웃의 유익을 도모하고 섬기는 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루터는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재화를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가르쳤다.
당시 로마 천주교는 신자는 일용할 양식만을 위해서 일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더 이상 일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는 나중에는 직업을 통한 재화 축적이 구원에 무엇을 더하는 공로사상의 위험성이 있다고 하여, 신자들이 직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 신앙의 척도라는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났고, 신자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고 현재의 직업에 머물 것을 독려했다.
-장 칼뱅(1509~1564).
칼뱅은 루터의 직업소명설을 확대하여 신자는 원한다면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뱅은 또한 당시 천주교가 이자 제도와 일용할 양식 외의 재산 축적을 부인한 것과는 달리 '이자 제도'와 '이윤 추구"를 허용했다.
칼뱅은 신자가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하여 벌어들인 소득의 축적을 허용했다.
그렇다고 하여 축적된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소비하는 것은 금지하고 근검, 절약의 삶을 살 것을 촉구했다.
칼뱅의 이런 주장은 당시 많은 소상공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칼뱅의 주장을 실천한 많은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요한 삶을 살게 되었다.
-막스 베버(1974~1920)
그는『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에서 칼뱅의 이러한 주장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베버는 특히 미국으로 건너간 칼뱅주의 청교도들이 칼뱅의 이러한 주장을 구원론과 연관시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기틀을 삼았다고 주장한다.
청교도들은 칼뱅의 '예정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을 예정하셨지만 사람은 누가 구원받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각자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청교도들은 직장과 일터에서 정직하고 성실히 일하면서 노동의 신성함을 체험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허랑방탕하지 않고 근검하고 절약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구원의 길은 누가 도와주거나 더하여 줄 수 없는 각자의 몫이므로, 각자가 자기 신앙과 삶을 책임지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상을 갖는 원천이 되었다.
또한 열심히 일하고 벌은 돈을 절약하여 돈을 많이 축적하는 것이 구원의 확신을 강하게 준다는 믿음으로, 청교도들은 절약을 통해 재산을 축적해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 정신은 퇴색해 가고 돈의 유혹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기도 했다.
한때 석유왕 록펠러나 철강왕 카네기가 독점과 불법 사업에 연루되어 지탄을 받고, 미국 독과점금지법 제정(1890)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후손들은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과 구제와 문화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했다.
전반적으로 미국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자본주의 정신과 돈의 관계를 잘 알기 때문에, 돈 많이 버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고 반(反)기업가 정서가 한국과는 달리 심하지 않다.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자유방임주의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집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self interest)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90)가 그의 『국부론』(1776)에서, 상인은 자기 이익(self-interest)을 위해 물건을 팔지만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조정되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으며, 사회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여 결과적으로 '공동선'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주의 경제의 주요 핵심인 '시장'(Market)을 말한다.
자본주의는 상품 거래에서 인위적인 정부 개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을 정하면서 물량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미스는 정부는 가능하면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국방과 치안, 시장 질서를 혼란케 하는 불법만을 통제하고 나머지는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에 맡기라는 '야경국가'와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했다.
애덤 스미스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선진국인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오늘날 사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럽 국가들 보다는 미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미스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국가의 '복지제도'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스미스는 가난한 자를 위한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스미스의 사적 이익 추구, 야경 국가, 자유방임주의만 강조하면서 비판하지만 스미스는 경제학자 이전에 윤리철학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미스는 『국부론』 이전에 출간한 『도덕 감정론』(1759)에서, 도덕은 사회적인 행위의 규준(規準) 즉 시민사회에서의 질서의 원리였다. 스미스는 그것을 '공감(共感)의 원리'(the theory of Sympathy)로 설명했다.
즉 자기의 행동이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자기를 타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기 행동을 시인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사회적인 행위의 규준이 된다고 스미스는 생각했다.
나의 행동이 남을 불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소수의 기득권자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와 독점체제를 타파하고, 신뢰와 정의의 범위 내에서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를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은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이기심의 철학을 주장했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질서를 파괴하는 방종이 아니라 이러한 객관적인 행위 규준을 따른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타락한 것은 칼뱅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의 기초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정신은 버리고 결과만 취했듯,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도덕적 규준은 지키지 않고 표면적 결과만 추구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