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일기(上京日記)
10월 31일
서울에 올라와서 아들을 데리고 정릉에서 집을 보다가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구파발쪽에 있는 은평 뉴타운이라는 새 동네에 와서 집을 몇 개 둘러보았다. 13층짜리 아파트에 5층에 방이 넷 있는 집 하나가 빈 게 있는데, 바로 앞이 산이고, 은행에서 꾼 돈을 인수 하면 당장 그렇게 많은 돈을 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집이 있어 계약을 하였다.
집사람이나 홍관이가 모두 “그렇게 많은 은행 돈을 매월 어떻게 갚아나가시려고?” 하면서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반기는 눈치다. 무슨 일이던 하려면 우선 “저질러 놓고” 보아야 한다던 선배 교수님 말씀이 생각이 났다.
12월 19일 수요일
대통령 선거로 휴무일이다. 저녁에 서울에 있는 영남 출신 한학동호인들의 모임인 교문회(嶠文會) 모임이 있는데,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로 하였다는 소문을 듣고서 꼭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었지만 영대 중문과 교수들이 저녁을 산다는 약속이 미리 되어 있어 올라가지 못하였다. 점심은 동양고전연구회의 임원들과 함께 회의를 하면서 먹었다.
12월 20일 목요일
오전에 농협중앙회 경산지사에 가서 돈을 좀 꾸어, 경산 집에 물린 담보를 농협 사동 지점에 가서 갚았다. 요즘은 은행 일이나 동회 일이나 모두 전산망이 연결되어 있어 모두 빨리 빨리 처리되니 한결 편하다.
몇 일째 오른쪽 귀가 아파서 오후에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으나 별 효과가 없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갑자기 솟구칠 때와 같이 귀가 멍하다. 며칠 동안 이사준비를 한다고 먼지를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인가?
뜻밖에 내일 홍관이가 영대 테크노 파크로 출장을 왔다가 집에 와서 자고,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는데 동행을 할 것이라고 한다. “불모이합(不謀而合)”이라는 말이 바로 이러한 것일까? 집사람이 매일 신경이 날카롭다가 매우 반가워한다.
12월 21일 금요일 동지, 눈, 춥다.
오전에 정철부동산에 가서 입주할 사람과 만나서 잔금과 서류를 다 교환하고, 오전에는 서울로 올라가 114부동산에 가서 집 파는 사람에게 잔금을 주고 또 서류를 받았다. 금년 안에 집을 매매하면 취득세가 없다고 들었더니, 세액의 절반을 감면하여 주는 것이지 사뭇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출 담당 은행직원, 등기이전 담당 법무사까지 와서 있었는데, 취득세는 준비가 안 되어 주지 못하고 우선 등기 이전에 필요한 서류만 미리 주었다.
내려오는데 부동산 집 안 주인이 서울역까지 차를 태워 주었는데, 마침 동지날이라 식당에 들어가서 팥죽을 사서 함께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 11시 넘어 경산 집에 돌아오니 홍관이가 와서 있었다. 울릉도에 울릉도·독도박물관을 짓는 일 중에 전시물 설치에 관한 일을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맡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련하여 자문을 구하는 회의가 있었다고 하였다.
12월 22일 토요일 맑다.
오후 4시 반경부터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집을 싸고 실어내기 시작하여 밤12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사다리 차 한 대와 트럭 2대, 인부 7명이 왔다.
짐차가 떠난 뒤에 마지막까지 지켜보던 후범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우리 차를 홍관이가 운전하여 적막한 밤길을 달렸는데, 중부내륙고속을 타고, 괴산휴게소에 와서 한번 쉬고, 동서울로 들어와서 서울 외곽 고속도로를 타고 이사할 집에 오니 새벽 3시 40분쯤 되었다. 전날 와서 청소도 부탁하고, 난방도 넣어 두었던 지라 우선 가지고 온 이불을 펴고 몇 시간 잣다.
오늘도 귀가 시원치 않아서 오전에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코와 귀 사이에 연결된 이관(耳管)이 시원치 않아서 생긴 병인데, 노인들은 당료나 고혈압이 있는 경우에 잘 났지 않는다고 하면서, 코를 자주 청소하고, 껌 같은 것을 자주 씹는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34년을 살던 곳을 떠나는데 감회도 많을 것 같은데, 한쪽 귀가 멍하니 딴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12월 23일 일요일 맑다.
몇 시간 동안이지만 잘 잤다. 아침 8시에 이삿짐차가 들어온다고 하여 더 잘 수 없었다. 예정보다 차는 조금 늦게 왔지만, 서울에 근무하는 남자 여자 인부들과 아파트 당담 직원들이 미리 와서 준비를 하는데, 모두 서울말을 하고 있으니 “정말 서울로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12시 가까이 되어 짐을 다 들여 놓고 인부들은 갔다.
바로 앞이 산이라 아침에 해가 늦게 집에 들어오고 저녁에도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다. 그러나 눈이 쌓인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니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때 셋째 처제가 시루떡을 사고, 국을 끓여 오고 오후에는 큰 처제가 케이크를 하나 사가지고 왔다. 또 빈이 모자가 전철을 타고 왔는데, 50일 만에 본 빈이는 키가 좀 컸고, 말도 좀 늘었다. “여기는 3호선 구파발역입니다…” 하면서 지하철 승무원의 안내방송 흉내 내어 웃었다. 어미 말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중에 이런 말이 저장된 게 있어 자주 들었기 때문에 저절로 익히게 된 것인데, 오늘 3호선을 타고 정말 구파발역까지 온다고 하니 신이 났다고 한다.
틈틈이 내 방에 꽂을 책을 다시 정리하여 꽂았다. 대부분 학교에 기증하고, 나머지 중에는 아직도 청도 촌집에 둔 것도 있으나, 《한한대사전》 같은 가장 기본적인 사전 몇 가지와, 《13경 주소》 같은 기본 경전, 당시唐詩와 이퇴계 관련 책 몇 가지와, 최근에 여러 사람에게서 기증 받은 중·한 고전국역서 몇 가지만 가지고 왔는데, 책상 곁 서가에 나란히 꽂아놓고 보니 자못 정돈이 잘된 것 같다.
이만하면 가끔 북한산 자락에 산책이나 하다가, 이 집에 들어와 앉아서도 다시 책을 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언제까지 내 건강이 계속될지, 툭하면 시내로 불리어 나가 돌아다니기만 할런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구나.
12월 24일 월요일 맑음 춥다.
오전에 큰 형님 내외분이 오셨다가 북한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보리밥 집에 가서 점심을 사 주시고 가셨다. 두 분 다 80이 넘는 고령이시고 보니 여러 가지 병환이 겹쳐 생기는 같으나 용케도 견디며 사시는 것 같다. 금년에 들어와서 외국에 있던 맏아들과 맏손자가 모두 서울에 와서 지내게 되었고, 나도 서울로 올라왔다고 매우 좋아하신다.
아침에는 농협은행에 가서 등기와 은행대출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송금하고, 낮에는 집에 LG의 직원이 나와서 이메일에 070전화와, TV를 연결하여 주고 갔고, 오후엔 동회와 아파트사무실에 가서 전입과 입주에 필요한 수속을 마쳤다. 드디어 다시 서울 시민이 된 것이다.
첫댓글 날씨가 너무 추워서 이사를 어찌 하시나 걱정만 했었는데... 무사히 이사하시고 서울 시민이 되셨음을 축하 드립니다.
겨울 동안 이사 피로를 푹 푸시고, 따뜻한 봄날에 건강한 모습을 뵙기 바라겠습니다.
이젠 서울서 손자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시겠습니다. 또 친지가 많으셔 대구와는 또 다른 즐거움까지 아울러 누리시리라 생각합니다.
두분 선생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대구는 평생 첨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폭설이 내렸습니다. 아직도 베란다 앞 산이 내리는 눈으로 시야가 뿌옇습니다.
좋은 집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하신다니 한편 부럽습니다.
귀여운 손주와 더불어 사는 노년의 삶이 무척 기대될 것 같습니다.
이제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겠지요. 푹 쉬고나면 여기저기 안 좋은 곳도 서서히 회복되리라 생각됩니다.
건강하십시오.
학부도 아닌 사단법인 동양고전연구소에서 사회인들에게 봉사의 열강을 하여주셨던 선생님이 이사를 하셨는데 우선 아쉬운 인사를 드리며, 시간 바쁘실텐데 카페에 좋은 글월을 올려주시여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학생들 방학숙제 처럼 일기를 한꺼번에 쓰셨읍니다? 자주 읽을수 있었으면 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송휘백
추운 날씨에 이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자주 뵙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만, 서울에서 올린 글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반갑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항상 신나는 서울 서울생활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