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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무엇이 바로크 인가? (Qu'est-ce qui est baroque?)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Le Pli, Leibniz et le baroque, 1988)
들뢰즈, 이찬웅, 문학과지성사, 2004 (원192, 번272)
* 내부의 주름과 물체의 겹주름을 해명하는 대상은 아페이론일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의 공간(자리, 터, 결)등을 바로크 시대에 현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는지를 고민한 것이 라이프니츠일 것 같다. 그는 데카르트처럼 운동의 상대성을 인정하였고, 또한 세계의 총량(절대치)의 불변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일어나는 경우의 수들은 무한 또는 무한정하다고 보았을 것 같다. 무한정의 나우어짐(분할)이 아니라 무한정하게 접힘을 상정함으로써 현존 세상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무한정(무한)할 것이다. 그 무한한 모습들 중에서 이 세계와 조화로운 부분들이 개체화되고 개체로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개체가 모나드인 셈이다. 개념화작업도 이루어질 것이고, -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모나드론이 플라톤의 아페이론에 대한 재해명과 가깝고, 들뢰즈는 이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에게 왕관 쓴 무정부주의자라고 했는데, 그 힘(권능과 역량)은 무한하여 현실에서 무엇을 생산할지 모르지만 생산의 능력은 왕관을 쓴 것과 같다고 생각했으리라. 아페이론의 필연이 개체의 소멸을 가져온다. 이 소멸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필연으로 아페이론에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설명도 쉽고 추론도 쉽다. 그런데 소멸하면, 다른 생성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을 것인데, 다른 생성은 기존의 생성과 차히(세분화)로서 다르다는 것을 바로크의 인간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53RMF)
** 바로크 예술에서 운동성을 강조한다면, 고대 그리스 시대 조각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주름이라면 파르테논 신전(전490년-전432년) 주위에 여성상에 옷주름에도 있다고 곰브리지 미술사가 전했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가 정역학에서 동역학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운동과 주름은 각별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동역학에서 가속도는 옷주름 너울이나 머리칼이 흩날리는 정도의 차이들이 있을 것이고, 근육 운동의 힘과 결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느끼는 것은 예술가이고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주름의 주름까지 생각하며 표현하려고 할 것이다. 그 주름을 바탕으로 하는 재료에서 주름이 있고 묘사에서 색깔(색채)과 명암에서 주름이 있을 것이다. 운동은 흥미롭게도 그림자조차도 제 모습을 갖기보다 흐리고 늘여지거나 움직이는 물결과 같을 것이다. 그런 것을 작가들이 표현하려고 애쓴 것은, 어째거나 그리스 고전시대의 인성과 인간상을 되살리는 측면일 것이다. 그리스 고전시대 즉 파트테논 신전을 짓던 시대가 소크라테스의 활동시기이며, 곧 펠레포네소스 전쟁이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영혼의 안녕을 생각했으리라. 자연 속에서 생성하는 영혼으로 생각한다면, 아페이론이 중요하리라. 그늘 속에 또는 신체 속에 알처럼 부화되려고 할 수도 있고, 소크라테스가 산파술과 조각술에 비유하듯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 이 과정에는 결(너울과 파동)들이 있다. 이를 작가들이 그리스를 복원하는 르네상스와 다시 태어남을 동력학과 연결하는 시기라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동력학(la dynamique)은 물체와 운동, 상대적 지위와 상대적 강도(힘), 그리고 함수와 같은 연산작용에 대한 각성이 있었으리라. 게다가 영혼이 신으로부터 또는 저세상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 자기 위상을 갖는다면, 어떻게 작동하고 운동하며, 다른 생명체들과 연산작용을 할 것인가? 생물학적으로 전성설과 후성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원운동과 타원운동, 포물선 운동, 쌍곡선 등의 움직임과 원뿔에서 얻어진 수학적 곡선들 사이에 연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점이 축을 중심으로, 선과 면이 축을 중심으로 회전에서 생기면 부피는, 데카르트까지의 논의에서 길이(l’étendue)의 논의에서 공간을 넘어서는 사유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역동론 차원을 높여서 사유할 수 있는 대수와 지수를 다루는 시기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 미적분의 사유 발상에는 베르누이 일가의 영향이 있었다. 연사자의 방식으로 함수의 정식을 만든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가 요한 베르누이와 더불어 위대한 수학자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오일러야 말로 바로크의 절정에서 수학적 기호와 법칙들을 정식화하면서, ‘수학의 풀이는 50가지야’라고 할 수 있었으리라. 바로크라는 개념은 생성하는 개념인 것 같다. 아페이론에서 생성하는 과정과 어떤 경우를 잘 표현하는 여러 분야가 있을 수 있다. 그 생성을 창조적으로 보이는 것은 먼저 생명체이고, 예술들, 학문의 공리(코드)들, 그리고 철학의 학설들은 나중에 따라갈 것 같다. 생명이 먼저이다. 들뢰즈가 “생명(une Vie)”를 말할 때, 그것은 드라마처럼 과정이 있는 개체, 실체, 또는 자연일 것이다. 그 움직임이 개인의 무한정에서 영혼을 보게 될 것 같다. 인간이 만든 기록으로서 외장하드들이 주름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53RMG)
목차
제1부. 주름 Le pli
제1장. 물질의 겹주름 11 Les replis de la matière 9
제2장. 영혼 안에서 주름들 31 Les plis dans l'âme 20
제3장 무엇이 바로크 인가? 54 Qu'est-ce qui est baroque? 38
제2부. 포함 77 - Les inclusions 55
# 내용 *****
제3장 무엇이 바로크 인가? 54 - Qu'est-ce qui est baroque? 38
§III. 1. - La pièce sans fenêtres 38 - L'intérieur et l'extérieur, le haut et le bas 39 - Heidegger, Mallarmé et le pli - La lumière baroque - Recherche d'un concept - Les six caratères esthétiques du Baroque - L'art moderne, ou l'informel: textures et formes pliées [이 마지막 단락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섯째 특성인 직물들이 이 단락으로 쓰일 수 있다. (44QLB)]
§III. 1. 창들도 없는 방 La pièce sans fenêtres 38
모나드들은 “어떤 것이 드나들 수 있는 창들을 갖지 않는다” 그것들은 “구멍도 입구도” 갖지 않는다. 이 상황을 규정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것을 매우 추상적으로 이해할 위험이 있다. (38, 54)
또는 간단히,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라우셴버그(Rauschenberg, 1925-2008)에게서 발견하는 것처럼, 하나의 표면과 관계하는 무한한 변곡을 가진 곡선은? 정확하게, 라우셴버그에게서 그림의 표면은 암호화된 선이 기입된 불가해한 정보 도표가 되기 위해 세계로 나 있는 창문이기를 그만 둔다고 말할 수 있었다. 창-그림은 도표 제작으로 대체된다. 변화하는 선들, 수들, 특징들이 기입되는 도표(대상류). (38. 54)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의 내부 벽면을 가득 채우는 선적이고 수적인 도표들을 끊임없이 작성한다. 구멍들은 주름들로 대체된다. 평야-창 체계는 도시-정보 도표 쌍과 대립된다.(38, 54)
모나드의 본질적인 면은, 이것이 어두운 바탕(un sombre fond)을 갖는다는 점이다. 모나드는 모든 것을 이것으로부터 끌어내며, 어떤 것도 밖에서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38-39, 55) [다음 문단의 내용을 보면, ‘어두운 바탕’보다 “어두운 구석” 또는 “구석진 곳”이 더 맞을 것 같다. - 역주에는 바로크 회화 작품의 어두운 배경이자, 모나드 안의 어두운 바닥을 동시에 의미한다. - 우리가 보기에 차이와 반복(1장 4절, 69, 번128))에서 모나드에서 “무한하게 작은 차이는 이 명석함의 조건이 되는 혼재된 바탕(le fond)으로서 규정된다.”(44SLA)]
이러한 의미에서, 과거의 바로크 기획이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적절한 것이 아니라면, 너무 현대적인 상황을 원용할 필요는 없다. 오래 전부터, 보아야 할 것이 안쪽에 있는 장소들이 있었다: 독방, 제의실(sacristie 祭衣室), 지하납골당, 교회(église), 극장, 열람실, 판화실(cabinet d'estampes). ... 우선 암실(la chambre obscure)은 ... 그리고 다음으로 변형과정에 있는 장식들, 색칠된 하늘 벽을 가득 채운 모든 종류의 ‘실제처럼 보이는 그림들’ .. 마지막으로 검은 대리석으로 된 방이라는 건축적 이상. (39, 55)
이러한 관점에서 라 뚜레뜨(La Tourette) 수도원에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은 바로크의 정신이 아닌가? (39, 55)
바로크 건축은, 안에 있는 사람 자신은 볼 수 없는 열린 부분으로 빛이 스치듯 들어오는 소성당과 방들을 설치한다. 그 최초의 작업 중 하나는, 창이 없는 비밀스러운 방이 딸린 ‘스투디올로 데 피렌체(Studiolo de Florence)’에 있다. 모나드는 원자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방, 제의실이다. 입구나 창이 없는 방, 여기에서 모든 작용은 내적이다. (39, 56)
§III. 2. 내부와 외부, 위[층]와 아래[층] 56 L'intérieur et l'extérieur, le haut et le bas 39
모나드는 내부의 자율성, 외부 없는 내부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관물로서 파사드(la façade, 정면간판)의 독립성을, 즉 내부없는 외부를 갖는다. (39, 56)
“외부성의 무한한 분할은 끊임없이 연장되고 열린 채 남아있다. 그러므로 외부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점과 같은 내부의 단일성을 제시해야 한다… 물리적, 자연적, 현상적 우연적 영역은 모조리 열린 연쇄의 무한한 반복 안에 잠겨 있다: 그 점에서 그것은 형이상학적이지 않다. 형이상학의 영역은 저 너머에 있으며, 반복을 끝맺는다… 모나드는 결코 무한한 분할이 도달할 수 없는, 그리고 무한히 분할된 공간을 끝맺는 고정된 점이다.” 바로크 건축을 정의하는 것은, 파사드와 안쪽, 내부와 외부, 내부의 자율성과 외부의 독립성 사이의 분리다. (40, 56)
뵐플린(Heinrich Wölfflin 1864-1945)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렇게 말한다(“바로크 예술이 우리에게 엄습해오는 가장 강렬한 효과들 중 하나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파사드의 격앙된 언어와 내부의 차분한 평화 사이의 대조이다.” (40, 57)
루세(Jean Rousset, 1910-2002)는 바로크를 파사드와 내부의 분리를 통해 정의한다. ... “… 바로크의 파사드는 구조에 부합되는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으면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내부는 자신 쪽으로 되돌아오고 닫힌 채 남아 있으며, 유일한 시선점, “절대자가 머무는 작은 궤”로부터 내부 전체를 발견하는 응시에 맡겨지는 경향이 있다. (40 57)
40 새로운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선, 긴장을 해소하거나 또는 분리를 재배분하는(répartir) 범위 내에서 두 층을 구분하는 것이다. (40-41, 57)
무거운 물질의 규정된 겹주름을 따라 안쪽으로 휘어진 것은 아래층(en bas)이다. .. 영혼 즉(또는) 정신의 주름이외의 것이 아닌 자발적인 주름으로 뒤덮여 있으면서, 무중력 상태의 닫힌 내부인 것은 위층(en haut)이다. (41 57)
하나는 형이상학적이고 영혼들과 관계하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이고 신체들과 관계한다고 해서, 이 두 벡터가 같은 세계, 같은 집을 구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41 58)
신플라톤주의적인 전통의 계단으로 된 우주. 그러나 두 층으로만 되어 있는 세계, 그리고 상이한 체제를 따르는 두 측면으로부터 반향(反響)되는 주름에 의해 분리되어 있는 세계, 이것은 가장 전형적인 바로크의 공헌이다. 우리가 본 것처럼, 이것은 우주(cosmos)가 “세상”(mundus, 세계)으로 변형됨을 표현한다. (41 58)
41 소위 바로크 회화 중에서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 작품과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작품은 서로 비교할 수 없이 빛을 발한다. 그럼에도 이 둘은 공통으로 바로크의 특징을 지닌다. (40, 58)
틴토레토에게서, .. 반대로 상위의 절반은 영혼들을 끌어당기고, 그것들에 노란 빛의 주름들과 신체들을 되살리는 불의 주름들을 겹치고, 어떤 현기증(un vertige)을, “높은 곳의 현기증”을 공유하게 하는 강력한 자석처럼 작용한다: 이를 테면 “최후의 심판” 두 절반. (42, 59)
§III. 3. 하이데거, 말라르메, 주름 59 Heidegger, Mallarmé et le pli 42
그러므로 내부와 외부의 분리(scission)는 두 층의 구분을 지시하지만, 두 층은 다음과 같은 주름(le Pli)을 지시한다(renvoyer). .. 하이데거(Heidegger)가 두겹주름(Zwiefalt)을 차이의 차이산출자(différenciant de la différence)로서 환기시킬 때, 그것은 무엇보다도 분화가 미리 전제된 ‘분화되지 않은 것’이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양쪽 면 각각에서 끊임없이 펼쳐지고 다시 접혀지는 “차이”(une Différence), 하나를 다시 접으면서 다른 하나를 펼치는 “차이”를 지시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 공연성(coextensivité) 속에서 운동하는 “차이”. (42, 59)
주름은 아마도 말라르메(Mallarmé, 1842–1898)의 가장 중요한 용어일 것이다. 아니 용어일 뿐만 아니라, 차라리 그를 위대한 바로크 시인으로 만드는 작동, 조작적 행위이다.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주름의 시다. 세계의 주름, 그것은 부채(l’éventail) 또는 “일체를 이루는 주름(l’unanime pli)”이다. (43, 60)
도시를 드러내는 “주름에 따른 주름”을 따라서 파악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펼쳐진 부채(l'évantail)는 그것의 부재 혹은 후퇴, 먼지들의 응집체, 속이 빈 집합체들, 환각적인 군집체들과 결집체들을 드러낸다. (43 60-61)
43 라이프니츠에게서 이것은 부채(l’éventail)의 주름들이 아니라 대리석의 암맥들(les veines)이었다. 한편 다음과 같은 모든 물질의 겹주름들이 있다. (43, 62)
다른 한편 영혼 안에 주름들이 있다. 여기서 변곡은 포함(inclusion)이 된다(말라르메가 주름잡기가 압축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더 이상 보지 않고, 읽는다. 라이프니츠는 ‘읽는다(lire)’라는 말을 모나드의 특권 지역의 내부 행위로서, 동시에 그 모나드 자체의 전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작동(l’acte)로서 사용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총서(livre total)가 말라르메와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의 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43-44, 62)
§III. 4. 바로크의 빛 63 La lumière baroque 44
44 바로크는 빛과 색들의 새로운 체계와 분리될 수 없다. 사람들은 우선 빛과 어둠을 1과 0처럼, 가느다란 분수선으로 분리된 세계의 두 층처럼 간주할 수 있다.: “행복한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 그럼에도 대립은 중요하지 않다. .. [위층도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어둡고 거무스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이 바로크의 공헌이다. (44, 63) - [형상의 존재와 질료의 무한정자와 같은 대비는 이미 신화에서 제우스의 신들과 거인족들 사이에 관계와 같다. 왜 상층에 훌륭함, 착함, 행복 등의 도덕적 관념을 불어넣었느냐는 전쟁시대에 승자에 대한 찬미와 아부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나아가 오만과 무모함이 그 속에 내포적 성질로 들어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이것을 중국의 양과 음으로 대비되는 관계로 했을 때, 왜 음양(그림자와 빛)이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Fohy에 대한 것을 fr.en.Wiki에서 찾을 수 없었다. 추측컨대, 음양의 기호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44SLA)]
틴토레토, 카라바지오의 작품은 적갈색 어두운 바탕을 사용하는데, 그 위에 그들은 가장 넓은 그림자를 위치시키고 그림자를 향해 색조를 엷어지게 하면서 직접 붓질을 해나간다. 그림은 지위를 변화시키고, 사물은 배경에서 솟아오르며, 색들은 어두운 본성을 보여주는 공통의 바탕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형태들은 윤곽에 의해서보다는 겹칩(leur revouvrement)에 의해 정의된다. (44, 63-64)
라이프니츠는 철학자의 신앙 고백(1673)에서 말한다. “빛은 어둠 한가운데 있는 균열을 통해서인 듯 미끄러져 들어온다”. (45, 64)
또한 모든 내부의 작은 거울들을 통해 흰색을 산출한다. 빛은 흰색을 만들지만, 그림자 또한 만든다. 그것은 흰색을 만들고, 그 흰색은 모나드의 밝혀진 구역과 뒤섞이지만, 어두운 바탕, 즉 ‘어두운 것’을 향해 어두워지거나 또는 엷어지는데, 거기서부터 “다소 강하면서 신중하게 다루어진 그늘과 색조를 통해 사물들이 밖으로 나온다.” 이는 데자르그(Desargues, 1591-1661)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원근법을 역전시키거나 “눈 대신 빛들을, 대상 대신 불투명한 것들을, 그리고 투사 대신 그림자를”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뵐플린(Wölfflin 1864-1945)은 증가하고 감소하며 정도에 따라 퍼지는 빛의 이러한 점진성에서 교훈을 얻는다. (45 64) [아래 두 극단을 참조하시라.]
명암은 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계열을 따라 모나드를 채운다. 한쪽 극단에는 어두운 바탕, 다른 극단에는 봉인된 빛(lumière scellée). (45 64) [영혼 신체는 두 극단이라 하자. 한 쪽은 심층이고 다른 한쪽은 상층으로 빛의 세계이다. 플라톤이 국가론(7권)에서 상층에 태양을 두고, 심층에 동굴 속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비유했는지를 생각해 보다. 어른거리는 그림자, 방황하는 원인, 움직이는 괴물, 그 생성은 그림자로서만 끝나는 것일까? 신체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욕망이 표현되는 표면은 신체의 피부이며, 그 모습의 제한성 때문에 무의식은 표출에서 제한을 받는다. 이 제한 봉인된 빛이 아닌가! (44SLB)]
계열 밖에서는 한편, 우리는 “빛이 있으라”고 말했던 신과 그와 더불어 거울-흰색을 갖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받아들인 광선들을 더 이상 반사하지 않는 무한히 많은 구멍들에 있는 어둠들(les ténèbres) 또는 절대적인 검정을, 즉 궁극적으로 이 모든 구멍들로 만들어져 있는 스폰지같이 무한히 구멍 뚫린 물질을 갖는다. (45, 65)
46 철학의 무대 위로 독일이 등장한 것은, 니체(Nietzsche)에 따르면, “심오하다”(심층이다, 깊이 있다)기보다는 주름과 겹주름들을 충만한 것으로 드러나는 독일적인 영혼 전체를 함축한다. (46, 65)
라이프니츠는 바로크적 특질(선긋기) 속으로 나아간다. “독일 유형으로서 라이프니츠는 칸트보다 흥리롭다: 순진하고, 고상한 말로 가득하고, 교묘하고, 융통성있고, 유순하고, (크리스트교와 기계론 철학 사잉의) 매개자이고, 마음속으로 놀라운 대담성을 갖고 있고, 가면 밑에 본심을 감춘 채 정중하고 괴롭히고, 겉보기에 겸손하며‥…. 라이프니츠는 위험하다. 파사드와 그것의 철학을 필요로 하는 훌륭한 독일인이지만, 무모하고 자신 안에서 극단적으로 불가상의이다.” (46, 65)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완전성의 정도에서 차이나는 같은 사물이다.” (46, 66) [지성의 위계화를 대신하는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기하학적으로 원들의 동연성에서 성립하는 것이라면, 본성의 차이는 세분화에서 생성과 진화의 개체들이며, 이들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공연성이지만 각각은 특이성들이다. 즉 65억 인류는 하나하나 특이자들이다. (44SLB)]
§III. 5. 개념의 탐구 66 Recherche d'un concept 46
46 바로크의 가장 훌륭한 발견자들, 가장 훌륭한 주석가들은 그 용어의 일관성(la consistance de la notion)을 의심했으며, 자신들의 의향에 반하여 그 용어가 임의적으로 확장될지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46, 66) - [그러면, 보편자 논쟁에서부터 용어가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기호는 그 대표하는 방식에 차이를 갖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 기호(단어)를 일관되게 쓴다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간단히 ‘나’, ‘주체’는 쓰이는 범위에 따라 이중성 4중성 등으로 배가된다. 무한증식을 하는 나, 주체의 확장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함에도 일정한 봉합을 하는 것은 생애의 유한성에 비추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한 이름의 고유명사는 그 인간이 관 뚜껑을 박았을 때, 그 의미의 한계가 끝나는 것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의미는 그 이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한 계속 증식하여 만들어진다. 그 무한 증식에 가치의 잣대를 대고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달리 말하려면, 살아보라고 하는 것이 더 정답일 것인데, 살아보면 죽은 자가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 즉 효과에 대해 검증할 수 없다. 새로운 증식은 살아있는 자가 만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름은 겹주름과 더불어 주름을 재형성하며, 확장(진화)해가면서 주름조차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44SLB)]
불규칙한 진주들은 현존하지만, 바로크는 이유자체를 형성하는 개념 없이는 아무런 현존한다는 근거를 갖지 않는다. 바로크를 비현존으로 간주하는 것이 쉽고, 개념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47 66)
이런 관점에서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를 접근시켰던 사람들은 종종 그를 너무 넓은 개념의 이름하에 두었다. 이를테면, 크네히트(Knecht, 1942-2009)와 “대립적인 것들의 일치”; 뷔시-그뤽그만(Christine Buci-Glucksmann, s.d.)은 훨씬 더 흥미로운 규준, 즉 보기(le voir)와 응시(le regard)의 변증법을 제안한다. 그러나 기 규준은 이번에는 아마도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단지 광학적인 주름을 정의하는 것만 허용할 것이다.
만일 바로크를 정확한 역사적 경계 밖으로 연장시킬 수 있다면,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언제나 이 규준 덕분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주름 안에 살기(La Vie dans les plis, 1949)를 썼을 때 미쇼(Michaux 1899-1984)를, 말라르메를 원용하여 주름에 따른 주름(Pli selon pli)의 블레즈(Boulez, 1925-2016)를, 주름잡기(le pliage)로 방법을 만들었을 때 한타이(Hantaï, 1922-2008)를 재인식할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를 들어 우첼로(Uccello 1397-1475)에게서 우리는 어떤 이유로 이미 바로크적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가? 그것은 그가 파랑ㅎ고 붉은 말들을 그리는 데에, 그리고 하늘의 모든 점을 향한 관선들처럼 창들을 위로 그려 올리는 데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드리워진 천 주름들이 얼굴 전체를 감싸도록 머리 위에 얹는, 나사 천으로 덮여 있는 나무로 된 테인 마조키(mazocchi, 모자의 일종)”를 그린 것이다. (47, 67)
그[우첼로]는 동시대인의 몰이해와 충돌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들을 최고의 힘으로 전개하는 역량과 주름있는 샤프롱(chaperon)[두건의 일종]들의 이상한 계열이 그에게는 위대한 도나텔로(Donatello, v. 1386-1466)의 대리석의 장엄한 형태들보다 더 계시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히 주름을 따라 지나가고, 건축가, 화가, 음악가, 시인, 철학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바로크적인 선이 있을 것이다. (47-48, 67)
발트뤼세티스(Baltrusaitis 1903-1988)는 주름을 일반적으로 분리를 통해, 그렇지만 분리된 두 항을 서로서로 되던지는 분리를 통해 정의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로마네스크의 주름을 형태적인 것과 기하학적인 것의 되던짐-분리를 통해 정의한다. (48, 66-67)
주름들은 자신들의 지지대, 직물, 화강암과 구름에서 빠져나와 무한한 윤곽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엘 그레코(Greco, 1541?-1614)의 「올리비에 정원의 크리스트」(런던 박물관 소장)처럼. 또는 「크리스트의 세례」에서는 장딴지 무릎의 반대-주름, 즉 장딴지의 역으로서의 무릎이 다리에 무한한 파동을 부여한다. (48, 68)
바로크의 극단적인 특수성... : 예술일반에 대한 바로크의 공헌, 철학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공헌. (48, 68) [현존은 아페이론과 연관이 크다.]
§III. 6. 바로크의 여섯 미학적 특징들 68 Les six caratères esthétiques du Baroque 48
1. 주름: 바로크는 무한한 작업(l'oeuvre) 또는 작동(l'opération)을 발명한다. (48 68)
주름은 나아가 “형상”을 결정하고 나타나게 하며, 이것을 표현의 형상, 게슈탈트(Gestaltung), 발생적 요소 또는 변곡의 무한한 선, 유일한 변수를 가진 곡선으로 만든다. (49 69)
2. 내부와 외부: 주름은 물질과 영혼, 파사드와 닫힌 방, 외부와 내부를 분리시키거나 또는 그 사이를 통과한다. (49, 69)
바로크 건축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두 원리를, 즉 운반의 원리와 내부 장식의 원리를 대조시켰다(때로는 그로피우스Gropius, 때로는 로스Loos). 이 둘 사이의 화해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필연적으로 조화롭고, 새로운 조화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동일하게 표현된 선, 선(la ligne)이다. (49, 69)
3. 높은 곳과 낮은 곳 [윗층(Le haut)과 아래층(le bas)]: 분리의 완전한 일치, 또는 긴장의 해소는 두 층의 분배(la distribution)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여기에서 두 층은 단 하나의 같은 세계이다(우주의 선, la ligne d'univers). (49, 69)
바로크는 대표적인 앵포르멜 예술(l’art informel)이다: 당에, 땅의 표면에 가까이에, 손이 미치는 곳에서 바로크는 물질의 텍스처(les textures, 직조법)를 포함한다(현대의 위대한 바로크 화가들, 파울 클레(Paul Klee), 포트리에(Fautrier), 뒤뷔페(Dubuffet), 베탕쿠르(Bettencourt)‥…). 그러나 앵포르멜은 형상의 부정이 아니다. (49 70)
그러므로 앵포르멜은 또한 비물질적인 주름들을 포함한다. 물질들은 바로 바탕이고, 반면 주름 잡힌 형상들(formes)은 양식들(樣式, manières)이다. 사람들은 물질들(des matières)에서 양식들(aux manières)로 나아간다. 땅과 지면에서 주거 양식과 응접실로, 텍스처학(Texturologie)에서 주거학(Logologie)으로, 이것은 뒤뷔페의 두 개의 질서, 두 개의 층이며, 여기에는 식별불가능성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것들의 조화의 발견이 함께 한다: 이것은 하나의 텍스처, 또는 영혼의 주름, 사유의 주름인가?. (50 70) [벩송의 두 질서: 하강과 상승, 상승이 영혼의 질서이고 하강이 기하학 질서이다.]
바로크에서 물질과 형상을 대체하는 것은 재료-힘의 쌍이다(원초적인 힘들은 영혼의 힘들이다). (50, 71)
4. 펼침(Le dépli): 이것은 접힘의 반대나 소멸이 아니다. 접힘 작용의 연속 또는 확장, 접힘이 현시(顯示)되는 조건이다. 접힘이 재현되기를 멈추고, ‘방법’, 작동, 작용이 되면, 펼침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작용의 결과가 된다. 한타이는 관(管) 모양의 우글거리는 주름을 재현하면서 시작하지만, 곧 천이나 종이를 접는다. .. ..때로는 고체가 모서리를 따라 규칙적으로 접힌 평면위에 내부 면들을 투사한다: 여기에서는 주름이 받침점을 갖는데, 각 교차점에서 묶이고 닫히고, 펼쳐지면서 내부의 흰색을 회전하게 한다. 때로는 물질의 겹주름 안에서 색을 진동시키고, 때로는 비물질적인 표면의 주름 안에서 빛을 진동시킨다.(50 71)
그러나 바로크의 라이프니츠는 공허를 믿지 않으며, 그가 보기에 이것은 겹주름 잡힌 물질로 언제나 가득하다. 그 결과 이진법 산술은 십진법 체계 그리고 자연 자체가 외형적인 공허 안에 감춰둔 주름들을 꺼내어 중첩시킨다. 주름들은 바로크와 라이프니츠에게서 언제나 충만하다. (51, 72)
5. 텍스처들(Textures, 배열, 천을 짜는 방식): 라이프니츠의 자연학은 두 가지 주요한 항목(chapitres)을 포함한다. 하나는 소위 파생적인 능동적 힘들과 관계하며, 이는 물질에 연관한다. 다른 하나는 수동적인 힘 또는 재료의 저항력, 텍스처다. (51, 72) [플라톤의 티마이오스편, 즉 박종현의 제3장 지성과 제4장 필연이란 두 개의 장(chapitres)과 같다. 어쩌면 라이프니츠는 플라톤을 벗어나려고 했으나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닫힌 창이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크리스트교의 토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조화를 이야기한 것은 독일을 통일을 바랬던 염원이라는 말은 플라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플라톤도 그리스 사회가 하나의 통일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이다. 백색 존재론의 시발이었던 크세노파네스의 생각이 그 기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다. 그는 존재는 구(球 공)처럼 생각했고, 그 존재는 하나 즉 아마도 플라톤이 바란 전체(to pan 우주)였을 것이다. / 서구철학사가 심리학적 전도라는 것은 외부로부터 파악했기 때문이지만, 과거에는 내부로부터 변화로부터 역사로부터 진화로부터 파악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44SLB)]
바로크와 조작적 연관(son rapport opératoire)에 있는 마니에리슴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는 라이프니츠가 ‘종이(le pappier) 또는 막(la tunique)’을 원용하면서 말했던 것이다. (51, 73)
이런 관점에서 물질의 주름 또는 텍스처는 여러 요인에 관계해야만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빛, 명암 대조, 주름이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그 자체로 시간과 조명에 따라 달라진다(트로뫼르, 니콜 그르노가 수행한 동시대의 연구들). (52, 73)
오늘날 하이젠(Helga Heinzen, 1933-)이 새로운 잠재력을 불어놓은 천의 부드럽고 중첩 가능한 깊이. 줄무늬의 주름잡힌 천의 재현이 그림 전체를 뒤덮으면, 이번에는 이슬람에서 온 선을 따르는 낙하와 상승, 파도와 태양 안에서 신체는 사라진다. (52, 73)
마치 르농시아(Cristiant Renonciat 1947-)의 나무 조각드에서, 레바논의 삼나무가 유연한 덮개천이 되고, 또는 파라냐의 소나무가 면(綿)과 깃이 될 때처럼 말이다. (52, 74)
또 다른 방식으로 조작가 장클로(Georges Jeanclos, 1933-1997)가 비록 유비적이긴 하지만 다른 길을 찾아낸다. 그 길이란 무한하게 겹주름 잡혀 있고 이어 있어 매어 있는 자연적인 양배추 잎, 또는 무한하게 늘어나는 나사천으로부터 형이상학적인 작은 완두콩들로 나아가고, “잠의 주름들”이라는 표현에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는 정신적인 잠자는 사람들 또는 모나들의 머리로 나아갈 때 나타난다. (52-53, 74)
쟝클로-모세(Georges Jeanclos-Mossé, Georges Jeanclos, 1933-1997), 유태계 프랑스 조각가. 국립고등미술학교 출신, Jeanclos-Mossé: terres cuites et dessins (Musée d'art moderne, Georges Jeanclos, 1983) [진흙을 천 또는 종이장처럼 결과 주름있는 방식으로]
6. 파라다임(Le pardigme) [계열이란 뜻도 있다]: 주름의 모델에 대한 탐구는 물론 물질의 선택을 거쳐간다. 그것은 동양이 보여주듯 종이의 주름인가, 아니면 서양을 지배하는 듯한 직물의 주름인가? (53 74)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주름의 두 층을 소재로 논어를 읽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주름에 비추어서 공자가 인간을 어떻게 파악했을까? 그가 주역을 닳도록 읽었다는 그 삼원소(¦¦¦ 곤, ||| 건) 속에 주름의 횡단성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횡단성을 역(易 변화)을 이루는 방식이라면, 효들은 특이점의 양식들이 되지 않을까? (44SLB)]
얽어 짜는 것으로서 직조(織造)의 플라톤적 패러다임은 여전히 텍스터에 머물러 있으며 주름의 형상적인 요소들을 끌어내지 않는다. 즉 정치가와 티마이오스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그리스 주름은 서로 뒤섞여 있는 두 항의 공통 척도를 상정하며, 따라서 그 비율의 반복에 상응하는 원을 설정하면서 작동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플라톤(Platon)에게서 형상들은 주름이 잡혀 있지만, 그러나 누구도 주름의 형상적 요소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것은 무한과 더불어서, 통약불가능한 것과 척도에서 벗어난 것 안에서[아페이론 안에서], 가변적 곡률이 원의 왕위를 대체할 때에만 나타날 수 있다. (53, 75) [원의 왕위는 플라톤의 이데아 계이다. 들뢰즈는 아페이론에다가 왕관 쓴 아나키스트라 한다. (53RMH)]
이처럼 물질들과 가장 다양한 영역들을 포개는 일이 형상적 연역에 귀속된다. 형상적 연역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구분할 것이다. 단순하고 복합적인 [1]‘주름들’(les Plis [코바늘 천]); [2]‘접은 가장자리’(les Ourlets 매듭과 바느질은 주름에 의존하는 것들이다); 받침점이 있는 [3]‘나사천의 주름들’(les Drapés). 그리고 나서 물질적 [4]‘텍스쳐’(les Textures)들이 나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5]‘집적체’(les Agglomérats) 또는 ‘응집체’(les Conglomérats) (펠트천, 즉 직조가 아니라 압축에 의한 것)가 나온다. 우리는 앞으로 이 연역이 어떤 점에서 바로크 또는 라이프니츠 고유의 것인지 볼 것이다.(53-54, 75-76, 제3장 마지막 문장)
III. 7. L'art moderne, ou l'informel: textures et formes pliées
[이 단락은 따로 없다. §III. 6.의 3항과 5항에 텍스처들이 들어있다. -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교직도 천짜기의 한 방식이다. 위의 제3장 6항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들뢰즈는 펠트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펠트는 3500년전 청동기시대에 있었다고 하고, 기원전 6세기에 발견된다고 한다. 펠트는 어떤 직물보다 먼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뭉치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44SLB)]
[현대 예술 즉 엥포르멜 예술(텍스처로된 또는 주름들로 된 예술)은 바로크를 넘어서 로코코의 주름진 망사에서 표현된 것보다 더 바탕자체(아페론)을 주름으로 삼는다. 참조: §9.3. (168, 225) ]
(7:05, 44SLB) (12:16, 53RMH)
# 인명록**
5000 태호(太昊) 복희(伏羲): 음양의 변화 원리에 근거하여 팔괘(八卦)를 창제하고, 8종의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부호를 사용하여 천지간의 만사만물을 개괄하였다고 한다. 하늘(天), 땅(地), 물(水), 불(火), 바람(豊), 천둥(雷), 산(山), 못(澤). / 라이프니쯔(G. Leibniz)는 당시 중국에 있던 선교사 부베(J. Bouvet)와의 서신을 통해 64괘도를 알게 된 후, 자신이 개발한 이진법이 수학에 새로운 광명을 열어 줄 것을 확신하였다.
510 파르메니데스(Parmenide Παρμενίδης, 전510년경-전450년 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이탈리아 남부의 엘레아 출생, 엘레아 학파 철학자. [그의 사망시 소크라테스 나이 스물이다. 장소도 시기도 달라 직접 배울 수 없다. 플라톤의 작품은 가상이다.]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전428/427-전348)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제자.
O
1386 도나텔로(Donatello, Donato di Niccolò di Betto Bardi, v.1386-1466) 이탈리아 조각가. 「Saint Jean l'Évangéliste」(1409–1411, 좌상, 대리석) [미켈란젤로(1475-1564)의 「모세상(Moïse, vers 1513–1515)」(Tombeau de Jules II)은 도나텔로의 작품의 영향일까?]
1397 우첼로(Paolo Uccello 1397-1475) 르네상스 초기화가. 「대홍수(Le Déluge (1446-1448)」, Chiostro Verde de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ie): cette peinture murale est une expérience de Paolo Uccello sur la représentation où il va chercher les limites de la perspective en l'accentuant à son maximum. 「La Bataille de San Romano」(détrempe sur peuplier, 182 cm × 320 cm)(1456년경)
1471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 독일 화가. 원근법을 과학적 실험으로 사용했다.
1511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 역사가.
1518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Jacopo Robusti, 1518-1594) 이탈리아 화가 일반적으로 마니에리슴 (Manierismus)에 분류한다. / Le Jugement Dernier et Moïse recevant les Tables de la Loi et Les Hébreux préparant le veau d'or, 1560-1562. - huile sur toile - 1450 x 590 cm - (Madonna dell'Orto (Venice, Italy)) // 미켈란젤로(1475-1564)는 시스티나 예배당 제단 뒤의 벽에 <최후의 심판>을 1536년 5월 그리기 시작했다.
1541 그레코(El Greco, 1541?-1614) 스페인 화가. 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nikos Theotokopoulos), 「오루가즈 백작의 매장(L'Enterrement du comte d'Orgaz, 1586)」
1591 데자르그(Gérard Desargues, 1591-1661), 프랑스 기학학자 건축가. 사영기하학.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의 철학자, 수학자. Préceptes pour avancer le sciences(GPh, VII, p. 169).
1688 그라브산드(Willem Jacob 's Gravesande, 1688–1742) 네델라드 수학자, 자연철학자. 라이덴 대학 교수, 뉴턴을 전파했다. 고전 역학을 실험하였다.
1749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 낭만주의 작가, 철학자, 과학자. 바이마르 대공국에서 재상직을 지내기도 하였다. 색체론(Farbenlehre, 1810)(Le Traité des couleurs)
1842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Étienne Mallarmé 1842–1898), 프랑스 시인, 비평가. 상징주의 시인, Hérodiade, 1864-1867
1864 뵐플린(Heinrich Wölfflin 1864-1945) 스위스 예술사가 바로크 전문가.
1867 슈보브(Marcel Schwob, 1867-1905) 프랑스 작가. 상징주의에 가깝다. Vies imaginaires (1896)
1870 로스(Adolf Franz Karl Viktor Maria Loos, 1870–1933) 오스트리아 건축가, 현대 건축이론가. 치장과 범죄(Ornament und Verbrechen, 1908: Ornament and Crime)
1872 클레랑보(Gaëtan, Gatian de Clérambault, 1872-1934) 프랑스 정신과 의사이다.
1878 골드슈타인(Kurt Goldstein, 1878-1965) 독일-미국 신경학자, 정신과의사. 유기체의 구조(Der Aufbau des Organismus. Einführung in die Biologie unter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der Erfahrungen am kranken Menschen, 1934).
1879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스위스 화가이자 음악가.
1882 리츨러(Kurt Riezler 1882-1955) 독일 철학자, 정치가. 외교관. Parmenides, 1934.
1883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 1883–1969) 독일 건축가, 알토(Alvar Aalto)와 바우하우스 학파 창설.
1884 베르트람(Ernst Bertram, 1884-1957) 루터파 가정 출신, 독일 쾰른대학 게르만학 교수, Nietzsche. Versuch einer Mythologie. 1918
1887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Charles-Edouard Jeanneret-Gris, 1887-1965) 프랑스 건축가 도시설계자. 1959년 에뵈에 세운 수도원 「Couvent de La Tourette, 1959」(Eveux, Rhône)]
1889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 철학자. Die Grundprobleme der Phänomenologie. 1927 (trad. Jean-François Courtine), Les problèmes fondamentaux de la phénoménologie, Paris, Gallimard, 1989, 410 p. Essais et conférences(독어판 1958, 불어번역 1980)
1892 판오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 독일출신 미국 이민자, 예술사가, 수필가. La Vie et l’Art d’Albrecht Dürer (The Life and Art of Albrecht Dürer, Princeton, 1943),
1895 맘포드(Lewis Mumford 1895-1990) 미국 역사가, 특히 기술과 과학의 역사, 또한 도시화의 역사. La cité à travers l'Histoire (1961, reed. 1989: Marseille, Agone, 2011).
1898 포트리에(Jean Fautrier 1898-1964) 프랑스 화가.
1899 미쇼(Henri Michaux 1899-1984) 벨기에 태생 프랑스의 서정시인, 화가. 주름 안에 살기(La Vie dans les plis, 1949)
1901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 프랑스 화가, 조각가, 조형예술가. 예술 스타일에 관한 첫 이론가. Prospectus aux amateurs de tous genres 1945, Prospectus et tous écrits suivants, textes réunis et présentés par Hubert Damisch, t. I et t. II, Paris, Gallimard, 1967120 Tome II à la Bibliothèque Forney. / Catalogue des travaux de Jean Dubuffet. Fascicules i-xxxviii, Paris, 1965-1991
1902 폴록(Charles Pollock 1902-1988) 미국 화가. 잭슨 폴록의 형이다.
1903 발트뤼세티스(Jurgis Baltrusaitis 1903-1988) 리투아니아 예술사가. 불어로 썼다. Formation, déformation, 1986(Flammarion),
1910 루세(Jean Rousset, 1910-2002) 스위스 문학비평가, 바로크 문학 탐구자. La Littérature de l'âge baroque en France. 1953, L'Intérieur et l'Extérieur. Essais sur la poésie et sur le théâtre au 17é siècle 1968.
1912 폴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 미국의 화가로 추상표현주의의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벽화(1943)” 이 그림은 무질서 속에서 덩어리의 엉킴이 생성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1917 베탕쿠르(Pierre Bettencourt, 1917-2006) 프랑스 화가 시인 작가.
1920 슈타인버그(Leo Steinberg 1920-2011) 러시아 태생, 베를린에서 자라고, 런던에서 예술공부. 미국 예술비평가 역사가. 수필집 Other Criteria, 1972.
1921 파리스(Jean Paris, 1921-2003) 프랑스 대학교수, 수필가, 세익스피어, 조이스, 라블레 전공. L'Espace et le Regard, Coll. Pierres Vives, Seuil, 1965.
1921 본프와(Geneviève Bonnefoi, 1921-2018), 프랑스 예술비평 및 작가. Présidente de l'Association culturelle de l'Abbaye de Beaulieu, à Ginals (en 1990) “Hantaï (1973)“
1922 한타이(Simon Hantaï, 1922-2008) 헝거리 태생 프랑스화가. 독창적 주름잡기(le pliage)[폴딩(Folding)] 방법(주름위에 색칠하기)
1925 라우셴버그(Robert Milton Ernest Rauschenberg, 1925-2008) 미국 조형예술가. 1953 ‘드 쿠닝 지우기(Erased de Kooning Drawing)’(1953)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작업.
1925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 프랑스 작곡가, 교육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주름에 따른 주름(Pli selon pli)(1957, 1962. 등등 다섯 편으로).
1933 플레네(Marcelin Pleynet, 1933-) 프랑스 시인 소설가 예술비평가. Identité de la lumière. 1983
1933 하인젠(Helga Heinzen, 1933- ) 스위스 현대예술가, 의상 그림(?) 전시 「Apparences, 1982」 「Mexique I, 1983」(Acrylic and graphite(흑연) on shaped canvas) [그림보면 주름판위에 천을 걸어놓은 것 같은데..]
1933 쟝클로-모세(Georges Jeanclos-Mossé, Georges Jeanclos, 1933-1997), 유태계 프랑스 조각가. 국립고등미술학교 출신, Jeanclos-Mossé: terres cuites et dessins (Musée d'art moderne, Georges Jeanclos, 1983) [진흙을 천 또는 종이장처럼 결과 주름있는 방식으로]
1934 코프만(Sarah Kofman, 1934-1994) 프랑스 철학자, 수필가. 플라톤, 니체, 프로이트 전문가. Camera obscura. De l'idéologie, Paris, Galilée, « La Philosophie en effet », 1973. En appendice: « Usage de la Chambre obscure », par Willem Jacob 's Gravesande(1688–1742). / 베렉 코프만의 딸. [(Bereck Kofman, 1900-1943) 폴란드 하시드 유대계 정통랍비. 아우슈비츠(Auschwitz)에서 암살당했다.]
1937 사르뒤(Severo Sarduy, 1937-1993) 큐바 시인 작가, 극작가 문학예술 비평가. 네오바로크미학, 수필집 Barroco. 1974(“Le Caravage, la ville bourgeoise”) . 남성 호모와 복장도착을 다룬다. [카라바지오(Caravaggio)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의 밀라노부근의 도시 미켈란젤로(1571-1610)가 태어난 도시] 에 있는 도시]
1938 푸르까드(Dominique Fourcade 1938) 프랑스 시인 예술비평가. « Un coup de pinceau c'est la pensée », dans Catalogue de l'exposition au MNAM (1976)
1940 드브레(Régis Debray, 1940-) 프랑스 작가, 철학자. 고급공무원. 찬사(Eloge, 1986 “Le Tintoret ou le sentiment pratique de la vie”, pp. 13-57.
1942 크네히트(Herbert H. Knecht, 1942-2009) 스위스 철학자. La logique chez Leibnitz, 1981.
1944 미쇼(Yves Michaud, 1944) 프랑스 철학자. "Métaphysique de Hantaï". dans 'Simon HANTAÏ'.Paris, Ministère des Relations Extérieures AFAA, 1980, broché, 32 pp., (27,9 x 25 cm). /
1945 부시-글뤽스만(Christine Buci-Glucksmann, 1945k) 파리8대학 여성교수, 정치철학, 바로크 미학전공. 첫작품 Gramsci et l'État, 1975. 들뢰즈와 리오타르의 영향을 받아 바로크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연결에 관심을 갖고 있다. La Raison baroque, 1984, La folie du voir, 1986로 되어 있다.
1947 르농시아(Cristian Renonciat 1947-) 프랑스 조각가. 소르본 학부에서 철학공부, 나무, 마분지, 천등으로 조각. [재질 자체가 주름이며 주름을 형성한다.] 「Bâche 8 pli(1985)」. 「Trench Coat」 [개인전 1986년: Rétrospective, Maison de la Culture de La Rochelle ; Pli selon pli, Galerie Alain Blondel.]
1950 스칼라(André Scala, 1950-) 철학교수자격 통과, 교수. la genèse du pli chez Heidegger(근간)[Notes sur la genèse du Pli chez Heidegger (unpublished, 1987)
1951 크리스티안 프레몽(Christiane Frémont. 1951-) 철학교수자격 통과, 제3과정 박사. 연구자(Chercheur au CNRS) - [Discours sur la théologie naturelle des Chinois – 1 octobre 1987 de G. W. Leibniz (Auteur), Christiane Frémont (Sous la direction de)]
트로뫼르(Tromeur s.d.) / Philippe Tromeur, 프랑스 게임 디자이어. / Eric Tromeur 생태환경과학 연구소 연구원(2016년부터 논문 발표) 이둘이 아닌 것 같다.
그르노(Nicole Grenot ?-?)프랑스 예술가, 구글에 작품 소개에는 한타이 만큼이나(주름위에 색칠하기)
(16:15, 53R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