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경시대회 수상경력이나 학교 성적만으로는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교, 특목고에 입학할 수 없다. 세상이 바뀌고 교육 목표 역시 창의적인 인재 양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로와 장점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는 과정 안에 답이 있다.
다가오는 2학기부터 일선 학교에서는 정해진 교육과정을 앞서는 선행교육을 할 수 없다는 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된다. 고2 수업에서 고3 과정을 미리 가르칠 수 없고, 내신시험이나 중·고등·대학 입학시험에도 교과과정을 넘어선 문제를 출제할 수 없다. 방과 후 학교에서도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수업은 할 수 없다.
영재교육 입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입시자료로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 수상실적을 쓰면 선행학습 금지법에 위배된다. 지원하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강점을 어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형식의 자기소개서다.
영재교육전문가인 변문경 원장은 “과학고나 영재고를 목표로 두고 있는 상위권 학생들의 학습 패턴은 대부분 비슷하다. 선행학습과 각종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 나름의 스펙을 쌓는 것이다. 이제는 여기에 앞으로의 학업 계획과 진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는 것이 더해져야 할 때다”라고 조언했다.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좋은 학교에 가는 방법이 조금 더 쉬워진다.
변 원장은 “경시대회나 인증점수 없이 자신을 특성화시켜 합격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도구가 자기소개서”라며, “진로를 명확하게 알고, 그것을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학생만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쓸 것인가
자기소개서는 글 쓰는 능력이나 어휘활용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글이어야 한다. 남과 다른 나만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해야 하고, 그러한 특징들이 성장 과정 속에서 검증되고 쌓이는 가운데 나만의 장점이 되어야 비로소 눈에 띈다. 주인공의 스토리, 장점, 문제 해결 과정이 잘 나타나는 자기소개서가 좋은 자기소개서다.
수학을 좋아하는 수학영재의 경우를 예로 들면, 수학올림피아드에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수학 선행, 심화, 사고력까지 수학학원에 다니면서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내신 관리 잘하고 수학 공부만 잘하면 과학고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나만 쓸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간단한 통계 숫자만 봐도 자기소개서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야 매력적인지 답이 나온다. 전국에 있는 중학교는 3200여 개다. 중학생들이 영재학교에 지원하기까지 중간·기말 시험을 총 8번 치르게 된다. 기말 합산만 따져도 모두 4번이니, 각 시험에서의 전교 1등이라는 스펙은 3200×4=12800명이 쓸 수 있는 내용이다. 전교 1등이라는 스펙은 12800명이라는 군중 속에 묻혀버리는 상황. 합격에 대한 승산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영재학교의 경우 한 해 정원이 140명인데, 좋은 내신 성적이 당락을 좌우할 수는 없다.
결국 자기소개서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특별한 스토리로 합격자 정원인 140명 안에 들 수 있는 전략을 갖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진로를 탐색하고 고민한 문제의 해결 과정을 다양한 경험 사례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수상 결과로 구성한 스펙은 필요 없다
2015학년도 대입부터 학생부 종합전형의 자기소개서에 공인어학성적,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등 각종 경시대회, 영재교육원 교육이수 여부 등 외부 스펙을 기재하면 서류전형 점수를 0점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이 때문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토리를 구성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서 올림피아드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서 어떤 연구를 했고,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어필해야 한다.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화학도 공부하고, 최근에는 전통 약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동시장에 가서 우리나라에서 과거 감기에 쓰였던 약재들을 살펴보고 이러한 약재 추출물들이 식물이나 동물의 성장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 중이다”라는 내용은 전공 적성을 개발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담겨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좋은 자기소개서, 이런 내용은 꼭 들어가야 한다!
1 다른 학생과 다른 나만의 장점과 특성 2 진로 목표에 대한 조기 설정 3 이공계 및 순수과학 분야의 재능(영재고, 과학고의 경우) 4 진학 계획에서 의대 진학을 배제할 수 있는 가능성 5 과학, 수학 분야에 대한 열정 + 융합적 소양 6 영어 능력, 글쓰기와 어문학적 능력 7 그간의 열정과 전공적성 8 앞으로의 진학 계획
+자기소개서의 좋은 예 vs 나쁜 예
질문 지원한 전공과 관련하여 스스로 영재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나 경험들을 3가지 이내로 기술하시오.
학생A 저는 어려서부터 관찰과 실험을 좋아했습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얻은 장수풍뎅이를 3년간 키우면서 관찰력을 높인 것 같습니다. 또한 평소에 실험을 좋아해서 실험에 관한 과학학습만화, 과학도서, 잡지 등을 읽은 것이 과학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는 물리, 화학, 생물 등 모든 과학 분야를 좋아하며 흥미와 관심이 많습니다. 또한 학교 개별활동부인 창의과학부에 참여하여 여러 실험을 하며 창의성을 좀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학생B 여러 다양한 경험이 있지만, 올해 과학탐구보고서 작업을 하면서 우리 집의 전기 절약 방안에 대해서 탐구한 것이 가장 창의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집에 있는 다양한 전기 제품을 사용할 때와 안 할 때를 구분해서 스마트폰의 어플을 활용해 직접 계량기의 소모 전류를 측정하면서 어떤 제품이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지 직접 확인했고, 전기요금으로 환산하면 얼마를 아낄 수 있는지를 한전 전기요금체계를 참고하여 구체적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스마트폰의 유해성에 대해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반론, 평론에 집중한 결과 학교 대표로 교육청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분석 당연히 B학생의 자기소개서가 좋은 예다.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다. 자신의 흥미와 장래희망을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소개서는 입학담당관들의 눈에도 띄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A학생의 경우, 장수풍뎅이를 기른 것과 과학도서를 읽은 것 등은 영재성과는 관련이 없다. 영재성이라는 것은 남다른 재능인데, A학생의 자기소개서에는 자신만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부족하다.
+교육전문가 변문경이 알려주는 자기소개서 쓰는 노하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흥미와 장래희망을 발견하고 정확한 목표를 갖는 것이다. 본인이 목표로 정한 학교의 입학전형을 정확하게 꿰뚫고 거기에 맞는 경험을 채운 다음, 본인에게 최대한 경쟁력이 있도록 작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Q1 자기소개서에 대회 수상경력을 쓰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대회 수상경력을 써야 하나?
수상경력 자체만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대회 참여 여부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간혹 자기소개서에 대회 이름과 수상한 상장명만 기록한 자기소개서가 있는데, 입학담당관은 이러한 수상경력 자체를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준비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느낀 바는 무엇인지 등의 학생의 성장 스토리를 듣고 싶어한다.
Q2 담임 추천서가 당락에 영향을 미칠까? 사람마다 다를 텐데.
영재교육원의 경우 자기소개서와 추천서의 내용을 위주로 평가한다. 추천서는 당락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매우 중요하지만, 학생의 재능에 있어 입학담당관이 공감할 만한 실제 사례들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학생이 아무리 우수하고 뛰어나고 해당 영역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모두 주관적인 평가만 나열된다면 입학담당관들은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선생님으로서 객관적인 재능 사례들을 소개하고 평가에 도움을 주는 것이 추천서인 만큼, 선생님들께 추천서에 풍부한 재능 사례들을 반영해주실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좋다.
Q3 솔직한 자기소개서와 꾸며진 자기소개서, 어떤 것이 더 좋을지?
물론 꾸미는 것보다는 솔직한 자기소개서가 좋다. 그러나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는 것은 곤란하다. 자기소개서의 제한된 분량을 생각한다면 자신만의 강점을 어필하기에도 부족하다. 장래희망을 기술하라는 질문에 아직은 장래희망을 찾지 못했다고 하거나, 단점을 쓰라는 질문에 집중력이 약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거나 지구력이 부족하여 끈기 있게 실험을 하기 어려웠다는 등의 단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면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강점을 정리하되 단점을 꼭 써야 한다면 학습 태도나 성과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한 것으로, 특히 어떠한 방법으로 보완하고 있다는 내용을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Q4 실제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는 교수들은 무엇을 평가기준으로 보나?
차별성이 가장 중요한 변별기준이라고 강조한다. 그간 했던 학생 개인의 활동들이나 사고력을 얼마나 확대할 수 있느냐를 지표로 해서 평가를 내린다. 무슨 대회에서 몇 등이라고 등수를 매길 수 있는 문제의 차원은 아니다.
Q5 초등학생 때 꼭 개발해야 할 역량은 무엇이 있을까?
엄마가 꼭 해야 하는 역할을 꼽아준다면? 선행과 진도 빼기 식의 학습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선행도 필요한 학생과 필요하지 않은 학생이 있다. 다양한 재능을 모색하고 가장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초등학생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폭넓은 경험을 통해 아이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이를 위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파악한다. 교육의 주체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많은 엄마들이 본인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는데, 내 아이의 역사와 특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다. 좋은 안목과 꾸준한 관심을 가지면 아이의 재능을 잘 키워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