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가르치는 성경읽기 방법 71]
언약으로서 말씀을 배우는 방법 14:
어거스틴의 성경 읽기에서 지식이 지향하는 것 - 하나님을 즐김 2
어거스틴은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의 목적은 성경의 지식의 세계를 통해 참 실상이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성경의 문자를 잘 이해하는 데 아주 신실할 것을 권고하면서도, 성경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즐김으로 나가게 하는 길, 교통 수단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율법과 성경 전체의 완성과 목적은 사랑이다. 즉, 그 자체로서 즐겨야 할 존재(하나님)를 사랑하고, 또 우리와 함께 그 존재(하나님)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다른 사람)를 사랑하는 것이다.”(<<기독교의 가르침>> 제1권, 35장.39)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 자체로서 사랑하거나 즐겨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목적을 누리기 위해 ‘사용’(uti)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웃 사람도, 성경의 지식도 소중하지만, 우리가 즐거워할 존재인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를 가게 하는 ‘길’이요 ‘교통 수단’입니다. 성경도 이웃도, 우리가 목적으로 하는 존재, 즉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며 사랑하지만, 때가 되면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만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의지하고, 그것을 확고하게 붙들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성경도 필요 없다”(위의 책 1권,39장.44)라고 극단적인 표현을 씁니다. 성경은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우리가 성경을 배우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기는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7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제 3단계입니다. 먼저 제 1단계에서 죄인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제 2단계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며 경건한 마음자세로, 제 3단계에서 성경의 내용을 지식적으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성경의 전체 내용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임을 지식적으로 이해합니다. 다음 제 4단계는 강하고 담대함의 단계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복종하겠다는 경건한 마음이 생깁니다. 절망 가운데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만을 바라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자신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그 은혜의 보좌로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며, 영혼이 정화되어 하나님을 보고 즐거워 하게 됨
제 5단계로는 자비의 권고 단계(consilium misercordia)입니다. 먼저 하나님 사랑과 관련하여, ‘멀리서 빛나는’ 하나님의 빛을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러나 세상과 세상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깨끗이 정화해 갑니다. 이웃 사랑의 완성을 향해 계속 나아갑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단계까지 된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제 6단계는, 정화(purificatio)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빛은 더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에 대해 죽어가는 만큼 하나님이 더 보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 앞에 자신도, 이웃도 상대화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열심으로, 혹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불편함을 벗어나려는 생각에서 진리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때, 마침내 제 7단계 지혜(sapientia)의 단계까지 도달합니다. “그는 평화와 고요함 가운데 지혜를 즐깁니다(perfrui).” 자신도 다른 사람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7단계들은 실제로는 그 순서를 따라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동시에 일어납니다. “나는 지금은 몇 단계에 도달해 있다”라고 분명히 구분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성경 읽기 단계론은 우리가 성경 지식을 쌓는 데 머물지 않고, 성경의 주인공이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데 유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해서, 성경의 지식이라는 수단도 꼭 붙들어야 하고, 동시에 자기를 부인하고, 영혼과 의지를 계속 거룩하게 정화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까지는 성경을 ‘은혜의 수단’으로 삼을 때에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읽어야 하고, 읽으면서 암기하거나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어거스틴은 강조합니다.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의 지식도, 하나님을 즐거워함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 주셔야만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중략)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성도가 성경을 즐거워하는 것은, 더 정확히 말해서 성경을 수단으로 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보 201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