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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문수산 서쪽 자락의 롯데그룹 발복지(發福地)와 신격호 회장 묘소
1. 롯데그룹 발복지 신혁번(辛赫蕃)공 묘소
(신혁번공 묘소)
묘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산 85-1번지에 있다. 영산신씨(靈山辛氏) 탕산(碭山) 신혁번(辛赫蕃: 1807~1861)공은 신격호(辛格浩)회장의 5대 조부다. 영산신씨는 고려 말에 번창하였고 조선조에 들어 문과 급제자 53명을 배출하였다.
신혁번 공은 신덕창(辛德昌)공과 연안이씨(延安李氏)사이에서 삼남(三男)으로 태어났다. 슬하에 두 아들과 5명의 손자를 두었는데 차남(次男:辛百潤)의 삼남(三男:辛葶)후손에서 재벌 회장이 나왔다.
신혁번 공은 인정이 많고 부지런하며 알뜰한 성격으로 효성과 우애로 일을 삼았다. 어버이가 병들면 매번 대변을 맛보았고 숨이 떨어지면 손가락을 잘라 피를 주입하여 수명을 닷새 연장시킨 일도 있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효우군자(孝友君子)로 모두 칭송하였다 (公性篤勤儉以孝友爲職而親病每有嘗糞及殞命斷指注血延壽五日故鄕里咸稱孝友君子)고 비문에 기록되었다.
(하작마을 뒤 부모산)
멀리 동쪽에 우뚝 솟은 문수산(해발600m)이 소조산(少祖山)이 된다. 문수산 줄기가 서쪽을 향하여 달려와 부모산(父母山)인 하작마을 뒷산(금성체: 金星體)을 거쳐 이 곳 혈성(穴星)까지 우선(右旋) 말락용(末落龍)으로 내려와 둔기천을 만나 멈추게 된 용진처(龍盡處)이다.
오는 물길을 향하여 몸을 틀어 멈추니 역수국(逆水局)으로 재물 발복지(發福地)가 된다.
(마을에서 본 혈성 방향 옆모습)
마을 앞에서 볼 때는 마을 백호 자락의 밋밋한 줄기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밖에서 이곳에 오르기 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목격하고 다소 흥분이 되었다.
하나의 혈성(穴星) 개면처(開面處)의 넓지 않은 공간에서 3개의 줄기가 내려와 가운데에는 혈(穴)을 맺고 그 좌우(左右)로 본신(本身) 용호(龍虎)와 좌선궁(左仙宮:左先弓)으로 본신(本身) 안산(案山)을 갖추어 자체적으로 작은 국(局)을 이루었으니 흔치 않은 일이다.
부모산으로부터 서쪽으로 행하여 크게 가라앉았다 솟아올라 기복(起伏)과 속기(束氣)를 한 횡룡(橫龍)이 용진처(龍盡處) 마지막 봉우리인 혈성(穴星)에 비룡입수(飛龍入首)로 연결되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간 입혈맥(入穴脈)은 혈장(穴場)을 만들었다. 혈성 정상에서 내려간 줄기는 우백호가 되어 이곳 혈장을 보호하고 내려가 하수사(下手砂)가 되었다.
혈장(穴場)은 장유혈(長乳穴)로 상하로 길게 드리웠는데, 평탄(平坦)하였다. 비교적 높은 곳에 혈장이 길고 평탄하다는 것은 순전(脣氈)이 발달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순전은 혈(穴)을 맺고 남은 기운(여기:餘氣)으로 이루어지니 순전이 발달했다는 것은 혈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의미다.
기울어 내려오는 내맥(來脈)에 평탄한 혈장이니 음래양수(陰來陽受)로 음양 조화를 이룬 셈이다. 현재의 봉분이 음양(陰陽) 상교처(相交處)에 있는데 기울어 내려오는 맥(脈)과 기(氣)가 머무는 평탄한 곳의 경계 지점에 있다.
옛글에 맥(脈)에 장(葬)하는 것은 기(氣)에 장(葬)하는 것만 못하다(葬脈不如葬氣)고 했다. 여기는 온전한 기장(氣葬)이 아닌 일부 맥장(脈葬)을 하였으니 음살(陰煞)을 범하였다. 그러므로 현재의 위치보다 몇 발짝 아래로 내렸으면 더 좋았을 건데 정위치를 벗어났으니 아쉽다.
혈장 뒤의 내맥(來脈)은 넓고 완만하게 변화 없이 내려왔다. 긴 혈장 맨 위에는 신혁번 공의 묘가 있고 가운데는 비어있으며 맨 아래 끝에는 공의 큰며느리 청주한씨(淸州韓氏:辛百源配)의 묘가 있다.
혈장은 비교적 곧은 바나나 모양인데 끝이 백호방으로 미세하게 굽은 듯하다. 따라서 한 혈장에 상하로 있는 신혁번 공의 묘와 청주한씨의 묘 좌향(坐向)이 각각 자좌(子坐)와 계좌(癸坐)로 달랐다.
뒤로 내려온 맥(脈)이 혈(穴)을 맺기 위한 마지막 탈살(脫殺)의 형태가 부족하고 또 혈장이 약간 굽은 듯해서 혈(穴)을 못 맺는 지각(枝脚)이 아닌가 하고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좌우로 함께 내려온 줄기(龍虎)보다 짧게 뭉쳐있으며, 기울지 않고 평탄하니 기(氣)가 머물 수 있는 형태가 되어 단순한 지각(枝脚)이 아니고 혈을 맺을 수 있는 혈장(穴場)이 틀림없다.
신혁번 공의 배위(配位) 파평윤씨(坡平尹氏) 묘는 순전(脣氈)의 가파른 곳에 위치하여 기(氣)가 머물지 못하는 형태에 있었다. 이곳에 점혈한 까닭을 알 수 없어 의아했다.
(신혁번공 묘소 前景)
주변 사(砂)를 보려니 조안산(朝案山) 머리 부분 외에는 숲이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동하여 살펴보고 인터넷 지도 검색을 하니, 외산(外山) 백호가 둔기천과 함께 백호방에서부터 혈성 뒤까지 유정하게 감싸 돌아 장풍(藏風)이 잘 되어 있었다. 낮은 청룡 너머로는 하작마을 뒷산이 부모산 겸 전호(纏護)가 되어 겹겹이 보호하고 있다.
본신(本身) 용호(龍虎)는 아주 가까운데 청룡은 낮게 뻗어 내리다가 앞에서 갑자기 솟아올라 순전(脣氈)을 가까이서 감싸 돌아 본신(本身) 안산(案山)을 만들고 백호방으로 띠를 두르듯 면궁(眠弓) 형태로 굽어 나가는 좌선궁(左仙宮:左先弓)의 형태이다.
이 모습이 마치 제비집의 테두리를 연상하게 한다. 안산이 너무 가까워 답답할 것 같지만 낮아서 혈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다행이지만 내명당(內明堂)이 없으니 아쉽다.
이것은 특이하고 보기 드문 형태이다. 옛글에 보면, 성체(星體)에는 정(正)과 부(附)가 있고 겸(兼) 친(襯) 첩(貼)은 분별해야한다 (星體有正有附, 兼襯貼之宜辨.)고 하였다.
이 삼체(三體)는 단지 혈성(穴星)을 말한 것이고 용(龍)은 구애되지 않는다 (此三體止主穴星言, 其龍則不必拘也.)고 하였으며, 그 중에 오행의 생극(生剋)으로 길흉(吉凶)을 본다(此中五行之生剋, 吉凶之倚伏.)고 하였다.
이곳은 5대 조부 혈성이 정(正)이 되고 신 회장 혈성은 부(附)가 된다. 그리고 혈성(穴星)의 성체(星體) 겸(兼), 친(襯), 첩(貼)의 삼체(三體) 중에 겸체(兼體)는 확연히 구분되나, 친체(襯體)와 첩체(貼體)를 구별하려면 다음과 같다.
그 체(體)가 나뉠 수 있으면 친체(襯體)가 되고 나뉠 수 없으면 첩체(貼體)가 된다. 그리고 주성(主星)과 서로 형극(刑剋)하지 않아야 좋다.
따라서 이곳은 친체(襯體)가 있는 것으로 평뇌토(平腦土) 아래에 태음금(太陰金)이 붙어있는 모양이다. 토(土)와 금(金)으로 상극(相剋)이 아니라 다행이다.
(마을 입구에서본 오른쪽의 父母山과 가운데 멀리 작게 보이는 토성체의 신혁번공 穴星)
낮고 가까운 안산을 보자니 비록 청룡이 바깥 물길과 역(逆)하지 못하는 순관(順關)이고 좌선궁(左仙宮:左先弓)의 형태가 너무 가까워 식루사(拭淚砂)를 연상하게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장점이 더 크다고 본다.
이는 혈장의 기운이 설기(洩氣)되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주고, 혈장수(穴場水)도 흩어지지 않게 거두어 주니 길(吉)하다. 또한 역수국(逆水局)에서 필요한 혈장이 높거나 앞에 낮은 사(砂)가, 향하여 오는 물길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逆水局: 要穴星高大有餘氣或有低砂橫攔不使水衝割爲吉)
이것은 신혁번 공의 음택(陰宅)이 신격호 회장의 다른 가까운 조상 묘 보다 길지(吉地)임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된다.
혈장에서 물길은 잘 보이지 않아서 인터넷 지도 검색을 하여보니 후손에 큰 부자(富者)가 나올 만하다. 둔기천, 문수천, 출강천 등의 모든 물길이 이곳을 향하여 들어와서 발밑에서 합수하여 뒤로 돌아 나가고 있었다. 풍수지리에서 물은 재물이다. 여러 갈래의 하천이 모두 나에게 와서 모이니 여러 지역에서 큰 재물을 모을 상이다.
옛글에 물길이 백호방에서 오면 큰 자손, 청룡방에서 오면 가운데 자손, 앞에서 오면 끝 자손에 관계 된다 (孟白,仲靑,季在前)고 하였다. 공(公)은 슬하에 두 아들과 다섯 손자를 두었는데, 차남의 막내아들 즉 공의 다섯째 막내 손자 자손에서 신격호 회장이 나왔다. 이것을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생각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특히 앞에서 모인 물길이 백호방을 감싸 돌아 뒤로 흘러 혈성(穴星) 뒤에서 부모산 뒤까지 도달하여 완전하게 감싸 돌아 뒤로 흘러나간다. 이는 공배수(拱背水)라 하여 발복(發福)이 장구(長久)한 것이다.
옛글에 보면 공배수라는 것은 물길이 혈(穴)의 뒤를 둘러싼 것이니 물길이 후현무(後玄武)를 감싼 것으로 부귀가 오래간다. ~ 발복이 장구한 것은 바로 물길이 현무를 감싼 것이다.(拱背水者, 乃水繞穴後, 即水纏元武也, 主富貴綿遠, ~ 發福久長, 定是水纏元武.)라고 하였다.
물길(水城)이 백호방과 혈성(穴星) 뒤까지 감싸고 돌아나가는 데도 불구하고 장풍(藏風)은 잘 되어있어 다행이다. 대개 물이 흐르는 쪽은 장풍에 문제가 있는데 여기는 물길과 함께 외산백호(外山白虎)가 이곳을 가깝고 유정하게 감아 돌고 있다.
혈장 뒤로 내맥(來脈)을 타고 올라가 나경을 꺼내보니, 부모산에서 오는 용맥(龍脈)은 묘방(卯方)이고 혈장으로 내려간 입혈맥(入穴脈)은 오방(午方)이며 혈성 머리로 올라가는 용맥은 신방(辛方)이었다. 부모산 쪽은 낮게 가라앉았고 백호방의 성두(星頭) 쪽은 점점 높게 올라갔다.
다시 혈장으로 내려와 나경을 보니 자좌오향(子坐午向)에 좌수도우(左水倒右)로 수구(水口)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미곤방(未坤方) 쯤 되겠다.
앞에 있는 큰 며느리 청주한씨 묘는 계좌정향(癸坐丁向)에 곤수구(坤水口)이고, 약간 가파른 순전(脣氈)에 있는 부인 파평윤씨 묘는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수구(庚水口) 쯤 된다.
앞에 낮은 태음금체(太陰金體)의 안산 너머의 조산(朝山) 삼봉(三峯)은 왼쪽부터 정미곤방(丁未坤方)에 있다.
후손의 번영을 기원하며 다음 답산지로 이동하였다.
2. 롯데 신격호(辛格浩)회장 묘소
(신격호 회장 묘소)
묘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산46-1번지에 있다. 5대 조부(신혁번 공) 묘소에서 정면 아래로 내려가면 가깝고 낮은 안산 위에 바로 나타난다.
5대 조부 묘소의 낮게 드리운 좌청룡이 솟아올라 5대 조부 묘소의 안산(案山)이 되고 겸하여 신 회장 묘소의 혈성(穴星)이 되었다. 주변 환경은 5대 조부 묘소와 같은 용(龍)에서 분지(分枝)되어 나왔고 사수(砂水)도 거의 같은데, 다른 점은 외형상 본신(本身) 용호(龍虎)가 없고 안산(案山)의 형태가 다른 것뿐만이 아니다.
크게 보아서 같은 봉우리 아래 하나의 줄기에 가까이 위치한 두 곳이 상하(上下)의 차이로 인하여 혈(穴)의 진가(眞假)로 까지 연결되는 크게 다른 점이 숨어있었다.
5대 조부 묘소에서 한 번의 기복(起伏)을 한 아래에 혈장(穴場)이 있는데, 의외로 소박한 모습에 마음이 편안하였다. 봉분이 크지 않고 상석은 자연석이었으며 비석도 자연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여기, 울주 청년의 꿈, 대한해협의 거인, 신격호, 울림이 남아있다. 거기 가봤나? 2020년 1월 19일, 영면”
이를 보니 숙연한 마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혈장 주변을 둘러보니 유혈(乳穴)인데, 뚜렷한 상분하합(上分下合)과 양국(兩掬) 및 계수(界水)도 없이 상하좌우로 넓게 펼쳐진 보살면(菩薩面)의 형태로 아쉬웠다.
이곳 지형(地形)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게 펼쳐진 낮고 완만한 원뿔 형태에 비유할 수 있고 또 복장(覆掌)의 형태로, 완만하게 늘어져 흘러내리고 기운이 멈추는 형태는 없었다. 이런 지형(地形)에 점혈(點穴)할 때는 기대지 말고 올라타야 한다. 즉 유혈(乳穴)이 아닌 돌혈(突穴)을 찾아야 한다.
혈성 머리 양편이 이곳 혈장(穴場)을 감싸는 유정한 형태(앙장:仰掌)는 아니고 혈장 주변 공간이 약간 배부른 형태(복장:覆掌)가 되었다. 그리고 상하좌우로 넓게 흩어진 지형(地形)이다.
이런 곳에는 만약 용진(龍眞)이면 탈총법(奪總法: 넓게 늘어져 흩어진 곳에서는 좁게 모여 묶인 곳에 점혈하는 법)을 써서 꼭대기에 개법(蓋法)으로 돌혈(突穴)이 되어야 할 곳이다.
그래서 바로 뒤의 꼭대기에 가보니 평탄한 곳이 있어 돌중미와(突中微窩)인데, 이미 진주강씨(晉州姜氏)의 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돌혈(突穴) 자리는 소혈(小穴)로 보이는데 돌혈에 필요한 장풍(藏風)이 완전하지 않다. 그 돌혈(突穴)의 진가(眞假)는 뒤로 가서 용맥(龍脈)을 살펴보아야 알 수 있겠다.
그러나 이곳 신 회장의 혈성(穴星)에는 본신(本身) 용호(龍虎)가 없어 풍취(風吹)의 염려가 있고 앙장(仰掌)이 아닌 복장(覆掌)의 형태이니 혈(穴)이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미 진혈(眞穴)로 판명된 5대 조부 묘소 혈장의 가운데 빈 곳으로 옮긴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5대 조부 묘소 혈장의 가운데 빈 곳)
혈장을 뒤로하고 내려온 용맥을 보기위해 뒤로 오르니, 몇 발짝 안가서 바로 혈성 정상이 나타났다. 혈성 뒤로 연결된 입수용맥(入首龍脈)을 밟아보니, 위에서 내려오던 용맥이 다시 솟아올라 혈성 머리까지 이어졌으니 비룡입수(飛龍入首)의 형태였다.
가장 낮게 가라앉아 속기처(束氣處)로 보이는 곳에 이르러 용맥(龍脈)의 전후좌우를 살펴보았다. 위의 부모산(5대 조부 자리의 혈성)에서 나온 용맥이 앞으로 낮게 내려오다가 5대조부 혈장 아래 부분을 감싸 돌면서 별도의 다른 봉우리를 일으켜 겹쳐 붙어있는 것이 신 회장 묘소의 혈성이 되었다.
그 모습이 마치 다리에 장화를 신은 것 같고, 손가락에 골무를 끼운 듯 하며, 소에 입마개를 한 것 같은 특이한 형태로 풍수용어로 친체(襯體) 가 된다.
5대 조부 묘소의 혈성으로부터 정출맥(正出脈)이 아닌 미미하게 시작된 편출맥(偏出脈)이 낮게 내려와 좌청룡이 되고 좌선(左旋)으로 돌며 솟아올라 별도의 봉우리를 이루어 5대 조부 자리의 안산(案山)을 이루고 백호방으로 돌아 나간다.
이 안산 남쪽에 신 회장의 자리가 있으니 신 회장 묘소의 혈성(穴星)이 된다. 내려온 용맥(龍脈)이 비록 한 번의 기복(起伏)이 있으나 이는 5대 조부 자리의 안산(案山)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5대 조부의 청룡과 안산을 겸한 신 회장의 후룡(後龍)이 5대 조부 혈장 쪽으로는 요도지각(橈棹枝脚)도 없이 한쪽으로만 돌아가고, 꿈틀거리는 형태의 굴곡(屈曲)도 없이 밋밋하다.
그 형태가 독립적인 자세가 아니고 다른 곳을 향하고 감싸는 종속된 것으로 주인에 복종하는 청룡과 안산의 역할에 충실한 하나의 사(砂)일 뿐이다.
옛글에, 용이 지각이 없으면 노(奴)라 한다 (龍無枝脚, 謂之奴)고 하였다. 즉 신 회장 묘소의 후룡(後龍)은 혈(穴)을 맺는 용(龍)이 아니고 다른 용혈(龍穴)을 보호하고 따르는 사(砂)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혈(穴)이 없다. 앞에서 보았던 돌혈(突穴) 자리도 가혈(假穴)로 판명이 난 셈이다.
이곳 신 회장 자리는, 5대 조부 묘소의 좌청룡과 안산을 만들고 남은 여기(餘氣) 즉 관귀금요(官鬼禽曜: 진혈의 전후좌우에 발출된 여기의 산:眞穴前後左右發出餘氣之山)의 관성(官星:앞에 있는 것을 관성이라 함:在前者曰官星)에 해당하는 곳 즉 안산(案山) 밖으로 내려가는 줄기에 점혈(點穴)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하작마을의 하수사(下手砂)가 된다.
(신회장 묘소 혈장 앞에 연결된 길)
다시 내려와 앞을 보니 정면에 길을 닦아 놓았는데 눈에 거슬렸다. 이곳 혈장의 급선무는 기운이 흘러내려 도망가는 것을 인작(人作)으로라도 막아야 하는데, 혈장에서 연결된 앞의 도로가 오히려 기운을 설기시키는 통로의 형태가 되었다.
혈장에 연결된 정면의 길을 없애고 양 옆에 층계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계단도 좋은 형태는 아니지만 기운을 멈추게 하려면 어찌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곧고 길게 난 길도 지현굴곡(之玄屈曲)의 형태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기운이 머무르고 설기되지 않는 형태를 만들어 비보(裨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회장 묘소 前景)
시선을 들어 올려 앞을 보니 안산(案山)과 거리가 가까워 정면의 들판 공간이 협소하고 명당이 청룡 쪽으로 치우쳐 있어 자손간의 편차가 있겠다.
앞의 안산(案山)이 나를 향하고 복종하는 유정(有情)한 형태가 못되었다. 갈라져 골이진 모양에 청룡 쪽 어딘가를 향하고 이곳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혈성보다 높으니 주객이 바뀐 것 같고 혈성과 안산 사이의 공간이 너무 좁다.
그리고 백호방은 외산(外山) 백호가 있어 장풍에 문제가 없으나 청룡방은 가까이에 좌청룡이 없어 풍취(風吹)에 약한 환경이다. 아무리 물길이 오는 방위라 괜찮다고 해도 풍수지리의 근본인 장풍(藏風)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巽方에 있는 도지목성사(倒地木星砂) 머리)
청룡 쪽으로 마을 앞 명당 가운데에 있는 도지목성(倒地木星)의 사(砂)가 곧게 쏘아 들어오니 좋은 형태는 못된다. 따라서 청룡 쪽에 나무를 심어 풍취(風吹)도 막고 그 사(砂)도 보이지 않게 비보(裨補)해야 한다.
나경을 꺼내보니, 축좌미향(丑坐未向)은 확실한데 곤수구(坤水口) 쯤으로 추정된다. 안산의 두 봉우리는 정미곤방(丁未坤方)에 걸쳐있다. 본신(本身) 좌청룡이 없어 마을 앞 명당 가운데서 이쪽을 찔러오는 도지목성(倒地木星)의 사(砂)는 나무 사이로 측정해보니 손방(巽方)에 있다.
(하산하여 마을 앞에서 본 案山)
하산(下山)할 때 하작마을 앞에서 보니 안산의 앞부분이 공자(公字) 형태를 띠고 마을을 향하여 절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안산이 신 회장의 자리를 외면하고 청룡 쪽에 있는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본 수구 : 왼쪽은 안산, 오른쪽은 혈성, 그 사이로 하천이 흘러 나간다.)
마을 앞에 내려와서 신 회장 묘소가 있는 곳을 바라보니, 혈성이 하작마을의 우백호 아래 줄기에 해당한다. 그 형태가 길고 밋밋하게 뻗어 내리고 특별하게 솟아오른 곳이 없으니 혈(穴)을 맺을 용(龍)이 아니고 이 마을의 하수사(下手砂)로 보였다.
앞의 안산(案山)은 크고 혈성(穴星)은 낮게 가까이 마주 대하고 있는데,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문수천과 둔기천이 그 사이로 흘러나가고 있다. 즉 신 회장 묘소의 안산과 혈성이 하작마을의 수구사(水口砂)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버스를 향해 걸으며 잠시 상념(想念)에 잠겨있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승차하였다.
첫댓글 정성스럽게 써주신 간산기 감사드립니다. 간산기에 곳곳에 평생 풍수를 해오신 선생님의 학식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유혈의 재혈을 어떻게 하시는지 가르침을 받고자 정중하게 질문드립니다. 제가 아는 전통풍수 에서는 지각이 나가거나 주역의 음양, 8괘나 64괘 등을 응용해 혈판중 음양의 변화가 뚜렸해서 기가 뭉친 곳을 재혈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수가 동라를 유력한 발복지로 보느니만큼 동라와 5대조 신공 묘를 함께 보셔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복있는 사람님 반갑습니다. 유혈의 재혈법에 대하여 저는 특별한 방법이 없읍니다. 다만 몇 가지 참고 사항은 다음과 같읍니다.
혈장 가장자리를 따라서 좌우선으로 몇 바퀴씩 돌며 옆의 배부른 곳과 이지러진 곳 등을 봅니다. 그리고 내려가서 상하 기울기를 보고 올라와 앉아서 맥선과 동정생사를 살펴봅니다. 승금과 선익, 계수와 순전 등을 살펴서 내광자리를 정합니다.
좌향은 형세상으로는 승금과 순전을 기준으로하고 안산 등의 주변 사와 물길의 모양과 명당 등의 국을 살피고, 이기상으로는 입수룡과 물길의 득파에 따라 생왕향법과 정음정양법을 참고합니다. 그리고 분금은 납음오행법과 영록차록법 및 성수오행법을 참고하여 정침분금과 봉침분금을 혼용하고 있읍니다.
이와 같이 평범한 방법을 쓰고있읍니다. 복있는 사람님이 저보다 한 수 위일 것 같읍니다.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남촌장님 아녕하세요 하남촌장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부족한 제 소견은 다음과 같읍니다.
첫 번째, 발복이 늦은 요인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읍니다.
초락룡은 발복이 빠르나 오래가지 못하고 용진처의 말락룡은 발복은 더디나 오래간다고 봅니다.
회장님! 제가 한수위란 말씀은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혹 제가 예의 없이 굴었다면 진심으로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제 부족한 소견이지만 유혈의 재혈과 관련 전주의 회안대군 묘소나 순창인계의 말명당, 남원 황희정승 조부묘소 등 결록에 나오거나 유명한 유혈들은 대부분 힘있는 지각이 나간 곳이나
전체혈판은 양판(넒은데)인데 음(좁은 곳)으로 받는곳(전주 회안대군 묘소 절포부분 등), 전체를 음판으로 봤을때 특정부분에 월훈(유혈의 특징인 연익, 선익을 말하는 것 아님) 등이 있으면서 혈판이 넓어지며 양으로 받는 곳(법성포 아룡도강 등), 경사가 급하다 갑자기 완만해지는 곳(음→양으로 변화, 황희정승 조모 강씨묘, 숙호형 등), 유혈이지만 와혈의 특징도 가지고 있어 상판이나 특정 부분에 월훈(왕관-용어 다를 수 있음)과 순전이 있는 곳 등을 구분해 선사들이 재혈한 것을 확인한바 있습니다.
또한 천재탑석상형처럼 전체적으로는 유혈이지만 유혈판 상부 높은곳에 와혈처럼 혈이 지고 여기가 대유로 아주길게 나간 곳은 혈판의 상부(월훈, 순전 있음)가 재혈점인 것을 몇 군대 확인했습니다. 더해 회문산의 오선위기처럼 입수와 만두가
@복있는사람 구분이 안가며 상판과 중판은 유혈이지만 하판은 와혈로 된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는 하판 와혈부분의 월훈과 순전을 참고로 재혈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상기한 곳은 선사들의 재혈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유혈을 직접 분석하며 결록의 재혈법 등을 참고해 확인한바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지각재혈과 관련 회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과거 저희 스승님께서는 "유혈은 목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나무가 기운이 있는 곳에서 가지가 나가듯이 유혈도 지각(가지)이 나간 곳에 기운이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유혈과 관련 드물지만 유혈의 만두부분에서 강한 지각이 나간 경우는 결록(산도)에 만두부분이 재혈점으로 그려져 있고 실제 그렇게 재혈한 묘도 봤습니다.
부족한 후학의 질문에 회장님의 정성스러우신 답변 너무 감사드립니다.
혈이 낮고 명당이 가까우면 발복이 빠르고 혈이 높고 명당이 멀면 발복이 늦다고 봅니다.
산과 물을 음양으로 본다면 양인 움직이느 물이 효과가 빠른데 혈에서 물이 보이지 않으면 발복이 늦다고 생각됩니다.
정혈처를 벗어날 수록 발복이 늦다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 발복의 모양새를 보고 어느 선조묘의 영향인지 추정하는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다음과 같이 생각됩니다.
여러 갈래의 하천이 모두 묘소를 향하여 흘러오고 앞에서 합수된 곳은 신회장님의 가까운 조상묘 중에 신혁번 공 자리가 유일하다고 생각됩니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이고 여러 갈래의 하천이 오는 것은 여러 지역에서 재물이 들어오니 큰부자가 나오는데 바로 신회장이 큰 부자가 되었으니 5대 조부의 영향이라고 생각됩니다.
훌륭하신 하남촌장님의 날카로운 지적에 부족한 답변이지만 앞으로 많이 연구해보겠읍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