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그 시대의 결정’이고,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건축과 도시 공간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또 하나의 시각이다. 지금, 이 시대의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이상림 인천시 총괄건축가와 곽동화·이윤정 협력건축가의 시선으로 도시, 인천을 본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 디렉터
건축, 도시 그리고 사람
인천시 총괄건축가와 협력건축가의 도시, 인천을 향한 시선
곽동화 협력건축가, 이상림 총괄건축가, 이윤정 협력건축가(위부터)
‘도시, 인천’을 보다
‘더(The) 인천’을 더(More) 알아가다. 지금 발 딛고 선 도시, 살아가는 동네, 그 안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인천 곳곳에 깃든 인천 사람 저마다의 삶과 기억, 숨은 이야기를 찾아 기록한다.
“건축은 그 시대의 결정이다.”(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은 구조물 안팎으로 인간 삶의 영역 전반을 확장해 나가는 일이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건축물엔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세상을 읽는 관점, 꿈꾸는 이상향이 모두 깃든다.
“우리는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윈스턴 처칠) 그리고 사람은 살아가는 공간을 닮아간다. 건축이 그린 도시 풍경 안에서 추억을 쌓고 기억을 세우며, 마음에 또 다른 집을 짓는다. 도시와 인간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며 진화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공간을 만드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도시는 생명력을 얻는다.
이상림 인천시 총괄건축가와 곽동화·이윤정 협력건축가의 시선으로 도시, 인천을 본다. 그 눈길이 닿는 끝에 사람을, 삶을,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도시가 있다.
‘이음 1977’, 지하 공간에서 바라본 인천항 방향. 마치 눈꺼풀 사이로 세상이 비치는 듯하다
‘디테일’을 보라
이상림 인천시 총괄건축가
가벼운 빛, 무거운 흙 그리고 눈부신 햇살의 정적. 넓게 트인 창밖으론 인천항이 내려다보이고, 묵묵히 피어나는 푸른 쉼표들이 플라타너스 잎사귀를 따라 부드럽게 리듬을 탄다.
자유공원 아래 있는 근대건축문화자산 ‘이음 1977’. 창으로 스며드는 늦은 오후의 햇살 속에 건축가 이상림(68)이 서 있다. “건축은 빛과 벽돌로 짓는 시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고故 김수근은 말했다. 햇살의 농도와 기울기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공간을, 벽돌의 거친 느낌과 한 장 한 장 손으로 쌓아야 하는 인간적인 따스함을, 그는 사랑했다.
이상림은 공간그룹 대표로,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이자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 고故 김중업과 고故 김수근의 명맥을 잇고 있다. 남극 제2기지와 경기도청사, 세종시 정부청사 3단계 2구역 등이 그의 주요 작품. 인천과도 인연이 각별하다. 송도 투모로우시티(인천스타트업파크)와 갯벌타워, 인하대학교 항공우주융합캠퍼스 등을 설계하며 도시 곳곳에 궤적을 남겼다.
‘빛과 벽돌로 짓는 시’ 안에서, 이상림 인천시 총괄건축가
“게으른 탓에 이제야 이곳을 방문했네요. 그래도 보는 순간 전혀 낯설지 않고, 마치 선생님을 뵙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내 집처럼 느껴집니다.”
1977년 완공한 이 집엔 김수근식 건축구조 양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내벽은 정미소 파벽돌을 가져다 정성스레 쌓아 올리고, 외벽은 전돌로 견고히 마감했다. 또 대지의 경사를 살린 스킵 플로어Skip Floor 구조로 세 층을 율동감 있게 배치하고 중앙계단을 통해 공간을 하나로 아우른다. 문은 따로 두지 않고 아치로 공간을 구분해 개방감을 살렸다. 여기서 ‘디테일’에 주목해야 한다. 아치는 완전하지 않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데, 이는 힘을 분산해 건축물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한다.
“건축물을 거의 다 완성하고도 마지막 작은 부분 때문에 근본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디테일이 완벽하지 않으면 건축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 디테일의 완성은 곧 건축물의 완성을 뜻합니다. 이는 건축물과 도로, 광장 등이 모여 이루는 도시도, 나아가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독일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는 말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이음 1977’의 디테일. 건축 당시 단 실내등
그와 인천과의 인연이 더 깊어졌다. 이상림 대표는 지난 5월 ‘인천시 2대 총괄건축가’로 위촉됐다. 앞으로 2년간 우리 시의 도시·건축·공간 환경 디자인을 총괄 조정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디테일의 눈’으로 도시를 들여다보고, 인천을 완벽하고 더 아름답게 할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도시의 미래와 시민 행복이 먼저입니다. 인천시민을 위해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키고 싶습니다. 오래된 도시에 새 숨이 닿고 신도시는 더 새로워지길 바랍니다.”
20년 만이다. 이상림 인천시 총괄건축가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앞에 섰다.
20년 만이다. 그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앞에 섰다. 인천에 김수근의 손길이 스민 작품은 ‘이음 1977’과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둘뿐이다. 이 기념관은 인천의 직할시 승격과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1984년 개관했다. 웅대하고 장엄한 자태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건물은 전시관 두 동을 좌우로 배치했으며, 벽면을 화강석 혹두기로 처리하고 가장자리를 잔다듬해 입면의 볼륨을 극대화하고 수평선을 강조했다. 또 전면의 형태를 산형으로 처리해 형태의 부하를 줄이고, 파도를 상징하는 각각의 매스Mass는 상부로 올라가면서 부재의 크기를 줄여 투시 효과를 극대화했다. 대지의 급격한 단차, 상승하는 공간은 계단으로 극복했다.” 이상림은 김수근을 도와 이 기념관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로부터 공간의 의미를 헤아려본다.
높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올라 자유수호의 탑 앞에 선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평화롭다. 이 거대한 건축물을 마주하며, 1950년 9월 15일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그날을 가슴에 선명히 새긴다.
자유수호의탑 앞에서 내려다보는, 오늘
웅대하고 장엄한 자태의 인천상륙작전기념관(아래)
그리하여, 그린 인프라스트럭처
곽동화 인천시 협력건축가
우리는 도시에 산다. 이른 아침 아파트에서 나와 빌딩 숲에 파묻혀 잠시 쉴 곳을 찾아 숨을 고른 후 다시 회색빛 공간으로 돌아간다. 그 안에서 ‘이파리들을 타고 산들거리는 바람, 나무 사이로 점점이 쏟아지는 햇빛….’ 숲을 그린다.
“현대 선진도시들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건설된 도시의 회색 인프라스트럭처Grey Infrastructure를 물, 풀, 나무 등을 결합한 그린 인프라스트럭처Green Infrastructure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녹지 네트워크와 수변 녹지 체계부터 공원·녹지·광장, 녹색 건축에 이르기까지 자연 요소를 도입해 도시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지요.”
송도국제도시 바닷가에 있는 ‘솔찬공원’.
물, 풀, 나무가 어우러져 도심에 싱그러움을 퍼트린다.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 교수인 곽동화(56) 인천시 협력건축가는 인천의 대표적인 녹색 기반시설로 송도국제도시 바닷가에 있는 ‘솔찬공원’을 꼽는다. 이곳은 인천대교 건설 당시 토목구조물인 케이슨Caisson을 제작하고 배로 운반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그 공간을 해체하지 않고 바닷가 덱 형식의 폭 33.7m, 연장 400m, 열린 광장으로 새롭게 했다.
“이곳을 걸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발밑을 보고 느껴보세요. 케이슨을 제작할 때 사용한 철재와 새로 시공한 목재 덱의 상반된 재질감과 풍부한 갈색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길엔 배의 접안을 돕던 철재 구조물도 곳곳에 남아 지난 시간을 전한다.
빌딩 숲에 둘러싸여 살다 보면 잊곤 한다, 인천이 바다의 도시라는 사실을. 이 공간은 시민에게 바다를 돌려주고 ‘옛’ 시간의 흔적을 그러모아 ‘오늘’의 삶으로 끌어들인다. 제물포르네상스로 꽃피는 인천 내항 재생사업도 그러하다. “인천 내항 1·8부두 항만 재개발사업이 내년에 착공합니다. 공원 녹지와 광장 등 공공 비율이 54%에 이르러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원도심이 활력을 찾고 닫힌 바다가 품을 활짝 열 그날을 기다린다.
솔찬공원 광장에서, 곽동화 인천시 협력건축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공원. 한가운데 곽 협력건축가가 서 있다. 이 광장에서 인천대교 건설 당시 케이슨을 제작했다.
공간, 시간을 재생하다
이윤정 인천시 협력건축가
침묵을 깨우고, 해체하고,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오늘, 120년 시간이 재생됐다.
여기는 아프지만 우리가 사랑하고 추억하는 인천 개항장. 긴 세월의 생채기까지 감싸 안는 키 큰 나무처럼 굽이굽이 시간의 옹이를 깊이 간직하고 있다.
건축사무소 현일 대표인 이윤정(58) 인천시 협력건축가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시간 속을 걷는다. “이 안에서 인천의 근대사를 돌아보고 오늘을 만납니다. 이 건축물은 120년 굴곡의 시간에 살아온 삶을 덧대고 덧대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물결치듯 긁힌 벽돌과 녹슨 철문, 아무렇게나 덧바른 마감이 그 세월의 무게를 말해 줍니다.”
120년 시간을 가만히 어루만지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이윤정 협력건축가. 다가오고 다가가는 시간 사이에 그가 서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개항장 일대의 근대 문화유산을 시민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조성하고자 2013년 문을 열었다. 2009년에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이 그 시작이었다. 황순우 건축사가 설계했다. 그는 인천 출신으로 개항장 일대의 작업에 집중하면서 40대를 보냈다.
땅을 읽고 장소를 알아가는 것부터 작업은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지어 창고로 쓰다 김치공장으로 가동하던 건축물이었다. 어느 날, 망치질 소리가 터를 덮고 있던 음습한 기운과 깊은 고요, 오랜 침묵의 시간을 깨웠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시간과 공간을 재생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걷어낸 지붕 사이로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빛, 그렇게 역사는 오늘을 만났다.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은 120년 시간이 고인 옛 창고 건물에서 근대문학의 아름다운 여정을 떠난다. 근대문화유산이 보존의 대상이 아닌 일상의 공간으로 우리 삶에 스미어 든다.
“시대성을 담아 새 숨을 튼 이 공간을 사랑합니다. 앞으로 인천시 협력건축가로서 공공건축가들과 힘을 모아 시민의 생각을 담고 시민에게 다가가는, 열린 도시 공간을 만들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다가오고 다가가는 시간 사이에 선 그에게로 여름 햇살이 살금살금 퍼진다.
창고에서 김치공장, 오늘 문학관으로 시대성을 담고 숨 쉬어온 한국근대문학관.
※ 1,000만 인천 시대의 도시 공간을 만든다, ‘총괄건축가’ 및 ‘공공건축가’
우리 시는 공공건축물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고 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총괄건축가’ 및 ‘공공건축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월 이상림 공간그룹 대표가 2대 총괄건축가로 위촉됐으며, 3기 공공건축가들과 협력해 2년간 도시·건축·공간 환경 디자인 관련 총괄 조정과 정책 수립 자문을 맡는다.
시 도시디자인과 032-440-4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