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땅 중동(中東/Middle East)<7>
<3> 구약성서(舊約聖書, Bible) 속의 미스터리 바벨탑
성서(Bible) 속의 바벨탑(상상도)
구약성서(舊約聖書) ‘창세기(創世記, Book of Genesis)’에 등장하는 바벨탑(Tower of Babel)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앞서 지어진 고층의 건축물이다.
바벨(Babel)은 히브리어로 ‘신(神)의 문(門)’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지상 최초의 영웅인 니므롯(Nimrod)이 세운 도시였는데 훗날 바빌론(Babylon)이라 불리던 도시이다. 바벨탑을 신화나 상상 속의 건물로 여길 수 있지만, 많은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건축 학자들은 실재(實在)했던 고대의 건축물로 믿고 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os)는 바벨탑의 높이가 90m라 기록되어 있지만, 현대 학자들이 추정하는 높이는 약 7층가량(20m)이라고 한다. 있는 곳은 이라크(Iraq)의 수도 바그다드(Baghdad)에서 남쪽으로 약 9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바빌론(Babylon)인데 인류 최초의 문명이 태동한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방의 고대도시이다.
성서중 ‘창세기(創世記)’의 기록을 보면 이곳에 바벨탑이 세워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천 4백여 년 전인 BC 1440~1400년으로 당시 이곳 바빌론은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BC 587년, 유대인 선지자 예레미야(Jeremiah)가 바빌론의 멸망을 예언한 후로 이 지역은 오늘날까지 전쟁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바벨탑이 있던 곳이 바빌론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에리두(Eridu, 현재 이라크)가 더 유력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탑은 인간들이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짓기로 하는데, 신은 인간의 오만함을 벌하려고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결국 탑을 쌓는 일이 불가능해져서 탑 쌓는 일이 중단되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갑자기 ‘저기 망치 좀 건네주게’ 하면 벽돌을 집어주고, ‘줄자를 ...’ 하면 곡괭이를 들고 오고.... ㅎㅎ
현재,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는 대충 6,500가지 정도로 추정되는데, 같은 나라 안에서도 수많은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에서는 840여 가지, 인도네시아(Indonesia)는 711개, 아프리카에 있는 나이지리아(Nigeria)는 517개, 인도(印度,India)는 456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4> 노아(Noah)의 방주(方舟)
휘버스씨가 제작한 노아의 방주 / 내부모습(동물 모형) / 제작자 휘버스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이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Noah)의 후손이었는데 노아는 하느님의 계시로 대홍수에서 살아남도록 ‘노아의 방주(方舟/Noah's Ark)’를 만들어 온갖 생명을 살려낸 은인이다. 성서(聖書)에 의하면, 세상의 타락 모습을 보고 이 땅을 멸(滅)하기로 결심한 하느님은 정직하고 의로웠던 노아(Noah)에게 임박한 재앙을 알려주고 그와 그의 가족을 재앙으로부터 구원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배를 만들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즉시 거대한 배(方舟)를 만들어 하느님의 말씀대로 땅 위의 모든 생물이 다시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암수 1쌍씩 배에 싣는다.
곧이어 40일간이나 계속된 세찬 비바람과 대홍수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죽었다니 오늘날의 모든 인류는 그의 3명의 아들의 후손들인 셈이다. 노아는 포도밭 경작의 창시자이고, 첫째아들은 셈(Shem), 둘째아들은 함(Ham), 셋째아들은 야벳(Japheth)인데 야벳은 셈족(Semites)의 조상이다.
3가지 이상의 성서 전승 자료를 종합해보면 노아(Noah)는 의인(義人)의 상징이며, 이스라엘 하느님 야훼(Yahweh/창조주)으로부터 다시는 자연을 재해로 멸하지 않으리라는 언약을 받았다고 한다.
노아가 만든 배를 방주(Noah's Ark)라고 하는 까닭은 문헌을 통하여 그 모양과 크기를 조사한 결과 길이가 135m, 폭 23m, 높이 14m로, 거대하면서도 안전한 장방형(長方形)의 배였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노아의 방주’ 비율대로 1/50로 축소 제작하여 그 안정성을 실험한 결과 노아의 방주는 무려 30m의 파도도 견딜 수 있는 안전한 배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 기록에 대한 증거는 인디언(Indian)들이 남긴 석판(石版)과 중국 동이족(桓檀族)이 만든 한자(漢字)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목수인 요한 휘버스(Johan Huibers)는 33살이 되던 해 폭풍우가 내리치는 꿈을 꾼 후 노아의 방주를 재건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역경 속에서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실물 크기로 재현하는데 성공한다.
현재 네덜란드 서남부 도시 도르트레히트(Dordrecht)의 랜드마크가 된 방주는 대홍수 때 살아남은 동물의 형상 전시장 등, 노아 시대의 삶과 그의 여정을 체험할 수 있는 성서박물관을 만들고 각종 이벤트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데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휘버스씨가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자신이 만든 노아의 방주를 우리나라에 영구 기증(寄贈)하기로 하여 금년(2022) 7월경 한국에 온다고 했는데??
<5> 예루살렘(Jerusalem) 성전과 통곡의 벽(Wailing Wall)
예루살렘 성문 / 통곡의 벽 / 예루살렘 시내 모습
예루살렘 성전(聖殿)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Abraham)이 아들 이삭(Isaac)을 제물로 바칠 제단을 쌓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BC 957년 지혜의 왕 솔로몬(Solomon)도 이곳에 성전이 건축하였고, 바로 예루살렘 제1 성전으로 계약궤(契約櫃-Ark of the Covenant)를 안치하여 세계인들이 모이는 명소였다고 한다. 계약궤는 모세가 구약시대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2개로 된 십계명 돌 판을 보관했던 나무상자를 말한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이웃 나라였던 바빌로니아(Babylonia)의 느부갓네살(Nebukadnessar) 2세가 쳐들어와 BC 604년과 BC 597년에 성전 보물들을 노략질했고, BC 586년에 성전을 파괴해버린다.
성전이 파괴되고 BC 586년과 BC 582년에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가는데, 지금도 합창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베르디(Verdi)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그것이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 계약의 궤 / <영화포스터>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
나부코(Nabucco)는 이태리어로 느부갓네살(Nebukadnessar)을 줄여서 발음하는 것이라고....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그 노랫말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아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후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키루스(Cyrus) 2세는 BC 538년 칙령을 내려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여 성전 재건 작업은 BC 515년에 끝났다고 한다. 이후, BC 20년 유대의 왕 헤로데(Herod)가 제2 성전을 세웠는데 이미 계약의 궤는 사라진 후였고 그 이후 영원히 찾지 못했지만, 이곳은 이스라엘 민족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고 한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주연의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Raiders of the Lost Ark-1981)’가 기억에 생생하다.
사람들은 사라진 성궤를 찾으려고 엄청난 노력하지만 끝내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고대 유대인들이 대단히 거룩하게 여긴 곳이었는데 AD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제2 성전도 파괴되고 벽만 남아있다. 이곳이 현재 기독교와 유대교의 성지(聖地)인 ‘통곡(痛哭)의 벽(壁)’이다.
결국, 유대가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터전을 잃은 유대인들이 유적으로 남은 이 벽에 모여 통곡을 하였다고 하여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벽은 이슬람의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벽 일부도 이루고 있어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관할권을 놓고 오랫동안 투쟁해왔다.
그러나 1967년, 아랍연맹과 이스라엘이 벌인 제3차 전쟁이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가 ‘6일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때 이스라엘이 옛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이곳에 대한 관할권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무슬림 / 기독교인 / 유대인 / 아르메니아인의 네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