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14권
43. 무아품(無我品)
[보살의 도관]
그때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을 심지(心智)라고 하였다.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신관(身觀)을 분별하여 나[我]라는 상념이 없음을 알고서 어떻게 해야 보살의 도관(道觀)을 성취하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심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보살의 도관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열 가지 법을 행하여야 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지위[位]에 머물면서 무위(無爲)에 편히 처하지는 못하지만,
도의 근본을 궁구해 마치고 큰 서원을 성취해서 스스로 무아(無我)를 관하고 나서,
다시 중생을 교화하여 자기와 다름없게 한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무아행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심지야, 만일 다시 보살마하살이 능히 없는 몸을 변화하여 형상 있는 몸을 나타내고,
다시 있는 몸을 변화하여 형상 없는 몸을 나타내고,
나 있음으로 나 없음을 삼고 나 없음으로 나 있음을 삼으며,
그 가운데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이끌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온갖 심지(心智)의 법을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심지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루어 남이 없는 마음[無生心]을 이루고자 하고,
온갖 법이 본래 즐길만한 법이 아님을 이해한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아(無我)의 마음으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성취한다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심지야, 만일 다시 보살마하살이 이미 공한 마음[空心]을 얻어서 내가 있지 않고 또한 생멸도 없음을 알고,
다시 이 법으로 온갖 것을 교화하여 나라는 상념이 없음[無我想]을 알아서,
이 지혜가 스스로 온갖 깊은 법에서 가장 제일이라고 칭송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으뜸가는 무아행(無我行)을 닦는 것이라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심지여, 만일 보살마하살이나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체 모든 법상(法相)을 분별하고,
또한 법의 온갖 모습의 근본을 보지 않고,
아울러 그 일체 모든 법의 근본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중생이 일으키는 무아상(無我想)과 안팎의 모든 법 그리고 일체지(一切智) 모두를 보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만일 보살마하살이나 선남자나 선여인이 겁이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보든 겁이 이루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음을 보든 이루어짐으로 기쁨을 삼지 않고 무너짐으로 근심을 삼지 않으며,
두 중간에서 나[吾我]라는 상념을 일으키지 않으면,
보살마하살이 무아법에 이르렀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심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몸을 버리고 멸진삼매(滅盡三昧)에 들어가서 행의 근본을 분별하여 어디로부터 생겼는지를 알고
무위(無爲)를 출요(出要)하여 큰 도에 이르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무아행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심지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아의 마음을 얻어 온갖 12인연(因緣)을 분별해서 생겨난 것은 생겨난 까닭을 분별하지 않고 멸하는 것은 멸하는 까닭을 분별하지 않으며,
모든 법의 근본에서 모조리 나라는 상념이 없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모든 법의 근본에 무아행이라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심지여, 만일 다시 보살마하살이 일체 모든 법의 근본을 분별하여 가까움도 보지 않고 멀리 있음도 보지 않으며,
본래 생겨난 바가 없어서 또한 일어난 바가 없다면,
이것을 보살의 무아행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심지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불기법인(不起法忍)에서 심식(心識)이 모조리 있는 바 없음을 이해해 알고,
그 가운데서 위없는 지진 등정각을 성취하지만 이룸도 보지 않고 이루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무아행이라고 이르느니라.
이와 같이 심지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아행을 갖추어서 배우고자 한다면, 반드시 견고함에 이르러서 마침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야 하느니라.
[무아법]
다시 다음으로 심지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체 모든 법을 갖추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아(無我)의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것을 무아라 하는가?
이른바 무아란 궁극에 이르러 성취하는 이것도 무아이고,
4대(大)를 분별하고 본래의 근원을 사유하는 것도 무아이고,
온갖 여러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서 교화하는 것도 무아이고,
중생에게 제도해 해탈한 바 있음을 보지 않고, 보리수 아래 앉아서 마군의 병졸을 항복시킴도 모두 있는 바 없다면,
이것을 보살의 무아행이라 이르느니라.
3세의 총지법의 근본[摠持法本]을 보지 않고,
집착한 바 없는 지혜도 안팎에 있지 않으면서 있는 바 없음을 분별하고 사유한다면,
이것을 보살의 무아행이라 이르느니라.”
[무상(無相)]
부처님께서 다시 심지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정의(空定意)에 들어가면, 여래의 깊은 법장이 여기에도 있지 않고 또한 저에게도 있지 않음을 궁구하여서, 일체가 모조리 있는 바 없다고 알 것이니라.
혹은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신족의 힘으로 정의정(定意定)에 들어가면, 온갖 무상법관(無相法觀)을 나타내 빛내나니,
어떤 것이 무상(無相)인가?
여러 부처님이 일체를 교화하고 제도해 해탈시키는데 언교(言敎)로써 아니함이니,
이것을 무상이라 이르느니라.
어떤 것을 무상이라 하는가?
온갖 여러 부처님이 중생의 근본에서 스스로 노닐며 즐겨하심이니,
이것을 무상이라 이르느니라.
한 나무 아래에 앉아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이것을 무상의 행이라 이르느니라.
이와 같이 심자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익혀서 무아법에 미친 자는 문득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