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 金氏) 소개

대전뿌리공원의 안동김씨 상징탑(사진/안동김씨대종회)
안동김씨의 유래
안동 김씨(安東 金氏)는 대한민국의 안동을 본관으로 삼은 서로 다른 두 씨족이 존재한다.

선(先) 안동김씨(구안동김씨)
선(先) 안동김씨(구안동김씨)는 후(後) 안동김씨(신안동김씨)처럼 경주 김씨에서 파생된 씨족으로 경순왕 김부(金傅)의 손자인 평장사(平章事)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경순왕의 8대손으로 고려의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삼는다. 충렬공은 고려조에 삼별초를 평정하여, 벼슬이 첨의령(僉議令)에 이르고, 상락공(上洛公)에 봉해져 선(先) 안동김씨를 일명 상락 김씨(上洛金氏)라고도 한다.
선(先) 안동김씨는 신라의 왕손이며 고려왕의 외손으로서 고려500년간 공경장상(公卿將相)이 끊이지 않았으며 고려가 망하고 많은 후손들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각지방에 흩어져 은거하였고 ,그후 형성된 세거지(世居地)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는 태종때 좌정승을 지낸 익원공(翼元公) 김사형과 성종때 영의정을 지낸 문정공(文靖公) 김질을 비롯한 4명의 정승,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진주목사 충무공(忠武公) 김시민을 비롯한 2명의 충무공, 청백리 김두남을 비롯한 5명의 청백리, 김영수통제사를 비롯한 열명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배출 되었고, 수많은 고관대작들과 충신열사가 끊이지 않았으며, 모름지기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서의 명분을 지켜왔다.
근대에 들어와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안동김문들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으며 특히 상해 임시정부의 주석으로서 평생토록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범 김구(金九)선생이 배출되어 문명(門名)을 크게 빛냈다.
선(先) 안동김씨의 인구는 2000년 통계청 발표 425,000여명(전체의0.9%)으로 전체 인구의 순위가 18위로 기록되고 있다. 안동김씨대종회가 설립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파종회는 현재 충렬공(중시조)의 현손(玄孫) 대(代)를 기준으로15개파로 분류 되어 구성되어져 있으며 각지역과 집성촌, 훌륭한 직계선조를 중심으로한 소문중과 지역 문중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교류하고 있다.
후(後) 안동김씨 (신안동김씨)
신라 말 안동의 성주로 있다가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어 고려 태조로부터 안동을 식읍으로 하사받고 태사공(太師公)에 봉해진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한다. 김선평(金宣平)은 고려 태조로부터 성을 하사 받은 안동 권씨(권행), 안동 장씨(장정필)와 함께 안동의 3태사묘에 모셔져 있다. 조선중기에 도정(都正)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使)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서윤공파의 중시조로 삼는다.
후(後) 안동김씨는 특히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으로 더 알려졌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병자호란 때 척화신 좌의정 청음 김상헌, 우의정 선원 김상용,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김수흥김수항형제(김상헌의 손자), 김수항의 아들 영의정 충헌공(忠獻公) 김창집, 순조의 장인인 영안부원군김조순(김창집의 현손), 순조의 정비인 순원왕후, 김조순의 아들 돈녕부영사 영의정 김좌근(金左根), 방랑시인 김병연(김삿갓), 김옥균(개화파), 김좌진(독립운동가), 김동진(독립운동가), 김종진(독립운동가), 김두한(정치인) 등이 있다.
[참고자료:위키백과,안동김씨대종회자료].
출처 안동김씨(安東 金氏)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