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펼치면 많은 기념일이 우리를 맞는다.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8일 광주 민주화 기념일, 20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이런 날에는 각급 기관에서 행사를 치르며 시상식(施賞式)을 연다. 상을 주는 까닭은 선행·공적·재능·실력 등이 뛰어난 사람이나 단체를 칭찬하고 장려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근로자의 날에 우수한 사원을, 어린이날이면 모범 어린이를 그리고 스승의 날에는 존경받는 선생님을 가려 뽑아 표창하면서 그들의 업적을 기린다. 근로자의 날 고용주에게, 어린이날 어버이에게, 스승의 날 제자에게 상을 준다면 이것은 기념일을 제정한 취지에 맞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버이날에는 장한 어버이를 표창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상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 가운데 효자·효부를 골라서 상을 준다면 어떨까? 어른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을 수는 있을 것이나, 부모님의 덕을 기리는 어버이날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지난해 5월에 있었던 일이다. 서부새마을금고 담당자로부터 어버이날 행사에 효자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받은 나는 난감했다. 우리 가족이 도마동에 거주한 것은 60년이 넘었고, 지금 사는 집에서만 30년이 더 지난 세월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오래된 이웃들은 웬만큼 얼굴을 알고 지낸다. 그렇지만 나를 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면서 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아내와 내가 효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두 아이를 출산해서 양육하고 공부시키는 동안에 우리 내외는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해서 혼례를 갖추고 분가하기까지 모든 것을 부모님과 상의하면서 처리해왔다. 이제는 구순이 넘으신 어머님을 아내가 정성껏 보살펴드리지만, 우리는 부모님을 모신다기보다는 함께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효자상을 준다기에 어쩔 수 없이 행사에 참석했다. 정작 중요한 장한 어버이 상이 빠진 채 효자·효부상만 시상했다. 나는 받아 온 상패를 혹시나 어머님이 보실까봐 그대로 서가에 얹어 두었다. 어머님이 아신다면 부끄러워서 어머님의 얼굴을 제대로 뵐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염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아내에게만 이야기하고, 어머님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 채 지냈다.
어느 날인가 어머님이 서가에 있는 낯선 상패 함을 열어보시고는 그 속에 담긴 패를 꺼내 놓으셨다. 그리고는 효자상을 받은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칭찬해 주셨다. 어머님 앞에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식을 위해 가시고기나 우렁이처럼 헌신하신 어머니를 두고 효자라는 이름은 불경스러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시고기는 암컷이 산란한 후에 수컷이 둥지를 지키면서 부화할 때까지 알을 보호한단다. 부화하여 새끼가 태어난 뒤에도 수컷은 둥지를 떠나지 않은 채 어린 것들이 생존 가능한 상태로 자라기까지 돌보다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새끼들에게 먹이로 내어준다는 것이다. 또 우렁이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에게 어미가 자신의 살을 먹여 기른단다. 어린 우렁이가 어미의 살을 파먹고 자라나서 혼자 움직일 수 있을 때쯤이면, 어미 우렁이는 살이 모두 없어져 껍데기만 남은 채 물에 떠내려간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들도 이 가시고기나 우렁이처럼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분들이다. 그리고 자녀들이 앞으로 더욱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하면서 우리의 곁을 떠나신다. 이런 부모님 앞에 효자·효부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지만 상패는 여전히 책장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서 오늘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첫댓글 어머님이 얼마나 흐뭇하셨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효자 효부, 소리없이 본이 되어 주시는 박영진 선생님의 글을 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감사드립니다~^^*
과분한 칭찬 정말 부끄럽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에 아내가 힘들겠지요. 저는 여전히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만 합니다. 아직도 어머님이 건강하셔서 저희들의 큰 기쁨이지요.
서부새마을금고에서 효자 효부 상 수상자 선정을 참 잘했군요. ‘ebs장수의 비밀’에서도 보았듯이 박 교장선생님 내외분은 구순 어머니께 지극정성을 다하는 효자 효부이십니다. 자랑해도 좋을 상패를 감춰두고 계셨다는 이야기는 수필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겸허한 인품이지요. ‘상패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마지막 구절이 또한 감명을 줍니다. 앞으로 더욱 잘 모시겠다는 다짐인 동시에 효를 다하지 못하는 독자에게 던지는 바늘 같은 메시지이기도 하지요.
칭찬하신 것처럼 살지 못해서 부꾸럽습니다. 어머님께서 아직도 저희를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아내가 손주들 돌보러 가면 어머님이 집을 지키시고, 손수 식사를 해결하시고 소소한 집안 일을 하시다가 저녁에 저희들을 만나서 하루 일을 이야기해 주십니다. 저는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박 선생님!
교훈이 있는 수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버이 날에 장한 어버이를 많이 시상해서 그 분들 위로해 드리고 후손들이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시고기나 우렁이 같은 삶을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들이 아니면 어떻게 오늘의 우리들이 있었겠습니까. 그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칭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박선생님!
처음으로 선생님 방을 찾아봅니다.
책장 모퉁이에 자리한 그 상패 하나가
박선생님의 인생 모두를 대변해 준다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리고 저에게 더욱 감동적인 분은 바로 사모님이십니다.
시계침을 조금만 되돌릴 수 있다면, 당연히 사모님을 위한
열녀문을 세워 드려야 하겠지요.
오늘도 고운 하루 누리소서.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칭찬해 주셔서. 역시 안사람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아내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격려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