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그대에게 올 것이다. |
참 나는 자신의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수행은 어떤 것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그대의 참 나를 알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행도 필요하지 않다. 수행의 개념을 버리고 참 고요하라. 그냥 조용히 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이룰 것이다.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그대에게 올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을 추구하면, 아무 것도 그대에게 올 수 없다.
그러므로 참 고요하라. 그리고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단지 한순간이라도 참 고요하라. 그리고 그대가 누구인지 보라.
잠을 자고 싶을 때 수행이 필요한가? 이처럼 그대는 잠을 자야 한다.
이것이 크리슈나의 처방이다.
|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온 세상에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는 의미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해 '나'만 존귀하고 '남'은 비천하다는 의미로 생각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야말로 아만과 독선을 철저히 떠난 가르침이다.
이 말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귀하다는 뜻이다. 자기야말로 가장 존귀한 존재이다.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인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재물을 섬기거나, 권세를 섬기거나, 신을 섬기게 되면서 '나'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재물이나 권세 혹은 신 등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정작 주인인 자신은 종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의 존귀함을 깨우쳐야 한다. 누구나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임을,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나아가 내가 존귀한만큼 남들도 존귀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종교가 존귀한 만큼 남의 생각과 남의 종교도 존귀함을 인정해야 한다. 내 생각과 내 종교만이 옳다고 여기며 남의 생각과 남의 종교는 추호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이야말로 오만과 독선의 집단이라 할 수 있다. ... - 월호스님(쌍계사 승가대학교수)
도법스님은 “인생의 제일 화두는 ‘나(我)’에 대해 아는 것”이라며 “이러한 원초적 물음에 대해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했고, 화엄경에서는 ‘인드라망 존재’, 선불교에서는 ‘본래 부처(本來佛)’로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는 곧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인간은 부족함 없이 다 갖춰진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도법스님은 “삶의 주체인 내가 존재하지 않는 한 부처님도 하나님도 만날 수 없다” 며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물의 그물코처럼 상호관계론적인 존재로 절대 분리돼서는 살 수 없는 존재” 라고 강조했다.
즉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등 세상의 모든 관계는 따로이면서 함께이고 함께이면서 따로인 한 몸 한 생명이며, 그렇기에 더불어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도법스님의 주장이다. -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대표 도법스님 / 2010년 0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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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趙州因嚴陽尊者問 一物不將來時如何 師云放下着 嚴云 一物不將來 放下箇甚麽 師云 伊麽則擔取去 尊者大悟
옛날 중국의 엄양존자(嚴陽尊者)라 불리우는 스님이 하루는 조주(趙州)스님(779-897)에게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손에 아무 것도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내려놓아라 (放下着)." 이 말씀을 들은 엄양존자는 도대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의아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는데 무엇을 더 버리란 말입니까?" 그러자
조주스님은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게 (착득거 · 着得去)"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엄양존자는 크게 깨쳤습니다.
위의 일화는 '방하착 (放下着)'이라는 화두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방하착이란 '내려놓아라'는 뜻으로 여기서 '착(着)'은 '방하(放下)'를 강조하기 위한 어조사(語助辭)로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원래 '방하착'이라는 용어는 『오등회원 (五燈會元)』<세존장(世尊章>에서 나오는 말로써 흑씨범지(黑氏范志)가 오동꽃을 받들어 세존께 공양하자 부처님께서 흑씨범지를 불러 '방하착하라'고 말씀하셨다는 일화에서 유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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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 배추 장다리 밭에 옮겨 앉는 흰나비
무심코 날아오른다 날개짓도 가볍게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빈 몸으로 가볍게.
- 김정희(1934~ )
무꽃에 앉았다가 무심결에 날아올라 배추꽃에 가벼이 내려앉는 흰나비. 무꽃에든 배추꽃에든 매달리지 않아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빈 몸으로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는 흰나비. 아무 생각이 없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이가 있을까. 우리는 늘 큰 생각이든, 작은 생각이든,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든, 무언가에 마음이 붙들려 있다. 마음속으로 무념무상, 무념무상 외어 본다는 것은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기에 그를 떨쳐버리겠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는 것.
방하착(放下着)! 당신도 앉았던 꽃자리를 가볍게 박차고 날아오를 수 있 는가. 당신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그것을 내던져버릴 수 있는가. 어떤 값진 것도 어떤 소중한 것도 마침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 몸뚱이도 던져버리고 가야 한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업보(카르마)만이 남아 있을 왼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질없이 아프다. - 홍성란 / 시조시인 | |
| “판치생모(板齒生毛)”뜻을 풀이하면, “판떼기 이빨 (앞니)에 털이 났다” 라는 해석이 됩니다.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 입니까? (‘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 라고
그 물음에 조주스님께서 답하시되, “판때기 이빨에 털이 났다 (板齒生毛).” 하셨읍니다.
판때기 이빨이란 달마의 앞니를 뜻했다. 동굴에서 9년 면벽을 한 달마의 앞니에 털이 날 수밖에 없었던 도리를 조주는 말했던 것이다. 조주 스님께서는 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대답을 하셨을까?.. ... 하고 의심을 해나가는게 참선수행의 화두라는 것입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라는 글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板齒生毛)”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심중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달마대사의 별명이 ‘판치노한(板齒老漢)’이다. ‘앞니가 없는 노장’ 이란 뜻이다. 판치는 판대기 모양의 치아이니 앞니를 말한다. 120살까지 장수한 조주(778~897)선사도 가장 불편한 것이 치아부실로 어금니 한 개 뿐이지만 음식을 차근차근 씹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떤 것이 조사(달마)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앞니에 털이났다.”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다. 마음이 주(主)가되어 모든일을 시키나니, 우리는 마음을 통해 세상을 만든다.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행복이 뒤따르리라,
이 세상에서는 미움으로 미움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물리치나니, 이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법이다.
인간의 목숨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것을 알면서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의식이 깨어 있으며 강하고 겸손한 자, 자신을 잘 다스리고 법에 충실한 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으리라. 바람이 산을 무너뜨릴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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