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30일 화요일, 맑음.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가는 날이다.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가려고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일상을 시작한다. 날이 밝지 않아 적막한 어둠이다. 조용히 불을 켜고 어제를 점검하고 오늘을 계획한다.
몸도 준비하는 운동을 하고 찬양 부르기 공부도 진행한다. 형수의 덜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아침 준비가 다 되었다.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서 함께 식사를 한다. 닭죽에 어제 남은 피자를 야채와 함께 먹는다.
후식으로 사과까지 곁들이니 완벽하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커피도 한잔 내려 마신다. 커피머신을 이제 잘 사용한다. 4일 동안 마셨더니 숙소에 비치된 커피가 다 떨어졌다. 아침 8시 40분에 체크아웃을 한다.
열쇠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배낭을 하나씩 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폴리 중앙역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 행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표는 4일 전에 예약해 두었다. 비용은 편도로 두당 35유로(62,000원)다.
오전 9시 45분 출발인데 30분 연착되었다. 테블릿 PC에 저장된 기차표를 보여주고 탑승 장으로 들어간다. 10시 20분에 드디어 기차 4번 코치(Coaches)에 올랐다. 좌석번호는 11,12번 A. B다. 쾌적한 기차다. 서해안을 따라 기차는 달려간다.
바닷가가 보이면 여지없이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가끔 터널을 지나가는 산악 지역은 절벽이 나타나고 경사가 급한 산들이 이어진다. 평원을 만나면 과수원들이 보이고 올리브 농장도 펼쳐진다. 기차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
숙소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겁다. 걷지 않고 타고 가니 몸도 가볍다. 여러 마을을 거쳐 드디어 열차는 부두가로 들어선다. 페리, 국내여객선(Traghetto Villa San Giovanni)이다.
빌라 산 조반니 - 메시나 트라게토(Messina Traghetto)는 시칠리아행 페리가 출발하는 항구다. 빌라 산 조반니 항구는 이탈리아 남부, 이탈리아 반도의 발끝 부분인 칼라브리아 지방의 메시나 해협에 위치해 있다.
시칠리아와 메시나 섬 맞은편에 있다. 이 항구는 시칠리아 행 페리 서비스의 관문이다. 페리로 8km를 이동하며 20분이 소요된다. 빌라 산 조반니와 메시나를 오가는 페리 여행은 정말 완벽했다. 탑승부터 도착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모든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고 도움이 되었으며, 덕분에 승객들은 언제나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여섯 대 기차가 페리로 해협을 건널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놀라워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먼저 철길이 깔린 커다란 배가 항구로 들어와 준비를 마치면 열차가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며 배로 진입한다. 우리가 탄 열차는 6량인데 세 차량이 왼쪽으로 들어가면 나머지 세 차량이 오른쪽으로 들어가 정차한다.
종사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분주하다. 배에 열차가 실어지면 승객들은 모두 나와서 갑판 위로 올라가 주변을 구경할 수 있다. 빌라 산 조반니 항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메시나에서 들어 온 승객들이 줄지어 나가고 있다. 실려진 열차를 보니 배가 엄청 커 보인다. 떠나는 설레임이 좋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세상이다. 배는 이제 메시나 해협을 건너간다.
이렇게 이탈리아 본섬을 떠나 시칠리아로 들어간다. 시칠리아(Sicilia)는 이탈리아의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이다. 이 섬은 이탈리아 본토와 메시나 해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주도는 팔레르모이다. 시칠리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만 년 전이었고 오랫동안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사람들이 옮겨와 살았다. BC 3세기에 로마 제국 최초의 속주가 되었고 11세기에는 노르만족에게 정복당했다.
18세기에는 부르봉 왕가의 지배를 받다가 통일 이탈리아로 되었다. 이 섬은 대부분이 산악지대로서 지진과 화산활동이 매우 격렬하며,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에트나 산(3,261m)이 있다.
동쪽에 있는 비옥한 칸탈리나 평야가 유일하게 넓은 평지이다. 섬의 고립된 생활로 인해 정치·사회 세력과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마피아 세력이 잔존하고 있다. 가족이 시칠리아 사회의 기본 구성요소로 남아 있다.
시칠리아의 오랜 전통은 이탈리아의 예술과 문학에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민속 예술과 대중적 종교축제에도 잘 표현되고 있다. 비행기와 배와 기차와 버스 등으로 교통편이 잘 갖추어져 있다.
시칠리아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곳곳에 유적이 많다. 주도인 팔레르모의 구시가지에는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부터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르네상스, 바로크에 이르는 건축물과 성당, 분수가 남아 있다.
비잔틴제국이 시칠리아를 지배할 때 수도였던 타오르미나에는 기원전 395년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운 원형극장, 성당, 시계탑, 팔라초 등이 남아 있다. 에트나 화산 기슭에는 기원전 8세기에 조성된 도시인 카타니아가 있다.
에트나 화산 분출로 일곱 번이나 도시가 용암과 화산재에 뒤덮였으며, 1669년의 화산 폭발로 도시가 거의 황폐화 되었다. 지금의 카타니아는 그 위에 다시 세워진 도시이다.
아그리젠토에는 시칠리아 지역에 살았던 그리스 사람들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배는 메시나 항구로 들어간다. 시칠리아 섬에 도착한 것이다. 기차에 탔다가 기차와 함께 배에서 내리면 메시나역이다.
메시나(Messina)는 시칠리아 섬 동북부, 메시나 해협 서안에 위치하는 항구도시로, 시칠리아 섬의 문호이다. 메시나 해협을 횡단하는 다리가 건설될 예정이었으나 예산 부족 문제로 사업이 중지되었다.
메시나는 슬픈 이야기를 갖고 있다. 지중해 중심부에 위치한 시칠리아는 당시 해상 무역의 요충지였다. 하지만 1347년 10월, 이 아름다운 섬에 정체불명의 선박들이 들어서면서 유럽 대륙 전체를 멸망의 공포로 몰아넣은 참극의 첫 번째 무대가 되었다.
당시 몽골 군대는 제노바 상인들이 배수진을 친 흑해 연안의 카파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페스트로 죽은 시신을 투석기에 실어 성 안으로 쏘아 올렸다. 이는 역사상 최초의 '생물학전'이었다.
감염을 피하려 카파를 탈출해 시칠리아 메시나 항에 도달한 12척의 배 안에는 노를 젓다가 죽은 선원들의 시신과 함께, 페스트균을 품은 쥐와 쥐벼룩이 가득 차 있었다.
육지와 연결된 닻줄을 타고 쥐들이 내리면서 시칠리아 전체로 전염병(페스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은 엄청난 전염병의 발생지가 된 것이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본 내용이다.
무거운 생각을 들고서 우리는 숙소가 준비된 카타니아로 이동한다. 메시나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간다. 4시 18분 출발이다. 기차가 달리는 해안가에는 집들이 많이 낙후 되어있다. 도심으로 사람들이 떠나 인구가 줄어드는 탓이란다.
집 한 채에 살겠다고 하면 3달러(공짜)에 매매되기도 한단다.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에서 보는 바다의 풍경은 멋지다. 기암, 절벽에 푸른 빛 지중해는 키프러스 섬을 떠오르게 한다.
카타니아(Catania) 역에 오후 6시 20분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이동한 셈이다. 서둘러 숙소를 찾아간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숙소(Mirage Mer B&B)다.
바다 전망이라고 해서 예약을 했는데 도로 변이라 시끄럽다. 카운터에 젊은 주인이 기다리고 있다. 도시세 28유로를 지불한다.
방 키를 주고서 주방을 설명해 주고 주인은 퇴근을 한다. 방은 소박하지만 깨끗하다. 투숙객을 환영한다는 글귀도 있다. 기분이 좋다.
잠시 슈퍼를 찾아갔다. 물과 과일, 체리, 복숭아, 사과를 사왔다. 라면을 끓여서 저녁식사를 한다. 언제 먹어도 라면은 맛있다. 과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샤워를 하고 빨래도 한다. 여기서 이틀을 묵을 예정이다. 붉은 달빛이 해안으로 떠오른다. 해안가로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피곤이 밀려온다.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6월 30일 경비: 기차비 140, 카타니아 기차비 38.8, 슈퍼 20.23, 숙박비 이틀 283, 도시세 28, 계 893,000원. 누계 15,270,000원. *1유로 17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