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지게미
중동전쟁이 지속되면서 서민들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공포와 고물가의 유령이 우리 곁을 배회한다. 석유 생산 기반 시설을 공습당한 카타르는 천연가스 장기계약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계속되는 미세먼지며 차량 5부제 등 삶을 옥죄는 소식들로 영 봄이 봄 같지 않다. 겨우 겨울이 끝나나 했더니 몸이 자꾸 움츠려진다. 이런 날은 그리운 것들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움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햇살이 툭툭해지고 사람들 걸음걸이가 나른해지면서 길거리 마을 반찬가게 진열장에 술빵이 놓이기 시작했다.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찾던 따끈한 붕어빵이며 국화빵에 밀려 겨우내 사라졌던 빵이다. 검정 강낭콩에 연초록 완두콩이 다문다문 섞인 술빵을 보니 문득 술지게미가 가려주던 배고픔이 그리워진다.
일제 침탈에서 해방되자마자 극심한 이념 갈등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천형(天刑)처럼 만들어진 가난의 강을 온몸으로 건넜다. 마음 바닥에는 허기와 배고픔이 더께 더께 쌓이던 시절이다. 그 아프고 슬픈 기억에는 술지게미가 있다. 청주를 떠내고 물을 부어 막걸리를 걸러낸 다음 남은 것이 술지게미다. 술지게미는 버려야 할 찌꺼기이나 버릴 수 없었던 슬픔이자 아픔이었다. 오래된 흙담이 세월에 바랜 색깔처럼 누리끼리하고 텁텁한 느낌, 그러나 돼지나 소가 기분 좋게 먹어야 할 사료에 불과했음에도 배고픔을 덜기 위해 마지못해 먹어야 했던 기억은 아직도 아릿하다.
때에 따라 한 잔의 막걸리는 끼니였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오던 중에 길옆에 세워진 소달구지에 앉아 막걸리를 홀짝거리다가 종내에는 술에 취해 그만 깜빡 잠들기도 했었다. 우리 앞선 세대는 무슨 재미난 일로 인생을 사셨을까. 고픈 배 움켜지고 구성진 노래 한 자락과 어깨 들썩이는 풍물 소리로 그 한 많은 평생을 버텨 내셨을까.
찬바람이라도 나기 시작할 때쯤 주제도 잃고 막걸리 타령을 해대던 남정네도 많았다. 살림하는 아낙네야 속이 만장(萬丈) 같이 타들어 갔지만 누룩을 만들고 귀하디귀한 쌀로 술을 담갔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술 거른 후 남는 지게미로 당장은 배도 불리고 끼니도 해결했다. 짐승이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허기를 면했다. 아낙들은 그마저도 눈치 봐가며 얻어먹듯 했다. 그 가난한 시절을 표현한 말이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때의 아내란 조강지처(糟糠之妻)다. 서러운 이름이다.
막걸리를 걸러내고 영양가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술지게미다. 사카린이나 당원을 넣어 단맛이 나게 한 술지게미는 엷은 술 취함과 묘한 흥분을 불러온다. 밥 양을 늘리기 위해 밥할 때 함께 넣으면 시큼한 맛과 혀끝에 깔깔한 식감이 느껴진다. 보릿겨나 밀가루 반죽에 술지게미를 넣어 부풀게 한 빵이 술빵이다. 술지게미에는 반죽을 부풀게 하는 뜸팡이가 들어있다. 그래 그런지 술빵은 양잿물 냄새 같은 향이 조금은 역겹다. 아직도 배고픔과 생경한 맛으로 각인되어 있다.
당시에는 밀주 단속도 심했다. 윗마을 도가며 마을 구멍가게 술이 잘 팔리지 않자 면사무소와 지서에 돈 냥이라도 찔러 주었는지 세무서 직원과 지서 순경이 아랫담에서부터 술을 친다. 점잖은 유자(儒者)의 나라에서 호령이 아니라 돈이 관(官)을 움직이는 세상으로 변했다. 뒷동산 대밭이 수런수런하다. 명절에 쓰기 위하여 안골 우물 속에 담가 둔 술 항아리를 대밭으로 옮긴다고 난리다. 혁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밀주(密酒) 단속이 한층 심해졌다.
동네 방앗간에서 밀가루를 빻고 남은 밀기울을 정성껏 모아서 집으로 가져온다. 하늘이 높아져 가면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오자 어스름 저녁 누룩을 만든다. 대명천지에 누룩을 밟을 수는 없다. 누룩을 만들다가 순사나 면서기들에게 들키면 곡경을 치름은 물론 짝 당 거금 50원씩 벌금을 문다. 누룩 몇 짝 벌금만 해도 거진 쌀 한 가마 값이다.
여름에도 누룩을 만들 수는 있으나 더운 날씨에 습기가 많으면 누룩이 뜨기도 전에 썩는다. 종갓집인 경우 기제사에 명절 제사를 더하면 한 달에 한 번은 제주가 필요하다. 아무리 관(官)에서 밀주를 단속해도 기제사에 밀가루 막걸리를 올릴 수는 없다. 세무서나 지서에서 술 치러 왔을 때 몇 번 걸리고 벌금을 물기는 했지만 도가 탁주를 사다가 조상께 올린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하늘이 높아지고 건들마가 고샅을 들락거리자 할머니는 누룩 만들 마음이 바빠진다. 이른 새벽 부뚜막에 대나무 가지를 세우고 오색실을 감은 뒤 커다란 양초에 불을 붙여 조왕 터를 만든다. 놋대접 가득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스레 비손을 한다.
누룩을 만들어 띄우는 기간이 자그마치 한 달 정도 걸린다. 이 시기 비가 많이 오거나 갑자기 온도가 치솟으면 말짱 헛일이다. 조상께 올릴 술을 빚기 위해 만드는 누룩이니 조왕신이며 가을바람이 잘 돌보아 주려니 한다. 누룩에는 밀 누룩, 쌀누룩, 보리누룩 등이 있지만 집에서 만들던 것은 밀기울 누룩이다. 쌀누룩이나 보리누룩 등은 술 전문집에서나 만드는 누룩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주식 재료로 누룩을 만들 수는 없었다. 물론 통밀을 그냥 갈아 누룩을 만들지도 않았다.
밀을 빻아 가는 채로 흔들어 밀가루를 분리해낸 것이 밀기울이다. 밀기울에 밀가루를 조금 넣고 맑은 샘물을 부어가며 반죽을 한다. 물은 조금씩 여러 번 나눠 부어 반죽이 질지 않아야 좋다. 손으로 집었을 때 흐트러짐이 없이 뭉쳐질 정도로 반죽한다. 너무 물을 많이 넣으면 누룩 형태를 만들 때 잘 뭉쳐지지도 않을뿐더러 발효도 잘되지 않는다. 반죽을 고정 틀에 넣어 발로 밟아가며 단단하게 뭉친다. 메주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누룩 형태가 만들어지면 묶인 천을 제거하고 불을 땐 방바닥에 늘어놓아 수분을 날린다. 시간이 조금 지나 꾸덕꾸덕 마르면 바닥에 짚을 깔고 누룩을 올린 다음 누룩 위에 생 솔잎이나 마른 쑥을 덮어 본격적인 누룩 띄우기 단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 재료들의 효모균이 누룩으로 옮겨가 누룩 균의 증식을 돕기 때문이다.
누룩을 띄우는 방은 대략 3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면서 한 달이 지나면 누룩이 완성된다. 햇볕에 잘 말린 누룩은 한지 등으로 포장해 종이 상자에 넣어 서늘한 곳에 보관하고 필요한 시기에 이를 곱게 빻아 고두밥과 비벼 항아리에 넣고 술을 담근다. 누룩을 넣은 버들고리는 가운데 마루 시렁 위에 항상 얹혀 있었다.
배고프던 시절 술지게미를 먹어본 기억이 아련하다. 밥 먹고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배가 꺼지던 나이다. 술지게미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다. 이를 먹은 이들은 술기운에 얼굴이 발그레해져 마을을 돌아다녔다. 가난이 슬펐으나 숨길 수도 숨겨지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시골집들은 명절 때나 제사 때 몰래 술을 담갔다. 술을 담그면 은은한 술 익는 냄새가 골목길에 퍼졌다. 커다란 항아리에 술을 담가 따뜻한 방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놓으면 발효가 잘 되어 술맛이 좋았다. 집안에 들어서면 술 익는 냄새로 술 담근 것을 금방 눈치챘다. 따뜻한 사람만이 따뜻한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곰팡이로 썩고 고두밥과 섞여 스스로 향기를 만들어본 술지게미는 마지막까지 사람에게 가난한 소용(所用)을 다한다. 막걸리 못지않은 쓰임을 마다하지 않는다.
목련꽃 떨켜가 한껏 부풀고 꽃다지며 봄까치꽃이 벙긋거리며 연신 봄을 실어 나르지만 서민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고가를 경신하는 기름값에 다락같이 뛰어오르는 물가에 봄이 봄 같지 않다. 동네 반찬가게 진열장 위 푸짐해 보이는 술빵을 보니 문득 배고픔이 그리워진다. 그동안 너무 풍요로웠나 보다. 밀기울도 술지게미도 잊고 살았다. 어디선가 다툼이 일어나면 맨 먼저 가난한 사람부터 힘들어진다. 강 건너 불구경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장사하는 사람마다 구제금융 때보다 더하다고 아우성이다. 전쟁, 당원을 섞은 술지게미 한 그릇으로 끼니를 대신하며 알딸딸한 기분으로 졸던 기억이 떠오른다. 배고픔이 그리움일 수는 없지만 잊히지 않음은 분명하다. <끝>
첫댓글 아름다운 강산,
그리운 산하,
내 내라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