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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보기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매바우
오손 웰스는 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시민 케인>(41)을 27세에 만들어 낸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 작가이다. 이후 웰스는 연출과 주연을 겸한 진지한 영화들을 만드는데, 그 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화하는데 대단한 열정을 가졌다. 웰스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 출발한 대배우들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햄릿, 리어왕, 멕베스, 오델로 등은 그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역이다. <멕베드>(48)와 <오델로>(52)는 바로 웰스의 열정이 낳은 결과물로 특히 <오델로>는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웰스는 <오델로>에서 제작, 각색, 연출, 주연 등 1인 4역을 해냈는 데, 특히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3년만에 영화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제작비가 끊겨서 여러 차례 중단하며 지속된 촬영 작업으로 배우들과 촬영 장소가 바뀌었다(모로코에서 베니스까지). 웰스는 의상비 절약을 위해 타월을 두룬 터키탕에서의 살인 장면을 찍는 등 즉흥적인 연출력으로 이런 어려움을 이겨냈다. 또한 당시 나온 영화는 후시 녹음으로 사운드에 문제가 있었지만 1979년 원래 제작비만큼의 비용을 투자해서 사운드를 복원해 낸 상태의 필름을 방영했다. 질투와 오해에 관한 드라마인 <오델로>는 연극 무대에서는 배우의 극적인 대사에 의존하지만, 웰스의 영화에서는 원작을 창조적으로 각색해서 원작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영화를 여는 장례 의식과 시각적 화면 구성은 웰스의 <오델로>를 보다 고전적인 형태의 비극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연출자로서 웰스는 <시민 케인>으로 기억되지만 연기자로서 웰스의 재능과 카리스마적 이미지는 <오델로>가 대표작이라고 할만하다.
베니스의 사이프러스에 살고 있는 무어인, 오델로는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워 큰 존경을 받는다. 그는 젊은 귀족 숙녀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 또한 오셀로의 성품에 반해 그를 흠모한다. 하지만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는 오델로가 무어인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했고, 결국 두 사람은 한밤중에 도망을 쳐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 사실을 안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는 오델로를 원로회에 연행해 오지만 때마침 터키군이 사이프러스를 침공해오자 원로 위원들은 오셀로를 장군으로 임명, 전쟁에 파견한다. 오셀로는 터키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다. 한편 오델로의 부하, 이아고는 오델로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사실은 그를 질투하고 시기하여 오델로를 궁지에 빠드릴 궁리만 한다. 그러던 중, 이아고는 오델로의 부관인 젊은 캐시오와 데스데모나의 관계를 모략할 음모를 꾸민다. 이아고는 캐시오가 술에 약한 것을 이용하여 그가 보초를 설 때 술을 먹여 소란을 벌이게 하고 이에 노한 오델로는 캐시오를 부관의 자리에서 해고시킨다. 캐시오는 데스데모나를 찾아가 자신의 복직을 호소해 줄 것을 부탁하고 이아고는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이용해서 오델로의 질투심을 유발시킨다.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의 시종으로 있는 아내를 이용하여 그녀의 손수건을 훔치게 하고 이걸 캐시오에게 건네줌으로써 오델로로 하여금 두 사람의 관계를 확신하도록 만든다. 질투심에 이성을 잃은 오델로는 결국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목 졸라 죽인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이아고가 꾸민 계략이었음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영화는 <맥베스>, <한밤의 차임벨>과 더불어 오손 웰즈의 셰익스피어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며, 1948년부터 촬영을 시작했지만 몇 번의 제작 중단과 캐스팅의 교체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 약 3년 만에 완성을 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52년도에 개봉하지만 곧 사라지고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근래에 영상이 복원되고 사운드가 재녹음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영화의 DVD의 부록에는 복원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출연해 작업의 고충과 성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맥베스>에서처럼 오손 웰즈가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며, 감독, 편집까지 맡았는데, 웰즈 감독이 편집까지 도맡아 만든 영화는 <시민 케인>과 <맥베스>, 그리고 <오델로> 이렇게 세 작품 정도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편집 또한 연출에 포함되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 영화들이야말로 진정한 오손 웰즈 감독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맥베스>를 감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 감상 전에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을 읽어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원작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분적으로 약간 다른 설정이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그다지 중요한 차이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다워야 한다는 듯, 웰즈 감독은 첫 장면부터 도발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장례식 행렬 장면이다. 그들을 죽게 만든 이야고는 곧 처형당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는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이 이어진다. 영화의 비극적 결말을 맨처음에 보여주면서 영화 전체에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시민 케인> 또한 케인의 사망 장면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여러 인물의 다양한 회상으로 전개되는 <시민 케인>과는 달리, 오프닝 시퀀스 후 영화는 원작의 첫 부분인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결혼 장면부터 다시 차분히 전개된다. 물론, 인물들의 비극적 결말을 관객에게 뚜렷이 각인시킨 채.
영화는 전작 <맥베스>의 유명한 롱 테이크와는 대조적으로, 숏 테이크에 의한 빠른 편집으로 일관한다. 감독 자신이 밝혔듯이 그 이유는 사실 영화의 미적인 차원에서 의도된 것이 아니라, 단지 롱 테이크로 찍을 경우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숏 테이크 때문에 배경의 전모를 파악하기 힘든 장면도 많고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들도 보이지만, 평론가 앙드레 바쟁이 말했듯이 웰즈 감독은 절묘한 편집을 통해 영화에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약점을 극복한다. 한편, 자신의 영화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배우로서의 오손 웰즈의 재능은 이미 <시민 케인>에서 나이를 넘나드는 눈부신 연기로 입증된 바 있으며, 강렬한 외모와 눈빛을 통해 전달되는 인물 심리에 대한 묘사는 그의 주특기다. 이야고가 탁월한 언변으로 오델로의 의심을 키우는 장면을 보면, 이야고의 간계에 빠져드는 오델로의 심리 변화가 표정에 잘 포착되어 있다. 이 장면은 두 인물이 꽤 긴 시간동안 함께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나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고를 맡은 배우 마이클 맥리아모어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간악함을 적절히 숨겼다가 드러내는 이야고의 캐릭터를 과장되지 않게 표현했다.
오델로와 이야고의 비중에 비해 다른 인물들의 역할은 원작보다 많이 축소된 편이다. 로데리고와 카시오는 물론, 데스데모나도 영화 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사가 줄었다거나 하는 직접적인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 오델로와 이야고 두 인물의 심리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자연스레 다른 배역들을 주변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오델로를 괴롭히는 것은 이야고가 만들어낸 거짓된 의심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어인(유색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 있다. 즉 데스데모나(혹은 다른 인물들일 지라도)와는 다른, 또는 못하다는 근본적인 열등감이 오델로에게 있었고, 유색인이라서 무조건 오델로를 미워한 이야고는 그러한 그의 약점을 자극한 것이다. 내가 본 세 편의 오손 웰즈 영화 <시민 케인>, <맥베스>, <오델로>는 모두 한 남자의 파멸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민 케인>과 <맥베스>에서 그 원인은 무모한 욕망 때문이었고, <오델로>에서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의심 때문이었다. 비록 그들의 잘못이 있었지만 그들을 파멸로 이끈 원인에서 인간적인 면(인간성의 약점)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작품들의 비극적 정서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p.s. 기술적으로 복원된 이 영화는 개선된 화질 외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 의해 사운드트랙이 재녹음되었다. 원래의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악보를 받아적고 다시 그것을 연주한 것이다. 매끈한 음색이 영화의 화면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극적인 부분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의 실감나는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출처 : 블로그 > LOOKING IN AND OUTSIDE OF W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