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8월 23일(월)
우리 부대는 에비군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날도 날은 조금 더웠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크게 다를 것없는 아침이였다.
그런데 아침 일찍 비상이 걸렸다.
완전 군장을 하고 시흥쪽에서 오는 길을 차단하고 검문 검색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중대장이나 선임하사들은 그다지 놀란듯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듯 매우 느긋했다.
어찌됐던 전원은 실탄 40발씩을 소지하고 부대 앞 길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나는 L.M.G를 가져와 정문 앞 언덕 돌밭위에 시흥 쪽 길을 완전히 사격권 내에 들도록 설치했다.
그리고는 실탄 250발을 걸어 놓고 주변을 돌을 올려 쌓아 안전장치를 했다.
그 와중에 돌속에 숨어 있던 큰 살모사 한 마리를 생포했다.
돌을 들추는데 살모사의 꼬리가 돌속에 보였다.
나는 급히 총열을 교체할 때 끼는 방열 장갑을 끼고 살모사의 꼬리를 움켜잡고 힘껏 당겼다.
살모사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돌을 하나씩 들추자 드디어 몸통을 지나 머리가 나타난다.
목아지를 단단하게 움켜쥐고 취사장으로 가서 취사반장에게 인게를 해주니 취사반장이 무척 좋아한다.
처음에는 왜 비상이 걸렸는지 몰라 점차 긴장이 풀어질 무렵 라디오 방송을 듣고 일이 터진것을 알았다.
이른바 "실미도 사건"이 터진 것이였다.
만일 그들이 시흥쪽으로 돌아 안양으로 들어 올 수있으므로 도로를 막은 것이였다.
문제는 오후 2시 반경 문래동에서 사건이 종결 됐는데 비상은 해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안양과 시흥사이를 오가는 사람들만 불편을 겪었다.
그래도 나는 그 사건을 인해 L.M.G를 실전에 설치하는 연습을 잘 했다.
나중에 중대장과 주임상사가 같이 와서 보고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한다.
주임상사는 나이가 들었으니 산전 수전을 다 겪어 알겠지만
중대장이야 실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기관총 설치한 것을 처음 봤으리라.
날이 어둑해 져서야 비상이 해제되고 부대로 들어 올 수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 특수부대가 무엇을 하는 부대인지 전혀 알수가 없었기에
부대내에서는 곧 잊혀지고 일상 생활로 돌아왔을 뿐이다.
첫댓글 실비도 사건을 현역에서 맞이 하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