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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사라진 택시
“자. 다 왔어요. 요금은 20달러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택시가 시내, 베레스 포드 스퀘어에 도착하자 젊은이들이 내렸다. 네 명이 내리면서 각자 5달러 짜리 지폐를 냈다. 더치페이였다.
‘참 좋은 때다. 이든파크에서 럭비경기 구경하고서 술집 직행이라. 라이벌 대결인 뉴질랜드와 호주의 럭비 게임.
뉴질랜드 올블랙팀의 맹활약으로 역전승. 승리감까지 맛보고서. 친구들과 야간 카페에서 술 파티 하는 밤.‘
어깨동무하고 흥겹게 카페로 향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운전하다 보기 좋은 풍경이 나오면 으레 셔터가 반짝했다.
마침 길가에 주차된 차가 중간에서 한 대 빠져나갔다. 민재가 재빨리 그 빈자리에 차를 갖다 세웠다. 앞뒤 차 간격이 협소했다. 혹시 몰라 찰칵해뒀다.
나중에 보면 차를 빼서 나갈 때, 간혹 차 범퍼를 긁고 간 경우가 있었다. 민재 차 앞뒤를 찍어뒀다.
‘저 친구들은 술집으로,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러 식당으로. 앞 건너 피트 스트리트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순대국 한 그릇 해야지.’
금요일 밤. 10시까지 영업하는 유일한 한국식당. 한국관 간판이 민재를 반겼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할머니가 나왔다.
“할머니. 잘 계시지요. 저 할머니 순대국 먹으러 왔어요.”
“에. 어서 와요. 택시 운전하다 저녁도 못 드셨나 보네. 내 고기 많이 넣어 드릴게. 먼저 물로 목이나 축여요.”
할머니 말씀마다 정감이 넘쳤다. 고국에서 국밥집에 들른 기분이었다. 옆 테이블에 눈이 갔다.
페인트 묻은 작업복 차림의 나이 지긋한 사람. 배가 고팠는지. 순대국을 게걸스레 먹고 있었다. 보아하니 한국 분이었다.
민재가 목례하자, 그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자들끼리 사정을 아는 터라, 눈 빛 소통이 가능했다.
“오늘 저녁 택시 바빴지요? 럭비 게임한다고 젊은이들이 난리던데. 리모델링 가게 인테리어 마감 작업하고 이제 저녁 먹어요.”
“네. 택시로서는 오늘 저녁이 대목이라서 저도 퇴근이 늦어졌어요. 저녁 먹고 한 시간 정도 더 일하고 집에 가려고요. 아직 두어 시간은 바쁘거든요.”
그때였다. 할머니가 순대국을 내왔다. 시장기가 돈 터라 민재 숟갈질이 바빠졌다. 들깨가루를 한 숟갈 듬뿍 떠서 순대국에 풀었다.
깍두기 한 접시도 그대로 넣었다. 숟가락으로 휘 저었다. 다음부턴 크게 한 숟갈씩 떠서 입에 넣었다. 입이 호사를 누렸다.
할머니가 들깨가루 그릇과 깍두기 한 접시를 민재 식탁에 놓고 갔다.
“배고플 텐데. 많이 들어요. 늦게까지 일해도, 음식 맛있게 먹는 손님들 보면 고단하지 않아요.”
옆에서 식사를 마친 분이 민재 먹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넉넉한 인심이 민재 이마에 솟아난 땀방울을 훔쳐 주었다.
“맛있게 들어요. 잘 먹는 모습 보니까 왠지 나도 좋아요. 먼저 나갑니다.”
“네. 어르신. 가는 길 조심하시고요.‘
민재가 이마와 콧등위의 땀을 닦았다. 목까지 쓱쓱 닦았다. 하얀 손수건이 다 젖었다. 민재가 젖은 손수건을 쳐다봤다.
‘마리아 녀석. 이럴 때도 마리아 생각나게 만드네. 귀여운 녀석. 그래. 다음 달 주니어 골프 대회. 좋은 성적 거두렴. 선생님이 응원한다.
네 골프 후원금 보태려 바쁠 때는 고단해도 더 일한다. 오늘도 수입이 좋은 날이야. 앞으로 한 시간 더 일하고 갈 거야.‘
민재가 물을 다 마시고 일어섰다. 카운터로 가서 20달러 지폐를 내밀었다. 12달러인 순대국밥 값. 20달러를 주고 나오려했다.
"할머니. 맛있는 순대국 잘 먹었어요. 늦게까지 문 열어 줘서 이렇게 요기도 하고 참 고마워요. 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아니. 이 돈. 안 받아도 돼요. 마음만도 고마워요. 밥값. 조금 전 나간 분이 함께 계산하고 갔어요.”
“네? 할머니. 저는 처음 보는 분인데요. 어떻게 제 식사비를 내고 가셨지요?”
“그분. 10년 전쯤. 부인이 유방암으로 돌아갔어요. 지금이야. 두 딸 결혼시키고. 혼자 살며 저 나이에도 목수 일을 해요.
손주들 용돈이라도 주는 게 낙이라고 하던데요. 참 신실한 분이에요.”
“아~ 세상에.”
민재가 속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20달러 지폐를 카운터 테이블에 놓고 그냥 나왔다. 그분 얼굴이라도 다시 볼 수 있을까?
한국관 식당문을 나서는데, 그 목수분이 허겁지겁 식당 쪽을 걸어왔다.
“아니? 어쩐 일이세요. 어르신. 제 밥값까지 내주고 가셔서 감사 인사드리려고 했는데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당황한 얼굴을 보니.”
“아이 참. 내 차가 사라졌어요. 저 건너편에 두고 왔는데. 다른 때도 거기다 대고 와서 이 식당에서 저녁 먹곤 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참.”
“그래요? 제 택시도 그쪽에 세우고 왔는데요. 다시 한번 가 보시지요.”
민재 말을 듣고 목수분이 민재 뒤를 따랐다. 민재가 세워둔 자리. 아무 차도 없었다. 민재가 당황했다. 운전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어라? 제 택시도 안 보이네요. 어디 갔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택시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목수분도 옆에서 걱정했다. 그때, 술집 카페에서 한 아가씨가 나와서 이야기했다.
“조금 전, 견인차 세 대가 동시에 나타나. 여기 주차한 차 세 대를 끌고 갔어요. 여기 이 자리는 불법 주차 자리는 아닌데.
그 견인차 회사 주인이 얼마 전에 바뀌었다고 하던데. 그래도 이건 지나친 것 같아요.
뉴턴에 있는 견인차 회사로 가보세요. 거기 가서 따져보세요. 듣자 하니. 조폭이 그 회사를 인수한 뒤. 인정사정없이 차들을 끌어간다고 해요.“
민재 옆에서 듣고 있던 목수분 손이 떨렸다.
“해도 너무 하네.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고. 늦게 저녁 먹는다고 밖에 세워둔 차를. 불법 주차도 아닌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불한당처럼 견인해가다니. 얼마나 떼돈을 벌겠다는 것인지. 참. 나.”
“조금만 참아요. 제가 그 차, 곧 찾아드릴게요. 견인차 회사, 한번 손 좀 봐줘야겠네요.”
민재의 위로 말에 목수분이 의아한 얼굴로 민재를 쳐다봤다. 그때. 택시 한 대가 그 앞을 지나갔다. 민재가 그 택시를 세웠다.
“아. 아대네. 아대! 나 좀 도와 줘.”
택시에서 흑인 운전사가 내렸다. 민재를 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아대. 내 택시가 견인당해 없어졌어. 저녁 밥 좀 먹고 나왔더니. 견인차가 끌고 갔어. 뉴턴 견인차 회사로 태워다 줘. 저분도 함께. 둘 다 차가 없어.”
아대 택시 앞좌석에 민재가 앉았다. 목수분은 뒷좌석에 앉아 한 숨을 쉬었다. 아대가 걱정 말라며 민재를 위로해줬다.
“존. 요즘. 견인 차 회사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 나도 지난 주, 화장실 좀 다녀오는 사이. 내 택시를 견인하려고 고리에 걸더라고.
간신히 견인은 피했지만, 비용을 내라고 하던데. 정식 견인하면 140달러인데. 반만 내라며 70달러를 요구하더라고.“
“그래? 거기도 뉴턴 견인회사야?”
“응. 이거 뭐. 택시 운전하다 보면. 급할 때는 화장실도. 식당도 못 가잖아. 그 새를 못 참고. 견인을 해가는 데. 어이가 없더라고.
경찰은 그런 경우. 봐 주거든. 뉴질랜드 경찰은 약자를 보호해주고, 나쁜 녀석들한테는 강한데. 견인차 회사는 조폭 같아.“
뒷좌석에서 듣고 있던 목수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조폭이 따로 없어.
“아대. 요즘은 졸음운전 안 하지? 지난번, 야간운전할 때. 뉴린에서 아대 차 뒤따라가다. 엄청나게 놀랐잖아. 지그재그로 운전하는데. 무섭더라고.”
“그때, 존이 뒤에서 클랙슨을 울려. 내 차를 세웠잖아. 동시에 내 눈앞에 내민 드링크. 어라이브 캔. 250 밀리 리터짜리.
그것 마시고 잠이 깼어. 대형 슈퍼 카운트다운에 가서 한 박스 사다 놓고. 밤 운전 하는 날은 한 캔씩 마셔.“
“아대. 잘 하고 있네. 내 몸은 내가 살펴야 해. 내 경험상 보면 어라이브는 가장 약한 각성제야. 콜라 정도 돼. 효과는 좋지.
중요한 것은 그것 마시고 반드시 물로 입안을 헹궈내야 돼. 치아가 손상된대. 피곤한 데도 운전을 해야 할 경우. 샤워만한 것이 없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되면, 그런 드링크도 필요해. 내 트렁크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다. 그때 아대에게 한 캔 준거야.“
“고마워. 존. 어. 벌써 뉴턴 견인회사 다 왔어. 뭐야. 견인차가 차를 떨구어놓고 또 나가네. 두 대가 동시에. 바쁘구먼.”
“아대 덕분에. 택시 잘 타고 왔어. 여기. 요금 20달러면 되겠지.”
“존. 무슨 소리야. 동료가 이정도 편의도 못 봐주나?”
민재가 내리며 20달러 지폐를 앞좌석에 놓고 내렸다. 목수분도 따라 내렸다. 목수분이 안 쪽을 바라보다 소리쳤다.
“아. 저기 내차가 있네. 세상에. 내 차 옆에 택시도 있고.”
“네. 아저씨. 잠깐만 기다려요. 저만 보고 계세요. 쟤들과 제가 이야기 다 할 거니까요. 벌금이라고 돈 내라고 해도 가만 계세요.”
목수분이 움칠했다. 아니. 이 젊은이는 무슨 힘이 있다고 저리 말하는 거야. 그때, 떡대 큰 남자가 어슬렁거리며 나와 물었다.
“차량 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차를 제대로 대고 다녀야지요. 아무데나 개 똥 싸듯 다니면, 똥 치우는 우리가 피곤한데요.”
‘말 하는 것 좀 봐라. 참 가관이네. 똥 뀐 놈이 성낸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한 말 아닌가.’
“여기가 똥 치우는 곳 인가요? 어쩐지 냄새가 고약하더라니!”
“아니? 당신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끌려온 차 안 찾아가고. 140달러 내고 어서 빼가요. 현찰 내면 20달러 깎아 줄 거고.
다른 차, 댈 자리가 없는데. 하룻밤 지나면 추가 요금 올라가니까. 어서 서둘러요. 빨리요. 불법 주차했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아닌가?“
“불법 견인했으면 그만한 대가를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닌가?”
민재가 카메라를 꺼내 주차한 차 상태 사진. 그걸 떡대 큰 남자 눈앞에 들이 밀었다. 민재 키가 185cm 그 남자보다는 약간 컸다.
민재가 발뒷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며 그 남자를 내려다봤다. 그 남자가 약간 움칠했다. 뭐야? 이게. 차는 안 빼가고. 웬 사진을 내밀고.
민재가 움칠해하는 남자의 눈빛을 간파하고. 목소리를 우렁차게 높였다.
“여기 찍은 사진에 나온 차 두 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견인해 갔단 말이야. 밤늦게까지 일하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 먹고 나온 사이.
불법 견인! 과태료가 얼마 나오는 줄 알아? 140달러에 열배. 1400달러라고. 이런 것 알고나 견인하는 거야? 임자 만났어 오늘! 여기 대표 누구야?“
민재의 단호한 음성에 남자가 당황한 기색으로 꼬리를 내리면서도, 큰 떡대로 민재를 확 치며 밀쳤다.
순간, 민재가 재빠르게 몸을 틀었다. 큰 덩치가 그대로 앞으로 나가 떨어졌다. 엉덩방아를 찧고 만 남자가 씩씩거렸다.
“잘 한다. 불법 견인에. 죄 없는 사람까지 치고 밀치며. 경찰 출동시켜야겠구먼. 경찰 조서 써야겠네. 이곳 보스 누구야! 어서 나오라고 해! 빨리!”
민재가 땅에 엉거주춤 앉아있는 남자에게 고함을 치며 다그쳤다. 민재가 지갑을 열어 경찰청장 자문위원 증을 남자 눈앞에 들이댔다.
남자 눈동자가 핑그르르 돌았다. 간신히 일어서며 꼬리를 내렸다. 깨갱하는 투였다. 금세 태도가 돌변했다.
“내가 보스요.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할 테니까. 차 빼서 나가시오. 어서.”
“아니. 그럴 순 없지. 이대로 가면 다른 사람에게 또 그런 나쁜 짓 할 텐데. 사무실에 가자고.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각서는 써야지.
그렇잖으면 경찰 부르고. 불법 견인 과태료 1400달러 물고. 영업정지 당하고. 자, 선택하라고. 각서 아니면 경찰. 둘 중 하나. 어서!“
민재의 거침없는 외침이 민재 택시와 아저씨 작업 차에 울려 퍼졌다. 보스라는 인간이 마지못한 표정을 한 채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69화 끝(5,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