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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와 노트북
아홉 평 남짓한 다가구 주택 방안 앙증맞은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영희는 산수숙제를 하며 혹시나 엄마가 오실까 하는 마음에 자꾸만 눈길이 유리창과 현관문으로 향한다. 창문 너머에는 영희 얼굴만큼이나 뽀얀 목련 꽃이 함박웃음 피우고 이름 모를 새들이 앉았다 날아간다. 잔잔히 흐르는 바람결 따라 목련 꽃 잎은 조그만 율동으로 파르르 떨다 함께 떠나고픈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며 이내 공중부양이 힘겨워 깃털처럼 가벼운 자태로 사뿐히 땅위를 즈려밟는다. 엄마가 어두워지기 전에 오셔야 피시 방에 갈 수 있는데 요즘 엄마는 대부분 영희가 잠들은 밤 깊은 시간에 오시기 때문에 오늘아침에 꼭 일찍 오셔야한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에 복사까지 마쳤는데 아직 기척이 없으시니 마음이 자꾸 초조해져 간다.
시간제 일용근로자인 영희 엄마는 근처 한식당에서 손님을 맞이하여 음식주문을 받고 손님이 떠난 후 자리 정리 정돈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장사가 잘될 때에는 힘들어도 얼마만큼의 돈을 손에 쥘 수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는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 설상가상 식당사장님은 지금 인원도 재차 줄여야 하겠다고 한시름 놓고 있으니 서로 처지가 바늘방석이 따로 없음이다. 일 년 정도만 더 일하게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월세 방을 전세로 바꿀 수 있는데 시절 하 수상하니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희는 날이 갈수록 커가고 점점 어른스러워져 이젠 어느 정도 세상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으니 걱정스런 마음은 무거운 돌멩이를 한가득 짊어진 것 같다.
구슬땀 흘리며 크레인기사와 수신호와 호각으로 소통하며 철골을 조립하던 미친개가 현장소장이 잠깐보자는 호출에 까마득히 높은 철골구조물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다람쥐곡예를 하는 듯 동작의 민첩성이 귀신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몇 번의 호흡으로 밑으로 내려온 미친개는 안전모를 벗고 대충예의를 표한 후 무슨 일이냐는 듯 궁금한 눈빛으로 말없이 소장을 응시한다. 소장은 조용히 사무실을 가리키며 천천히 발걸음 옮기고 고개 갸우뚱한 미친개는 호흡을 정돈하며 말없이 그 뒤를 따른다. 소장은 도면뭉치를 꺼내 펼쳐놓고 창원공단에 위치한 공장설계도 인데 우리 직원들이 내려가 작업하는 곳이라고 하며 전문적인 도비가 없어서 조금 고전하는데 여기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으니 내일하루 쉬면서 여장 챙겨 창원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그 쪽에 미리 연락을 취해 놓았으니 염려하지 말고 맡은바 일에만 전념하면 된다는 얘기와 함께 경비로 쓰라고 하얀 봉투를 쥐어주며 지금 퇴근해도 좋다고 한다.
간단한 여장 챙겨 동 인천으로 나온 미친개는 역전근처 순대 국 집에서 단짝친구 짱구를 만나 창원으로 내려간다는 말과 함께 몇 달 못 보게 될 테니 답답하면 놀러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짱구 역시 뱃일이 만만치 않아 당분간 시내에 자주 나오지 못할 것 같다면서 요즘처럼 어려울 때는 죽치고 일만 하는 것이 최선의방법이고 우리는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형편이니 부디 건강에 유념하자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들고나는 몇몇의 손님들이 둘을 알아보고 덩달아 주먹을 굳게 쥐어흔들며 화답하자 서로는 호탕하게 웃는다. 다음날 창원에 도착한 미친개가 작업현장사무실에서 대충인사를 하고 숙소를 물어보자 공장 기숙사에서 기거해도 좋고 방을 얻는다면 회사 규정에 따라 하루에 일만 오천 원을 숙박비로 지급해 준다고 한다. 먹는 것은 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밖에서 먹는 것은 회사에서 별도로 규정해 놓은 것이 없으니 자비로 충당해야 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알았다고 대답한 미친개는 내일아침 현장에서 뵙겠다고 하며 공장 문을 나선다.
미친개는 시내에 들러 여관 몇 곳에서 가격을 알아 보니 제일 싼 곳이 하루 숙박에 삼 만원이기에 지급받는 경비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워 한적한 주택가로 접어들어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향한다. 보증금 없이 선불제로 한 달에 사십만 원 하는 다가구주택 한 칸짜리 방이 있으며 주방과 욕실 겸 화장실이 구비돼 있고 작지만 조그만 뒤뜰도 있다기에 선뜻 계약하겠다고 하며 공인중개사를 따라나선다. 예닐곱 평 되는 보금자리는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고 작은 책상과 세탁기 볼기짝을 간신히 걸칠 수 있는 침대가 구비돼 있었으며 주인아주머니가 상냥하기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간단한 여장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사용하기 위해 인터넷을 신청하고 저녁때가 되어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식사를 마치고 필요한 생필품 몇 가지를 구입하여 대문을 여는 사이에 조그만 소녀아이가 건너편에서 대문을 살짝 열고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다 눈길이 마주치자 황급히 문을 닫고 사라진다.
첫 출근 한 미친개는 함께 일 할 동료들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작업반장 지시에 따라 트럭에 실려 온 철골을 하역하여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반장은 인천에서 전문 기계도비라고 내려온 미친개가 달갑지 않은 눈치였으며 자신들이 장악한 작업주도권이 타지에서 온 작자로 인하여 감 놔라 배 놔라 하게 될까봐 초전에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제되어 있었다. 일주일동안 한직으로 돌리고 작업공정에는 발 딛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하였으며 매사에 허점을 찾아내기 위하여 집요하게 주위를 맴돌고 간섭하였다. 그러나 도통 말없이 일하며 밥 잘 먹고 유유자적 행동하는 미친개를 어찌할 수 없었으며 가끔 정신병자처럼 하늘 쳐다보고 혼자 실실 웃으며 삐딱한 고개 짓으로 사물을 예의주시하는 행동을 보고는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존재라는 것을 차츰 깨닫기 시작하였고 순간순간 돌출되는 민첩한 동작과 날카로운 시선, 섬뜩한 눈매가 살아날 때는 야릇한 공포감마저 들었다.
영희 엄마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낭패감에 순간 휩싸였으나 어차피 그만 둘 바에야 서둘러 다른 일을 찾는 게 낫겠다 싶어 애써 태연함을 유지한 체 엷은 미소 머금고 식당사장님과 신중한 얘기를 끝냈다. 오늘부로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월급은 받았으나 마감시간이 남았기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더 미안하게 생각하여 분위기가 자꾸 가라앉는다. 그래도 삼년간 정들었던 곳인데 막상 떠나자니 아쉽고 마감시간에 모두 함께 이별주라도 한 잔 곁들이고 싶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사장님은 어느새 와인도 한 병 구해 놓으셨고 주방언니는 골고루 안주를 만들어 모두는 쓸쓸한 송별식이지만 더욱 굳세게 살기위하여 서로 속내를 들추지 않고 화기애애한 술잔을 기울인다. 알 수 없는 이슬방울 술잔에 얼비치고 눈가에 녹아들지만 인생사 기복을 어쩔 수 없음이며 목 타고 흐르는 속울음 보다 살아 뛰는 생의흐름이 더 크기에 서로는 살아있는 현제를 무한정 용서하고 받아들이기로 작정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발그레한 볼 적시며 골목길 들어서니 어렴풋 보이는 창문에 불 빛 보이지 않고 이미 잠든 영희 생각에 울컥 설움 겹쳐와 눈물은 봄비와 함께 뺨 위를 흘러내린다. 축축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아직은 아니라고 힘들고 외로워도 정녕 슬퍼할 때가 지금은 아니라고 고개 짓하며 입술을 살며시 깨물어본다. 집 앞에 다가서자 건너편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며 창문이 조금 열려 있는 걸로 봐서 어느 외로운 사람이 궁색한 삶의 보따리를 풀어 놓았음을 알겠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 게야 잡초는 뽑을수록 단단히 뿌리내리고 척박한 땅에서도 기죽을 줄 모르지, 어느 누가 천박하다해도 제 생명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잖아, 살아가며 살고 있는 순간만을 생각하는 거야! 가볍게 흔들리는 몸을 곧추세우고 영희 엄마는 빗속의 독백을 되 내이며 방문을 연다.
전날 마신 술기운에 머리가 아픈 영희 엄마는 새벽에 잠이 깨어 영희 준비물 몇 가지를 챙기고 아침밥을 짓는데 앞집 현관에서 인기척이 일고 조그만 발자국 소리가 간간히 들려 궁금한 생각에 흘깃 창문 밖을 보니 체구가 작은 청년이 제법 기운찬 모습으로 반듯하게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것을 보니 안쓰러운 생각도 들고 저렇게 가냘픈 남자가 무슨 일을 할까? 하며 시선을 고정시키자 성급한 청년의 걸음걸이는 바람처럼 골목에서 사라지고 생활정보지 차량이 가게 앞에서 급하게 정지한 후 얄팍한 종이뭉치를 꺼낸 사내가 민첩하게 움직이며 가게주인과 눈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콩나물 익는 소란에 냄비뚜껑 춤추자 서둘러 잠자는 영희를 깨우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옮기며 분주하게 아침상을 준비한다. 영희를 학교에 보내고 방 청소를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활정보지 한 부를 펼쳐놓고 세심히 훑어 내리자 주방장구함이라는 문구가 쏜살같이 눈 속에 들어차 앉는다.
시내중심가에 위치한 유흥주점은 그런대로 규모가 갖추어진 곳이고 사장이라는 사람은 사십대 후반정도 되었으며 키와 덩치가 크고 미남형인데 말씨가 부드러워 마주하기 수월하였다. 주방에서 일하려면 조리사자격증이나 영양사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야간업소에서 일하는 것을 꺼려 부득이 다른 사람 자격증을 빌려 구비하고 보통 식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나 급하게 일자리를 찾는 여성들을 채용하다 보니 주방인력 문제가 가장 골치 아프다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영희 엄마가 조리사자격증이 있다고 하며 앞으로는 그런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하자 두 사람은 마주보고 웃으며 앞으로 잘해 보자고 내심 의기투합에 이른다. 내친김에 영희 엄마는 선불을 해준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가능하냐고 묻곤 액수와 상환방법을 조심스레 물어보며 상대의중을 살핀다. 사장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면서 천만 원 정도는 무이자로 빌려주고 매달 삼사십 만원씩 월급에서 제하는 방법이라고 하자 귀가 솔깃해 진다. 그 돈이면 지금 살고 있는 집 월세를 전세로 전환 할 수 있으며 봉급에서 지출되는 원금은 생활하는데 그다지 무리하지 않고 결국 몫 돈이 되기 때문이다.
미친개는 일하는 도중 현장에서 철골과 상판이 맞물려 조립되는 철판 볼트구멍을 산소절단기로 크게 뚫는 인부들을 삐딱한 고개 짓으로 세심히 쳐다보다 이내 하던 일을 계속한다. 퇴근시간 임박한 오후 현장에서는 철골감리와 현장소장 등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으며 작업반장은 손짓발짓을 동원하여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살며시 근처로 이동하여 멀찌감치 어정쩡하게 건네다 보고 있으니 마침 주위를 살피던 철골감리가 알아보고 급하게 오라는 손짓을 한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곁에 다가가자 감리는 아는 체를 하며 눈인사를 하는데 지난 번 인천 연육교 공사현장에서 만났던 사람 아닌가? 사람은 언제어디서 만나게 될 줄 모른다고 하더니 이렇게 얄궂은 장난의운명이 또 다시 이루어 질 줄이야, 미친개도 눈인사를 하며 반가운 기색으로 아는 체를 하자 감리는 사태를 확인해 보라는 손짓으로 철골과 볼트구멍을 가리키며 산소 절단기를 험한 눈짓으로 흘겨본다. 현장소장 역시 미친개와 감리가 소통하는 자세를 눈치 채고 작업반장에게 물러서라고 하며 미친개에게 일이 이 지경 되도록 그동안 어디서 무엇 하다가 이제 나타나느냐고 힐난한다.
미친개는 작업반장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잠깐 하고 커다란 컴퍼스를 찾아와 바닥중앙을 열십자로 나눠 중심을 구한 후 중심을 지나는 각도를 나누어 대각선을 구해 그려놓고 먹통을 집어 든다. 작업반장과 호흡 맞춰 중앙십자와 대각선에 먹줄을 튕겨 바닥에 그려놓고 대각치수를 줄자로 실측하여 밀려나고 뒤틀어진 기둥 한 개를 찾아낸다. 미친개와 작업반장이 능수능란한 솜씨로 이곳저곳 치수를 확인하며 움직이자 주위 모두는 짐짓 놀라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선 체 두 사람 그림자를 구경한다. 미친개는 소장에게 물러난 철골기둥을 앞으로 옮겨야하며 처음 앵커볼트를 설치한 바닥 철판부터 틀려 있었음으로 철판은 옮길 수 없으니 기둥부분만 절단해서 크레인으로 상체를 붙들고 아랫부분에 쐐기를 박아 지렛대로 옮긴 후 철판과 기둥을 견고하게 재차 용접하면 된다고 설명하자 알았으니 조심해서 작업하라고 하며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아침 서둘러 진행하라며 감리와 함께 발길을 돌린다. 순간 머쓱한 작업반장은 미친개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하며 내일부터 크레인신호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간단한 맨손체조와 안전구호를 외치며 서로는 맡은바 임무에 들어가고 미친개는 작업반장과 틀어진 기둥을 들어 올려 제자리에 옮기고 상판 중심부터 재차 실측하여 먹줄 드리우고 간간히 중요한부분에 가느다란 피아노선을 설치하여 빨간 천을 매달아 표시하며 크레인 기사와 호흡 맞춰 철골과 기타자재를 들어 올려 조립을 시작한다. 모두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간단하고 신속한 미친개의 동작과 손짓 호각소리에 맞추어 작업을 진행하다 간간히 돌출되는 재빠른 몸짓에 혀를 내두르고 감탄하며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 고단한 노동이지만 삶과 근로의 역경이 묻어나는 현장에서 모두는 혼신을 다하고 등줄기와 이마에 흐르는 땀에 체력은 고갈되지만 턱 밑에 차는 가쁜 호흡보다 손에 쥐어지는 일당이 더 급한 사람들이기에 봄날 따가운 태양도 숙연하여 멀찌감치 발길을 돌린다. 옆 산 진달래꽃 한창피어 온 산은 불붙은 것 같고 춤추는 아지랑이는 무엇을 숨기는 중인지 자꾸만 숨었다 나타나며 멀리 앞서 달려 나간다.
철골 노가다(근로자)
새벽에 눈 뜨니 창 밖에 물방울 오늘도 비 오면 백수
출근만 해도 반 대가리 일당인데 이렇게 쏟아지면 그나마 개털
이달엔 일 한 것도 많지 않은데 야속한 하늘마저 나를 울리네
뉘라서 힘든 일 하고 싶으랴 육신으로 살자하니 고달픈 삶이다
곤히 자는 아내 얼굴 보니 미안한 마음 눈물 절로 솟지만
아들 녀석 대학졸업 위안 되고 예쁜 공주 취직해 큰 힘 되네
사람이 모여 살면 가지가지 재주 있어 그 중에 힘으로 사는 것
웃지 마라 고공예술 공중곡예 방불 하는 상부조립 내 삶이요.
모처럼 일요일에 쉬게 되어 미친개가 간단한 손빨래와 집안청소를 하고 뒤뜰에 나와 목련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조그만 소녀아이가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미친개가 웃으며 몇 학년이냐고 묻자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대답하며 아저씨에게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들어주실 것이냐고 머뭇거린다. 이내 염려하지 말고 얘기하라고 하자 피시 방에 가고 싶은데 엄마가 외출하셔서 갈 수가 없으니 대신 아저씨가 함께 가주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내 방에 노트북이 있으니 그냥 방에 와서 하면 된다고 하자 매우 밝은 표정으로 수줍게 웃는다. 작은 책상을 소녀에게 물려주고 신문을 들여다보던 미친개가 점심을 어떻게 먹을까? 하는 물음에 소녀는 집에 밥이 있다하고 재차 미친개가 자장면과 통닭을 시켜먹으면 어떨까 하고 의향을 살피니 소녀는 고맙긴 한데 엄마가 아시면 혼날 거라고 하며 우물쭈물한다. 미친개는 우리끼리 일이니까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고 같이 먹자하며 이름을 물어보니 영희 라고 대답하며 밝게 웃는다.
영희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으며 엄마는 근처식당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시내에서 일하고 있는데 저녁에 갔다 새벽에 돌아오시기 때문에 매우 힘들어 하신다는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 나이가 몇이냐고 하자 서른 여섯 살인데 처녀처럼 젊게 보인다고 하며 아저씨는 몇 살이냐고 되묻는다. 스물 여덟이라는 대답과 영희가 어서 자라서 엄마를 많이 도와줘야 되겠구나 하고 웃자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며 먹다 남은 통닭을 간추려 엄마오시면 드린다고 주섬주섬 챙긴다. 미친개는 그럴 필요 없이 엄마는 다시 한 마리를 시켜주면 되고 우리가 먹다 남긴 것을 엄마에게 주는 것은 아무래도 좀 미안한 행동 아니겠느냐고 하자 그도 그렇지만 아저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대견함에 콧등이 찡하는 느낌이다. 아저씨는 엄마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고 영희 효성이 기특하니 그 정도야 무슨 폐가 되겠느냐고 하며 우리는 이제 친한 사이 아니냐고 하자 그도 그렇겠다고 하며 둘은 마주보고 웃는다. 엄마오실 시간 되었다고 영희가 머뭇되자 미친개가 통닭 한 마리를 손에 들려주고 내일부터 학교 갔다 돌아와서 심심하면 아저씨 방에 와서 컴퓨터를 해도 좋다고 하며 현관열쇠를 꺼내주자 영희는 밝게 웃으며 그렇게 해도 좋은지 엄마한테 허락을 받은 다음에 받겠다고 하며 공손하게 인사하고 돌아간다.
영희 엄마는 아무래도 일이 잘못되는 것 같아 걱정이 많고 지금같이 어려운 형편에 선불까지 빌려 써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는데 마담이라는 여자가 교묘히 일을 벌이는 판에 아주 죽을 맛이다. 요즘은 아예 대놓고 손님들에게 인사 시키고 우리 집 간판스타라고 추켜세우며 보도에서 나온 도우미들과 함께 술시중을 들게 하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사장이라는 사람은 도통 보이지 않고 행여 본다 하더라도 이야기 할 틈을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리니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더욱 불편한 건 보도를 따라온 도우미 아가씨들이 떠난 후에 마무리청소와 주방정리를 하는 것이며 취객들의 은근한 추태와 농락을 참아내기에는 한계에 다다른 정신 공황상태이다. 영업 끝난 시각 영희 엄마는 마담에게 더 이상 부탁을 들어줄 수 없으며 계속 술시중을 들어야한다면 직장을 그만 두겠다고 하자 마담은 느닷없이 왜 촌스러운 얘기를 하느냐며 어차피 이런 곳에 왔을 땐 다 생각이 있어 온 것 아니냐고 반문하곤 시간비도 짭짤하게 챙기고 선불도 땡긴 것 같은데 얼굴 반반하다는 이유로 꼴 값 떨지 말라고 한다.
도저히 얘기가 될 것 같지 않아 나중에 사장님과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하자 그래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여기 오는 도우미 아가씨들도 모두 다 선불 끌어 쓰고 보도에 달려 있는 것이며 처음엔 다들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결국 수렁을 헤쳐 나가지 못 하더라 언니도 대충 보니 나하고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데 어린애들처럼 까탈 부리지 말고 능력 있을 때 부지런히 벌어 자리 잡으라고 한다. 아직 나이가 있으니 그나마 여유가 있지 삼사년 지나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으니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과 함께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난 후 대충 가게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얼굴을 때리는 새벽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후회가 엄습해오고 어떻게든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니 지금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걷잡을 수 없다.
미친개는 퇴근길에 붕어빵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집 앞에서 조그만 소란이 일고 있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두 명이 지겟다리 흔들며 얼쩡대는 것을 보니 대충그림이 그려지는데 하필 이 곳에서 난장을 벌리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에 조심스런 발걸음을 옮긴다. 현관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창문 안에서 영희가 울고 있는 모습이 보여 짐짓 뒤로 물러서며 무슨 일이냐고 손짓하니 밖에 있는 사내들을 가리키며 몸을 숨긴다. 미친개가 돌아서며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자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침을 탁탁 뱉으며 고개를 삐딱하게 한 체 눈에 힘을 주고 험한 인상으로 노려본다. 똑 같이 삐딱한 고개 짓으로 째려보며 눈동자를 고정시키자 한명이 앞으로 다가서며 넌 뭔데 좋지도 않은 세숫대야를 들이대고 지랄이냐 그냥 확 찌그러뜨려 버릴까보다 하며 파리채가 흔들거린다. 미친개는 야릇한 엷은 미소를 띠며 피차일반 모지방도 엿 같은 놈들이 허접한 강냉이를 함부로 두드리고 있네, 아예 문자판을 확 지워버릴까 보다 하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사내가 바싹 다가서며 손을 내밀자 옆으로 슬쩍 비키는 듯 하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반듯하게 펴서 눈자위를 찌르고 주먹을 쥠과 동시에 연타로 콧잔등과 인중을 훑어 내리며 상대가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는 틈을 타 무릎을 꺾어 옆구리를 찍어 차니 맥없이 쓰러진다. 순간 다른 한 명이 달려들자 머리채를 홱 잡아채며 이마로 상대방 관자놀이를 들이받은 후 이마와 뒤통수 정수리 등 머리 곳곳에 연거푸 박치기를 거듭하니 혼이 나간 상대는 비몽사몽간 해롱거리며 눈물과 콧물이 강물 흐르듯 한다. 순식간 벌어진 상황에 두 사내가 꿈인지 생시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벅 거리자 미친개는 공연히 저승 문 열지 말고 조용히 얘기할 때 잘 들으라고 하면서 무슨 일로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는지 신속하게 읊어보라고 한다. 머리카락 헝클어진 사내가 콧물을 훔치며 가게 형님이 아줌마에게 선불을 해 줬는데 며칠간 출근 하지 않으니 가보라고 했으며 계속 출근하지 않을 것 같으면 선불해간 돈을 받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곳이 무슨 일을 하는 가게이냐고 물어보니 유흥주점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영희가 달려 나와 미친개 손을 잡아 이끌고 영희 엄마로 생각되는 여인이 미친개에게 이 사람들은 제 잘못으로 인해 여기에 온 것이니 다투지 말라고 하면서 주저앉은 사내들에게 함께 가게로 가자는 말과 함께 옆으로 다가선다. 엉거주춤 일어선 사내들이 멀뚱거리며 미친개를 쳐다보자 영희 엄마는 미친개에게 제가 부족하여 여러 사람이 다투게 되어 죄송하다며 이 사람들하고 가게로 출근 할 테니 그만 집으로 들어가시라는 말을 하곤 조용히 앞서 걷는다. 미친개는 사내들에게 눈짓으로 가라는 시늉을 하며 영희 손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온다. 방으로 들어선 미친개가 영희 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몸이 아파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았고 오늘 낮에 무서운 아저씨들이 찾아왔으며 대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계속 시끄럽게 굴었다는 얘기를 한다. 미친개는 알았다고 하며 노트북을 영희 에게 넘겨주고 볼 일이 있어 잠깐 나갔다 올 테니 혹시 누가 와서 문 두드리더라도 열어주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밖으로 나온다.
미친개는 짱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동안 잘 지냈느냐는 안부 인사를 하고 혹시 창원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자 짱구는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다. 미친개가 별 일 아닌데 몇 가지 알아 볼 일이 있다고 하자 짱구는 다랑어 원양어선 타는 삼식이형님이 진주출신인데 그 바닥은 본래 진주가 대세이기 때문에 다 통할 거라고 하며 삼식이형님은 진주해군 머구리 출신으로 그 지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와 전화는 안 되지만 배에서 무전으로 연락 할 수 있으니 내일 알아봐 준다고 한다. 몇 마디 더 안부 인사를 하곤 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낮에 소란으로 피곤했던 영희가 노트북 옆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 영희를 안고 건너가보니 집안이 어수선하고 도통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별 일이야 없겠지 하는 태연함으로 대충 방을 치운 뒤 잠든 영희를 눕혀놓고 건너온다. 책상에 앉은 미친개는 생각에 잠기고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하필이면 유흥가에 취직했으며 무슨 연유로 돈을 빌리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잔뜩 찌푸린 하늘 마뜩치 않았는데 기어코 빗방울 듬성듬성 묻어나니 모두는 서둘러 작업을 접고 삼삼오오 흩어지는데 현장소장이 전화가 왔다는 전갈에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가니 반가운 목소리는 뜻밖의 삼식이 형님이었다. 피차일반 오래 붙들고 있을 처지가 아님을 알아챈 삼식이 형님은 급하게 받아 적을 준비를 재촉하며 창원 성주사역 근처에 가서 청개구리를 만나보라고 하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는 말과 함께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끊는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젠가 창원에서 참외와 수박 농사를 짓는다고 했던 텁석부리 수염의 농부가 생각난다. 자유무역 협정 때문에 한참 나라가 시끄러울 때 농민대표와 상경하여 일주일간 동 인천과 서울을 오르내리던 사람이 분명 청개구리가 맞는 듯하였다. 그 당시 재배하던 참외가 초록 줄이 드리워진 것이고 입고 있던 저고리도 파란줄무늬만 고집하여 청개구리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기억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조그만 웃음을 드리운 체 얼굴 들어 하늘 보니 촉촉한 비에 얼굴 간지러워 손수건을 꺼내는 찰라 멀찌감치 노란 우산 받쳐 들고 종종걸음 걷는 여인은 영희 엄마가 분명하였다. 직감으로 출근길임을 알아챈 미친개는 황급히 몸을 숨기고 기회다 싶어 조심스럽게 뒤를 밟기 시작한다. 창원역 앞 상업 지구에 위치한 제법 규모 있는 주점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고 간판에 적혀있는 상호이름과 전화번호를 유심히 쳐다보다 이내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길에 짱구에게 전화를 걸어 청개구리 형님의 근황을 묻곤 삼식이 형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전해달라는 얘기를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집 근처 골목길에 들어서니 저만치 영희가 가게 앞 천막 밑에서 우산을 들고 서성이다 반갑게 손 흔들며 반긴다. 낯선 도시의 이방인은 때 아닌 호의에 가슴 뭉클하고 천진난만한 소녀의 웃음에 축 쳐진 어깨가 비상하는 날개처럼 가벼워진다.
미친개는 작업도중 간간히 저녁에 할일을 머릿속에 그리며 대충상황을 짜 맞추자니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뭔가 어수선하고 평소모습이 아님을 눈치 챈 작업반장이 곁에 다가와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 잠시 쉬라고 거들며 목에건 호각을 걷어간다.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며 한 쪽으로 비켜서 땀을 식히고 반장과 더불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작업을 마치고 식당으로 들어서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몹시 궁금한 모습으로 물어본다. 별 것 아니라고 웃으며 식사를 끝내고 내일은 잠시 볼일이 있어 출근을 못하게 되니 대신 고생 좀 부탁한다는 말을 뒤로 식당을 돌아 나오자 작업반장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얘기하라고 어깨를 살짝 건들며 눈인사를 한다. 스멀스멀 어둠 내려와 빛을 포박하고 누군가 쏘아올린 독백이 별 빛에 묻어 내릴 때 미친개는 음습한 밤안개 속에 듬성듬성 발자국을 드리운다. 기억을 가다듬어 역전광장을 돌아선 후 유흥가로 들어서자 제각각 치장한 간판들이 아롱다롱 매달려 부산하고 곳곳의 입구에는 정체불명 그림자들이 순서 없이 흐느적거리며 빨려 들어가고 혹은 돌아 나온다.
몇몇의 일행과 섞여 업소 안으로 들어선 미친개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급한 몸짓으로 돌아서서 일행들을 방패삼아 몸을 숨겨 곳곳을 염탐하고 복도에 늘어선 방문을 훑어보다 이내 빈 곳인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조그만 방안에 탁자와 노래방기계 제법 안락한 의자가 놓여있고 요사스런 여인그림이 붙어있는 전형적인 영상이 순식간 펼쳐진다. 조용히 문을 닫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앉아있기도 잠시 마담으로 추측되는 여인이 들어서며 그럴듯한 예의로 인사를 하고 주문을 청한다. 말없이 차림표를 펼치고 맥주와 과일안주를 손가락으로 짚어 표시하자 몇 마디 우스갯소리와 요염한 표정을 짓다 도통 무시하고 허공을 응시하는 작태에 김이 빠져 머뭇거리다 맹랑한 미소를 바닥에 던지고 나간다. 잠시 후 주문한 술과 안주를 들고 유흥출판사 접대수칙 사정없이 꼬셔봐 에 통달한 아가씨의 변함없이 주절 되는 강의가 시작된다. 미친개는 다소곳이 귀 기울이며 제법 범생 위치에서 경청하고 간간히 흘리는 미소를 어벙한 눈짓으로 들여다보니 강사는 무척 신이 나 열강에 이르고 기대하는 만큼 부응하여 학습에 열의를 보이니 아주 흐뭇한 표정이다.
도우미
어스름 조명 그윽히 내릴 때 드디어 춤사위 막 오르고
4.5평 공간에 자존심을 걸지만 흔드는 몸짓엔 피곤이 쌓인다.
예쁘게 화장한 얼굴 때론 부끄럼에 땀 배이고
예의 없는 언행 눈짓사이에 여자이고 싶은 난 눈물을 참는다.
귀천 없다는 직업의식 흥겨운 가락에 몸을 맡기고
마이크에 유행가 실어 보낼 때 화면처럼 인생은 흘러만 간다.
끝났어요, 연장해요? 한 마디가 만남과 헤어짐의 기로이지만
인간사 인연과 관계가 없고 시간은 돈이라는 명백한 현실
또 다시 지친 몸 이끌고 간다.
일사천리로 진도는 나가고 상호간 의기투합으로 모법답안 만들어 빛나는 졸업장과 더불어 찬란한 수시합격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별안간 변수가 있음이니 예사롭지 않은 범생의 학습태도에서 믿기지 않는 선수흔적이 탐지 되었던 것이다. 이내 허탈한 강사는 강단에서 내려와 범생 출신학교 생활기록부와 주민번호 열세자리 가족관계 등록부를 면밀히 검토하였으나 도통 기록이 없으며 번뜩이며 매섭게 스쳐가는 눈빛은 이미 배움을 통달하고 하산한 선수의 경지임을 암암리에 자각시키고 있었다. 미친개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지폐 몇 장의 수고비로 대충의 교통상황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보수와 얽힌 사연 사장과의 관계 등을 알아본 다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조용히 업소를 빠져나온다. 업소를 뒤로 한 체 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고개 돌려보니 지난 번 집 앞에서 마주쳤던 사내들과 합세한 대여섯 명의 인원이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길 가운데로 들어서서 내달리며 뒤 돌아보니 용감한 선수 한명이 턱에 숨이 차도록 뛰어오는데 인사불성이 따로 없음이다. 미친개는 이때다 싶어 달리던 방향을 급 선회하여 쫓아오는 영광의 일등선수에게 몸을 날려 무릎으로 가슴을 찍는 날아 차기를 선보이자 달리는 속도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외마디비명과 함께 거꾸러져 나뒹군다. 잽싸게 자세를 잡고 다시 달리며 뒤를 확인하니 넘어진 사내를 부축하여 돌아가고 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린 미친개는 황급히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성주사역근처로 이동하여 짱구가 일러준 장소를 가늠하며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산동네 어귀로 들어선다. 촘촘히 붙어 줄 선 담장 옆으로 슬레이트지붕을 한 집들과 전형적인 농가주택이 뒤섞여 있는 동네에는 조용한 아침이 들어서고 있었다. 가까운 근처에서 사람이 들고나는 기척이 있어 발길을 돌리자 꽤나 오래됐을법한 구멍가게가 보이고 몇몇의 사람들이 부식과 생필품을 들고 흩어진다. 가만히 다가가서 눈인사를 하며 우유와 담배를 주문하고 혹시 청개구리형님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이내 억양을 알아듣고 반갑게 맞으며 서울에서 왔느냐고 한다. 인천에서 왔다고 하자 길 따라서 산 쪽으로 가다보면 길 끝에 커다란 기와집이 있으니 곧장 올라가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짚어준다. 길 어귀에 개나리꽃 한창이고 산 속은 초록과 분홍으로 채색되어 직박구리와 비둘기 참새 등이 분주하게 드나든다. 대문도 떨어져나간 넓은 마당으로 들어서서 기웃거리는데 커다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눈치를 주는데 제법 호기가 있다. 살며시 다가가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기웃대며 머리를 쓰다듬자 얌전히 앉아 발장난하기에 목을 끌어안고 부비부비 하면서 툭툭 건들며 한참 재미가 붙는데 방문이 열리고 커다란 사내모습이 나타난다.
상호간 눈길이 교차하는 순간 서로는 알아보고 커다랗게 웃으며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을 연출하듯 얼싸안는다. 청개구리형님은 그렇지 않아도 삼식이 에게 연락받고 기다렸으며 어제는 짱구가 전화하여 대충 있는 곳을 알려줘 오늘쯤에 찾아가려고 내심 작정했는데 다리품 팔지 않아도 되겠구나하며 시장할 텐데 들어가서 식사부터 하자고 한다. 아이들과 집사람은 진해 장인어른 생일잔치에 갔으며 때마침 군항제가 열린다하여 며칠 있다 올 테니 왕년솜씨를 발휘하여 두 사람이 먹고 노는데 기꺼이 전념하자며 손을 잡아 이끈다. 그럭저럭 지난얘기를 하고 서로근황을 주고받으며 아침식사를 끝내고 미친개가 지금까지 창원에서 일어난 상황을 들려주자 청개구리형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크게 어려운 일 아니니 조용히 둘이서 해결하는 게 좋을듯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미친개 역시 바라던 방법이라고 흔쾌히 대답하고 이를수록 좋으니 오늘저녁 행동을 개시하면 어떻겠느냐고 의중을 살피자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맞불을 지피니 두 사람의 호탕한기백이 집안가득 들어찬다.
산 아래 스멀스멀 기어드는 어둠을 뒤로한 체 두 사람은 신속한 움직임으로 동네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서 한참 북적대는 인파를 따돌리고 유흥주점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문 앞에 서있던 두 명의 사내가 흠칫 놀라며 손짓하자 미친개는 바싹 달려들어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구석으로 끌고 들어가며 제압한다. 진작 매운 맛을 본 그들이기에 반쯤 기가 죽어 다소곳이 처분을 바라며 어리버리 하자 미친개가 책임자가 누구며 어디 있느냐고 하자 손끝으로 복도 끝에 위치한 방문을 가리킨다. 방문 앞에 외인출입금지라고 써 놓았으며 한 쪽으로 “책임 안 져” 라는 글귀 옆에 "열씨미 차카게 살자" 라는 아주 고전적인 문구가 질서 없이 붙어있다. 방문열고 성큼 들어서자 검정양복 입은 덩치 큰 사내가 먼저 보았던 마담과 아가씨 몇몇을 데리고 티브이를 보며 한가로운 저녁 한때를 즐기고 있다. 볼 것 없이 치고나가며 앞차기로 대가리를 후려갈기고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눈덩이를 내지르자 이내 고개가 푹 꺾인다. 틈을 주지 않고 수도로 목덜미를 내려치며 무릎으로 옆구리를 찍어 차서 바닥으로 끌어내려 제압하니 아닌 밤중 날벼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버벅 거린다.
청개구리형님이 젊잖게 나서며 사태를 수습하여 주위를 진정시키고 일수장부를 건네받은 다음 사장에게 연락하라고 하자 다급한 상황을 직감한 마담이 부리나케 연락하여 전화기를 건네준다. 청개구리형님은 업소의 상황을 대충 얘기하고 조용히 만났으면 좋겠다는 운을 떼자 이내 알아듣고 가게 근처에 조용한 카페가 있으며 마담이 장소를 알려줄 것이라고 한다. 가게영업에 지장이 없다면 마담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 좋을듯하다는 얘기에 청개구리형님은 정리정돈 잘 하고 나갈 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며 대화를 끝낸다. 미친개가 넘어진 사내를 일으켜 세워 옷매무새를 고쳐준 다음 나가서 일하라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서는 순간 주방에 있던 영희 엄마가 알아보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손사래를 치고 달려 나온다. 미친개는 별 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하던 일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며 마담 뒤를 따라 청개구리형님과 함께 돌아선다. 카페에 들어서서 커피를 주문하고 숨 고르던 중 제법 깔끔한 중년신사가 들어오자 마담이 황급히 일어서는 걸로 봐서 업소의 사장이 분명하였다.
뜻밖의 사태로 모인 네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예의 지켜가며 사태를 수습하기에 이르는데 일수장부를 쥔 청개구리형님이 의젓하신 분이 무슨 연유로 고리대금 사채놀이를 하느냐고 궁금해 하자 갑자기 돈필요한 종업원이 있기에 도움을 준 것뿐이고 이자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얘기를 한다. 청개구리형님은 대충 짐작을 하고 조심스럽게 한 가지 여쭤보겠는데 진해 머구리 삼식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며 지금 내 앞에 있는 靑蛙(청와)님도 알고 있다며 가만히 올려다보고 웃는다. 청개구리형님은 서로 아는 처지에 불편한 속내 들추지 말고 모두가 억울한 사정이 없게끔 단속 해달라고 주문하자 그렇지 않아도 주방아주머니 문제로 잠시 소란했으며 그 일에 난데없는 객지사람이 뛰어들어 곤혹스러운 지경이었는데 이렇게 모두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복잡해 질 이유가 없으니 마음 놓으라고 단단히 말하고 미친개에게 젊은이는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미친개는 고깃배를 타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신세라고 하며 요즘엔 어획량도 없어 벌이가 안 좋아 잠시 손을 놓고 떠돌다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으며 졸지에 분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한달 후면 이 곳도 떠나게 될 테이니 그 때까지 잘 부탁드린다고 하자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점차 달아오르는 태양은 더운 공기와 함께 나뭇잎을 키워가고 라일락꽃향기 짙은 시기로 들어설 때 미친개의 작업도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작업공정도 마무리 되고 본사에서는 그만하고 올라오라는 전갈이 며칠 전에 도착했다. 퇴근시간에 소장님께 작별인사를 미리 드리려 사무실로 들어서니 반갑게 맞으며 그동안 수고했는데 원하는 것이나 부탁할 것 없느냐고 물어본다. 미친개는 꼭 부탁하고픈 일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구내식당에 아주머니 한 분을 채용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어렵지 않은 일인데 조리사자격증이 있느냐고 한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내일 본인이 직접 이력서를 지참하고 총무과에 서류를 제출하라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니 작업반장이 송별식이라도 간단하게 하자며 손을 잡아 이끈다. 오랜만에 모두는 모여 저녁과 함께 술 한 잔씩 겻들이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다. 취기 가득한 모습으로 흥겹게 골목을 들어서니 방안에 불이 켜있고 조그만 소녀가 창문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살핀다.
미친개는 방에 설치한 인터넷 전용선을 영희 방으로 옮기고 영희 책상위에 노트북을 설치한 다음 조용히 집을 나선다. 달리는 열차 차창 옆으로 신록에 젖은 잎 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왔다 사라지고 군데군데 묻어나는 지난 몇 달간의 흔적들은 꼬리를 감추며 도망간다. 반갑게 맞이하는 짱구와 함께 떠나기 전 들렸던 순댓국집에서 그동안 출연했던 필름을 재활용 하며 서로는 허리를 쥐고 뒤집어진다. 뜨거운 태양아래 온몸 내던지며 청춘을 불사르는 현장에서 예와 마찬가지로 미친개는 숨을 헐떡이고 있다. 한 줄금 흐르는 서늘한 바람결에 촉촉이 젖은 얼굴 드리울 때 전화 좀 받아보라는 소리 들려 사무실로 들어선다. 삼촌 안녕하세요? 저 영희 입니다, 엄마가 꼭 하고 싶다는 말이 있어서 전화 했는데 잠깐 기다리세요, 바꿔 드릴게요, 여보세요... 영희 엄마입니다, 이 달 말에 사원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소장님이 많이 도와주시고 근무하는 식당에서도 어려움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참 제 별명도 미친년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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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친개가 의리의 사나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친개 삼식이 짱구 영희 청개구리형님 미친년.......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세계네요.... 이해불가 용어들이 즐비하지만 잼있어요.
고맙습니다.
아주 독특한 문체로 흥미로운 서사를 펼치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