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 인간의 삶에 예정된 가장 확실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 앞에 우리는 평등하다. 죽음을 주제로 하는 영화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과 그 주변의 관계 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묻고 답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을 가치인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죽음은 과연 바람직한가? 사람의 자유 의지란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있을까?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가 자유 의지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가? 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자연사와 병사, 자살과 타살, 존엄사와 안락사, 이 모든 우리의 죽음이 윤리적, 종교적, 법적, 의학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어 논란을 빚고 있다.
스페인 출신의 가톨릭신자 라몬 삼페드로는 25살의 나이로 선원으로 일하던 1968년 8월 어느 날 더위를 피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순간 모래바닥에 머리가 부딪쳐 전신마비의 몸이 되고 말았다. 그 뒤로 30년째 병상에 누워 지낸 그에게 하나의 소원이 있었다. 그건 다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고 싶은 것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죽음. 자유롭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청원과 탄원으로 날을 지새웠으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8년에야 지인의 도움으로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된다. 그 실화 <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를 바탕으로 2004년 제작된 영화가 <바다 속으로(The Sea Inside)>다.
그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월드시네마 초청작으로 상영된 <마지막 레슨(La dernière leçon)>에 이어 최근에 개봉한 <사일런트 하트(Stille hjerte)>가 우리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영화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살아있는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 물어왔다.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라면 지금 우리가 직면하는 죽음의 모습들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을 털어놓은 것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권리라면 죽을 준비도 스스로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게 아닐까?
<리스본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에서 메가폰을 잡은 빌 어거스트 감독이 <사일런트 하트>를 통해 우리에게 특별한 주말여행을 안내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사랑하는 엄마와 마지막 주말을 보내기 위해 한 가족이 모인다. 두 딸은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왔지만 막상 엄마를 보자 마음이 흔들린다. 가족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엄마의 바람대로 온 가족이 추억의 장소로 산책을 나가고 만찬 같은 저녁도 준비하고 나누며 가족파티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큰 딸이 우연히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선택이 잘못 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서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불치병으로 엄마는 의사인 남편의 조언과 두 딸, 사위와 손자, 그리고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의 생각을 들려준다. 자의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엄마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기대지 않는 품위 있는 가족드라마 <사일런트 하트>의 메시지는 우리의 생각을 깊게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외면하고 싶은 두려움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의 죽음과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죽음을 뉴스로 듣고 직접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무심하다.
미국에는 ‘사전의사결정제도’가 있고 대만에는 ‘존엄사법’도 있다. 미국의 사전의사결정제도에 따르면 의료진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 자신이 받고 싶은 치료를 선택해서 받는다. 심폐소생술 뿐만 아니라 항암제와 항생제, 그리고 진통제를 쓸 것인지, 인공호흡을 할 것인지.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인공영양을 제공할 것인지 등 말기 환자에게 필요한 연명치료의 모든 항목에 대해 사전에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 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단계가 되기 위해서는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구분이 가능하고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묻고 영화가 답하고 영화가 물으면 우리가 답해야한다.
영화 <사일런트 하트>는 이러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 안락사를 다룬 영화라서 무겁고 눈물과 비정으로 점철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선원 라몬 삼페드로의 존엄사를 다룬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바다 속으로>나 아흔 두 살의 마들렌의 존엄사를 다룬 파스칼 포자두 감독의 <마지막 레슨>은 이제까지의 죽음을 다룬 어느 영화보다 담담하고 이성적이다. 죽음을 원하는 사람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그 누구보다 건강한 정신과 소박한 마음을 지니게 한다. 죽음, 그 존엄사의 소제는 언젠가 나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의 교리는 ‘죽음에 대한 구원’을 핵심으로 삼는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신학이 부활과 영생이라면 불경에서는 생로병사를 벗어나기 위해서 연기, 윤회로 반야(般若) 되어야 하고 탐진치(貪瞋痴) 삼독 내려놓아야 비로소 불생불멸의 길에 들어선다고 가르친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과 숨결을 다시 느낄 수 없다고 상상해보라. 겨울의 길목 늦가을에 본 영화 <사일런트 하트>는 죽음이 삶으로 머무는 곳에서 우리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을 바라보며 ‘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