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인정하는 자를 본받으라
요한 3서 1장 9-15절
DNA가 생물학적 유전자라면, MEME은 ‘문화적 유전자’라 불립니다. 가까이하면, 좋아하면 닮는다는 개념을 가진 사회학적 신조어입니다. 모방하고 따라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문제는 ‘대상’입니다. 사도는 가이오가 본받지 말아야 할 대상과 본받아야 할 대상을 제시합니다.
가이오가 한 일에 대한 칭찬에 근거해 저자가 보낼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을 영접하지 않았던 부정적 사례를 소개합니다. 저자 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디모드레베가 순회 전도자들을 거절하고 내쫓아다는 것입니다. 이 일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저자는 가이오에게 자기가 보밸 데메드리오를 잘 영접하라고 명령합니다.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임(9-12)
시기보다 오래된 원죄가 또 있겠습니까? 자기부정이 없는 환대는 불가능합니다. 진리가 전해지기보다 자기가 높아지는 데만 혈안이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이 되려고 사도 일행을 비방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박대하고 그들을 선대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9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9-12)
디오드레베는 장로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힘으로 공동체를 장악하려고 하였습니다. 장로가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 않고 영접한 자들마저 공동체에서 쫓아내버림으로써 사도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적인 교회보다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려고 하였고, 섬기기 위해 낮아지는 지도력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특권을 복음과 공동체의 일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1) 디오드레베가 한 일들(9-10)
2-8절에서 수신자 가이오를 칭찬한 후 9절에서 갑자기 디오드레베 이야기로 전환합니다. 특별한 설명 없이 디오드레베를 언급한 섬으로 보아 가이오가 알고 있는 사람인 듯합니다. 또한 가이오처럼 교회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한의 영향을 받은 지교회의 지도자인 듯합니다.
저자는 교회를 어지럽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때문에 순회 전도자들을 교회들에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저자가 쓴 요한이서 같은 편지를 전달했었는데(9), 디오드레베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0절은 그가 한 일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우선 그는 ‘우리’를 폄하했습니다. 저자가 직접 간 것도 아니고 디오드레베가 저자를 직접 폄하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1인칭 복수형은 9절에서 순회 전도자를 ‘우리’로 표현한 것의 연장으로 그들이 저자가 보낸 사람이기에 저자와 함께 파송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디오드레베가 그들을 악한 말로 비방한 것은 바로 저자를 비방한 것과 같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디오드레베는 그들을 맞아들이지도 않고 맞아들이려는 자도 쫓아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급 위치에서 순회 전도자를 거절한 듯합니다.
요한이서 10-11절에서 저자가 거짓 교사들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하는 모습과 동일한 형태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저자가 보낸 사람들을 바지 거짓 교사들처럼 취급하여 모든 교제를 금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았습니다. 역시 저자 교회에서 거짓 교사들을 내쫓은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마치 저자/순회 전도자 그룹과 디오드레베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입니다.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 디오드레베가 이렇게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짓 교사들이나 적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순회 전도자들을 거절한 것은 저자의 권위를 거절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디오드레베를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표현한 듯합니다(9). 더 나아가 이 일은 저자의 복음 진리를 거절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순회 전도자들은 바른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오드레베의 일은 단순히 형제를 영접하지 않는 사랑의 부족 차원이 아니라, 진리 차원에서 심각한 일탈 행위입니다.
(2) 가이오에 대한 권면과 부연 설명(11)
디오드레베에서 가이오로 초점을 옮깁니다. 저자가 디오드레베를 언급한 것은 가이오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자여’라는 친밀한 표현(요한3서 1, 5)을 시작으로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요한 3서에서 처음 사용된 명령입니다. 디오드레베의 경우를 언급한 이유일 뿐 아니라, 편지 전체를 통해 가이오에게 전하려는 핵심 주제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디오드레베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디오드레베처럼 형제들을 거절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요한삼서 12절에서 소개하는 데메드리 오를 영접하라는 것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디오드레베처럼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선과 악의 대조를 통해 따라 ‘행할 것과 행하지 말 것’을 분별해서 행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선과 악은 단순히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빛의 영역, 곧 하나님의 통치 영역과 그 반대인 어둠의 영역에 속한 것과의 대조입니다. 디오드레베가 저자가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 않은 것은 진리 계명과 사랑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어둠의 영역에 속한 자처럼 행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록 디오드레베가 교회 지도자이지만, 그런 행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합당치 않은 일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해 그분과의 관계를 끊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심각한 경고입니다. 디오드레베 일의 심각성을 전달할 뿐 아니라, 가이오로 하여금 절대로 본받지 말아야 할 일임을 강조합니다.
(3) 데메드리오에 대한 추천(12)
디오드레베에 대한 주제를 끝내고, 데메드리오라는 새로운 주제로 옮겨갑니다. 요한삼서에서 세 번째로 언급된 이름입니다. 수신자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데메드리오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설명 대신 여러 증인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가 믿을 만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세 가지 증인을 열거합니다. 첫 번째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여러 사람들에 의해 공인(公認)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뢰성을 더해줍니다. 두 번째는 ‘동일한 진리’입니다. 데메드리오가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7절에서 말한 예수의 이름을 위해 세상에 나간 순회 전도자 중의 하나이기에 가이오가 영접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와 가이오가 공유하고 있는 진리를 전하는 자이기에 ‘우리 편’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을 영접하는 것은 사랑 계명을 행하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진리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증인은 ‘우리’입니다. 저자를 포함한 공동체가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저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이오에게는 데메드리오에 대해 많은 신뢰를 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증인과 관련해 저자는 ‘우리’의 증거가 사실이란 것을 가이오가 알고 있다는 표현을 첨가합니다. 저자의 증거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를 확신시키는 것으로, 저자와 가이오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데메드리오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임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추천 표현에 의하면 데메드리오는 저자가 보낸 사람으로서 아마도 요한삼서를 가지고 가이오에게 갈 사람인 듯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순회전도자이지만, 가이오와 아는 사이가 아닌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데메드리오는 바른 복음을 가지고 신실하게 전하는 귀한 사람입니다. 저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기에 그가 가이오에게 가면, 잘 영접하고 필요한 것을 채울 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 잘 갈 수 있도록 환송해야 합니다. 이미 디오드레베가 순회 전도자들을 거절한 경우가 있었기에 저자는 데메드리오 같은 사람들을 더 잘 영접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영접하는 것은 진리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 계명에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 3서 12절은 편지 전체 내용의 수렴점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문안 인사와 결어(13-15)
자신을 높이려는 자와 주를 높이려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자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닮은 것 같습니까? 가이오 앞에는 디오드레베와 데미드리오가 았습니다. 박대하는 자와 환대하는 자, 진리를 훼방하는 자와 돕는 자가 있습니다.
13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13-15)
장로는 악한 지도자를 이기는 길은 보복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디오드레베가 지시한 것을 거부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후원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또 가이오에게 동역자를 소개합니다.
(1) 방문 계획(13-14)
방문 계획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얼굴을 보고 교제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날짜를 정해 놓고 꼭 가겠다기보다는 기회가 되면 방문하겠다는 의미입니다.
(2) 문안 인사(15)
마지막 인사말로 편지를 맺습니다. 두 가지 내용을 언급합니다. 하나는 수신자 가이오에게 평화를 전하는 문안 인사입니다. 또 하나는 다른 교인들과 가이오 사이에 주고받는 문안 인사입니다.
악을 이기는 길은 악에 맞서는 것만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이 겁박해도 선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반대 속에서도 환대의 선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르는 악한 자를 추종하는 것이나 악한 명령에 굴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