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다이제스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고진영의 팬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어지는 인터뷰 내용을 굳이 살펴볼 필요가 없다. 이미 당신은 그녀에 대해 A부터 Z까지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평소 당신이 고진영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 지금부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그래도 그 이미지가 변함이 없다면 그녀의 진심을 100% 전달하지 못한 에디터를 욕해도 좋다. 3월부터 쉴 새 없이 달려오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가 올림픽 기간을 맞이해 짧은 방학을 맞았다. 방학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아주 짧은 일주일간의 휴식 기간이지만 모처럼 찾아온 달콤한 시간이었다. 정말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에디터의 책무를 다하고자 미안함을 무릅쓰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최근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 2승째를 거둔 고진영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녀가 국가대표 상비군이던 2012년에 인터뷰를 하고 4년 만이다. 그동안 그녀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그때보다 한 뼘은 성장해 있었다. 실력은 물론 내면까지 말이다. 자, 이제 그동안 끼고 있던 색안경을 내던지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준비가 되었는가. 고진영이 한 말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각색은 최소화하고 문답 형태로 구성했다.
골프다이제스트 : 요즘 플레이하기 덥지 않나?
고진영 : 경북 경산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을 때가 가장 더웠던 것 같다. 그때는 플레이하면서 많이 지쳤다. 바로 다음 주 대회가 제주도에서 열린 삼다수마스터즈였는데 그때도 더운 편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은 ‘이 정도 더위쯤이야’ 하며 적응이 된 상태였다. 오히려 크게 덥다는 걸 못 느꼈다.
골 : 그렇게 더울 때는 어떻게 하나?
고 : 평소에도 대회 전에는 연습 그린에서 퍼팅 연습을 오래 하지 않는다. 더울 때는 그 시간이 더 짧아진다. 최대한 그늘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제아무리 골프 선수라도 더운 건 어쩔 수 없다. 더위를 이겨내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평소에 잘 먹어야 한다. 살이 찌는 걸 걱정할 여력이 없다. 나는 요즘 장어를 많이 먹는다. 라운드할 때는 물을 습관적으로 마신다. 이동할 때는 물론, 샷을 하기 전후로 계속 마신다. 입에서 거의 떼지를 않는다.
골 : 올해부터 외국인 캐디 딘 허든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어떤가?
고 : 나는 영어를 아주 능숙하게 잘하는 편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말을 할 수가 없다. 서로가 말을 아낀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딘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하는 말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으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가끔 선수와 캐디가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다. 또 선수가 집중하고 싶을 때 캐디가 말을 걸어와 흐름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 그런 일은 없다.
골 : 그가 베테랑 캐디라는 게 느껴지나?
고 : 딘도 선수인 나를 믿는 것 같고 나도 딘을 믿기 때문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캐디 입장에서는 선수가 실수해도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선수가 흔들릴 때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또 딘이 거리나 바람을 잘 판단해 알려주기 때문에 나도 그를 믿는다.
골 : 이번에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뒀다.
고 : 마지막 날은 누가 어떻게 따라오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17번홀까지는 스코어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민영 언니와 함께 플레이했는데 언니랑 접전일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오로지 그 부분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흥분했다. 우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8번홀로 향하는 길에 나는 이미 흥분을 감추기 어려울 정도였다.
골 : 당연히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흥분했을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고 : 나는 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충 짐작했던 것 같다. 그는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긴장을 절대 풀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때 딘이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평소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강하게 말하니 무서웠다.
골 : 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고 : 사실 18번홀 세컨드 샷을 끝내고 서드 샷 지점으로 향하면서 말하려고 했다. 그 내용은 ‘이렇게 큰 규모의 대회에서 우승하는 걸 오래전부터 꿈꿔왔고 기다려왔다. 이런 순간을 함께해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딘은 퍼팅이 끝날 때까지 말을 아끼라고 조언했다. 나는 딘이 왜 그렇게 행동했고 말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아직 내가 그런 부분에 있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골 : 마지막 우승 퍼팅을 하고 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고 : 그제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고 딘은 아주 짧게 “축하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과하게 흥분하거나 한 번 우승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 성격이다. 평소에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도 보이지만 필드에서는 아주 단호하고 냉철하다.
골 :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이었는데?
고 : 올해 열린 KG•이데일리레이디스오픈도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주니어 선수 시절에도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많이 했다. 사실 밑에서 치고 올라가는 게 선수로서는 부담감이 덜하긴 하다. 첫날을 선두로 마무리했을 때는 들뜨는 것도 있고 부담감이 있다. 하지만 그 부담감이 부정적으로 오느냐, 긍정적으로 오느냐에 달렸다. 스트레스도 부정적인 스트레스와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게 아니라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골 : 그럼 라운드 내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나?
고 : 당연하다. 선수가 안 될 때는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계속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을 컨트롤하기가 가장 어렵다. 하지만 딘이 캐디를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골 :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 고 : 대회가 끝나고 집에 늦게 들어갔다. 부모님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갔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나에게 “멋있다”고 말했다. 평소 칭찬에 인색하던 부모님으로부터 ‘멋있다’는 말을 듣는다는 건 무척 ‘멋있는’ 일인 것 같다.
첫댓글 진솔함이 묻어 나오는 인터뷰 잘 보았습니다.
고프로 BMW대회때 환하게 웃으며 당당하게 걷던 모습 참 멋있었어요.
저역시 대회내내 갤러리하면서 맘졸이지 않고 즐겼던 대회였지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