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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상원일수도)
1977년은 미국이 우주를 향한 보이저1·2호를 출발시키며 새로운 우주시대를 연다.
한국은 박정희지시로 여러공장이 건립되어 향후 산업의 기반이 조성된다.
3월 27일 - 테네리페 참사 두 대의 보잉 747 항공기가 충돌, 543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가 일어나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 송전시작.
1977년 여름, 한국: 대구의 기온이 7월 31일 39.5도를 기록했다.
1977년 여름, 그리스: 아테네에서 2015년까지 유럽 최고 고온이었던 48도를 기록.
60년전 박정희 탄생.쑨원이 광저우로 이동, 1차 호법운동
일본인에 의해 조선질소비료 주식회사 설립
조선에서 창덕궁 대화재 발생. 오후 5시에 시작되어 내전 일대를 불태우고 3시간 만에 진화되었으며, 복원 공사에 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경복궁의 주요 전각들이 헐려나갔다
중국이 독일에 선전포고.
그 유명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100년도 못 채우고 붕괴했다.또한 미국이 1차대전 참전을 선언했다. 이는 20세기의 양대 초강대국이 될 미소 두 나라가 국제질서의 전면에 등장했다
40년후 점차 원자력 축소시작.
박근혜와 친해진 1977년 3월 9일부터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40년후 몰락한다
50년전 신간회 창립 (회장 이상재)
- 경성방송국이 서울 정동에서 JODK 호출부호로 라디오 방송 개시
40년전 노구교 사건 발생. 중일전쟁 발발.(~ 1945년)
- 조선어학회, <표준말 모음> 발간
30년전 3월 1일 - 남대문에서 좌,우익 세력 집회도중 충돌. 38여명의 사상자
3월 1일 - 제주 3·1절 발포사건.
20년전 소비에트 연방이 지구 궤도에 오른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다
10년전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어,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2위는 윤보선 후보.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사실상 승리, 특히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함으로써 이슬람 각국의 반발 초래.
1617년 곽재우 사망
윤휴 : 조선 중기의 문신탄생
1617년에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의 왕이 됐다는 것은 보헤미아에 있는 신교도들을 매우 불안하게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에 의해 제시되었다. 헬리콥터의 원리도 제시했었던 다 빈치는 1617년 네모난 천을 장대 4개에 팽팽히 묶어 낙하산을 시험했다고 한다. 이 원리를 다시금 거론한 사람이 파올로 기도띠(Paolo Guidotti)와 베네치아의 파우스토 베란치오(Fausto Veranzio)라는 성직자였다.
나주 금성관 건립
60년전1557년 명나라로부터 마카오를 조차한 포르투갈은 330년 뒤 정식 식민지로 편입해 통치해왔습니다
경주지진발생
8차 이탈리아 전쟁 (1551 ~ 1559년)
1차 러시아-스웨덴 전쟁 (1554 ~ 1557년)리보니아 전쟁 (1558 ~ 1583년)
50년전 명종 죽고 선조즉위
40년전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가 1577년 대혜성을 관측하였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일행이 캘리포니아 - 태평양 - 인도양 루트를 통해 세계 일주에 성공하였다.
30년전 정해왜변 - 왜구들이 전라도 남해안을 약탈하다. 왜구를 몰아낸 뒤 전라좌수사 심암과 전라우수사 원호에게 책임을 물어 두 사람을 국문하였다. 이 때 왜구 두목들과 조선인 앞잡이 등은 3년 후인 1590년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조선에 송환되어 전부 처형되었다.
20년전 정유재란
10년후 정묘호란이 발발하였다.
오록스가 멸종 되었다.
20년후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집필하기 시작.
인조가 삼전도에서 숭덕제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그리고 조선은 청의 조공국이 되었다.하지만 조선이 망하지는 않았다.
- 일본 에도 막부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시마바라의 난을 일으키다.
에스파냐 인들이 정착 10여년 만에 타이완에서 철수하였다.
30년후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역할을 하던 빈이 공격당하였다. 이 사건은 다음 해의 베스트팔렌 조약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규모 8.5의 대지진이 일어나 1000여 명이 사망했다
40년후 페르디난트 3세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죽기 전에 스웨덴 왕 칼 10세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폴란드와 동맹을 맺었다.레오폴트 1세가 즉위하면서 스페인과 멀어짐.
50년후-1667년의 폴란드-러시아 전쟁은 대개 13년 전쟁으로 불리는 러시아 차르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사이에서 전개된 최후의 대규모 전쟁이다.
60년후 영국의 천문학자인 에드먼드 핼리가 센타우루스자리 오메가 관측
1257년엔 1257년에 7차칩입을 하였는바 해마다 몽고에 보내는 공물마저 중단하자, 이에 자극 받은 몽고는 차릴타이로 하여금 고려를 침공 황해 경기 충청도 등을 유린 하였다.
최항1257년, 최의가 1258년 죽음으로써 고려 최씨 무인집권 60년이 끝이 났다.
몽골 제국군이 대월 쩐왕조의 수도인 탕롱을 함락하였으나 곧 후퇴하였다.
제노바 공화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2차 제노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60년전 칭기즈칸이 주르킨족을 격파하고 무칼리를 부하로 삼았다.
아말릭 2세가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주화파의 사미원이 한탁주를 살해하였다.
몽골 제국 군이 서하의 북부 변경을 침공, 여러 요새를 파괴하였다.
키르기즈 부족이 몽골 제국에 복속되었다.
몽골 제국이 오이라트 원정을 시작하였다
40년전 콘스탄티노플에서 라틴 제국의 황제 피에르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 링컨 성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하였다.
- 하콘 4세가 내전을 끝내고 노르웨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 베렌가리아가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중도의 몽골 사령관 무칼리가 초원으로 돌아와 칭기즈칸에게 국왕 칭호를 받았다.
금나라 군대가 남송을 재침하여 농남과 대산관을 점령하였다.
거란 유민이 고려를 다시 침공, 황해도를 노략질하였으나 도원수 조충의 반격을 받아 서경 인근의 강동성으로 피신하였다.
30년전 몽골 제국이 서하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탕구트 인들은 멸족되었다.
노르웨이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야로슬라브 2세가 이끄는 노브고로드 공국 군대가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로 진군하여 그곳의 핀족을 궤멸시켰다..
10년후 비테르보 조약에서 전 라틴 제국의 황제 보두앵 2세가 앙주 공 샤를에게 아카이아 공국을 양도할 테니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여 라틴 제국을 재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 건설이 완료되었다
20년후 - 엘비스탄 전투에서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의 군대가 룸 술탄국과 일 칸국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불가리아에서 몽골 제국의 위협으로 인하여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이바일로의 난이 일어났다.
일본 하카타 만의 대몽 장성이 완공되었다.
웨일즈 공 리웰린과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리웰린의 자치권을 축소하는 대가로 1차 웨일즈 전쟁을 끝낸다는 아베르콘위 조약을 맺었다.
후에 잉글랜드의 깃발에 쓰이는 성 조지의 십자가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처음 쓰였다
30년후 원나라 군이 대월 쩐 왕조의 수도 탕롱을 함락하였으나 청야 전술에 시달렸다.
- 성 루시아의 홍수 : 폭풍으로 인해 네덜란드 일대에 쓰나미가 밀려왔고 5만여명이 사망하였다. 해안선 변동으로 암스테르담이 항구 도시가 되었고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킵차크 한국군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루블린을 약탈하고 서진하였으나 크라쿠프에서 격퇴당하였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칼라운이 시리아의 라타키아를 점령하여 트리폴리 백국을 압박하였다.
40년후 차가타이 칸국의 군대가 펀자브를 침공하였다.
원나라가 대만 침공을 시도하였다.
전임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성인으로 추증되었다
50년후 전설에 따르면 스위스의 윌리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의 사과를 맞추었다.
원무종 즉위
차가타이 칸국의 북인도 공격이 끝났다
독일의 왕 알브레히트 1세가 자신의 아들 루돌프를 보헤미아 왕국의 군주로 즉위시켰다.
에드워드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유럽에 불어닥친 대기근이 끝났다.
호조씨의 가마쿠라 막부가 덴노가 교대로 취임할 것을 제안하였다. (남조와 북조 분열의 시초)
왕권강화를 위해 카이샨의 자식들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1317년 시데발락가 세자로 책립되었고 1320년 부친이 사망함에 영종으로 제위에 올랐다.영종은 다음달에 칭기즈 칸의 원훈 무칼리의 후손으로 태자 시절부터 교유해왔던 바이주(拜住)를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로 기용해 귀족세력을 압박한다.
897년 왕건의 아버지인 고려(高麗) 세조(世祖)왕륭 승하하니 고려의 바탕을 이루고 떠난셈이다.
고려사절요에 왕건의 조부 작제건이라 불렸는데 753년 당숙종이 잉태시겼다한다.당숙종이 753년에 어디있엇는지 알수없고 756년 안사의 난때 분조하여 성도땅에 들었었다.성도땅은 나중 전촉,후촉의 본거지가 되는데 전촉의 창건자가 왕건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성도땅에 고구려 유민 4만호가 와있었다.
을사일(乙巳日)에 여주가 훙(薨)하니, 시호를 진성(眞聖)이라 하였다.
인물현(仁物縣)이 궁예(弓裔)에게 항복하였다. 궁예는 송악군(松嶽郡)이 한수(漢水) 북쪽의 이름난 군(郡)으로 산수(山水)가 기이하고 수려하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도읍으로 정하고, 공암(孔巖)·금포(黔浦)·혈구(穴口) 등의 성을 격파시켰다. 이때에 양길(梁吉)은 아직 북원(北原)에 있으면서 국원(國原) 등의 30여 성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궁예의 땅이 넓고 백성이 많다는 것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30여 성의 강한 군사로 습격하려고 하였으나, 궁예가 먼저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일본은 다이고천황이 즉위했다. 서프랑크는 비운의 임금 샤를3세가 12월 즉위했다.
60년전 후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 알 라흐만 2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와 소모적인 전쟁을 치르는 동안 톨레도의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테오필로스가 메소포타미아로 원정을 떠나 아바스 왕조의 몇몇 도시를 약탈하였다.
50년전 알무타와킬이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가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도시인 이탈리아의 바리에 무슬림 토후국이 세워졌다.
40년전 헌안왕이 신라 47대 왕이 되었다.
최치원탄생
대건황이 발해 12대 왕이 되었다.
쌍계사가 창건되었다.
30년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미하일 3세가 공동황제였던 바실리우스 1세의 사주에 의해서 암살당하였다. 이후 단독 황제가 된 바실리우스 1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어 1056년까지 지속되었던 마케도니아 왕조를 개창하였다.
바이킹군이 영국 북부의 데이라를 점령하였다.
20년전 카를2세 즉위
10년전
10년후 당나라의 절도사 왕건이 전촉을 건국하였다.
당나라의 절도사 주전충이 당애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후량을 건국하면서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시대가 시작되었다.
당나라의 절도사 전류가 오월을 건국하였다.
프레스부르크에서 마자르족이 동 프랑크 왕국군을 섬멸하였다
20년후 흑해 근방에서 시메온 1세가 이끄는 불가리아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오대십국시대 남한이 건국되었다.
산 에스테반 데 고르메즈 전투에서 레온의 오르도뇨 2세가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의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격파하였다.
신라에서 경명왕이 즉위하고, 그 동생인 위응을 상대등에 앉혔다.
30년후 공산 동수 일대에서 벌어진 공산 전투에서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이 고려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하였다. 이후 후백제가 고려를 상대로 얼마간 우위를 점하게 된다.
후백제의 왕 견훤이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근암성과 고울부를 함락시키고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 진군한 뒤, 포석정에서 신라의 왕 경애왕을 자결하게 하고 경순왕을 새 왕으로 옹립시켰다
40년후 거란군과 후진군의 연합 공격으로 후당이 멸망하였다.
남당이 건국되었다.
잉글랜드의 왕 애설스탠이 이복동생인 에드먼드 1세와 함께 잉글랜드를 침공한 스코틀랜드인과 바이킹들을 격퇴하였다
50년후 요나라군의 공격으로 오대십국시대의 후진이 멸망했다.
카이펑에서 유지원이 오대십국시대 후한을 건국한 뒤 후한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키예프 대공국의 통치자인 성녀 올가가 러시아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도입하였다
537년 동고트 왕국 군이 로마를 포위하였고 벨리사리우스의 방어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38년 3월)
하기아 소피아가 완공되었다
한편 법흥왕은 불교에 투신하여 스스로 승려가 되어 이름을 법공(法空)이라고 고치고 흥륜사(興輪寺)에 머물렀는데 흥륜사는 신라에서 창건된 첫 사찰이다.
60년전 유준이 유송 8대 황제가 되었다
백제삼근왕즉위
훈네릭이 반달 왕국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시아그리우스: 로마 제국의 군사령관사망. 프랑크 수아송점령
40년전 고구려의 문자명왕이 신라의 우산성을 공격하였다
35년전 양나라건국
30년전 부이에 전투에서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 왕국군이 서고트 왕국의 왕 알라리크 2세를 전사시키며 승리하였다. 이 승리로 프랑크 왕국은 아키텐 지방을 손에 넣는다.
고트족은 갈리아남부로 이동
알라리크 2세 사후 게사레크가 그의 뒤를 이어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프랑크 부족의 법전인 살리카 법전이 편찬되었다.
20년전 신라의 중앙 관부 중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관청인 병부가 설치되었다
10년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삼촌(숙부) 유스티누스 1세의 뒤를 이어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의 왕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였다.
10년후 547년, 고환이 죽고 그의 뒤를 이은 장남 고징은 동위 실권자가 됨
13년후 북제건국
20년후 서위가 멸망하고 북주가 건국되었다.
양나라가 멸망하였다.진나라가 건국
30년후 프랑크 왕국의 분국인 파리 분국을 다스리고 있던 카리베르트 1세가 근친상간죄로 파문을 당하게 되었다.
카리베르트 1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가 다스리던 파리 분국은 그의 형제인 군트람, 지게베르트 1세와 힐페리히 1세에 의해 분할되었다.
40년후 북제멸망
선운사가 창건되었다.
이문진 : 고구려의 학자사망
50년후 - 앙델로 조약에 따라 힐데베르트 2세가 숙부 군트람의 양자가 되었다.
막하가한이 동돌궐 6대 가한이 되었다
60년후 삼랑사가 창건되었다
177년 ~ 180년 - 제 2차 마르코만니 전쟁-서(西)게르만의 한 부족인 마르코만니인들이 도나우강(江)을 건너 로마로 침입하자 격퇴서기 177년을 기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10대에 불과했던 코모두스를 공동 통치의 파트너로 제국에 선언합니다
단석괴 177년에 한나라에서 하육, 전안, 장민 등을 파견해 도특약시축취와 함께 공격하자 삼부의 대인들에게 각 무리를 거느리고 싸우게 해서 이들을 모두 격파했다
60년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죽고, 하드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50년전 정현 : 후한의 유학자탄생
40년전 말갈이 신라를 공격하였다
30년전 볼로가세스 4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고구려 차대왕이 우보(右輔) 고복장을 살해하였다.
수성은 147년 3월에 태조왕의 근신인 재상고 복장을 먼저 제거한 후, 이듬해인 148년 4월에 태조왕의 맏아들 막근태자를 살해한다
20년전 단석괴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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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 로마 제국군이 크테시폰을 약탈하고 거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산상왕이 고구려 제10대 왕이 되자, 그의 형 고발기는 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데 따른 불만으로 인하여 왕궁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후한의 무장 원술이 황제를 자칭하고 국호를 중(仲)이라 하였다
30년후 백랑산 전투 : 조조가 요동으로 도망친 원상, 원희와 오환족을 토벌하고 북방 전체를 평정하였다
40년후 니시비스에서 로마 황제 마크리누스가 이끄는 군대가 파르티아군에게 패하였다. 로마는 파르티아에게 많은 돈을 바치고 평화 조약을 맺었다.
손권과 조조가 강화를 맺었다
50년후 동천왕이 고구려 11대 왕이 되었다.
위나라 상용에서 맹달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가 동방 원정을 떠나 호라즘, 시스탄을 정복하고 쿠샨 제국의 복속을 받아내었다. 그는 남방으로도 군대를 보내 바레인을 점령하였다
60년후 막시미누스 트락스 로마 제국의 25번째 황제(재위 235년~238년)이다. 트라키아의 농민 출신으로 라인 지방에 출정하여 공을 세웠으며,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암살되자 부하들의 지지로 마인츠에서 최초의 군인 황제로 추대되었다.
기원전 184년 전한 4대소제가 즉위하니 그해 전한 3대황제를 죽인 여태후가 3년후 죽게되면서 폐위되는 왕이다.
bc544년인도에서 음력 2월 15일 석가모니가 열반하면서 불교 창시.
좀다른 중원갑자
중원갑자
1797년
프랑스 혁명전쟁: 프랑스 제1공화국이 영국 상륙 작전을 실시하나, 실패하였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
3월 4일 - 존 애덤스가 미국 제2대 대통령에 취임.영국 군함 프로비던스 호가 조선 부산에 표착하여 동래 부사와 교섭.
60년전 칠레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연암박지원탄생
50년전 - 영국 해군 측에서 라임이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발견.
40년전 루이 15세에 대한 암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 플라시 전투: 클라이브가 지휘하는 영국군이 인도 벵골의 플라시에서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는 벵골의 토후 사라지 웃디알라 군과 교전하였다
20년전 정조 암살시도가 실패로 끝남.
10년후 틸지트에서 프랑스 제1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그리고 러시아 제국간에 틸지트 조약이 체결되었다.
- 프로이센 왕국에서 농노제도가 폐지
20년후 페르난도 7세가 쿠바에 시가 재배를 허용하는 칙령 발표.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쿠바 시가의 시초이다.
- 제임스 먼로가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
30년후 - 오스만 제국이 프랑스 왕국의 국왕 샤를 10세에게 보낸 기린이 마르세유에 도착하다. 기린이 유럽 대륙에 등장한 것은 무려 300년 만(...)
그리스 독립 전쟁: 영국, 프랑스 왕국 등 서방의 개입으로 오스만 제국과 그리스 제1공화국 사이의 강화 협상이 시작되다.
러시아 제국이 페르시아를 침공.
40년후 윌리엄 4세가 사망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18세로 계승하다. 살리카 법에 의거해 100년 이상 지속되었던 하노버 왕국과 영국 사이의 동군연합이 해체되다.
- 칠레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뉴욕 증시 시장 폭락을 시작으로 공황이 발생하다.
50년후 1847년 미국에서는 최초의 대서양 횡단선 '헬만호'와 '워싱턴호'가 스크루프로펠러로 건조되어 뉴욕-프레멘 간의 항로가 개설되었다
60년후 영국이 청나라에게 선전포고하다. 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다.영국군이 델리를 정복하면서, 무굴 제국이 멸망하였다.(1526~1857). 인도는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1437년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에 의하여 해시계 현주일구가 만들어졌다.
포르투갈이 모로코의 탕헤르를 포위 공격하였으나 격퇴당하였다
60년전 고려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의 초판본이 인쇄되었다.
고려 말의 무신 최무선이 화약을 개발하였다
리처드 2세가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라드코트 전투에서 리처드 2세의 왕실 군대가 헨리 (미래의 헨리 4세)의 귀족군에게 패배하였다
지기스문트가 대관식을 거행, 헝가리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헝가리 룩셈부르크 왕조의 시작.
40년전 - 정도전, 남은 등이 요동 정벌을 주장하고, 조준은 이에 반대했다.- 칼마르에서 마르그레테 여왕의 양자인 에릭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 칼마르 동맹이 성립되었다.
30년전 베트남에 파견한 명나라 사절단이 살해당하자 영락제는 사절단 살해를 응징하기 위해서 대군을 보냈고, 그 결과 명나라에 정복당한 베트남은 중국의 성으로 편입되었다.
1년후 1년동안 참위서적 소각후 태종이방원 퇴임.
킵차크 한국이 추판 왕조를 멸망시킴
무자파르 왕조가 인주 왕조를 멸망시킴
10년후 석보상절과 이를 바탕으로 악장화한 월인천강지곡이 완성되었다.
조선의 화가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완성하였다
20년후 조선의 문신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풍자한 글인 조의제문을 완성하였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30년후 일본에서 오닌의 난이 발생하였다.
조선에서 이시애의 난이 발생하였다.
함경도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40년후 프랑스에서 낭시 전투가 일어났다
50년후 용담공 샤를이 전사 프랑스에서 낭시 전투가 일어났다
60년후이사벨은 어려운 통화개혁을 통치 말년인 1497년에 완성하였다.
1077년 카노사의 굴욕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4세 파문- 완전히 교권이 우위에 선건
45년후 보름스협약이다.
비잔틴제국의 심장을 찢고나온 룸술탄국 건국
230년간 존속
60년전 바리의 멜루스가 노르만 용병의 도움으로 비잔틴 제국에게 반란을 일으켜 수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촐라 제국이 스리랑카를 정복하였다.
1차 타이파 분열의 일환으로 포르투갈 남해안의 파로 일대가 독립한다.
아브드 알 리흐만 4세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로 즉위하였다.
50년전 콘라트 2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월 14일 - 앙리 1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8월 16일 - 바그라티온 4세가 조지아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셀주크투르크 건국
30년전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이 발레스 두녜스 전투에서 프랑스 국왕 앙리 1세의 도움으로 반란을 일으킨 칸의 노르만 남작들을 패배시켰다
해럴드 할다라다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스벤 2세가 덴마크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20년전 바라빌레 전투에서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 이 프랑스 - 앙주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10년후 피사와 제노바 연합 해군이 지리 왕조의 수도 마흐디야를 기습 점령하였다.
- 윌리엄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니케아 포위 중에 보에몽 1세의 노르만 군대가 십자군에 참가하였다.
- 튀르크 군대가 도릴라이움 전투에서 십자군의 반격을 받이 패배하였다. 소아시아의 라타키야가 십자군에게 점령되었다.
30년후 윤관이 이끄는 고려군이 여진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여 9성을 획득하였다.
노르웨이 국왕 시구르드가 십자군에 종군하였다. (유럽권에서 처음으로 국왕이 십자군에 종군한 경우)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가 영토 확장을 시작하였다
40년후 금나라의 요나라(거란) 정복을 틈타 고려가 압록강 하류의 거란족을 몰아내고 보주(의주)를 점령하였다
바흐람 샤가 아르슬란 샤를 패배시키고 가즈니 왕조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가즈니에서 산자르가 이끄는 셀주크 제국군이 가즈니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후 1127년 북송
휘종황제 금나라 군대에 잡혀간다.
요도종은 1066년에는 요 태종이 사용하였던 '대요'라는 이름을 부활시키는 등 부흥노력에도 점차 침체.
60년후남송과의 합의로 괴뢰국 제나라가 폐지되고 금나라의 하북 지방에 대한 직접 지배가 시작되었다.잉글랜드 국왕 스티븐 1세가 마틸다로부터 노르망디를 탈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717년 테오도시우스 3세애 이어 레오 3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오랜 혼란을 끝내고 제위에 올라 재위 기간 중 아랍인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었으나 성상파괴 명령으로 제국 내 오랜 종교 갈등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끄는 군대가 빈시에서 네우스트리아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전 백제 의자왕이 서자 41명에게 각각 좌평 벼슬을 내리고 식읍을 하사하다.
시핀 전투 :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 문제를 둘러싸고 4대 정통 칼리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우마위야가의 무아위야 1세 간에 내전이 발생하였다.
50년전 가르통첸 : 토번의 재상사망
소정방 : 당나라의 장군사망
40년전 글필하력 : 당나라의 장수사망
30년전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궁재 피핀 2세의 군대가 네우스트리아의 왕 테우데리히 3세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후 테우데리히는 파리에서 철수하였고 피핀 2세에게 평화 조약에 사인할 것을 강요받았다. 피핀 2세는 이 전쟁 이후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우마이야 왕조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신문왕 신라의 행정구역이 9주 5소경으로 나뉘어졌다.
20년전 천문령전투로 발해정립1년전
10년후 니케아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우마이야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혜초가 인도에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다
20년후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크 왕국군이 아비뇽에 주둔한 우마이야 왕조군을 섬멸하고 아비뇽을 탈환하였다
30년후 아부 무슬림이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하기 위하여 메르브에서 무장 봉기하였다
40년후 안녹산의 난의 지도자이자 연나라의 황제인 안녹산이 낙양에서 그의 아들 안경서의 사주를 받은 환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안경서는 연나라의 새 황제에 올랐다.
안녹산의 부관이던 사사명이 당나라에 귀순하였다.
프루엘라 1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50년후 대공의 난이 발발하였다.
이듬해 96각간의 난
60년후 이프리키야의 현재 알제리에 이란 출신의 이바디 세력이 루스탐 왕조를 세웠다. (~909년)
357년 내물왕2년
동방의 정제 리키니우스와 서방의 정제 콘스탄티누스1세는 317년 마르디아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승리하게 되고 두사람은 휴전협정을 맺었다.
스트라스부르 근처에서 율리아누스 황제의 로마 제국군이 알레만니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357년 5월, 부견은 부생의 명을 받들어 강족을 정벌하고 그 우두머리인 요양을 죽이는 전공을 세웠다
60년전 갈레리우스가 사산조 페르시아에게 3패 후 다시 원정 준비를 했다.
로마의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베르베르인을 아틀라스 산맥 지방으로 내쫒았다.
이서고국이 신라의 금성을 공격하였다.
50년전 라벤나에 들어가 웅거하기 시작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가 막센티우스-막시미아누스 부자의 회유로 항복했다.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가 사로잡힌 뒤 처형당하였다.
사마치가 서진 제 3대 황제가 되었다.
탁발의로 307년, 탁발녹관의 뒤를 이어, 3분 된 탁발부를 다시 통일했다.
오호 십육국 시대의 대나라의 시조이다
40년전 로마 제국의 내전 중, 마르디아 전투(316년 말 or 317년 초)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끄는 군대가 리키니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그 결과로 이 해 317년에 세르디카에서 조약을 맺었는데, 그 조건은 살려는 드릴게로 요약된다. 참고로 24년 전 4두정치가 시작한 날과 같은데, 우연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의 의도적인 날짜 선정이다.
부견탄생
사마예가 동진을 건국하고 동진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백제의 내신좌평 우복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20년전 전연건국.
10년후 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아들인 그라티아누스를 공동황제로 임명하였다.
독일 남서부에서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알레만니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3만 명의 백제군이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 고구려군이 평양성을 공격한 데 대한 보복으로 백제를 공격하였다.
모에시아에서 로마 제국군과 고트족 군대가 맞붙은 전쟁이 일어났으며,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30년후 관미령에서 말갈군이 백제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이탈리아 지방을 공격하면서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피난하였다
40년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히포 공의회에서 결의된 성경 목록을 재확인하였다.
50년후 서로마 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가 브리타니아에서 자신이 서로마 제국의 황제임을 선언하였다.
혁련발발이 하나라를 세웠다
60년후 동진의 군대가 오호십육국시대 후진의 수도 장안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황제 요홍을 처형하면서 후진이 멸망하였다.
내물왕 아들 눌지왕 실성왕 시해하고 등극
bc4년 예수가 탄생한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 어린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한 왕헤로데 1세 사망, 아들3형제에게 나라를 나누너주나 인정못받는다
60년전 폼페이우스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13세 아시아티쿠스를 살해하고 셀레우코스 왕조를 멸망시킨다
60년후 석씨로는 최초로 탈해 이사금이 신라 제 4대 국왕이 되었다
bc364년필리포스2세는 마케도니아의 아민타스 3세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테베에 볼모로 잡혀있었다. 테베에서 그는 당시 그리스 최고의 전략가이자 장군이었던 에파미논다스에게서 군사와 외교기술을 배웠고 기원전 364년 마케도니아로 돌아왔다
BC 724년에는 근대의 400m 경기와 유사한 디아울로스라는 경기가 포함되었으며, 4년 뒤에는 근대의 1,500m 또는 5,000m에 비유될 수 있는 장거리 경기인 돌리코스가 포함되었다
BC724년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포위를 계속한 결과 3년 후 그의 후계자인 사르곤 왕 2세에 의해 함락되어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1년에 멸망했다
자바에서 BC 1084년에서 쌀재배
BC. 1444년. 히브리 민족, 가데스 바네아 도착. 호르마 전투에서 가나안에 패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