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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
1963년
80년만에 인천항 얼음 .년초겨울 강추위.서독광부1진출발
2월1일 장충체육관 개관.박정희 정국수습 방안제시 민정이양제시.
공화당 창당.김동하 축출
워커힐 개관 파격적인 쇼
새나라자동차 사건등 4대비리배후에 공화당이 적시.김종필 도미
전해 태풍피해로 쌀값 폭등.
빈터콩심기 및 빵으로 점심먹기운동.
이때부터 밀가루소비가 급격히 증가.
민정당.박순천을 총재로 민주당 재창당.
공화당 후보로 박정희 6월내정.
6.25 장승포 산사태 98명사망
8월31일 후보확정.민주 허정 사퇴
10월 15일 -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를 15만여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김정일 대학졸업후 평당원 입당
대학제 개최.
11월 22일 -박정희와 동갑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 일어나다
마지막6대 국회선거.공화당63%차지
.1월 1일 -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우주소년 아톰 첫 방영
Y.A.가가린 소령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4월 12일)에 성공하였다. 앨런 셰퍼드 중령에 이어 V. 그리솜이 1961년 7월 21일 탄도비행을 마쳤을 때, 소련은 8월 6일티토프 소령이 지구를 17주(周)하는 우주비행을 끝냈다.
1963년 5월 머큐리 계획은 종료되었다
3월 22일 - 비틀즈의 첫 앨범인 Please Please Me가 영국에서 발매되고, 앨범 차트 7위에 오름.
9월 15일 -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판매되다.
60년전 라이트형제 첫비행에 성공하다
미국이 문명을 주도하기시작.
하와이 조선인 이민시작.
1603년
3월 24일 (게이초8년 2월 12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에 에도 막부(江戶幕府,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 수립.
이에야스가 태어난 60년전 유럽인(포르투갈인)이 최초로 일본에 도착한 것은 1543년.
엘리자베스1세 사망하자
-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 잉글랜드 왕을 겸하게 됨.스튜어트왕조시작.
요하네스 바이어, 우라노메트리아(최초로 그리스문자로 별을 표시한 성도) 제작.
60년전 유럽의 화기류가 일본에 전래되었다.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다루고 있는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죽기전에 출판하였다
정구탄생
55년전 엘리자베스1세 등극
50년전 메리 1세가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
40년전 트리엔트공의회(1545년~1563년)
30년전 타케다 신겐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사망
20년전 시바타 카츠이에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사망
10년전 행주 대첩이 일어났다.
제2차 진주성 전투가 일어났다
제4차 평양성 전투가 일어났다.
9월 8일 - 도요토미 히데요리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사망
10년후 이덕형 사망
김제남이 처형됨. 같은 날에 규모 M6.3, 최대진도 VIII의 1613년 수원 지진 발생.
20년후 1623년 - 인조반정, 인조 즉위
30년후 일본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기독교를 금지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투옥되었다.
40년후 루이 14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뉴턴탄생
경상도 울산에서 규모 6.5 ~ 9.0으로 추정되는 울산 대지진이 일어났다
50년후
- 헨드릭 하멜이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타지마할의 건설이 완료되었다.
조선에서 시헌력이 시행되었다
60년후 히바 칸국의 칸 아불 가지 바하두르사망.
1243년 루스 지역을 거쳐 폴란드 왕국과 헝가리 왕국을 침공한 바투는 1243년 오고타이 칸이 서거하자 정복활동을 멈추고 루스 남부와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킵차크 한국과 차가타이 칸국이 건국되었다
최우 후계구도 확립
쾨세다흐 전투에서 몽골 제국이 룸 술탄국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세르비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왕 블라디슬라브를 폐위시키고 그의 동생 스테판 네마네치를 우로쉬 1세를 옹립하였다
60년전 -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간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공격으로 헤이케 정권의 안토쿠 덴노가 타이라 씨 일족과 함께 삼종신기를 가지고 교토를 떠나 관서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50년전 고려에서 무신정권의 전횡과 부패로 인한 농민 봉기인 김사미 · 효심의 난이 일어났다.
교황 첼레스티노 3세가 북방 십자군을 결성시켜 발트 해 연안의 이교도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구르 왕조의 장군 쿠투브 알 딘 아이바크가 델리를 함락하였다.
금나라가 몽골, 타타르를 경계하여 계호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살라흐 앗 딘 사후 시리아와 이집트가 분열되었다
40년전 4차 십자군
카라 칼지드 전투에서 자다란(자무카) - 케레이트(토그릴 옹칸) 연합군이 칭기즈 칸 군대를 패배시켰다.
칭기즈칸이 발주나 호수의 맹약을 치렀다.
칭기즈칸이 흩어진 세략을 재규합하여 자다란, 케레이트 부족에 대반격을 하여 큰 타격을 입혔다.
몽골군이 토그릴 옹칸을 추격, 살해하여 케레이트 부족을 멸망시켰다. 자무카는 나이만으로 피신하였다
30년전 - 플랑드르 연안의 담메 해전에서 잉글랜드함대가 프랑스 왕국의 함대를 격파하였다.
몽골 제국이 3차 금나라 원정을 시작하였다
29년전 부빈전투로 프랑스성립
23년전아미앵 대성당의 재건이 시작되었다.
샤르트르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20년전 칼카 강에서 제베의 몽골 제국군이 키예프 루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프랑스의 왕 루이 8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서하 신종(서하)의 양위로 그 아들인 이덕왕이 헌종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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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트 4세의 공격을 격퇴한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의 아들 에드먼드를 시칠리아의 욍으로 임명하였다
몽골 제국이 대리국을 공격하였다.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몽골의 5차 고려 침공이 일어났다
20년후 일 칸국의 훌라구 칸이 카프카스를 침공하였으나 킵차크 칸국군에게 격퇴되었다.
제노바 공화국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인 크레타 섬을 침공, 칸디아를 함락하였다.
30년후 대공위 시대의 종결과 합스부르크 왕조의 시작.
원나라 군대가 일 칸국이 보내준 회회포의 도움으로 남송의 양양성을 함락하였다
김통정이 사망하면서 삼별초의 난이 막을 내렸다
40년후 잉글랜드의 웨일즈 정복이 완료되었다
라인펠덴 조약으로 알브레히트 1세가 동생 루돌프 2세를 내치고 오스트리아 - 스트리아 공국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
발레타 전투에서 몰타의 반란을 진압하가 위해 파견된 앙주 가문의 프랑스 함대가 아라곤 왕국의 해군에게 격파되었다.
- 원나라 군대가 미얀마 파간 왕국을 공격하여 응가사웅기안 요새를 포위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가 농촌의 유대인들을 추방하엮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 인의 반란을 대비하여 콘위 성을 짖기 시작하였다.
50년후 - 일본의 가마쿠라에 지진이 일어나 3만 여명이 사망하였다.
- 맘루크 왕조의 섭정 바이다라가 술탄 알 아슈라프 할릴를 암살하고 술탄을 칭했으나 그도 암살되고 안 나시르 무함마드가 술탄이 되었다.
원나라의 자바 섬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의 도시들의 항복을 받고 다루가치를 파견하며 남하하였다
60년후 카이두가 우구데이 칸국에 칸이었는데, 죽기 전에 후계자로 차남을 지명합니다. 하지만 원나라 성종이 계승분쟁에 개입해 장남을 칸에 올립니다. 이때가 1303년입니다.
883년 신라 헌강왕시절. 최치원 계원필경 완성
태평성대였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신라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지배층과 하층민의 괴리가 깊어지는 시기였다
아바스 왕조 치하의 이라크에서 발생한 노예 잔지가 일으킨 잔즈 반란이 진압되었다
해인사 비로자나불이 서기 883년 완성
당은 서기 883년 2월, 적군이 장안성을 공격한다. 황소는 직접 대오를 지휘해 적군과 결전을 진행한다. 하지만 황소는 안으로 양초가 없고, 밖으로는 원병이 없어 부득불 장안을 빠져나간다
882년에 황소의 휘하에 있던 주온(朱溫)이 당에 항복하여 당 조정으로부터 전충(全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황소 진압에 나서고 2년 뒤인 중화 4년(884년), 산동 성 태안(泰安)에 있던 호랑곡(虎狼谷)에서 황소가 자결한다
98년전 세르비아왕 등장
60년전 준나 천황이 53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테오필로스가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40년전 프랑크 왕국의 왕 루트비히 1세 사후 루트비히의 3명의 아들들 간에 베르됭 조약이 맺어져 프랑크 왕국이 서 프랑크 왕국, 동 프랑크 왕국, 중 프랑크 왕국으로 분할되었다.(이 국가들은 각각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시초가 된다.) 이 조약에서 샤를 2세에게 서 프랑크 왕국, 루트비히 2세에게 동 프랑크 왕국, 로타르 1세에게 중 프랑크 왕국이 주어졌다.
30년전 - 비잔티움 제국군이 다미에타를 약탈하고 파괴하였다.
20년전 랄라카온 강에서 페트로나스 장군이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아랍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동로마에서 파견한 키릴, 메토데이 형제가 모라비아에 도착하여 양국 간의 우호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에 동프랑크는 1차 불가리아 제국과 동맹하였다
10년전 당희종이 당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백작 장발의 윌프레드가 백국의 자치 획득을 위한 프랑크 왕국과의 교섭에 들어간다.
10년후 - 시메온 1세가 불가리아의 군주가 되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 이베리아 중북부 바야돌리드 일대 점령
20년후 세르비아 지중해진출
후우마이야 왕조, 메노르카 섬 점령
30년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오비에도에서 레온으로 천도하였고, 이후로 레온 왕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갈리시아 왕국의 오르도뇨 2세가 이끈 원정대가 타호 강 중류의 에보라를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기염을 토했다.
40년후 이존옥의 후당의 공격으로 후량의 수도 카이펑이 함락되며 후량이 멸망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이 부르고스 넘어 이베리아 고원 중북부 점령, 세고비아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마드리드 근방)
50년후 하인리히 1세가 마자르족들을 격퇴하였다.
오스마 전투에서 카스티야의 페르난 곤살레스가 지휘하는 레온 - 카스티야 연합군이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패배시켰다.
60년후 왕건 사망
523년 백제(百濟) 무령왕(武寧王) 23년 / 성왕(聖王) 원년
60년전 오를레앙 근처에서 프랑크족 군대가 테오도리크 2세가 이끄는 서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51년전 힐데리히 프린지아공주와 함께 귀국
50년전 글리케리우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7년전 힐데리히아들 클로비스 로마의 수아송공략
30년전 테오도리크 대왕이 약 3년 간의 공격 끝에 라벤나를 점령하고 오도아케르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20년전 신라의 지증왕이 명칭 '신라'를 공식 국호로 지정하고, 중국식 군주 호칭인 '왕(王)'호를 사용했다. 또한 순장제도를 폐지했고,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기위한 석빙고도 만들었다.
10년후 사르데냐에서도 반달족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반달족을 공격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멸망시킴.
20년후 인도에서 찰루키아 왕조가 창건되었다
30년후 몬스 락타리우스(Mons Lactarius) 전투에서 비잔틴 제국의 장군 나르세스가 테이아(Teia)가 이끄는 동고트 왕국의 잔당을 전멸시키고 18년에 걸친 고트전쟁을 승리로 끝맺는다
40년후 아일랜드 출신 수도승인 성 콜룸바가 12명의 동료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의 이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이오나 섬에 도착하여 선교의 본부로 삼을 수도원을 세웠다.
50년후 동축사가 창건되었다.
호스로 1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약 6개월간의 공격 끝에 비잔티움 제국의 거점인 다라를 점령하였다.
60년후 일본은 소가노 가문의 지배가 626년까지 시작된다
163년 (정희 6년) 관우, 장비 태어남
60년후 촉이 망함.
BC 198년 테살리아전투 이후 BC 197년의 키노스세팔라이(Cynoscephalae)전투에서 필리포스 5세와 마케도니아군은 대패하였다.
BC 198년 8월 조나라 상국 진희(秦豨)가 모반을 일으키자 유방은 이때 역시 직접 출진하여 반란을 진압했고
bc558년 그리스 솔론 사망, 진이 진에 승리키롯스가 B.C 558년에 페르시아의 왕을 자처하며 페르세폴리스에 도읍지를 정했구요
중원갑자
1783년
9월 3일 - 파리 조약 체결로 미국 독립전쟁 종결. 미국, 독립..
11월 2일 - 뉴저지 주 로키 힐에서 미국 조지 워싱턴 장군이 휘하 병사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다.11월 21일 - 파리에서 P. 로지에에 의해 최초로 열기구 비행에 성공.
60년전 미국 13개 주가 확정됨
명사고가 편찬되었다
50년전 폴란드 왕위 계승전쟁이 시작되었다.
영국령 아메리카 (미국) 의 13개 식민지가 완성되었다.
40년전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데팅엔 전투가 발발. 조지 2세가 이끄는[1] 영국 - 하노버 왕국 연합군이 프랑스를 격파.
세계최초의 관현악단 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관현악단이 창단되었다.
부르봉 왕조의 물리학자 달랑베르가 달랑베르의 원리를 발표하였다.
30년전 대영박물관이 세워졌다.
20년전 파리 조약을 통하여 프랑스-인디언 전쟁이 종전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캐나다를 영국에게 할양하고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 할양해야 했다
10년전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예수회를 탄압하기 시작하다.
보스턴 차 사건이 발발하다!
청나라에서 사고전서 편찬작업이 시작되다
10년후 전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의 여파로 영국,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등을 중심으로 1차 대프랑스 동맹이 체결되다.
- 국민공회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시민 루이 카페(Louis Capet)가 단두대에서 사형당하다.
- 2차 폴란드 분할: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를 나누어 갖다
20년후 스위스에 헬베티카 공화국이 세워지다. 이로써 천년가까이 지속된 스위스 연방은 해체되다.
- 루이지애나 매각과 관련된 협상이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서 마무리되다.
프랑스 지배 하의 네덜란드가 영국으로부터 남아프리카 식민지를 회복하였다
30년후 뤼첸 전투 발발. - 이베리아 반도 전쟁: 비토리아 전투에서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스페인 연합군이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상대로 승리. 이 승리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프랑스 세력이 일소되다.
- 라이프치히 전투 발발. 2일 후인 18일에 종결. 그리고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하면서 나폴레옹의 몰락이 가속화되다
40년후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다
미국의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의 영향력 행사를 거부하는 외교노선을 제창하다. 먼로 독트린의 시작.
- 독일의 천문학자 하인리히 올베르스에 의하여 올베르스의 역설이 제기되다
50년후 시카고강 주변에 300여명의 이주민들이 정착. 이 정착존이 커지고 커져 오늘날 미국의 제 3대 도시인 시카고가 된다.
- 영국 의회가 공장법을 가결하여 아동 노동을 제한하다.
- 스페인의 국왕으로 이사벨 2세가 즉위하다. 이때 그녀의 나이 불과 3세
60년후 - 오스트리아 제국의 밀라노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롬바르디아 인이 공연되었다.
-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423년 세종5년차.30년후 계유정난
황희 1423년 예조판서를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나가 구휼을 잘 하고 민심을 얻었다
80년전 세르비아 상승세.
60년전 세르비아 강성해 발칸반도 차지.
60년전 파양호 대전에서 주원장이 진우량의 50만 대군을 격파하고 진우량을 전사시키며 중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가을 - 스웨덴 귀족들이 메클렌부르크 공작 알베르트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한자동맹의 도움으로 스웨덴에 상륙, 국왕 마그누스 4세를 패배시켰다.
메가라 해전에서 동로마 제국 해군이 오스만 제국 해군을 격파하였다.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블라디미르 대공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를 폐위시키고 공국을 병합하였다.
52년전 세르비아 위축하기 시작하더니1459년 멸망하여 1815년 자치회복1879년독립
50년전 포르투갈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엔히크 2세가 산테렘 조약을 맺어 휴전하였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가 간의 동맹인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간의 동맹이 체결되었다.
크메르 제국의 새 수도인 프놈펜이 건설되었다
40년전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도 1세가 사망하자 카스티야로 시집 간 그의 딸 베아트리스가 계승했다. 하지만 페르난도의 이복 동생 후안이 반발하여 포르투갈 내전이 발발하였다. 백년전쟁 중이어서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의 후안, 프랑스는 카스티야를 지원하며 대리전을 치른다. (~1385년)
오스만 제국군이 세르비아를 공격, 세르를 점령하였다
30년전 조선 왕조가 이 때부터 조선을 국호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오스만 제국군이 2차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 투르노보를 함락하였다. 불가리아의 차르 이반 시슈만은 오스만 술탄 바예지드 1세의 봉신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령 테살리아를 정복하였다.
20년전 조선 제 3대 국왕 태종이 인쇄를 담당하는 주자소를 설치하였고, 이 주자소에서 금속활자 계미자가 제작되었다.
10년전 조선 제 3대 국왕 태종이 호패법을 시행하였다.
태종이 한반도를 8도로 분할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편찬을 시작하였다.
태조실록이 완성되었다.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드 1세가 발칸 반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10년후 1433년에는 압록강을 넘어 파저강 전투에서 여진족을 무찔렀으며, 북방 이민족인 여진족에 대한 강경책과 영토 확장에 대한 일환으로 최윤덕 장군이 여진족을 토벌하여 평안도의 4군(四郡, 1433)개척
20년후 - 조선의 4번째 국왕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
30년후 2200년을 이어져 온 로마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해
보통 서구 역사에서 중세가 끝나고 근세(근대)로 이어지는 시점을, 동로마가 멸망하고 백년전쟁이 종결된 바로 이 1453년으로 잡는다.
다빈치 1452년 탄생
40년후 동국지도가 완성되었다.
홍문관이 신설되었다.
50년후 코페르니쿠스 탄생. 주세붕 소수서원설립
60년후 1483년 수강궁 자리에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
1년전 오스만 불가리아멸망시킴. 콘스탄티노플 공격은 실패함.
백년전쟁이 재개되어 잔다르크가 활약
1063년, 송 인종이 대를 이을 아들을 두지 못하고 병사하자 영종이 즉위하였다.
알프 아르슬란이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피사 함대의 지원을 받은 로제르 1세의 노르만 군대가 시칠리아 토후국의 수도 팔레르모를 점령하였다.
잉글랜드의 템즈 강이 14주간 얼어붙었다
60년전 마크의 왕 스벤 1세가 잉글랜드를 공격하였다.
타타르 부족이 요나라에게 항복하였다. 거란의 몽골 거점인 카툰 성이 수축되었다.
카탈루냐 서부에서 벌어진 알베사 전투에서 알 무자파르(알 만수르의 장남)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군대가 아라곤 왕국과 바르셀로나 백작 등 마르크 변경백들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50년전 덴마크의 왕 스벤 1세가 자신이 잉글랜드의 왕임을 선언하였다. 웨식스 국왕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 공국으로 피신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2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실시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였다.
40년전 가즈니 제국이 트란스옥시아나를 정복하였다.
아바드 왕조의 세비야 토후국이 독립하였다.
30년전 세계 종말론이 가톨릭 세계를 휩쓸었다. (예수가 십자가 형에 처해진지 1000 주년인데 가뭄까지 겹쳐서)
나바라 왕국의 산초 3세가 레온 왕국의 왕위도 차지하며, 갈리시아와 포르투를 제외한 레콘키스타 세력이 나바라 왕국 하에 단일화되었다. (포르투 - 갈리시아 / 레온 - 카스티야 - 나바라)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이었던 프로방스의 아를 왕국이 해체되었다. 이후 오랑주 공국 등으로 분열되었다
20년전 셀주크 제국이 이란 북부 타바리스탄의 지여르 왕조를 격파하고 속국화 하였다.
영국의 왕 참회왕 에드워드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금성이 목성을 가리다.
송의 범중엄이 개혁을 시작하였다. (경력변법)
10년전 시비타테 전투에서 아풀리아 & 칼라브리아 백작인 하우테빌레 가문의 험프리가 이끄는 노르만 기병대가 교황 레오 9세와 로렌 공작이 지휘하는 이탈리아 - 독일 - 롬바르드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교황이 노르만 인의 포로가 되었다.
- 뵤도인이 건설되었다
10년후 스비아토슬라브 2세가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셀주크 제국이 앙카라를 점령하였다
20년후 하인리히 4세의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그레고리오 7세를 로마의 산타젤로 성에서 포위하였다.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함락, 이베리아 진출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30년후노섬벌랜드에서 영국이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의 왕 맬컴 3세가 전사하였다. (알른윅 전투)
모술 회전에서 셀주크 제국 군대가 우카일 왕조 군을 대파하였다.
부르군디의 앙리가 포르투갈의 여백작과 결혼하여 포르투갈 백작이 되었다.
스비아토폴크 2세가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40년후 잉글랜드의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가 헨리 1세와 다툰 후 추방되었다.
- 노르웨이의 마그누스 3세가 얼스터에서 켈트인들과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들인 외스텐, 올라프 마그누손이 공동으로 즉위하였다
50년후 튀르크인들이 1097년에 비잔티움-십자군의 기독교 세력에게 상실한 니케아 회복을 위해 5만 대군을 이끌고 도시를 포위하였으나 격퇴당하였다.
앙코르 와트의 건설자인 수르야바르만 2세가 크메르 제국의 왕이 되었다.
성 요한 기사단 (병원 기사단)이 설립되었다.
카스티야 왕국이 아라곤 - 나바라 왕국이 점령한 부르고스를 포위하였으나 격퇴당하였다
블라디미르 2세가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완안아구타가 여진 부족연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60년후 1123년 5월 송 휘종이 보낸 200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고려에 온 서긍(1091 ~1153)
703년 이슬람, 동로마 제국의 킬리키아를 침공하다
60년전 신라의 승려 원효가 인각사를 창건하였다.
신라의 승려 자장이 봉정암을 창건하였다.
50년전 의자왕이 왜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콘스탄스 2세가 교황 마르티노 1세를 체포하였다.
40년전 콘스탄스 2세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롬바르디아에게 패하였다.
- 백강 전투 :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일본의 덴지 천황이 1000여 척의 배와 2만 7천명의 구원군을 파견하여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백제와 함께 연합하여 싸웠으나 나당연합군에 패배하였다. 또한 주류성도 함락되면서 백제부흥운동은 끝을 맺었다.
30년전 김유신사망
20년전 이븐 누마이르 군이 메카를 포위하고 이븐 주바이르에게 항복을 권유하였지만 거절당하자 포위가 시작되었다.
- 우마이야 왕조의 포위군이 투석기로 쏜 불덩이에 메카 카으바의 목재 부분이 전소되었다.
- 야지드 1세가 낙마로 사망하고 무아위야 2세가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가 되었다.
10년전 톨레도의 대주교 시세베르트가 서고트 왕국의 왕 에지카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0년후 트라키아의 옵시키온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필리피쿠스를 폐위시켰다.
고왕이 진국의 국호를 발해로 고쳤다.
20년후 네팔 릿차비 왕조의 통치자, 구나타마데바가 Koligram과 Dakshin 왕국을 합병하고 카트만두를 세웠다.
비잔틴 제국 라오디케아의 세란타피코가 성상 파괴론을 설교하여 아나톨리아에서 지지를 받았다
30년후 마도산 전투에서 발해가 당나라의 군대를 격퇴했다
40년후 콘스탄티누스 5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에 다시 즉위하였다.
힐데리히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50년후 코르미소스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60년후 우미아드왕자 라흐만은 763년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아바스 왕조의 군대마저 물리쳐 알 안달루스의 지배권을 확고히 굳혔다.
343년 343년, 고국원왕은 동생 무를 보내 전연에 신하의 예를 갖추고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았으며, 그 해 평양의 동황성(東黃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60년전 283년에 모용섭귀가 죽자 그의 동생 모용내(慕容耐)가 정권을 장악하고 모용외를 죽이려 하였으나 모용외가 요동으로 달아나 목숨을 건졌다
로마 황제 카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하여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카루스는 이어진 전쟁 도중 사망하였다. 이후 카리누스, 누메리아누스가 그의 황제 자리를 이어받는다.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였다..
50년전 -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막시미아누스가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 갈레리우스를 부제로 임명하여, 로마 제국에서 4두정치 체제가 시작되었다.
모용외의 군대가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고노자가 이끄는 기병 군대에게 패배하였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인 바흐람 2세가 죽고 바흐람 3세가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나르세스 1세와 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4개월 뒤 살해당하였다. 이후 나르세스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된다.
콘스탄티누스 클로루스가 골족이 점령한 일부 영토를 수복하고, 라인 강 근처에서 프랑크족을 격퇴하였다.
40년전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동방정제의 치소였던 니코메디아 황궁의 화재를 빌미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 칙령으로 교회 건물이 파괴되고 서적이 불태워졌으며, 기독교도인 관료와 군인 등이 면직되었다. 교세가 강했던 동방에서 강한 저항이 일어났고, 그것을 진압하였다.
30년전 밀라노 칙령 : 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고, 종교 박해 시기에 몰수한 교회의 재산 등을 다시 돌려주도록 하는 것에 대해 밀라노에서 합의했고, 이 해 6월 13일 니코메디아에서 공포했다.
고구려가 낙랑군을 수복하였다.
20년전 다뉴브 강 북부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군을 이끌고 고트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사마소가 동진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10년전 모용황이 대인이 됨.
10년후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의 부대가 마그넨티우스의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후 마그넨티우스는 자살하였다.
장요령이 전량 6대 국왕이 되었다.
20년후 로마 제국의 율리아누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다.
- 율리아누스 황제가 동방 원정에서 퇴각하는 도중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30년후 고구려가 율령을 반포하였다
40년후 비수대전에서 사안이 이끄는 동진군이 부견이 이끄는 전진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샤푸르 3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50년후 - 호노리우스가 서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고대 올림픽을 금지시켰다
60년후 - 베로나의 북부에서 스틸리코 장군이 이끄는 서로마 제국군이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서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 백제군이 신라의 변경을 공격하였다
목만치탄생.
bc18년 온조왕이 백제를 세우고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다.
온조가 하남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십제를 건국하였고, 온조의 형 비류는 온조와 생각이 달라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다. 그러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불편한 점이 많았기에 미추홀의 백성들은 위례성으로 건너왔고 온조왕은 이들을 받아들인 뒤 국호를 백제로 개칭하였다
60년전 퀸투스 세르토리우스가 메텔루스 피우스를 격퇴하였다.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
50년전 기원전 68년흉노족은 엄청난 추위와 폭설이 닥쳐 수많은 부족민과 가축이 얼어 죽고 굶어 죽는 참사가 일어나 흉노의 국력에 치명타를 입혔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2세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전 갈리아 전쟁 1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헬베티족과 게르만족 격파
30년전 - 디라키움 공방전 : 디라키움에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군대가 카이사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카이사르군은 보병 약 1000명, 기병 200명 정도의 손실을 입고 테살리아까지 후퇴했다.
- 파르살루스 전투 :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대승을 거두었고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퇴각하였다.
- 폼페이우스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20년전 시리아 지방에서 로마군이 파르티아의 왕자인 파코루스 1세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파코루스 1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옥타비아누스가 리비아 드루실라와 결혼하였다.
프라아테스 4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10년전 낙랑이 신라를 침범하였으나 도덕의 나라라 하여 스스로 물러갔다
20년후 고구려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그곳에 위나암성을 축조하였다
30년후 부여가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고구려의 왕자 무휼이 학번령에서 군사를 이끌고 부여군을 대패시켰다.
40년후 경시제 유현, 유인, 유수는 신나라에 대항하여 한나라의 재건을 선포하고 거병하였다
50년후 허황옥 : 금관국의 왕후탄생
60년후 로마 제국군이 브리튼 원정을 시작하였다.
론디니움(현재의 런던)이 건설되었다.
마원이 이끄는 후한군이 베트남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고 지도자인 쯩 자매를 처형하여 베트남에서 후한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이 진압되었다
70년후 고구려 태조왕즉위
BC 378년 진(晉)나라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60년후 아테네의 포키온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반역죄로 인해 처형당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와 안티고노스와 동맹을 맺은 카산드로스가 섭정 폴리페르콘에게 전쟁을 선포하였고, 카산드로스는 폴리페르콘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중국에서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제나라, 연나라 그리고 흉노가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수어(脩魚)에서 진나라에 크게 패했다.
bc738년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이스라엘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