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시아 지방 변덕의 날씨는 운 좋은 스테파노도 비를 피하지 못함
아침하늘에 달이 희미하게 보여 평소보다 조금 이른 5시20분 출발
리냐레스 마을에 도착하니 아직 6시 13분.
길가에
누워있는 개 발견
혹시 엔젤 아닌가 확인.
가까이 가도 꼼짝 안 함.
왜 단잠을 깨우냐는 듯.
혹시나 하고 ‘엔젤’ 불렀으나 미동도 없음
산띠아고 가는길을 걸은 순례자치고,
산 로께 언덕의 근사한 순례자 조각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도 순례자의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이 언덕의 풍경은
조각가 아꾸냐가 만들어놓은 바람을 뚫고 걸어가는 거대한 순례자의 동상이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구름이 능선 위를 흐르며 동상 주위를 지나면 그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순례자 기념물 (Monumento al Peregrino)
거대한 자연 앞에서 바람에 날아갈 듯한 모자를 잡고,
힘차게 지팡이를 잡고 걸어가는 순례자 모습의 기념물입니다.
이 조각은 계곡에 눈이 와서 봉우리가 모두 눈에 덮여도
순례자의 앞길을 밝혀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스피탈 데 라 콘데사(Hospital de la Condesa)
과거에는 순례자 병원이 이 마을의 자랑거리였다(그래서 마을 이름도 이렇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병원이 있다는 이유로 명성이 자자한 마을이었지만,
이제 남은 볼거리라고는 돌 지붕으로 된 종탑과 산티아고를 받쳐든 십자가가 있는 흥미로운 성당뿐이다.
산 후안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1130년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검은 돌을 이용해서 만든 성모상이 있습니다.
돌 종탑 안
뽀이오 언덕의 산자락에 위치한 전원 마을인 빠도르넬로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지붕에 해당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 지방의 전통 가옥 지붕에 많이 사용되는 평평한 검은 돌이 많이 나오는 곳이며
초록색 평원에 목동들과 소들이 띄엄띄엄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지붕이 덮인 공동묘지
산 후안 데 빠도르넬로(San Juan de Padornelo)라고도 불리는 빠도르넬로는
중세 성 요한 기사단의 본거지였습니다.
기사단이 사용하였던 오래된 성당은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묘지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 내부에 공동묘지를 만든 것은 흔히 볼 수 없는데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고인들의 무덤을 위해 사용되어
오랫동안 귀족이나 성직자에게는 거의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산 쇼안 데 빠도르넬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Xoan de Padornelo)
이 성당은 빠도르넬로에 있던 성 요한 기사단이 관할하던 전원풍 성당이었습니다.
16세기 재건축을 할 때에도 성당 내부의 심플한 바로크 양식 제단화를 보존했으며
성당건물 옆으로는 타원형 평면의 특이한 공동묘지를 만들었습니다
폰프리아는,
좁은 고원지대의 마지막에 위치하여 골짜기로 내려가기 직전에 있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몇 백 년 동안 순례자들에게 프리아 푸엔떼(Fria Fuente; 차가운 물)를 제공해주었던 샘터가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가축용수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폰프리아 델 까미노’(Fonfria del Camino)였으나
지금은 ‘델 까미노’라는 부분이 없어지고 ‘폰프리아’로 불립니다.
산띠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해서 순례자는 이 마을을 지나가야만 합니다.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드나 16세기 이 마을에는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순례자에게는 불, 소금, 물, 담요 두 장과 침대를 제공했으며
환자에게는 이 외에도 빵 네 조각과 계란, 버터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난 폰프리아 출신입니다
폰프리아 성당에는 은으로 도금된 성작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성작에는 “소이 데 폰프리아 (Soy de Fonfria; 난 폰프리아 출신이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 성작의 기원이 언제이며 새겨진 문구가 무슨 뜻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폰프리아 산 후안 성당
비두에도
다행이 구름이 걷히고 산중턱에 걸린 구름과 그 위에 조금씩 보이는 산들을 보며 신선이 된 느낌
계속 발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누름
2시간이 지난 8시경 간식으로 맥주한잔 하는데, 한 외국인 여자가
찻잔을 들고 푸르스트(proost 네델란드어 : 건배!) 하면서
옥토버 페스트(독일 뮌헨에서 매년 9월 말에서 10월초 열리는 유명한 맥주축제)라고 외침
옆에 있던 레스토랑 주인도 시계를 보며 엄지척 하며 웃음.
칭찬인지 놀리는지
여인에게 어디서 왔냐하니까 바바리안 하길래
도이취 하니까 뮤니히(뮌헨) 함.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될걸, 왜 지명을 강조하는지
내가 아침부터 맥주를 500cc잔에 먹는게 신기한 듯.
나에게 맥주는 빵이고 에너지라 말하자 또 엄지척
갑자기 날씨가 돌변하여 소나기가 내림
피요발(Fillobal)
빠산떼스
마을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중세의 뜨리아까스떼야는,
세 개의 성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이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10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이 마을은
13세기 알폰소 11세에 의해서 재건되고 부흥했다고 전해집니다.
과거 이 마을에는 석회암이 많아서 중세의 순례자들은 이 마을에서 돌을 날라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대성당을 건축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뜨리아까스떼야에는 수많은 모텔과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가 넘쳐납니다.
마을의 입구에는 1993년 산띠아고의 해에 만들어진 4층짜리의 근사한 알베르게가 있고,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순례자를 환대합니다.
추위와 피곤함에 지쳐 들른 순례자는
뜨리아까스떼야의 작은 바에서 가슴 따스한 친절과 배려를 받을 것입니다.
뜨리아까스떼야는 오 세이브로의 급한 내리막길에 지친 순례자들이
하룻밤을 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마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 뜨리아까스떼야는 사기를 치는 여관 주인들과,
여관 주인의 아내들, 일꾼들이 합심하여 순례자들에게 사기를 쳤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벌을 받아
하느님의 감시하에 평생토록 순례자들에게 공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야 했다고 합니다.
산띠아고 로만시아 성당 (Iglesia Romanica de Santiago)
3개의 아케이드가 지탱하는 견고하고도 아름다운 탑이 있는 성당.
정확하게 몇 년도에 만들어진 건축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입구의 공동묘지 가운데에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돌로 건축된 소박한 전원풍 성당으로
성당의 내부에는 복음서를 들고 있는 산띠아고 성인의 순례자상이 보관되어있습니다.
순례 중 나는 3가지 별명(엄지척)을 얻음
하나는 잘 걷는다고 스트롱맨. 늘 외국 노인들을 까미노에서 추월하니까
둘째 항상 맥주 마시는 모습을 보니까 비어맨
셋째는 어제 천사개와 까미노를 걸은후 도그맨
숙소에 도착하면 많은 외국인이 아는척. 모두 엄지척
스트롱이건 맥주맨이건 아니면 개를 사랑하는 도그맨이건.
어떤 이는 같이 사진 찍자고하여 모델도 되어줌
힘든 순례길에 웃음을 줄 수있는 스테파노. 대~단해요
멋진 운무광경을 사진찍으며 오자 다른 순례객들도 나를 쫓아와 추월하기도 함
모두 원더풀! 뷰티풀! 하고 환호성을 지른것도 잠시,
언덕을 돌자 앞이 안보일 정도로 안개가 덮치고 바람이 불어 윈드쟈켓을 꺼내 착용.
날씨가 심상치 않아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드디어 천둥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
처음으로 판초우의 꺼내 착용.
1시간 정도 비 맞고 숙소도착.
다행히 1시간 후 개임.
순례의 멋을 느낄 정도의 비 선물로 생각
숙소는 아이체네아(바스크어로 전통가옥이란 뜻)로,
바스크인 건축가가 전통 석조가옥을 개조한 집
샤워 빨래하고 비 그치면 마을 구경해야지
지금도 비가 내리네.
산속마을에서 빗소리 들으며 마시는 맥주.
색다른 맛이네
근사한 식사 준비 중
1,2,3코스 중 1차 오징어 튀김.
음료는 와인 한 병.
2차 문어요리. 가격은 10유로
오늘 알베르게는 전통 바스크인 가옥을 개조한 집
주인과 한 컷
ㅜ뎌ㅛㄱ7
뭐라 쓴 건지
낮잠 자고 나보니 스마트 폰에 이상한 문자
날이 갠 듯. 마을 구경해야겠다
6시 미사 참례 후 비어맨답게 캔맥주
근데 낮잠 자고나니 열손가락과 무릎이 따끔거리고 절인 느낌.
오상은 아닐테지
다시 구름이낌.
내일 맑아야 할 텐데
De Colores(데 꼴로레스) - Nana mousko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