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세계 원전시장 1653조 두코바니 시작으로 제3·제4 원전 수주로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의 원전 기자재 생산기업인 스코다JS 공장을 찾아 사용후 핵연료 저장용기 생산라인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한국과 체코가 함께 짓는 원전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35년 전 세계 원전시장 규모는 165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1월 기준으로 건설 중인 원전만 104기다. 이 같은 ‘세계 원전 르네상스’ 시대에 대비해 윤석열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국정과제로 ‘원전 생태계 강화’를 내세우고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 K-원전의 시작은 체코에서부터다. 7월 17일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위시한 팀 코리아가 선정됐는데 이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거둔 쾌거다. 체코 두코바니와 테믈린 일대에서 진행되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은 2기 건설에 약 24조 원의 사업비가 예상되는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 프로젝트다. 한국과 체코 양국은 2025년 3월 초로 예정된 최종계약까지 무사히 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월 19일(현지시간)부터 2박 4일간 체코를 직접 찾아 “체코 원전 사업의 최적의 파트너는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밝히며 최종 수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윤 대통령은 9월 20일 체코 최대 공업도시 플젠에 있는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열린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 함께 참석해 “원전 협력을 계기로 한국과 체코는 세계 원전 르네상스 시대의 미래 주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료 세계원자력협회(WNA
“한국과 체코가 함께 만드는 원전이 될 것”
윤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1971년 시작된 한국 원전의 역사부터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달러에도 못 미치던 1971년에 원전 1호기를 착공했다”며 “이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30개 원전을 모두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한민국 원전 건설의 장점은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즉 ‘적기에 정해진 예산 내 시공한다’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UAE 바라카 원전 4기는 2021년부터 매년 원전 1기씩을 계획대로 적기에 완공해서 가장 성공적인 원전 건설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며 “바라카 원전 건설에서 지켜진 ‘온 타임 온 버짓’ 약속은 체코에서도 똑같이 지켜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신규 원전은 양국이 함께 짓는 원전이 될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 양국의 협력 기업인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제작하는 터빈이 신규 원전에 사용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설계, 운영, 핵연료, 방폐물 등 원전 생태계 전 주기에 걸쳐 두 나라가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원전 협력을 통해 한국과 체코가 함께 원전 르네상스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많은 나라들이 첨단산업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탄소중립의 달성, 그리고 에너지안보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원전 확대가 1석3조의 해답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2023년 12월 한국과 체코를 포함한 25개 국가가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을 3배로 늘리자는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에 동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과 체코의 우수한 원전 기업들이 플젠과 두코바니에서 함께 힘을 모은다면 양국이 함께 만든 원전이 프라하의 밤을 더욱 환하게 밝히고 낯선 나라의 전기차들도 힘차게 달리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은 9월 19일 한·체코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현재 폴란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이 원전 개발 계획이 있기 때문에 한국과 협력할 잠재력이 크다”며 “만약 체코에서 협력이 성공한다면 제3국 시장 진출을 같이 도모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한·체코 간 원전 동맹이 추진될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원전 생태계 복원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했다. 설계수명에 이른 고리 2·3·4호기, 한빛 1·2호기 등 가동원전 10기에 대해서는 안전성이 확보되면 중단 없이 운영하는 계속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간 침체된 원전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일감을 조기에 창출하는 노력도 해왔다.
또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인 수주활동을 전개해왔다. 단순히 원자로 노형 수출에 그치지 않고 기자재나 운영보수 서비스 수출 등 수출 분야를 다각화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그 결과 정부는 짧은 시간 내에 전에 없던 성과를 이뤄냈다.
105건, 4조 원 넘는 원전 수출계약 달성
정부는 2022년 8월 25일 한수원이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밝혔다. 원전 기자재를 공급하고 터빈건물을 시공하는 등의 사업을 통해 엘다바 지역 원전 4기를 건설하는 데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관계당국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변수로 인한 수출통제 등 현황을 점검하고 원전수출전략추진 준비단 회의 등을 개최하며 민·관 합동으로 프로젝트 수주를 이끌었다.
가시적인 수출 성과를 이끌어낸 정부는 본격적으로 원전 수출 정책을 추진했다. 민·관 합동으로 출범한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원전·관련 산업의 해외 진출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왔다.
2023년 6월 27일에는 원전 단일설비 수출로는 역대 최대인 2600억 원 규모의 루마니아 삼중수소 제거설비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이 사업은 루마니아 원자력공사가 체르나보다 원전의 계속운전을 위해 중수로를 가동할 때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를 포집·저장할 수 있는 안전설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2022년 한국의 대 루마니아 수출액의 38%에 해당하는 큰 규모의 수출 계약으로 일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원전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은 성과였다.
원전 수출을 활성화시킨다는 국정목표도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까지 정부 출범 1년
8개월 사이 총 105건, 4조 원 넘는 수출계약이 체결됐다. 윤 대통령은 2월 22일 창원에서 열린 열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원전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원전 일감이 늘어나면서 원전 생태계가 빠르게 활력을 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이뤄낸 성과다. 이는 우리 원전 생태계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긴 일이기도 하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이룬 쾌거이자 상업용 원전의 본산지인 유럽 시장에 첫 진출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1982년 한울원전 1·2호기 건설 당시 프랑스의 프라마톰 노형을 도입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한국형 원자로 APR1000을 개발해 프랑스 전력공사(EDF)를 꺾고 원전 강국임을 세계에 알렸다.
원전 수출 현황
제3·4의 수주 위해 적극적인 정책 추진
정부는 추후에도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최종계약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제3·4의 원전 수출을 위해서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수원을 중심으로 협상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협상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체코를 공식 방문해 팀 코리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파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최종 계약 체결까지 남은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도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이번 성과가 제3·4의 원전 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7월 26일 열린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에서 정부는 원전 수출 중장기 진출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유망 수출국과의 원전 수출 관련 협의에 속도를 내고 신규 원전 건설을 고려 중인 아시아·아프리카 신흥국과도 인력양성, 공동 부지조사에 나선다. 2025년 11월 개최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를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장기적으로는 중장기 원전 수출 비전을 제시하고 지원체계를 정비해 원전 산업이 글로벌 선도 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나갈 방침이다. ‘2050 중장기 원전산업 로드맵’ 수립을 추진하고 원전사업 지원을 위한 입법절차도 적극 추진한다. 원전수출지원 공관도 확대하고 중점무역관 기능도 강화하는 등 관련 지원체계도 강화한다. 윤 대통령은 7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원전 산업이 흔들림 없이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며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하고 원전 생태계 복원과 수출 지원 정책을 더욱 강력하고 일관되게 추진해 제3·4의 수주가 이어지도록 다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김효정 기자
한·체코 정상이 서명한 터빈 블레이드의 모습. 사진 뉴시스
한·체코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
원전 협력 MOU 13건 체결
한·체코 정상 원전 터빈에 서명
9월 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열린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참석해 양국 간 원전 협력 강화에 힘을 실었다. 두산스코다파워는 2009년 두산에너빌리티가 스코다를 인수하면서 설립된 기업으로 발전형 터빈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972년 원전형 터빈을 최초로 생산한 후 유럽 원전 26기에 터빈을 공급해왔는데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에서 팀 코리아가 최종적으로 수주할 경우 원전에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생산한 터빈을 사용하게 된다.
협약식에서는 원전협력 업무협약(MOU) 13건이 체결됐다. 윤 대통령과 피알라 총리가 임석한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와 체코 산업통상부 간 한·체코 원전협력 MOU가 체결됐고 원전 기자재부터 원전 인력 양성까지 전 주기에 걸친 협력체계가 구축됐다.
윤 대통령과 피알라 총리는 이날 터빈에 장착되는 회전날개, 터빈 블레이드에 공동으로 서명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 서명식에는 양국이 원전을 함께 짓고 기업 간 협력을 지원한다는 협력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