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19 - 22: 7
하나님의 섭리속에 요시아 왕 / 한서노회
남 유다 나라에서 아몬왕이 반역을 당하여서 신복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국민들이 반역자들을 다 처형하고 쿠데타를 진압하여 아몬왕의 아들 여덟살짜리 요시야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등극을 한 요시야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이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26살 되던 해에 갑자기 성전을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한 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왕에게 읽어 주자 요시야왕은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 율법 책의 내용이 아주 심각했던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더욱 자세한 해석을 부탁했더니 그 책의 재앙의 내용대로 이 나라가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분향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시야왕은 크게 화를 내면서 전국에 있는 모든 산당들과 우상 제단들을 파괴하고 부서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왕이 진노를 했었는지 남 유대 땅뿐만 아니라 이미 망해 버린 북 이스라엘 지역에까지 올라가서 그 지역에 있는 우상 제단들도 다 부서뜨리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전지역을 정결케 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살아 있는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옛날 우상 제단에서 우상에게 제사하던 이미 죽은 제사장들의 뼈까지도 묘실에서 꺼내다가 그 단들 위에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향해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켜 행하라고 명령을 하며 자신도 유월절을 엄숙하게 하나님께 지켜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26살의 나이에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남의 나라가 서로 싸우는 전쟁터에 괜히 출전을 해서 전사하게 됩니다. 짧은 요시야왕의 생애였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5절은 그 짧은 요시야왕의 생애를 이렇게 한마디로 평가했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대단한 칭찬입니다.
요시야왕이 죽자 역대하에 보면 온 백성들은 왕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요시야왕의 생애였습니다.
요시야왕에 대해서 방금 말씀드린 해석을 1차적 해석이라고 한번 해 보십시다. 현재의 본문만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성경 해석입니다. 이러한 1차적 해석에서는 다음과 같은 선언이 가능할 것입니다.
『요시야라는 왕은 평생 하나님을 잘 섬긴 아주 신앙 좋은 왕이었다. 모든 우상 제단과 거짓 선지자를 불에 살라 버린 용감한 결단력 있는 신앙인이었다. 이스라엘의 혼탁해진 종교의 개혁을 단행한 왕이었다. 그 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유월절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온전하게 지킨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이제 좀더 깊이 들어간 2차적인 해석을 해 보십시다. 2차적인 해석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의 선언까지 고려를 해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13장 2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이곳을 보면 요시야왕은 다윗 집안 아들로 태어날 출생이 예언되었고, 그의 이름이 요시야라고 이름지어질 것도 예언되었습니다. 그가 자기 나라 유대땅 뿐만 아니라 저 북 이스라엘 땅에까지 가서 우상의 모든 단을 허물어 버리고 일찍 죽어서 묻힌 우상 선지자들의 뼈까지도 전부 파내어 단위에 불살라 버리리라 예언되었었는데 그대로 다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시야의 이러한 신앙의 위대한 행동들은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옛날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과 조정과 섭리로 인도되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의문스런 죽음도 이미 예언되었었습니다.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왕하22:19-20)
이로써 그의 의문의 죽음의 이유가 풀리게 됩니다. 발견된 책에 기록된대로 그 유다 나라에 곧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이 임하게 되는데 요시야는 그 책의 내용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겸비하고 애통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살아서 그러한 재앙을 경험하지 않도록 그를 먼저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젊은 나이의 죽음은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일종의 축복이었습니다.
이러한 좀더 깊이 들어간 2차적인 해석을 했을 때 우리는 이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요시야왕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철저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가운데 작정되고 예언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로 살았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위대한 왕이 되었던 것이다. 』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것이 좀더 성경의 뜻에 깊이 들어간 영적인 해석 2차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날의 우리 시대의 현실을 보면 1차적인 해석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2자척인 해석은 드뭅니다. 더더욱 이제부터 말씀드릴 3차적인 해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찾는 자들도 거의 없습니다.
이제 3차적인 해석을 보십시다.
☛첫째 요시야왕은 그의 태어나기 수백년전에 벌써 그의 이름과 출신 집안이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출생 전에 미리 그의 출생이 예언되었었습니다.
☛두 번째 요시야는 다윗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다윗 집안에서 태어났지요
☛세 번째 그의 이름이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나 여호수아나 예수아나 예수나 사실 히브리 원어로 보면 다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는 다 같은 뜻의 이름들입니다.
☛네 번째로 요시야는 성전을 정결케 하는 수리를 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구나" 하면서 그 유명한 성전 청결을 행하셨습니다.
☛다섯 번째로 요시야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온전하게 유월절을 지킨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1절입니다. "왕이 뭇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 왕 십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라 함은 이스라엘이 세워져서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래로 역사상 요시야처럼 유월절을 온전하게 지킨 다른 왕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시야왕이 최고로 유월절을 온전하게 지킨 왕이었습니다. 다윗왕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못했고, 솔로몬도 이렇게까지는 못했습니다. 히스기야도 이렇게까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의 참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때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무사히 출애굽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기념하는 하나님께서 대대로 지키라고 명하신 절기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을 요시야왕이 가장 온전하게 지켰습니다. 무언가 이 요시야왕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 아닙니까?
☛여섯 번째로 요시야왕의 특징은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모든 죄악의 제단들을 모조리 헐어 버리고 또한 그 제사장들을 불살라 버리고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그 우상 섬기던 제사장들의 뼈까지도 꺼내어서 불살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철저하게 죄악에 대해서 심판을 해 버린 것입니다.
열왕기하 23장 15절에 보면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고 했습니다. 요시야왕의 특징은 불사르고 재를 빻아 가루로 만들어 완전히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심판자이십니다. 마태복음 21장 42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하시며 예수님께서 자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심판 앞에 부딪쳐 가루로 만들어져 깨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 요시야왕의 심판의 특징은 특히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우상 제사장들의 뼈를 꺼내어서 불살라 버리는 심판을 행하였다는데 있습니다.
성경에 여기밖에 안 나오는 모습입니다. 16절입니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심판 주로 오셔서 살아 있는 자만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둘째 사망 불붙는 영원한 불 못에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똑같습니다. 요시야왕이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서 구약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그러나 요시야왕은 이러한 심판을 행하는 가운데서도 죽은 자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던 하나님의 사람의 뼈와 또한 그가 전하였던 예언을 믿었던 사마리아의 늙은 선지자의 뼈는 꺼내어서 불사르지 않았습니다.
17절입니다.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고 했는데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는 누구인고 하니 처음에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을 믿지 않았던 선지자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는 사마리아의 늙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서 회개하며 그가 외쳤던 그 예언의 내용을 이제 확실하게 믿으며 자기가 죽으면 자기 뼈도 그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에 같이 안장해 달라고 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200년후에 이스라엘의 다른 뼈들은 다 불살라질 때 하나님의 선지자는 불살음을 입지 않을 것을 믿고 그 옆에 자기 뼈도 안장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유다 선지자와 사마리아의 늙은 선지자의 뼈를 요시야왕이 불사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서 확실하게 믿는 모든 자들은 세상 심판 때에 불 못에 사르지 않습니다. 그 영혼은 불사르지 않습니다. 요시야가 벌써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수 천년 전에 이 일을 미리 행했던 것입니다.
☛아홉 번째 요시야왕은 유월절을 온전히 지킨 후에 죽게 됩니다.
역대하 35장 18절입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요시야가 최고로 온전히 지켰다는 말입니다.
"요시야의 위에 있은 지 십팔 년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그의 나이 26세 때입니다.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 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여기서 요시야가 출전하여 죽습니다. 유월절을 지킨 후에 죽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신 후 그 바로 다음에 죽으시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시야도 이 모든 일 후에 그의 사명을 다 이룬 후에 죽게 됩니다. 죽음도 예수님과 비슷합니다.
☛열 번째로 요시야왕의 죽음은 이상하게도 애굽나라가 다른 앗수르 나라를 치는 싸움에 가서 죽은 죽음입니다.
죄없는 요시야가 대신 죽은 죽음입니다. 세상으로 상징되는 애굽에 의해서 다른 자들이 죽어야 되는데 죄 없는 요시야가 이상하게도 대신 나가서 죽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우리들이 죽어야 되는데 우리 대신 나가셔서 세상의 사망 권세에 의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열 한 번째 요시야왕은 그의 죽음도 예정 가운데 죽은 것인데 요시야왕의 죽음에 대해서 그 당시의 백성들은 그렇게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35장 24절 "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따라온 여자들이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열 두 번째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하며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25절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달리심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를 사람들이 찬송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찬송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 두 가지의 비슷한 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나오는 요시야왕의 생애는 신약 시대에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3차적 해석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 성경을 말합니다. 구약 성경이 전부 예수님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모세는 벌써 예수님이 오시기 수 천년 전에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렇게 모세 오경을 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까지도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 오경이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며 3차적인 해석을 해야 합니다. 모세 오경에서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를 뽑아 내지 못하면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3차적 해석으로 인해서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렇게 구약 시대의 요시야의 일생을 통하여서도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예수님의 출생과 행하신 일과 그리고 심판하실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욱 믿음을 갖게 되는 유익을 이 3차적 해석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가지 사실에 대해서 여기서도 기록하고 있고 저기서도 기록하고 있고 이렇게 자꾸 기록되어진 곳을 확인하게 되면 그 사실이 점점 더 강하게 믿어지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17절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린 삶을 살았던 요시야왕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선언합니까?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
요시야왕은 최고의 칭찬을 받은 최고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을 통해서 주님을 증거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 예정하신 뜻을 행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주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인생이 얼마나 복됩니까?
우리는 요시야를 통해서 예수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남은 생애 여러분의 주권을 주님께 넘겨 드려서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 여러분들도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도 귀한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귀한 요시야와 같은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