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자녀의 심연과 통제의 환상 타파
제7강. 어리석음 (Foolishness): 가장 무서운 적은 세상이 아니라 '아이의 내면'에 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어리석은)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2:15)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1)
기독교 부모들의 마음속에는 늘 거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음란한 인터넷 미디어, 타락한 공교육, 질이 나쁜 친구들... 세상의 악한 문화가 내 아이를 타락시킬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를 세상과 철저히 격리시키는 '영적 벙커(Bunker)'를 짓고 그 안에 아이를 가두려 합니다.
그러나 폴 데이비드 트립은 이 두려움에 찬 '방어적 양육'을 향해 가장 치명적인 진리를 폭로합니다!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은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타락시키는 가장 끔찍한 괴물은 이미 아이의 마음속에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적 어리석음(Foolishness)'입니다.
첫째, '성경적 어리석음'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반역'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음이란 공부를 못하거나 IQ가 낮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시편 14편을 똑똑히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고 소리치는 자입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 끔찍한 어리석음의 사슬에 얽매여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으며(자기중심성), 하나님의 법규범을 무시하고, 자신의 육체적 충동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아이가 떼를 쓰고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그리고 부모)의 권위보다 내 욕망이 더 옳다!"고 우기는 이 맹렬하고도 치명적인 '어리석음'이 그 영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적 벙커'로는 결코 아이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문화가 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해한 미디어나 나쁜 친구들이 아이를 타락시키는 '근본 원인'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아이의 내면에 이미 끓어오르고 있는 어리석음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촉매제일 뿐입니다!
당신이 아이의 스마트폰을 빼앗고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시킨 '온실'을 만들어 준다고 한들, 아이는 그 온실 안으로 자신의 '어리석은 마음'을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갑니다. 마음속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둔 채 세상만 차단하는 것은, 시한폭탄을 품은 아이를 밀실에 가두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구출은 밖에서 오는 유혹을 막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안에서 역사하는 어리석음의 사슬을 끊어내는 데 있습니다.
셋째, 두려움에 쫓기는 통제를 버리고, 십자가의 지혜로 무장하십시오.
부모가 아이 내면의 어리석음을 보지 못하고 밖의 세상만 두려워할 때, 양육은 끝없는 '통제와 감시'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원죄적 어리석음을 직시하는 순간, 부모의 양육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의 싸움 대상이 세상이 아니라 '아이의 어리석음'이라면, 이 병을 고칠 해독제는 잔소리나 격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24)'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부모는 두려움 없는 확신을 가지고 거룩한 징계의 채찍을 들어 그 어리석음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영혼을 붙잡고, 나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짜 생명임을 보여주는 십자가의 참된 지혜 앞으로 맹렬하게 이끌어야 합니다!
기독교 부모여, 세상의 문화를 두려워하며 아이를 치마폭에 감싸는 비겁한 은둔자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은 세상의 공격을 피하는 방공호가 아닙니다. 아이의 심장 한가운데 얽혀있는 이 지독한 '어리석음'을 말씀의 검으로 찢어내고, 그 자리에 십자가의 지혜를 심어넣어 세상을 정복할 영적 거인으로 수술해 내는 맹렬한 '영적 야전병원'입니다!
두려움을 십자가에 못 박고, 담대하게 아이 내면의 어리석음과 피 튀기는 전쟁을 시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