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아동문학』에 2019년에 수록된 동화
옥순이의 옥수수 여행
박경선
저 멀리 따뜻한 나라에서는 옥수수 농사가 잘되어 사람들이 옥수수를 많이 먹고 살았어요. 그 나라에 사는 옥순이가 햇빛 쨍한 날, 엄마, 아빠, 삼촌이랑 텃밭으로 갔어요.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도 옥수수는 쑤욱쑤욱 잘 자라 키가 높았어요. 키 높은 옥수수대를 잡고 옥수수를 옆으로 구부려 꺾는데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땀이 눈에 떨어졌어요. 입에도 흘러들어 갔어요. 모기도 앵앵거렸어요.
“모기에게 물려. 집에 가 있어.”
엄마가 말렸어요.
“그러게. 모기는 특히 어린애 피맛을 좋아하지. 가 있어.”
아빠도 겁을 주었어요. 그렇지만 옥순이는 모기에게 피를 헌혈하더라도 옥수수를 꼭 제손으로 꺽어야만 했어요. 꼭 보내고 싶은 곳이 있었거든요. 삼촌은 옥순이의 작전을 알고 도와주러 왔어요.
“옥순이도 이제 여덟 살이니 모기도 옥순이 피, 몇 번 빨아보면 맛 없어서 안 물겠지요. 뭘”
옥순이는 든든한 지원군인 삼촌 옆에 달라붙어 옥수수를 꺾으면서 ‘추운 나라’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번에도 들었지만 추워서 곡식이 잘 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배고파 죽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어요.
집에 돌아오자, 옥순이는 엄마한테 오늘 품삯으로 옥수수를 한 푸대 얻었어요. 삶는 법도 배웠어요.
“그래, 이 참에 직접 삶아 봐. 냄비에 옥수수 잠길 정도로 물 붓고 설탕 조금, 소금 조금 넣고 한 이십 분쯤 삶았다가 불을 끈 뒤 알맹이 하나 따서 씹어보면 다 익었나 알지.”
※ ※
그 날 오후, 옥순이는 삶은 옥수수를 한 자루 넣어 삼촌을 따라갔다 왔어요. 밤에는 마술할머니를 만나러 갔어요.
“할머니, 배고픈 친구들에게 이 옥수수를 꼭 갖다 주고 싶어요. 이웃집이면 금방 갖다 줄 텐데. 그 추운 나라에까지 어떻게 가요?”
“그래, 먹을 게 없는 애들은 거친 먹거리를 먹다가 소화불량에 걸려 죽고, 그보다 심할 때는 항문이 막혀 죽기도 하지. 나도 굶어봤는데 말이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곧 먹을 것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있을 때였어. 그러니 배고픈 애들에게는 많은 것보다 몇 개라도 먹을 수 있게 후원금을 곧바로 보내주면 좋지.”
옥순이는 후원금보다 배고픈 친구들에게 직접 옥수수를 갖다 주고 싶다고 했어요.
“보자, 옥수수 여행이라!”
마술할머니는 옥순이 생각이 기특했어요. 한편으론 옥수수 한 자루 가져가서 잘난 척, 생색낼 수도 있겠다 싶어 조건을 내 걸었어요.
“이번 딱 한번만 도와주지. 그렇지만, 공짜로는 안 돼. 너가 돌아올 동안 너 목소리를 내게 맡겨둔다면 말이지.”
어쨌든 옥순이는 마술할머니의 친절에 그곳 ‘숲속 나무집’을 찾아가는 열쇠 세 개를 얻었어요.
밤이 늦었지만 엄마가 찾지 않도록 손전화기에 카톡으로 편지를 썼어요. <엄마, 제 친구 집에 옥수수 나눠먹으러 가요. 옥순> 손전화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집을 빠져나왔어요.
※ ※
마술할머니한테 얻어온 열쇠로 첫 번째 문을 열었어요. ‘추운 나라’에 가는 배가 손님을 태우고 있었어요. 손님들이 배표를 한 장씩 내고 배에 올라탔어요.
‘어쩌지? 마술할머니가 배표 구하는 방법은 안 가르쳐 주셨는데……’
옥순이는 옥수수자루를 땅에 놓고 털썩 주저앉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술할머니가 다시 나타나 도와주실 것 같지 않았어요.
‘어쩌지? 그곳 친구들이 내가 올 것을 기다릴 거라 했는데. 희망을 안고 기다릴 거라 했는데…….’
다급한 마음에 숫기 없는 옥순이지만 용기를 내어 벌떡 일어섰어요. 마침, 배에 올라타려는 아줌마가 이모처럼 다정해 보였어요. 옥순이는 아줌마의 소매를 살짝 잡아 당겼어요. 아차,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거에요. 다급해서 옥순이는 손짓발짓으로 이야기했어요. 아줌마랑 자기를 번갈아가며 손가락질하다(이모! 우리 이모 같아요) 자기 얼굴 밑에 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웃어보였어요(제가 예쁜 조카처럼 보이지 않나요?) 아줌마가 들고 있는 배표를 가리키며 빈 손바닥 두짝을 펼쳐보였어요(저는 그런 배표 없어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어요(좀 도와주세요) 아줌마가 옥순이의 손짓발짓을 보더니 배표 받는 아저씨께 사정했어요.
“아저씨, 이 말 못하는 애 좀 보세요. 이 아줌마가 예뻐 보인다며 부탁을 하네요. 배표를 잃어버렸나봐요. 좀 태워줍시다.”
그 말에 배표 받는 뚱뚱한 아저씨가 뿌루퉁한 얼굴로 말했어요.
“싫은데요. 아줌마야 예뻐 보인다는 칭찬이나 들었지만……”
그 말에 옥순이가 아저씨를 손가락질 한 뒤 천사의 날개짓을 해보이며 엄지척을 해보였어요. 아저씨도 옥순이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는지, 옥순이 등을 배안으로 떠밀며 소리쳤어요.
“하하! 배삯 내가 대신 내어 줄게. 얼른 들어가. 내가 천사같은 꽃미남에다 마음도 천사란 말이지? 맞는 말하네.”
옥순이가 꾸벅 절을 하고 배에 올라탔어요. 2층으로 올라가 추운나라를 바라보았어요. 그때 사진기를 둘러멘 아저씨가 경치 사진을 찍다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꼬마 아가씨, 혼자야? 왜, 뭐하러 가는 거니?”
옥순이는 추운나라를 가리킨 뒤, 등에 진 옥수수자루 배낭을 흔들어보였어요(지금 추운 나라 친구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잖아요. 이 옥수수 갖다 주러 가요)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에게게, 고작 그것 한 자루 가지고? 굶는 친구들이 엄청 많을 텐데?”
‘뭐 괜찮아요. ’옥수수 나누기‘ 단체가 돕고 있거든요.’
하는 뜻으로 옥순이는 하늘바닥에 ‘옥수수 나누기 단체’라는 글자를 써보였어요.
“옥수수 나누기 단체를 너가 아니?”
사진사 아저씨가 이번에는 고개를 양쪽으로 갸웃거렸어요. 옥순이는 배를 움켜잡았다가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쳤어요.
“그래, 너도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거지? 그래도 직접 갈 필요가 있을까? 후원금만 보내면 되지.”
그 말에 옥순이는 자기 심장을 가리키며 사랑 마크를 해보였어요(호호, 제 마음이에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꾸깃꾸깃 접어보였어요(후원금만 보내는 건 성의가 없는 것 같아서요).
사진사 아저씨는 벙어리 아이가 손짓발짓으로 이야기 하는 내내 머리를 갸웃거렸어요. 그렇지만 비가 오자 우산으로 옥순이가 등에 진 옥수수자루 배낭이 비에 젖지 않게 가려주었어요. 그리고는,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어요. 옥순이는 귀여운 자세를 해보이며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날려드렸어요. ‘뿅뿅’
※ ※
배가 ‘추운 나라’에 닿자마자 옥순이는 마술 할머니가 준 열쇠로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숲 속 나무집’을 찾아 길을 떠났어요.
‘얼른 가야지. 내가 오는 것이 희망일 텐데…… ’
한참 걸으니 날이 어둑어둑해졌지만 뭐 무서울 게 있겠어요? 무서울 게 있었어요. 커다란 덩치가 저만치 앞에서 움직였어요.
‘곰일까? 늑대일까?’
모르긴해도 커다란 것이 이쪽으로 오는 거에요. 얼른 옆 나무 사이로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하다, 후려칠 만한 작대기 하나를 찾아 움켜잡았어요. ‘얍!’ 작대기가 든든한 힘을 주었어요. 작대기를 들고 오솔길로 나오니 커다란 것이 사라졌어요. 이제 뭐 무서울 게 있겠어요? 있었어요. 이젠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거에요.
‘분명 뭔가 있어!’
옥순이는 배낭을 한 번 더 치켜 올려 메고 급히 앞으로 걸어 나갔어요. 울러 멘 가방을 누가 뒤에서 자꾸 잡아당기는 것 같았어요.
‘도깨비일까? 마귀일까?
옥순이는 ‘확’ 돌아서서 확인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도저히 고개가 뒤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걸음을 점점 더 빨리 해서 걷다가 허방을 짚고 넘어졌어요. 오른쪽 다리가 절뚝거려졌어요. 무릎이 까여 피도 났어요.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는 없지요. 베고픈 친구들이 기다릴 텐데.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텐데. 절뚝거리는 다리로 절뚝절뚝 걸었어요. 어둠 속 괴물이 멀찌감치에서 따라오는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하늘에서는 커다란 검은 날개가 옥순이 머리꼭대기에 내려앉더니 머리카락을 확 할퀴며 날아올랐어요.
‘뭐야? 설마 독수리?’
독수리에게 채여가 부리에 찢기면 엄마도 못 보고 죽을 것만 같아 참았던 울음이 터져났어요.
‘엄마아~ 흑흑흑! 되돌아 갈 테야!’
기다리던 친구들이 배고파 죽든 말든. 마술할머니가 이번 딱 한 번만 도와준다 했든 말든. 옥순이는 죽을힘을 다해 ’획!‘ 뒤돌아섰어요. 되돌아가려면 뒤에 따라오는 것부터 쫓아야했거든요. 그런데, 저게 뭘까요? 땅바닥에 붙어서 ‘헥헥헥!’거리며 쫄랑쫄랑 뛰어오는 저것! 찬찬히 보니, 옥순이가 안고 자던 강아지 해피가 아니겠어요?
‘해피야, 어디서부터 따라온 거야? 이리 와!’
옥순이가 앉아서 손을 내밀자 해피가 뛰어올라 옥순이 얼굴에 침을 마구 마구 발라대었어요.
이제 옥순이는 해피의 침으로 기운이 펄펄 났어요. 곰이 나타나 으르렁 거린데도, 가까운 참나무에서 다람쥐가 오르내리며 소리를 지른데도, 무서울 게 뭐 있겠어요? 없지요. 옥순이는 발걸음을 다시 추운 나라 쪽으로 돌려 계속 갔어요. 옥순이가 지치자 해피가 앞장섰어요. 그렇게 옥순이는 ‘숲속 나무집’을 찾아가 ‘사랑의 집’ 문패를 찾아내었어요.
※ ※
마술할머니가 주신 열쇠를 세 번째 문에 갖다 대려고 열쇠 구멍을 찾는데 커다란 고목나무 의 한가운데에 뻥 뚫린 대문으로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어요. 몸은 배리배리 말랐지만 눈이 어쩌면 그리 해맑고 정답게 웃을까요?
옥순이도 웃어 보이며 삶아온 옥수수를 친구들 앞에 좌르르 쏟아 부었어요.
“와! 옥시(옥수수)다.”
외치며 한 아이가 옥수수를 덥석 쥐자, 다른 아이들도 옥수수를 한 자루씩 잡았어요. 잡자마자 옥수수를 후루룩 훑어 한 입에 한 옹큼씩 넣고 씹어 ‘꿀떡 굴떡’ 넘기는 아이, 떨어뜨리면 큰일 날세라싶은지 두 손아귀에 감싸 집어간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손으로 뽑아 먹는 아이, 어떤 아이는 몇 알 뽑아 입에 넣고는 눈을 감고 오래도록 꼭꼭 씹었어요. 마치, 한 알씩 씹을 때마다 ‘야, 이 맛이야.’하는 얼굴로 온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한 아이는 옥수수를 반쯤 먹더니 등 뒤로 숨겼어요.
“왜?”
옥순이가 눈으로 묻자 조그만 소리로 말했어요.
“집에 가져가서 먹을 테야. 내 동생도 옥수수 엄청 좋아하거든…….
그 말에 옥순이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옥수수를 다 먹은 아이들은 먹고 난 옥수수 대로 하모니카를 불고 친구들의 등을 긁어주는 놀이로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런데 아까 옥시라며 반기던 아이가 옥순이 눈을 쳐다보며 느닷없이 말했어요.
“아, 옥시(옥수수)밥 먹고퍼.”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나지막히 한 마디씩 했어요.
“난, 옥시 수제비 먹고퍼!”
“난, 옥시 범벅!”
“옥시 올챙이 묵도!“
옥순이는 옥수수만 가져와서 미안한 마음에 얼른 둘러대었어요.
‘옥시 수염을 잘 말려 끓여 먹으면 오줌도 잘 나온데. 쉬쉬!’
하는 뜻으로 옥수수 수염을 쥐고 비벼대다가 치맛자락을 보듬어 쥐고 앉아 오줌 누는 시늉을 해보였어요. 여자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 옥순이를 따라 치마를 보듬어 쥐더니 오줌을 누기 시작했어요. ‘쉬쉬!’ 남자아이들은 선 채로 오줌줄기 멀리 보내기 놀이를 하는가 싶더니 한 아이가 배에 힘주고 소리쳤어요.
“고마워, 도로가!”
‘도로가가 뭘까? 오즈의 마법사 동화책 주인공은 ‘도로시’인데…… .‘
옥순이는 입에 튀는 오줌줄기를 피하며 얼핏 생각하는데 오줌줄기가 천둥비바람줄기처럼 세어져 옥순이를 옥순이네 집까지 날려 보내버렸어요.
※ ※
“어머, 우리 집까지 도로 날아 왔네!”
옥순이 말이 목소리로 변해 나왔어요. 방학이지만 늘 학교 가던 버릇대로 아침 일찍 눈이 떠졌어요. 책상 위를 보니 손전화기 속에 문자가 도착해 있었어요.
<옥수수 후원금 입금 확인되었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잘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삼촌의 동아리 친구들에게 옥수수 팔아서 보낸 후원금에 대한 감사 문자였어요. ‘추운 나라’에 가는 배안에서 사진사 아저씨께 손가락으로 날린 하트 모양도 문자랑 같이 도착해 있었어요. ‘뿅뿅’
하지만, 옥순이 귀에는 친구들이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을 주워섬기던 목소리가 창밖 나무 위 매미소리 속에 맴돌았어요.
‘매애앰 매애앰!’
옥순이는 매미가 부르는 소리에 마당으로 나왔다가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줄이어 기어가는 개미들을 만났어요.
‘어떤 친구한테 갖다 주러 가니? 나도 같이 가!’
옥순이는 개미들을 따라 다시 여행을 떠났어요.
2019. 8. 10~9.17.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