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기억이야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대한 각별한 기억들은 조금씩 있을 것이다.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설악산, 경주 로 향할 때의 설렘, 숙소에서 친구들과 밤새 떠들며 온갖 짓궂은 장난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우며 놀던 경험들, 교정에서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야외로 나가 탁 트인 자연을 보며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던 학생들의 수학여행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학창 시절의 즐거움이었고, 학교생활의 기쁨이었으며, 가뭄의 단비처럼 삶에 활력을 주는 청량제였다. 요즘은 어릴 때에도 부모님과 같이 비행기나 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일이 제법 있지만 20~30년 전만 해도 기차나 배, 비행기를 타보는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야 타는 아이들도 많았다. 집을 떠나 본 적 없고, 친척이 있는 곳 외에는 사는 곳을 거의 벗어나 본 적 없던 학창 시절에 송도유원지나, 인천이 아닌 다른 곳으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가슴은 얼마나 뜨거워졌던가. 인천의 고등학교들은 대개 1학년 소풍 때에는 송도유원지로 당일 여행을 많이 다녀왔다. 특히 여중, 여고에서는 소풍을 겸해서 혹은 별개의 일정으로 송도유원지 흥륜사 일대, 혹은 인천교 주변으로 송충이를 잡으러 가는 일이 많았다. 송충이를 잡기 위해 개인별로 집게와 가방 등을 챙겨가서 각자 잡은 것만큼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다. 과거 인천의 중․고등학생들의 필수 소풍코스는 송도유원지였다.
| ▲1970년대 송충이를 잡으러 가는 여학생들. 인천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가방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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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수학여행 때에는 대부분 고등학교들이 경주나 설악산으로 단체 수학여행을 떠났다. 학교의 졸업앨범을 찾아보면 수학여행의 장소는 거의 예외 없이 경주 혹은 설악산이었는데(드물게는 강화를 비롯한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에는 한 학년이 500명에서 많게는 6~700명에 이를 만큼 인원이 많았다. 단체로 여행을 가면 정말 북적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학생들은 모두 학교를 벗어나 여행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오르곤 했다. 이 두 곳을 벗어나 제주도로 배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수학여행이 시작된 것은 대개 90년대 무렵이다. 1980년~90년대에는 보통 1학년 때 강화 등으로 텐트 치고 직접 밥을 해 먹으며 야영하는 수련회가 많이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조를 짜서 선생님들과 함께 텐트, 코펠, 버너, 먹을거리 등을 몽땅 짊어지고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 먹고 자고 놀며 자유롭게 주변을 산책하고 둘러보는 야영 체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경험이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밥 해먹고 물장구 치고 선생님을 따라 산을 오르고 길을 걷고 하면서 고된 일정들을 보냈지만 밤에는 텐트마다 먹을 것과 놀 거리들을 꺼내 놓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밤을 새곤 했다. 어떤 학교들은 교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1박을 하며 협력과 나눔을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 행사 역시 단지 텐트를 치고 하루를 함께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충분한 즐거움과 기대감을 선사했다.2000년 이후 고등학교에서도 해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드물긴 하지만 가깝게는 일본이나 중국, 멀게는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서 ‘경주․설악산’에서 ‘제주’의 순으로 이어져 오던 수학여행의 장소는 드디어 국내를 벗어나 해외 무대까지 확장되고 있다. 수학여행은 학창 시절의 꽃이다. 특히 과거에는 공교육을 통한 기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여행의 기회를 갖기 어려웠던 때라, 학교에서 떠나는 2박 3일 일정의 수학여행은 지금의 학생들보다 당시의 학생들에게는 더 큰 기다림과 설렘을 가져왔고, 그만큼 여행의 추억과 그 시절의 그리움은 더 깊고 진하게 가슴속에 남아 있다.
글․ 사진 이동구 인천광성고등학교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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