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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킬리만자로의 눈.
상기 제목의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킬리만자로 산의 서쪽 봉우리 정상 가까이에는 미이라 상태로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얼 찾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가수 조용필씨 만큼은 무모하게도 그 사인을 규명하려 했다. 장천석 학형(84학번)이 즐겨 부르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말이다.
-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은 거겠지. -
헤밍웨이를 조금 흉내내보겠다.
킬리만자로 서쪽 봉우리 정상 가까이에는 미이라 상태로 얼어붙은 병아리들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이문동 미네르바 동산의 서쪽 봉우리 밑의 학생식당 근처의 용인행 통학버스 안에서 얘들이 소주병들과 새우깡 등속을 부여잡고 도대체 무얼 찾고 헤매다가 시체가 되었는지, 아니 정확하게는 그 청춘과 젊음의 시간들이 얼어 죽어버린 그 시간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던가?
장천석 학형은 대답했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돈없는 하이에나였다. 오죽하면 그 학생식당까지 털어먹고 왕산행 통학버스에서 잤을까 적어도 우리는 예술혼에 굶주린 표범은 아니다. -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천석이가 표범이다. 적어도 학창시절에는 표범과 같던 용맹한 우리들은 모두 굶어죽었고, 하이에나와 가장 닮아서 돈이 안되는 인사동을 방황하고 배회하던 그가 살아남았다.
딱히 할 말이 없다.
2. 린스
- 형. 그게 뭐야?
내가 물었고, 학민이 형(79학번 불란서)이 대답했다.
- 응, 린스.
-테레빈이 아니고?
-멍청하긴. 이건 린스라고 하는 거야.
우린 가난했다. 붓을 빨기에는 석유면 족했다. 테레핀도 황송했다. 하물며 린스까지야...
선배들의 화구박스에서는 구경도 못해봤다. 아시다시피 꼬째재한 학민이 형이 부자라서 그런 린스를 사용한 건 아니다.
- 그게 뭐에 쓰는 건데?
-응. 물감에 이 기름을 치면 부드러운 광택이 나지.
이를테면 유화를 그리면 색이 빛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귀한 거다. 지금에 와서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 린스라는 놈의 광채가 어떻더라? 제길! 이제 와서 그 광채가 어떻다는 말인가? 살기도 바쁜 세상에. 나는 그런 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까짓 쯤이야!
그때 학민이형이 군대를 가며 화구박스를 나에게 맡겼다. 그래서 득템기념으로 경희대 앞의 비너스 화방에 들려 물감을 샀다. 물론 린스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에메랄드 그린을 한 통 샀다. 이로써 린스와 에메랄드 그린 물감을 가진 그림촌의 회원은 나밖에 없었다. 남들은 죄다 프러시안 블루만 꼬부친다. 나만이 에메랄드 그린이었다. 이름 고상하잖아. 폼나잖아. 캬캬캬!
나는 표범이다. 왜? 이로써 나는 그런 귀중품을 소유하므로써 절대 째째하고 가난한 하이에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학민이형은 제대를 했고 머나먼 LA로 토껴버렸다. 이로써 나는 다시 방황하는 불쌍한 한 마리의 하이에나로 전락했다. 우어어!
정작 에메랄드그린은 써보지도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없었다. 우워어!
3. 에매랄드 그린.
아시다시피 작년 뇌경색에 걸려서 쓰러졌다. 나 죽을 뻔했다. 기나긴 병상 생활에서 할 일은 없고 그저 추억을 곱씹을 뿐이다. 추억은 달다. 씹으면 씹을수록 정말 달달하다. 그중에서도 그림촌의 추억은 사탕처럼 달았다. 그때가 가장 화려하고 꿈이 많고 찬란하게 빛나던 대학시절이라서 그런 건가?
웬일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학생회관 4층의 써클룸도, 오데코롱처럼 상큼했던 테레핀 향도, 린스가 칠해진 찬란했던 광채도... 세월이 너무 흘렀던 것이다.
병원침대에서 생각했다. 언젠가 에메랄드 그린 쯤은 구경해봐야겠다. 그게 바다빛깔이라는데 나는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우리나라는 맑아봐야 비취색이었다. 확실히 책을 보면 에메랄드 색의 바다라는 표현은 있건만 언젠가 병이 나아서 퇴원하게 되면 있겠지. 우리나라 삼면바다라고 해도 거기서 거기겠지. 설마 남유럽 지중해 쯤의 먼 바다?
까짓 쯤이야!
예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라남도 고흥반도 남단의 남성 해수욕장. 그곳의 구석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과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거기 그 맑은 여름의 오후 썰물이 개울에 스며들어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mp3 플레이어에서 내 귓가로 흘러나온 음악은 pelle carberg의 traveling boy라는 곡이었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1에서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그 노래. 황소 눈같이 순박한 두일이가 편의점 앞으로 나오다가 (무표정이던가?) 프란체스카와 마주친 그 장면에서였다. 네온사인이 빛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보도블럭에서... 캬아!
내 눈도 순박하다면 순박했고, 그날 남쪽바다의 물빛은 에매랄드 빛으로 찬연했다.
그날 나는 예술혼이 충만한 표범이고 싶었다. 비록 먹을 것 없고 추위가 매서운 킬리만자로 산정상이라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4. 아암도.
퇴원 후, 송림동에서 나와 연수동의 형네 집에 언쳐 지내게 되었다. 별 수 있나! 언어능력이 망가진 삼류 글쟁이 주제에. 연수동에서 송도유원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곳에 아암도가 있었다. 아암도는 이미 섬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소풍 갔을 때, 송도 유원지에서작은 섬이 있었다. 간조가 되면 갯벌이 드러나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다. 어른들은 너무 어리다고 나를 만류했다. 그래서 가보지 못했다.
그 후로도 몇 번 기회는 있었지만 결국 그 섬에 가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송도 신도시가 생기고 바다를 매립하더니 아암도는 육지의 끝에 있었다. 그냥 해안공원에 가면 걸어가서 그 섬을 만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암도는 섬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해안공원의 맞은편은 매립지였다. 밀수조직들의 접선지점이 될 법한 촬영현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녹슨 콘테이너와 황량이라는 단어를 수식할 만큼의 멋진 쓰레기와 폐차, 페인트가 벗겨진 중장비 등등.
나는 무라키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중편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쥐’를 생각했다.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온갖 궁상을 다 떨며 구멍이 숭숭 뚫인 문풍지마냥 인생의 상실감과 허탈함을 온몸으로 가득 채운 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쥐’.
나는 아암도를 바라보며 그 ‘쥐’가 되었다.
‘하루키 제법인걸!’하고 새삼 ‘쥐’와 공감했다. 비록 금연이었지만 담배 한 개비가 간절했다. 아암도를 바라보며 바지를 툭툭 털고는 담배꽁초를 무심하게 손끝으로 튕기며 질끈 밟았으면 근사했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몇 번 아암도를 찾았다.
걸어서 만질 수는 있지만 바다를 건널 수는 없는 섬. 30대를 넘게 산 인천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 이곳 육지의 끝 작은 바위가 바로 섬이었고, 인간과 바위의 사이에는 바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암도를 구경하던 몸매 좋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인천사람이고, 바라보던 그 바위섬 사이에 바다가 존재했음을 그녀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래,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부재를 연결시켜주고 확인시켜주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5. 그 사람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연락하지 않았다. 부조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그냥 연을 끊어야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막상 연락할 전화번호마저 하나도 없었다.
쯤이야! 차라리 잘됐다.
이렇게 3-4년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병실에서의 추억은 너무도 달았다. 그 달디단 사탕이 그리워 수소문을 했다. 자격의 유무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만큼 간절했던가. 후안무지한 놈!
고맙게도 천석이가 메일을 보냈다. 간신히 그의 블로그를 찾았고 방명록 남겼다. 녀석이 친철하게 연락처의 위치를 알려주는 답글까지 달아주었으니 굳이 메일까지는 일상사에 과분이었는데 굳이 저 오지랖 넓은 놈이 메일까지 보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허허. 아직도 그림촌과 채무관계가 남아있던가. 내게는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었다.
천석이에게 전화를 했고, 승찬이에게서, 재원이 형한테로 거기서 영철이한테로 거기서 창순,지용, 민구에게로 드디어 동순이 형한테 전화가 왔다. 호출명령이었다. 부천역까지 대령하라는 명령이었다. 적어도 동순이 형 정도의 지존이라면 까라면 까는 지휘계통이었다. 환자고 나발이고 까라면 깔 수밖에. 부천역으로 부랴부랴 출동.
이문열의 금시조처럼 문학혼에 불타던 동순이형(77학번),‘춘천은 팔할이 바람이었다.’라고 어느 문인이 표현했던 바람처럼 휭한 시인적인 기질이 아직 죽지 않은 춘천사내 문수형(78학번). 그리고 형들을 만나는 순간, 다시 mp3를 켰다. 미리 세팅한대로 pelle carberg의 traveling boy가 흘러나왔다. 부천역 롯데리아 앞에서의 만남이었다.
1시간 후 현석이 형(75학번)이 합류했다. 끝으로 현석이 형이 뜻밖의 선물을 해주었다. 22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22년동안 아무리 많은 사랑이 생긴다 해도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첫사랑은 그냥 첫사랑이었다.
진짜 목소리. 따르릉!
그때 그술집에서 귀신처럼 되살아났다. 린스를 바른 광채도, 죽어도 생각이 나지 않던 학생회관 4층 그곳의 빛. 학민이형과 문수형이 칠한 새카만 색의 창문도 그 창문을 덮은 거친 아마포의 노란 커텐도 그 사이로 스며드는 그 어느 날인가의 햇살도, 그리고 갖가지 석고상과 유화들의 형과 색도.
테레핀의 오데코롱 같은 독특한 향도 생각났다, 간밤에 마신 찌든 소주냄새와 퀴퀴한 쥐치포, 번떼기의 냄새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든 물감의 향기. 그 속에는 내 물감의 냄새도, 조금 지난 승걸이 형의 물감냄새도 났다. 냄새는 세월이 흘러 희미해질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다. 거기서 조금 더 세월이 지나가면 홍배형의 물감냄새도 섞여있었다. 모두가 그린 물감의 냄새들.
아암도에 눈이 마주쳤던 몸매 좋은 여자는 알고 있었다. 아암도와 해안공원 사이에는 바다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적어도 학생회관 4층에서 코가 있었다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그림촌사람이고, 맡고 있던 그 냄새들 속에 물감냄새가 있고, 그 속에 승걸이 형과 홍배 형의 물감냄새가 베여있음을 적어도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왈리?완리? 누나를 선험적으로 아름답다고 믿을 것이다. 비록 선배들의 도란도란 속삭이는 추억 속에서 콩깍지를 뒤집어 쓴 감상이라 해도 나는 그녀가 아름답다고 믿을 것이다.
그 과거의 존재 속에서 현재의 부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림촌 사람들 뿐이니까.
첫댓글 얼굴도 모르는 선배 ,이름 조차 생소한 후배--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한시절 같은 곳에 머물며 조용히 짝사랑 했거나 열렬히 사랑하며 그곳을 추억 합니다. 족적을 남길 차원은 아니어도 알고 보니 모두가 어설픈 다빈치였네요 그림도 글도 음악도 모두 다중으로 공유하고 향유할 자격이 있는....어디서 무얼하던 지금은 어떤 모습이던 삶의 바람을 느낄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겁니다.모두가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많이 건강하세요 선배님
조사가 헷갈린다더니...형 글을 읽으니 안심!!!..건강해졌다는 증거?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풍미가 진하네요. 아파야 정신드는 사람도 있군요.) 제 블로그에 <펠레 칼베르그>의 'traveling boy' 깔아놨어요(제가 저작권법위반기소유예자이므로 오백원주고 샀음). 언젠든 놀러와서 들어요. 영웡히 꽁짜로...
후식이 형 맞죠? 학부 때 천석, 성호 선배와 명동에서 카페를 하던 형 만나러 간 적이 있었는데 .. 그때 천석이 형이 '디저트 최'라고 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납니다. 건강하십시요...
응 후식이 마저. 너 주덕호자나. 히히. 보고싶다.
그림은 그리지 않아도 늘고, 글도 쓰지 않아도 는다. 머리로 쓰고 그리고 것이 아니라 너처럼 항상 마음으로 쓰고 있으니까. 몇 일전 네가 따라주는 술이라고 조금 먹을 때 나는 속으로 울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가 울면 너도 울까봐. 네 글을 보니 한없이 내 마음이 편하다. 언제 우리 에메랄드 물빛을 보러가자. 남해로
버들아비님, 언제 우리 아암도로 한 번 떠나볼까요? 만일 섬도 아니고 동산도 아니라서 너무나 밋밋하다고 하면, 추상의 바다와 몇 척의 배라도 띄워 놓으면 될테지요. 그림은 언제나 현실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었잖아요. 현실을 재현하려는 경향이었지 ... 언제 한번 아암도로 떠나볼까요? 혹, 운이 좋으면 버들아비님의 몸매좋은 여자를 또다시 아암도에서 만날지도 모르고요 ...
마지막 말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과거의 존재가 현재의 부재를 증명해주고, 그것이 그림촌이라. 나보코프는 자신이 과거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말하자면 기억은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유일한 방법이죠. 현재의 부재를 증명한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성열님,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 테면, 기억 속에서 우리들은 모두 현존하는 존재였는데, 지금은 우리들의 공간에서 부재인 경우도 있잖아여. 나성에 있는 꽁지형 같은 경우져.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은 현재의 부재를 (존재로) 증명해 주는 것 ... 이런 식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여? 나보코프의 글로 이것을 이해하기는 좀 무리가 있을 성 싶어여. 나브코프가 소설속에서 정밀한 묘사를 즐겼다면, 그가 말하는 과거는 "묘사" 정도로만 이해하면 될 것 같아여. 어차피 묘사는 과거와 관련있으니까요. 그는 '내 작품은 묘사가 장땡이다'라는 말을 '나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라고 약간 먹물적으로 표현 ..
예를들면 승걸이형은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는 슬프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는 홍승걸형을 확실하게 증명해줄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그림촌 사람을 만나면 확실히 증명해준다. 뭐어 그런거지. 아암도의 바다를 인천사람이면 같이 인정하듯이 뭐어 그런거지. 헤에 역시 이해하기 좋게 쓰는게 최고의 글인데. 쯔으 나는 아직 멀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