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왕자의 난 1
( 숨 막히는 첩보전이 시작되다 )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한풀 꺾이자 태풍전야와 같은 고요가 도성을 엄습했다. 평화로운 고요가 아니라 뇌성벽력을 잉태한 고요였다.
임금은 병석에 누워 신음하고, 이방원과 정도전은 서로의 가슴에 겨눌 칼을 가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한양 도성을 짓누르고 있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 수송방에 있는 정도전의 집과 서쪽 순화방에 있는 이방원의 집근처에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도당을 끼고 방원의 집을 스쳐 지나가는 정탐꾼의 발바닥에 불이 붙는가 하면 운종가를 지나 수송방 정도전의 집을 얼씬거리는 방원의 염탐꾼 눈썹이 바람에 휘날렸다.
방원의 첩보망에 의미심장한 정보가 포착되었다. 정도전이 대궐의 승지들을 매수하여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세자 방석의 장인 심효생이 총대를 메고 시위패를 해산당하여 무장해제 상태에 있는 개국공신과 왕자들을 한강 너머로 쓸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방원 진영에서 아연 긴장하고 있는데 태조 이성계가 방원을 불렀다.
"외간(外間)의 의논을 너희들이 알지 않아서는 안될 것 같아 너에게 말한다. 마땅히 여러 형들에게 일러 이를 경계하고 조심해야 될 것이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는가. 궁중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귀띔해 준 것이다. 정도전의 음해공작에 대처하고 목숨을 보전하라는 뜻이다.
궐위에 앉아있는 임금이 아들들의 생명을 걱정하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한강을 건넌다는 것은 권력의 양지를 떠난다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의 참모 정도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권세를 부렸고 이방원의 참모 하륜은 한강을 건너게 되었다. 하륜이 한강을 건넌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의 도강이 아니라 음지로 내몰리는 것을 의미한다.
한양(漢陽)이란 한수지양(漢水之陽) 즉 한강의 북쪽을 말하는 것으로 한강을 건넌다는 것은 권력의 양지를 떠난다는 것을 말한다
표전문 문제로 명나라의 외교 공세가 심할 때 "정도전이 직접 명나라를 방문하여 해명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던 하륜은 괘씸죄에 걸려 오늘날의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양윤에서 계림윤으로 밀려났었다.
그것도 모자라 박자안 사건에 연루되어 수원에 유배 안치되었다 누명이 벗겨져 죽을 고비에서 풀려났다.
하륜이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임지로 떠나는 송별연이 열리던 날, 술이 몇 순배 돌고 취흥이 무르익어갈 무렵, 손님을 초대한 하륜이 술에 취한 척 술상을 뒤엎었다. 앉아서 벼락을 맞은 방원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륜도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방원 집에 이르자 하륜도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오늘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
화가 잔뜩 난 방원은 하륜을 물끄러미 노려볼 뿐이었다.
"술주정을 부린 건 정안공 나리와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일이 화급을 다투게 되었습니다. 오늘밤 술상이 엎어진 것처럼 저들이 세상을 전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방원도 정도전 진영의 낌새를 파악하고 있었다. 방원에게 연민의 정을 보내는 이화와 이무가 정도전과 심효생이 꾸미고 있는 음모의 전모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화는 이성계의 이복동생으로 혁명의 일등공신 방원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방원에게 깊은 애정을 쏟고 있었다.
"소인은 곧 임지로 떠나야 할 몸입니다. 신덕왕후 산역 때문에 안산군사 이숙번이 역군들을 거느리고 정동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데리고 온 역군들은 단순한 역군이 아니라 조련 받은 군사들입니다. 그 사람을 불러서 큰일을 맡기십시오."
신덕왕후 장례식은 마쳤지만 능침으로 가꾸기에는 아직도 할 일이 많았다. 장례까지의 힘든 산역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징발한 장정들이 해냈지만 그 이후의 일은 경기도에서 맡았다.
여기에 차출된 것이 안산군사 이숙번이었다. 안산은 제부도와 소래포구를 끼고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어 왜구들의 노략질이 잦았던 곳이다. 안산군사로 부임한 이숙번은 고을 안전을 위하여 젊은이들을 모아 군사를 조련했다.
목래동 잿머리에 있는 관아 뒤뜰에서 무예를 가르쳤고 해봉산 자락에서 말 타기도 수련시켰다.
"큰일에 쓰일 데가 있으니 열심히 가르치라"는 하륜의 당부를 받고 더욱 열심히 가르쳤다.
백두산 정기와 맞닿아 있는 청계천
한양 도성을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는 물이 청계천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길이 역류의 물이라 하여 무학대사가 경원했던 개천이다. 우기에는 물이 범람하고 갈수기에는 메마른 건천이다.
홍수기에는 장안의 온갖 오물이 떠내려 오는 하수구였다. 이토록 천덕꾸러기 청계천이 백두산 정기와 맞닿아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삼각산에서 용트림한 백두산 정기가 백악을 낳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뻗어 내린 곳이 맹현(孟峴)과 송현(松峴)을 지나 서린방이다.
상서로운 동물을 상징하는 서린(瑞鱗)이라는 고을 명칭도 예사롭지 않다.
백두산 정기를 받아 남으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이 추가령에서 말을 갈아타고 황해바다를 향하여 달리다 광덕산을 낳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백운산을 낳았다. 백운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에 목을 축이고 계속 달려 운악산을 낳고 내친걸음에 달려간 곳이 도봉산이다.
도봉에서 한숨 돌린 백두산 정기가 구름과 정을 통하여 낳은 것이 삼각산이다. 그래서 삼각산을 신령한 산이라 한다.
이렇게 신령한 삼각산이 백두산 정기를 받아 낳은 것이 백악산이다. 종로를 운종가(雲從街)라 부르는 것도 역경에 나오는 운종룡풍종호(雲從龍風從虎)라는 구절과 무관하지 않다.
봉을 잡을까? 황을 잡을까?
백악이 천하의 명당을 품고 있지만 산이 비틀어져 있어 불량품이라 생각하고 승천을 미루며 때를 기다리는 영물이 있었다고 전한다. 삼각산이 학(鶴)과 운우의 정을 나누어 봉황(鳳凰)을 낳기를 기다리는 용(龍)이다. 그 용이 수염을 적시고 있는 곳이 서린방이다.
용은 사람보다 더 존귀한 대접을 받아 용의 수염을 용염(龍髥)이라 한다. 이렇게 예민한 용의 수염에 해당하는 곳에 미 대사관저와 일본대사관, 그리고 연합통신사와 한국일보사가 있으니 정보를 수집하는 안테나와 수염은 밀접한 관계가 있나보다.
카터가 주한 미군철수 카드로 한국을 압박할 때, 반발하는 박통을 감시하기 위하여 도청 안테나를 곤두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 미 대사관저가 이곳에 있으니 아마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고급정보가 수집되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한다.
이곳에 개국공신 남은(南誾)이 그의 첩에게 마련해준 집 후원에 정자가 있었다. 취월당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권세를 부리는 남은이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초승달이 자신의 애첩 눈썹과 너무나 닮았다고 붙여준 이름이다. 이곳이 방원 반대세력의 아지트였다.
예전 우리 선인들이 당호를 지을 때 궁궐전당합각재헌루정원(宮闕殿堂閤閣齋軒樓亭園)이라는 순위를 매겨 놨다. 이것은 누가 강요해서 라기 보다도 스스로 낮추어 부르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선비정신이다.
애첩의 정자에 대궐의 다음 단계인 당(堂)을 붙여놨으니 남은이 애첩을 사랑해서 일까?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고 싶어서 일까?
때는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8월, 더위가 한풀 꺾이고 솔향 가득한 솔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땅거미가 짙어가는 오후, 삼청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졸졸거리는 후원 정자에서 질펀하게 술자리가 벌어졌다.